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칼럼] 더 깊은 갈망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1950년대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여배우가 있다. 마릴린 먼로이다. 먼로는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것을 거의 다 가지고 있었다. 돈, 명성, 미모, 인기 등등.

그런데 그녀에게는 인생의 진정한 만족이 없었다. 늘 허전하고 외로웠다.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 두려웠다. 수면제를 먹지 않고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결국 그는 36살의 젊은 나이에 하직했다.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여 자살하고 말았다. 그녀가 남긴 메모 중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나는 돈, 미모, 매력, 인기를 다 가지고 있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일 텐데, 왜 이렇게 고독하고 슬플까?”

사실 이 정도의 삶을 누리는 건 쉽지 않다. 최정상의 인생, 이건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분명히 비범한 삶이다. 그러나 비범한 삶도 별것 없다. 허무함의 썰물을 이길 재간은 없으니까.

이 세상 것들은 달콤할 수 있다. 그럴싸할 수도 있다. 먹음직스럽고,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탐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바다에 있는 물과 같다. 먹어도 먹어도, 마셔도 마셔도 해갈되지 않는 갈증을 다 채울 수 없다. 취하면 취할수록 더 큰 갈증이 일어난다. 뭔가 더 새로운 게 필요하다. 더 신선한 게 필요하다. 더 궁극적인 게 필요하다. 더 깊은 갈망이 요청된다. 사람들마다 ‘그게 뭘까?’를 찾아 헤맨다.

‘갈망의 과녁’이라는 것이 있다. “질병과 고통 없이 편안하게 먹고살 수 있으면 좋겠다.” 이건 개인적 차원의 만족이다. 이런 갈망은 5점짜리 과녁이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살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만족이다. 이런 갈망은 7점짜리다.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면 좋겠다.” 이건 창조자와의 관계에서 오는 만족이다. 이런 갈망은 10점짜리다. 나는 지금 몇 점짜리 갈망의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고 있는가? 내 안에 일어나는 갈망은 무엇인가?

시인은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시 42:1-2)?”

주를 찾기에 갈급함. 주님으로부터 흘러 넘치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 주님이 채우시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주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주님의 임재 앞에서 흘러 나오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기에.

문득 젊은 시절 아내와 연애하던 때를 생각해 본다. 교회 안의 커플이라 다른 청년들이나 성도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도둑 연애를 했다. 나는 당시 총신대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하던 때였고, 아내는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하던 때였다. 둘 다 시간에 쫓기는 바쁜 삶이었다. 그런데도 시간이 두 사람을 묶어 두진 못했다.

나는 일주일이면 한두 번씩 러브레터를 썼다. 지금도 대학 캠퍼스에서 편지 쓰던 생각이 난다. 화사한 봄날, 강의를 들으면서 교정에 가득 핀 자주색 목련을 바라보며 시적인 표현을 담아 편지를 썼다.

오후 퇴근 시간이면 길목에서 기다렸다가 얼굴을 보곤 했다. 거의 매일 빼놓지 않고서. 만나고 만나도 싫증나지 않는 만남, 보고 보아도 질리지 않는 얼굴, 그칠 줄 모르는 갈증은 ‘빨리 둘만의 둥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갈망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갈증을 찾아보기 힘들다. 사랑이 식은 걸까? 마음이 변질된 건가? 그렇지는 않다.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사람이다. 이 세상을 이별하는 날까지 그 마음은 변치 않으리라. 그러나 갈망의 수위는 달라졌다. 아니 어쩌면 또 다른 사랑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 거겠지. 지금도 연애 시절의 갈망으로 사랑한다면 그건 안 될 말이 아닌가?

나는 지식에 대한 갈망도 누구보다 강하다. 더 알고 싶고, 더 배우고 싶다. 알아갈수록 신이 나고 설렘이 있다. 새로운 것을 알아감에 대한 뿌듯함과 신비감이 있다. 그래서 책을 보고, 신문을 뒤지고, 인터넷을 둘러본다. 스스로 깨달은 지식을 얻기 위해 깊은 묵상과 생각 속에 잠기곤 한다.

