포스트모던 다원주의 문화에 들어맞는 달라이라마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이동주 칼럼] 달라이라마와 라마교(1)

▲이동주 소장(선교신학연구소). ⓒ크리스천투데이 DB
▲이동주 소장(선교신학연구소). ⓒ크리스천투데이 DB

이슬람과 유교, 천주교 등 다양한 종교를 연구해 온 선교신학자 이동주 소장님이 쓴, 라마교와 그 수장 달라이라마에 대한 분석 자료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달라이라마는 한국인에게 전하는 메시지에서 “한국인은 진리를 따르는 면에서 티베트 사람들과 쌍둥이 형제와 같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선한 마음이고, 대승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자비심에 바탕을 둔 선한 마음’”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또 부처님의 가르침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비폭력’이라며, 진정한 자비심을 실천해야 할 것을 설법하고 있다. 그는 대승불교의 핵심적 가르침을 자비심이고 공(空)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공’이란 단순히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것에 의존해서 있다”는 뜻이며, “무엇이든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달라이라마가 주장하는 이러한 ‘공’ 사상은 대승불교의 무이(advaita)론을 포괄하여 석가모니의 12연기설을 포괄한다. 그는 이를 티베트 고유의 칼라차크라(시륜교) 실천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칼라차크라 불교에 관해서는 본론에서 다룬다.

그는 비폭력을 실천해야 할 이유에 대해 “세상의 모든 것이 인연으로 이어져 있으므로, 내가 행복하려면 반드시 남의 행복도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20세기는 폭력과 유혈 시대였으므로, 21세기를 비폭력의 시대로 만들기 위해 불교의 연기론에 입각해 자비를 실천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세계에 여러 가르침과 종교가 필요하다며 종교다원주의를 표명하고, 특정 주장을 지나치게 선동하는 것을 비판하며,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종교를 강요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종교 간 진정한 조화와 발전”을 추구한다고 한다. 이렇게 그는 21세기 포스트모던 다원주의 문화에 꼭 들어맞는 말을 통해 인기를 한 몸에 모으고 있다.

그는 1989년 세계 평화와 자유를 위한 비폭력주의 실천을 이유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수상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억압받은 모든 사람들, 그리고 세계 평화와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신하여 이 상을 받게 된 것을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상이 변화를 위한 비폭력주의적 실천이라는 새로운 전통을 세운 마하트마 간디에게 바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분의 비폭력주의적 삶은 저에게 교훈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1951년 티베트는 중화민국에 병합됐다. 1959년 티베트인들은 달라이라마를 지키기 위해, 랏사에서 중국의 정치적 탄압에 항거하여 봉기하였다. 그때 6,000여 불교 사원이 파괴되었고, 120만 명의 티베트인들이 학살당했다. 그 해 달라이라마는 결국 인도로 망명하였다. 망명 직후부터 지금까지 그는 40년 동안 40개국을 방문하였고, 미국 방문 시에는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에서 교황 방문 이래 최대 인파인 4만여 군중들게 평화와 관용을 설법했다. 또 시카고와 인디애나폴리스 등에서 열흘씩 강연회를 가지며 “칼라차크라 세계평화 법회”를 주재하였다.

그는 청소년들의 폭행 원인에 대해, “어른들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깃든 따뜻한 심성을 북돋워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아이들에게 연민을 깨우쳐 줘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매일 5,000-7,000명이 몰려 들었다. ‘목회와신학’ 2000년 2월호는 미국에서 달라이라마를 따르는 크리스천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과, 그가 종교를 초월하는 관용과 평화를 주장한다는 이유로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티베트 불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인도의 아티샤가 전한 교의와 서장어 번역 대장경은 어느 것보다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티샤는 티베트 최초 밀교 종파인 카담파의 원조이며, 그의 가르침이 바로 달라이라마의 주장과 같은 칼라차크라이다.

한국에서 티베트 불교가 진흥할 만한 또 다른 이유는 티베트어가 산스크리트어와 문장 구조가 같아 경전 내용이 정확히 보존됐을 뿐 아니라, 분실된 많은 인도 경전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한역된 경전 수가 경부와 율부(깐쥴) 모두 444부에 비해 한역되지 않은 경전 수가 670부이고, 한역된 논부가(딴쥴: 인도학자들의 주석) 107부에 비해 번역되지 않은 것이 3,452부나 된다고 한다. 그 중 다수가 밀교 경전과 그 주석들이다.

1. 티베트의 전통 종교와 건국 신화

불교가 유입되기 전 티베트의 토속 신앙은 본(Bon)교라고 하는 샤머니즘이었고, 티베트 유목민들은 천지의 영들과 자연을 숭배하고 주술을 행했다. 그러나 티베트의 건국 신화는 주후 5세기경 대승불교가 유입된 후에 형성되었다. 그 신화 내용이 ‘관세음보살의 축복으로’ 최초의 티베트 민족이 생겼다고 설명한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예전에는 티베트 전 지역이 물로 덮여 있었는데, 그 물이 줄어들면서 산과 계곡이 생기고 야생 동물들이 있게 되었다. 그 때 관세음보살의 축복으로 아버지 보살 원숭이와 어머니 바위 귀신이 교합하여 많은 원숭이들을 낳았는데, 이들이 점점 지혜가 생겨 인간으로 변하게 되고 최초의 티베트 민족이 되었다. 이들은 점차 40개 넘는 소왕국을 이루었다.”

