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공(空)은 어떻게 무(無)와 다른가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이동주 칼럼] 대승불교의 세계관과 승려 성철(1)

▲이동주 소장(선교신학연구소). ⓒ크리스천투데이 DB
▲이동주 소장(선교신학연구소). ⓒ크리스천투데이 DB

이슬람과 유교, 천주교 등 다양한 종교를 연구해 온 선교신학자 이동주 소장님이 라마교와 그 수장 달라이라마에 대한 분석 자료에 이어 ‘기독교인들이 알아야 할 대승불교’에 대해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서론

‘불교권에 선교를 해야 하는가?’라는 시대적 질문에 대한 답으로, 선교신학 분야에서 그동안 명백하게 알려지지 않은 불교와 그 발전에 관해서 연구하게 됐다. 그러나 우리의 신학 연구 논문이 신학 전반에 관한 것이 아니듯, 이 글도 불교 전반에 관한 것은 아니다. 본고는 다원주의 문화적인 현실 속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불교권에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에게 회개와 개종을 요청해야 하는 것인가를 확정하기 위한 탐구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셨을 때 보시기 좋았던 인간이 타락하여, 참 하나님이신 우주 창조자를 알지 못하고 부정하거나 잘못된 인간관으로 하나님을 정복하려는 자기 확대 명상에 빠지거나, 하나님을 고(苦)에서 해탈하지 못해 육도(六道)를 환생하는 중생의 하나로 여기거나, 하나님의 은혜와 대속의 길을 알지 못하여 영원한 범죄자로 남아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복음이 불교 문화권에서 불교화되지 않고 올바로 뿌리내리게 하기 위하여(Einwurzelung), 원시 불교의 세계관을 연구하고 ‘불교에도 神이 있는가? 불교에도 구원이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것인가?’ 등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함이다.

지금부터 대승불교의 신관, 인간관, 구원관을 탐구하고, 그것에 대한 선교학적 결론을 얻고자 한다.

1. 공(空)과 반야(般若)

소승불교와는 달리, 북쪽 인도에서 대승불교는 산스크리트어 경전과 함께 티베트 서장을 통해 중국과 한국, 일본으로 확장되어 갔다. 대승불교는 불타가 행한 길이나 아라한의 길은 너무 힘이 들기 때문에, 부처가 되려 하는 대신 부처를 구원자로 숭배하며 그에게서 자비와 긍휼을 바라게 되었고, 점차 무수한 부처와 보살들이 숭배 대상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도의 일원론 및 범신론 체계를 근거로 발전한 철학이 불교의 중심 사상으로 남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철학이 바로 용수(Nagarjuna)의 공(空) 사상이다. 용수는 대승불교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는 중관(中觀)학파와 유가행파의 기초를 확립한 사상가다.

용수는 석가모니의 중도(中道) 사상을 팔불중도(8不中道)론으로 확대한다. 그것은 불생불멸(不生不滅), 불상부단(不常不斷), 불일불이(不一不異), 불래불출(不來不出)로 모든 대립적 개념을 부정하는 것이며, 이원적 대립을 넘어선 곳에 진정한 부처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용수는 소승불교가 공(空)을 보았으나 불공(不空)은 못 보았으며, 무아(無我)는 보았으나 아(我)는 못 보았다고 설명하며, 8不中道가 바로 불성이라고 주장했다.

용수에 의하면 석가모니가 말한 제법무아(諸法無我)란, 세계는 주체가 없고 세계의 모든 법은 자성(自性)이 없고 공(空)한 것이다. 이 空은 無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非有)이고 비무(非無)이며 중도(中道)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 여러 이름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상세계(차별의 세계)를 실재하는 것이라 오인하면, 그것은 유(有)나 무(無)에 빠지는 것이다. 有나 無에 빠지는 것은 다 오류이다. 그러므로 공의 ‘진리’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방편을 사용하며 공을 진제(眞諸)와 속제(俗諸)로 구별한다. 전자는 세계를 반야(般若)의 눈을 통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고, 후자는 속세인들이 세계를 상식적인 눈으로 보는 것이다. 전자는 모든 차별과 대립이 사라져버 린 불이(不二)의 세계이며 그것은 유(有)와 무(無), 생사와 열반, 중생과 불타의 구별이 부정되고, 공(空)마저 부정되는 공공(空空)이다.

공공(空空)은 최후의 완전한 空이자 일체무소득(一切無所得)의 세계이며, 동시에 모든 차별상이 그대로 살아 있는 다(多)의 세계이다. D. T. 스즈키가 금강경 연구를 통하여 석가모니가 얻은 열반,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은 실(實)도 없고 허(虛)도 없다고 해석한 바와 같다. 空의 진상은 “각자의 주체성,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불이(不二)이다. 예를 들면 남자는 여자가 있어 남자라 불리고, 여자는 남자가 있어 여자라 불린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不二이며 空이라는 것이다.

다무라 요시로는 불이중도(不二中道)의 뜻이 균형이나 절충이 아니라 일체의 대립을 초월한 원만한 경지를 말하는 것이며, 일체의 한정을 넘어선 절대적인 세계라고 설명한다.

용수는 공(空)을 열반이며 중도라고 하였다. 칼 야스퍼스는 용수의 공을 설명하여 ‘완전한 비논쟁 상태(vollkommene Streitlosigkeit), 냉담(Gleichgültigkeit), 적중되지 않은 상태(Nichtbetrofenheit)이며,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상태’라며, 이것이 바로 무이(無二)를 실현한 포괄자(das Umgreifende)라고 했다.