나는 어린 시절 산골짝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시골에서 누린 아름다운 정취가 무척 좋았지만, 그래도 도시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대구로 유학했다. 대구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나는 늘 서울에서 대학 공부를 하고 싶었다. 결국 서울로 진학하게 되었다.

신대원을 다닐 때, 나는 유학을 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가지는 못했다. 그대로 더 알아가고자 하는 나의 갈망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학위까지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알아감에 대한 갈망을 멈추지 않는다. 부족하니까 그렇기도 하고, 성도들을 더 잘 섬기고 싶어서 그렇기도 하고, 새로운 나를 발견해 나가는 행복감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그런데 나에게 더 중요한 갈망이 있다.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아가고자 하는 갈망. 내 삶의 전역이 예수님에게 정복되고자 하는 갈망. 자잘한 글씨 속에 담겨 있는 생명력 있는 말씀을 파헤쳐 가고자 하는 갈망. 만물보다 부패한 내 마음에 만물을 새롭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채우고자 하는 갈망. 저녁에 잠자리에 누울 때도, 아침에 일어날 때도, 하루종일 일하는 일상에서도 주님을 생각하고 바라보고자 하는 갈망.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365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처럼, 그렇게 주님과 동행하고 싶다.

깊은 영성의 길을 걸었던, 18세기 북미 인디언 선교사였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그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1742년 6월 15일 화요일, 내 생애에서 가장 간절하게 하나님에 대해 갈망했던 날이다. 정오경에 나는 외딴 곳에서 달콤한 적막 가운데 나의 주님께 이렇게 아뢰었다. ‘주님, 제가 오직 당신만을 갈망하며, 오직 거룩하기를 갈망한다는 거 아시지요. 당신이 저에게 이런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제게 그런 마음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당신밖에 없습니다.’”

‘주님, 제가 오직 당신만을 갈망하며, 오직 거룩하기를 갈망한다는 거 아시지요?’ 아침의 창문을 열면서 그렇게 출발하고 싶다. 살아 숨쉬는 모든 순간마다 그렇게 살고 싶다. 하루의 일상을 마치고 쉼의 세계로 들어갈 때도 오직 주님만을 갈망하고 싶다. 주님에게 더 정복되길 원한다. 주님으로 더 채워지길 원한다. 주님의 숨결을 더 느끼길 원한다. 그게 남은 내 삶의 과제가 되길 바란다.

어쩌면 나에게 주님을 갈망하는 ‘영혼의 밤’이 필요한지 모른다. 그 밤의 적막함은 외로울 수 있다.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너무나 캄캄하기에 막막하고 두려울 수도 있다. 답답함과 초조함이 엄습해 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 밤에 주님을 만난다. 주님으로 만족한 그 무엇을 얻게 된다. 그래서 다가오는 영혼의 밤을 거부하지 않는다. 영혼의 밤에 누리는 더 깊은 갈망의 채움을 경험하면 이 세상이 별것 아닐 수 있다. 더 깊은 영적인 풍요로움이 있기에.

18세기 미국의 청교도 설교가 조나단 에드워즈는 말했다.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는 것은 우리 영혼을 만족케 하는 유일한 행복이다.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온전한 기쁨을 누리는 것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좋다. 아버지, 어머니, 남편과 아내, 자녀들, 또는 세상 친구들은 단지 그림자에 불과하다.”

더 깊은 갈망! 그러나 이 세상에서 다 채우려 하는 건 과욕이다. 이 세상에서 채울 수 없는 갈망들이 있다. 이 세상 것들로 만족시킬 수 없는 공허함이 있다. 그걸 하늘나라에서 누리리라. 그날을 향해 기다리리라. 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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