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칼럼] 추석에 나누는 고향 이야기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명절이라고 하면, ‘고향’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대부분은 명절에 고향을 찾아간다. 이번 추석에도 수천만 명이 대이동을 했다. 추석에 크고작은 사고들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고향을 향해 달려간다.

고향은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자라난 곳이다. 생명의 발원지요 갖가지 삶의 애한과 추억이 담긴 곳이다. 그래서 고향이란 말을 듣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설렌다. 빨리 달려가서 고향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진다.

사람들은 마음이 힘들어질 때면 고향을 생각하고 찾아간다. 인생 여정이 끝날 때쯤 되면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에 정착하려고 한다. 요즘은 화장을 해서 좀 다르지만, 얼마 전에만 해도 객지를 전전긍긍하다가도 죽을 때는 고향에 묻히곤 했다. 그렇게 고향은 우리네 마음에 소중한 보금자리다.

명절에도 안타깝게도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 고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돌아가려 해도 갈 수가 없다. 그래서 명절이 되면 고향을 찾는 들뜬 분위기 속에서, 한층 더 외로움을 달래며 눈물을 흘린다.

북한 땅에 가족을 두고 남한으로 넘어온 수십만의 이산가족이 그렇다. 이제는 고향 땅을 마음속에 묻은 채, 하나둘 이 세상마저도 하직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향을 등지고 돈을 벌기 위해 한국 땅에 와서 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결혼을 위해 한국 땅을 찾은 다문화 가족들도 그렇다.

고향을 찾을 수 없는, 더 가슴 아픈 이들이 있다. 시리아 난민들이다. 고향은 고사하고 받아 주는 나라, 발붙일 땅마저도 없으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이들의 마음이라도 헤아리고, 이들과 따뜻한 사랑의 마음과 손길을 나누는 명절이 되기를 바란다.

전북 군산에 36살의 젊은 엔지니어가 있다. 그는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다. 그러나 열심히 독학을 해서 일본과 중국, 브라질을 오가는 등, 촉망받던 금형기술자가 됐다. 그의 손을 거치면 멋진 금형 틀이 나오곤 했다.

그런데 그에게 불행의 먹구름이 엄습해 왔다. 2014년 7월이었다. 회사에서 차를 몰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깜빡 졸다 전봇대를 들이받고 말았다. 옆자리에 타고 있던 사람은 현장에서 사망했다. 본인도 뇌를 크게 다치고, 한쪽 눈을 잃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고 이후 인지기능이 크게 떨어져, 가족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대소변 처리도 못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1남 1녀를 키우며 단란하게 살던 가정이었다. 그러나 행복은 한순간에 깨어지고 말았다. 간병인을 부를 형편도 못 된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인 딸이 학교와 병원을 오가면서 대소변을 받아냈다. 가족들의 지극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치매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결국 12월 김제의 한 병원으로 옮겨 왔다. 매일 보는 의사선생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딸을 동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북한에서 왔다’고 하기도 한다.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아내는 김밥집을 운영하면서 간호하고 있다. 억척스럽게 살고 있지만 현실은 너무나 암울하다. 시골이어서 하루 매출이 3만 원도 안될 때가 많다. 이미 병원비와 동승자의 보험금 구상권 등으로 수천만 원이 들어갔다. 더구나 아내도 퇴행성 관절염이 심해 오래 걷지 못하는 상황이다. 결국 남편 병문안도 한 달에 두 번 정도만 나서고 있다. 아내는 남편을 위해 추석 전날 하루 외박 신청을 했다. “이번 추석에는 집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보내자”는 아내의 말을 알아듣는지 남편의 얼굴이 환해졌다.

찾아갈 고향이 있음에 감사한다. 아니 고향을 찾아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왜? 고향은 있지만, 찾아갈 수 없는 사람들도 너무 많으니까.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손에는 선물 꾸러미들이 가득 들려 있다.

그런데 정말 챙겨야 할 선물 꾸러미를 챙겼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 ‘사랑과 화해의 선물 꾸러미’이다. 가족이라고 하지만 가족 같지 않은 가족들이 많다. 만나기만 하면 서로 으르렁거리고, 툭하면 싸움판을 벌인다. 그러니 ‘다시는 이 집구석을 찾아오나 봐라!’고 하면서 상처만 갖고 고향집을 떠난다.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지만, 갈등하고 다툴 수도 있다. 그러나 화해하고 용서할 줄만 안다면 문제는 될 게 없다. 이번 명절에는 온 가족이 서로 옛 추억을 나누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화해와 치유를 경험하면 좋겠다. 좀 불편하더라도, 좀 없더라도, 사랑이 넘치는 가정, 웃음으로 화목한 가정이면 족하지 않은가.

우리에게 ‘육신의 고향’만 필요한 게 아니다. 온갖 추억이 스며 있는 ‘마음의 고향’도 필요하다. 꼭 고향이나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해도 좋다. 우리가 발을 붙이고 있는 이 땅을 마음의 고향으로 만들면 된다. 마음 붙일 수 있는 곳이라면 그게 고향이 아니던가.

누구에겐가 푸근함과 따스함을 느낄 수 있게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마음의 고향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향을 만들어 주고 싶다. 나 자신이 그 누군가의 마음의 고향이 되어 주리라.

영적 존재인 인간에게는 영적인 추억들이 담긴 ‘영혼의 고향’도 필요하다. 우리는 먹고 입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영적인 삶의 경험이 필요하다. 교회는 모든 이들에게 ‘영적 고향’이 되어 주어야 한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영적인 추억들을 쌓아가고, 영원한 본향인 하늘나라를 맛볼 수 있어야 한다. 교회야말로 영적인 경험이 이루어지는,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고향’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영원한 본향’을 소유해야 한다. 육신의 고향을 찾고, 마음의 고향을 찾아도 영적인 고향을 잃어버린 자, 마지막 죽음의 때에 찾아가야 할 영원한 본향을 놓친다면, 그건 ‘허수아비 고향’만 소유한 것이다.

인간이 돌아가야 할 궁극적인 고향은 ‘하나님나라’이다. 이 땅에서 나그네 여정을 마치면 주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안식처인 하늘나라에 갈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서는 이방인처럼, 여행 중에 있는 나그네처럼 살았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

나그네 인생은 ‘보이는 세상’에 투자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늘 도성’을 위해 투자하며 산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영원한 하늘 본향’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음을! 그렇기에 하늘나라를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이 땅의 세계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하늘에 있는 도성을 바라보는 우리는 이 땅에서 늘 ‘장막’ 생활을 감수해야 한다.

이 땅에서 낯선 신분의 사람으로, 명예가 없는 신분으로 살더라도 자존심 상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본향에서 ‘더 좋은 명예와 신분’을 획득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투자하며 살 뿐이다.

우리 주변에 영원한 하늘 본향을 소유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그들에게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영원한 하늘 본향을 찾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나에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을 수도, 그 사람에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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