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이란 무엇인가?(12): 새 언약의 성취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권혁승 교수의 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142)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 36:26-28)

율법 준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이 아니다. 언약의 관점에서 볼 때, 율법은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 형성의 유지를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마땅하고도 바른 자세다.

예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가 아니라 완전케 하러 오셨다고 선언하셨다(마 5:17). 예수는 새로운 율법을 제정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다. 기존의 율법을 온전케 하시기 위하여 오셨다. 그렇다면 율법의 완전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 해답은 새 언약에서 약속된 율법의 내면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에 대한 암시가 에스겔의 예언 속에 나와 있다(겔 36:26-28).

예레미야의 새 언약은, 여러 면에서 에스겔이 강조한 ‘새 영’에 의한 ‘새 마음’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예레미야의 새 언약에서처럼 에스겔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곧 마음에서부터 율법을 지키게 되는 새로운 변화이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땅에서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을 맺게 된다.

에스겔은 예레미야의 ‘나의 법’ 대신에 ‘내 율례’와 ‘내 규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법’(토라)이 율법 전체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율례’(호크)와 ‘규례’(미쉬파트)는 그것을 보다 세분화시킨 구체적인 법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마음에 기록되는 율법의 원칙을 제시한 반면, 에스겔은 새 영과 새 마음의 결과로 율법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 하겠다.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는 가능성은 인간의 자각이나 자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새 영에 있다. 그런 점에서 새 언약이 약속하고 있는 율법의 내면화는 성령의 강림에서 구체적인 성취를 기대할 수 있다. 곧 율법의 온전함은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하며,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삶의 결과이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의 생명의 법’(롬 8:2)이, 마음에 새겨진 새 언약의 율법이라 할 수 있다.

언약은 하나님과의 결속을 의미한다. 그것은 언약 공동체에 속한 전체 구성원의 결속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언약의 핵심인 율법은 이스라엘 전체 공동체의 온전한 결속을 지향한다. 예수께서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로 요약하신 것도 율법의 공동체 지향성을 잘 보여 준다. 그런 점에서 율법은 공동체의 온전함, 곧 공동체의 ‘샬롬’을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말 성경에서 ‘평안’ 혹은 ‘평강’ 등으로 번역되는 ‘샬롬’의 어원적 의미는 ‘온전함’(completeness, wholeness)이다.

율법이 전체 공동체의 온전함을 지향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공동체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소외됨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에서 가장 약하면서 소외되기 쉬운 계층이 고아와 과부, 그리고 이방 나그네였다. 이들은 경제적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활동 자체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성경이 이들의 복지에 관하여 국가와 같은 공적 기관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 각 개개인이 깊이 관심을 갖고 돌보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 그 때문이다. 선지자들은 이들의 상태를 이스라엘 사회의 건전성 측정 기준으로 삼기도 했다.

오늘의 우리는 구약시대와는 많이 다른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 그것은 구약시대의 많은 율법 조항이 오늘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의 기본 요구는 지금도 여전히 동일하게 유효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각자의 삶 속에서 실천하려는 거룩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곧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는 신앙인의 기본이며 성령 충만한 삶의 본질이다.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칼럼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해당 블로그에서 퍼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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