이와 같은 티베트 신화는 한국의 건국 신화와 같이 이 땅에 하강한 하나의 신적 존재가 인간 내지 짐승과의 결합에 의해 태어남을 설명하면서, 그들 시조가 신적인 혈통이라는 것과 그들 민족이 신적인 후예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땅의 존재와 결합하여 자녀를 번식하는, 하늘에서 하강한 신에 대한 관념은 고대 무교 사회의 신관과 인간관을 반영하고 있다. 이 단군 신화나 티베트 신화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신이 인간이나 짐승처럼 결혼하고 출산하는 모티브(motive)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혼인-출산 모티브’는 고대 유목민 사회나 농경문화 사회의 출산 신앙(Fertility Cult)과 자연숭배 신앙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티베트 샤머니즘에는 전통적으로 영매(Kuten)가 있다. 그는 자연계와 초자연계를 매개하는 사람이다. 티베트인들은 이 영매 속에 들어간 영을 신관(神官)이라고 한다. 그들은 그의 신탁(神託)에 의해 예측을 하며 신의 보호와 치유를 받는다고 믿는다.

티베트 최초의 통일왕국은 B.C. 127년 냐티젠뽀라는 마가다국 왕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눈썹이 터키석이었으며, 눈에는 물갈퀴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를 남이 알까 봐 티베트 쪽으로 보내었는데, 티베트인들이 그를 하늘에서 왔다고 여겨 왕으로 섬겼다고 한다. 그는 주위 소왕국들을 모두 통합하여 율부라강이라는 최초의 통일왕국을 세웠다.

불교 전래에 관한 전설에 의하면 주후 4세기경 불교의 ‘성전’을 넣은 상자와 금빛 보탑을 넣은 상자가 하늘에서 서장 왕궁의 지붕에 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왕의 꿈에 “다섯 번째 후계자가 경전의 뜻을 알게 될 것”이라는 ‘계시’가 있었다고 한다. 그 다섯 번째 왕이 바로 손첸감포(Sron-btsan-sgampo, 581-649)였다.

그는 13세(642년)에 왕위에 올라 랏사를 수도로 정하고 중국과 인도의 영토를 침략하여, 당 태종의 양녀 문성공주와 네팔의 공주 츠존공주(티준 Khri btsun)를 왕비로 취했다. 이 왕비들은 원래 불교도였는데, 문성공주는 결혼 예물로 석가모니 불상을 가져왔고, 츠존 공주도 아축불과 미륵불상를 가져왔다. 특히 문성공주는 불교 경전들을 가지고 들어갔고, 천문학, 풍수지리, 의학, 신학 등 18종의 과학 서적들을 가지고 들어갔다고 한다. 그녀는 풍수지리로 터를 잡아 절을 짓고, 암벽에 경문과 불상을 암각하고, 대형 탑과 불상을 수없이 조성하여 불교 미술을 확산시켰다. 티베트 사람들은 그녀를 ‘바다의 연꽃(쵸패마)’이라 부르며, 타라의 화신으로 여긴다.

티베트 밀교에 백다라와 록다라의 두 보살에 관한 신화가 있다. 그 신화는 손첸감포의 두 부인(네팔인과 중국인)이 다투어 자기 조국의 신앙을 선전했는데, 이들이 죽을 때 관세음보살 이마에 있는 눈(Stirnauge)에서 눈물이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이는 이 여인들이 보살의 화육이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한다. 그 뒤로 두 여인은 백다라(white Tara)와 록다라(green Tara)로 숭배된다. 백다라는 티베트 불교에서 아디불(Adi-Buddha, 본초불)의 배우자(consort, 샥티)로 알려져 있다.

문선 공주는 본래부터 손첸감포왕의 아내가 아니라, 그의 아들 쿵손쿵첸왕(621-643)의 아내였다. 그런데 혼인 후 3년이 못 되어 쿵손쿵젠왕이 죽자, 유목민의 습관을 따라 다시 왕위에 오른 그의 시아버지 손첸감포왕의 부인이 되었던 것이다. 손첸감포는 본래 본교 신앙인이었으나, 그의 두 왕비가 불교도였음으로 불교로 개종하여 많은 경전을 가르치고 사원을 지었다. 그러므로 그는 관음의 화신이자 자비의 스승이자 서장의 수호자로서 존경받았다.

위와 같이 7세기 초 손첸감포왕에 의해 티베트에 전래된 불교는 8세기 후반에 이르러 티송데첸왕(Khri-sron lde-btsan, 742-797)에 의해 국교로 정해졌다. 그러나 그는 중국 불교보다 인도 불교를 선호하여 이를 국교화하고자 했다. 그때 그는 돈황을 함락시켰는데, 그로 인해 중국 선승 마하연이 티베트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티베트 내부에서 인도 불교와 중국 불교의 대립을 빚게 된 것이다.

이때 왕은 삼예사원에서 산타 라크시타의 제자 카말라실라(740-797)와 마하연에게 논쟁을 시켜, 진 쪽이 티베트를 떠나도록 명하였다. 이 논쟁이 ‘삼예의 종론’이다. 이때 마하연은 일체행위를 부정하고 ‘돈오’를, 카말라실라는 장기간 수행을 통하여 순차적으로 달성되는 ‘점수’를 주장하였다. 논쟁의 결국은 카말라실라의 승리로 돌아가 마하연은 돈황으로 추방되고, 티베트는 본격적으로 인도 불교적 국가로 확립되었다.

그러나 티송데첸왕의 죽음 후 왕조 내 분열로 843년 티베트의 토번 제국은 붕괴되고, 불교는 각 씨족세력과 결탁하여 종파불교를 형성하게 되었다. 티베트 불교 역사는 이 혼란기를 경계로 전전기(前傳期)와 후전기(後傳期)로 나뉜다. 전전기는 국가 불교 시대고, 후전기는 종파 불교 시대다. 티베트 불교는 통제력을 잃은 후전기 씨족 불교 종파 때에, 성적 실천을 포함한 천하고 잡박한 탄트라 불교로 전락한 것이다. <계속>

/이동주 박사(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은퇴, 현 선교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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