무이(無二)의 상태란 글라세납(H. v. Glasenapp)이 설명하듯 주체와 대상의 대립(Gegen-sätzlichkeit)을 극복한 ‘경험적’ 상태를 말한다. 외계란 인간의 의식에서 반영된 환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므로 이를 지양한다. 대립의 극복을 뜻하는 열반 또는 공 내지 무이(無二 )라는 ‘포괄자’는 존재의 파괴가 아니라 야스퍼스나 글라세납의 진술과 같이,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논리적으로 생각해 낼 수 없는 마지막 추상적이고 부정적인 개념이다. 이와 같이 석가모니의 ‘부정적 세계관’은 용수에 의해 ‘포괄적 세계관’으로 확대된다.

법회 때마다 외우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은 바로 이 대승불도의 중심이 되는 공사상을 고백하는 것이다. 반야심경은 4-5세기경 인도에서 온 구라마집(Kuramajiva)에 의해 번역된 <般若바라밀다심경>이다. 산스크리트어 ‘반야’는 우주의 본질이 공(空)함을 밝히고, 그 뜻을 설명한 지혜를 의미한다.

바라밀다란 Paramita의 음역으로 완성을 뜻한다. ‘저 언덕에(parami) 이르는(ita), 피안에 도달한, 또는 지혜를 완성한’ 등의 뜻이 잇다. 반야심경은 관세음보살이 “깊은 반야 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모두 비어 공함을 비쳐 보고 일체의 고액이 없는 자리에 이르렀다”고 하는 진언(주문)이다.

색(色)은 공(空)과 다르지 않고, 空은 色과 다르지 않으니, 色이 즉 空이고, 空이 즉 色이다. 모든 법(法)은 상(相)이 없이 空한 것이며, 성별도 없고, 부정하거나 정함도 없고, 증가하거나 감소하지도 않는다고 암송한다. 반야심경의 세계는 절대 無가 아닌 空이며, 무명(無明)도 없고 무명이 없음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이 없음도 없다는 논리다. 즉 공이란 얻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이 진언은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로 마치게 된다 .이 말의 해석은 일치하지 않으나, 현수보살은 “가세 가세 다 함께 피안으로 건너가세, 건너가서 깨달음을 이루어 마치세”로 해석했고, 신라의 원측(圓測)(613-696)은 “이르도다 이르도다 피안에 이르도다. 깨달음을 이루워 마치도다”로 해석하였다.

이와 같이 반야심경은 불교를 주술신앙으로 이끌어 갔고, 샤머니즘과 같은 주술적인 토착신앙들이 불교를 쉽게 받아들이게 했다.

2. 불성과 마음

일체의 중생은 모두 불성을 갖추고 있다는 열반경의 한 마디가 불교의 인간론과 세계관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고, 인간의 마음은 부처의 마음과 같다는 일종의 범신론이다. 화엄경이 “이 세상에 마음이 만들어 내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설명하듯, 정과 부정(淨과 不淨)도, 미혹과 깨달음도, 선과 악의 구별도, 생(生)과 사(死)도 모두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마음만이 이 세상을 만들고 지배하는 주인이라고 가르치는 바와 같다.

그러므로 팔리어 경전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마음이여, 너는 나를 왕으로 태어나게도 하였다. 또 부랑자로 태어나게도 하여 걸식하게 한 일도 있었다. 때로는 신(神)들의 나라에 태어나게도 하며 영화의 꿈에 취하게도 하였고, 또 지옥의 불길에 타게 한 일도 있었다. 어리석은 마음이여, 너는 나를 여러 가지 길로 인도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늘 너에게 따랐을 뿐 배반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몸이 되었다. 괴롭히거나 방해하지 말아 주게….”

인간의 마음이 생과 사, 선과 악을 구별하는 분별심 또는 차별심을 내는 것이며, 이것은 그릇된 것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가 이러한 망상을 버리고, 분별을 떠나는 “지혜”를 깨쳤다는 것이다.

대반열반경은 불성과 자아를 구별하며, 후자는 분별심에 의해 분별되고 집착된 개념이고, 전자는 그것이 그릇된 것임을 알고 깨우쳐 집착을 버린 것이다. 그러나 자기 본성이 불성이라는 것을 알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설명하는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앞발을 만져 본 사람은 코끼리가 거대한 당근처럼 생겼다고, 귀를 만져 본 사람은 큰 부채처럼 생겼다고, 코를 만진 사람은 절구처럼 생겼다고, 꼬리를 만져 본 사람은 새끼줄처럼 생겼다고 말하여 어느 하나도 코끼리를 알아 맞춘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오직 부처의 법(法)에 의해 이제 영원불변의 불성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자아는 없고 오직 불성만 있게 된 것이다. 비록 윤회 과정에서 축생, 아귀로 태어나거나 지옥에 떨어질지라도 그 불성은 없어지지 아니하며, 그렇기 때문에 불성은 금강석에 비유되고 있다.

그러나 불변의 불성이 인간의 본성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그것만으로 부처인 것이 아니다”. 계발하고 깨닫고 공덕을 쌓아 성숙해질 때에야 비로소 불성이 나타나는 것이며 불타가 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불성을 육체 속에 숨어 있는 영혼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불성은 다만 실현해야 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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