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건 총기 사건에 대한 견해
“크리스천입니까?”라고 묻는 자동 무기를 상상해 보라. 진실을 말하면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 대안이 있을까? 당신이 아는 것을 부정할 것인가?
이와 똑같은 상황이 13명의 사람들에게 벌어졌다. 움프콰 커뮤니티 칼리지 캠퍼스에서, 한 암울하고 뒤틀린 젊은이가 이 물음을 던졌다. 초기에 언론은 범인이 종교에 대해서 물었다고만 보도했다. 이후 그가 사람들을 전부 엎드리게 한 후 크리스천인지 물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종교를 물었다. 그는 “크리천인가?”라고 물었을 것이다. 오리건 로즈버그에 위치한 이 대학에서 부상당한 딸을 둔 스태이시 보일렌은 “(범인이) ‘크리스천이면 일어서라’고 한 후, 사람들이 일어서면 ‘좋아, 당신은 크리스천이니 약 1초 후면 하나님을 보게 될 거야’라고 말하곤 그들을 향해 총을 쐈다”고 CNN을 통해 말했다.
총기난사범 크리스 하퍼 머서는 일반적으로 종교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크리스천에 대해 반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가입한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서, 그는 자신에 대해 “기성 종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움프콰 칼리지에서 1일(현지시각)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머서의 소지품 중에서, “(자신은) 지옥의 환영과 악마의 포옹을 받을 것”이라고 적힌 노트가 발견됐다. 그가 자신이 바랐던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한 곳에 가게 됐을 것임이 분명하다. 거기엔 환영도 포옹도 없을 것이다. 그저 암흑과 하나님에게서의 고립만이 존재할 것이다.
이 사건은 크리스천을 대상으로 한 일련의 사건 가운데 최근에 일어났다. 지난 6월 17일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 위치한 흑인교회에서 한 총기소지범이 기도 모임에 급습해 담임목사를 포함해 9명을 사살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한 가지 질문이 남아 있다. “당신은 크리스천인가?” 이 질문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콜로라도주 콜롬바인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7세 레이첼 스콧은,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알고 있던 범인 2명의 표적이 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그들은 먼저 레이첼의 다리를, 이후엔 등을 쐈다. 두 범인 중 한 명이 그녀가 아직 살아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의 머리를 들어 올린 후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지 물었다. 그녀는 동요하지 않았다. “내가 믿는다는 걸 당신은 안다”는 대답에, 그는 마지막으로 총을 발사해 그녀의 생명을 앗아갔다.
우리가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미국 내 크리스천들이 받고 있는 박해다. 우리는 중동의 우리 형제와 자매들이 IS와 같은 단체들에 의해 신앙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를 거의 매일 접한다. 그러나 이제 그 같은 박해는 우리나라에 도착했다.
최근 사건과 같은 일이 일어나면 “왜”라는 질문이 나오고, 정신보건과 총기규제가 화제로 떠오른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이 악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맞다. 천국에 하나님이 계시듯, 예수를 믿는 자를 향한 박해 뒤에는 사탄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이 같은 공격에 대해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환경에 섞여 들어가려 해야 할까? 우리가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아야 할까? 아니다. 우리는 더욱 담대해야 하며, 우리의 신앙을 고수하고, 그에 대해 말해야 한다.
이 같은 사건은 섬뜩하나, 용기 있는 이 크리스천들은 천국의 환영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당신과 내가 이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하나님께서 신앙을 강하게 지킬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 믿는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영적인 화제로 전환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다른 이들이 우리에게 동의하지 않을 경우 난처한 입장에 놓일 것을 두려워하며, 말없이 앉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않는 것이, 그를 부인하는 한 가지 방식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마 10:32)
움프콰 칼리지 캠퍼스에서 자신들의 믿음을 지킨 이들의 용기에 자극을 받자.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용감하게 신앙을 부인하지 않은 이들을 생각해 보자. 우리 신앙과 예수를 강력히 지지하는 데에 우리는 얼마나 더 담대해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