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불교권에 선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이동주 칼럼] 대승불교의 세계관과 승려 성철(6·끝)

▲이동주 소장(선교신학연구소). ⓒ크리스천투데이 DB
▲이동주 소장(선교신학연구소). ⓒ크리스천투데이 DB

7. 성철 승려의 사상

성철은 ‘우주 창조자 하나님’이 ‘내 품 안에 계시고’, 그래서 나와 하나님은 일체라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성철은 창조자, 즉 초월자가 없는 전통 불교철학의 ‘자기초월(無我, 非我)’의 목표에 머물지 않고, 한층 더 상승시켜 나는 유무(有無)로 형성된 ‘저 우주 밖의 것’이라고 하며 ‘우주초월’을 주장하고 있다.

그의 우주초월이라는 말은, 유일신론과 창조신앙을 가진 기독교 세계관과 창조주 하나님의 자리를 정복하는 개념이다. “초절대적인 신성불가침의 나”는 심즉불(心卽佛), 인내천(人乃天), 범시아(滼是我)이므로, 노력하여 “하나님이 되며” 부지런하여 “전능자가 되어야 할 것”을 주장한다.

성철은 부처와 마귀를 동일시하여, “몸은 하나인데 이름이 다를 뿐”이라고 한다. “소나 돼지 같은 짐승까지도… 부처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며 서로 존경하라고 가르친다. 그는 한편으로 마음이 부처이고 신이며 우주라고, 마음만이 전지전능하고 모든 것을 만드는 실재이며 주재자라고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부처도 꿈이고 예수도 꿈이고 지구 태양이 다 꿈”이라고 한다.

그는 마음과 다른 모든 것(생각)과의 관계를 힌두교가 좋아하는 “물과 파도”의 비유로 설명하였다. 이 같이 성철은 마음만을 절대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와 동격화한 신도 부처도 부정하였다. 그러나 그 절대는 한 마음도 아무것도 아니며, 또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고, 설명할 수 없고 생각해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성철이 화엄경과 나란히 중요시한 경전은 49년간 설법한, 불타의 총결산이라고 하는 법화경이고, 특히 그 방편설이다. 법화경은 오직 부처밖에 없다는 일승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지혜가 성장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방편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천당이나 극락을 설하지만, 성철은 “위로 올라가는 천당”도 “옆으로 가는 극락”도 거짓말이며, 다만 방편설일 뿐이라고 한다.

오직 “현실 이대로가 절대이고 극락 세계이고 천당이며, 중생 모두가 하나님 아님이 없고 부처님이 아님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부처님을 믿고 안 믿고 할 것 없이, 누구든지 착하게 살면 좋은 곳에 간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천국’은 “지혜가 크게 발달되기 전에 믿었던 것”이고, 지금과 같은 우주과학시대에 신(神)을 전제로 하는 종교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다”고 한다.

이성철은 1966년 11월 1일 조선일보에 실린 故 서남동 박사의 “성부가 죽고 성자로 나타났고, 다시 성자는 죽고 성령으로 나타났다는 것”과, “역사적 예수가 또 형태 변화를 해서 만인의 얼굴과 눈으로 분신 화신하는 성령이 되었다”는 ‘기독교 무신론’, 즉 양태론적 진술을 인용하고 자기 자신의 범신론까지 혼합하여, 본래 기독교의 삼위일체론과 창조신앙을 파괴하고자 했다. 이성철은 전지전능하고 절대적인 성경적 신은 다만 ‘신화적 신’이므로, 그 신을 재창조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죽어서 없고 예수도 죽어서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죽고 없지만 그냥 없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가 형태 변화를 해서 성령으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분신 화신하고 있다고 합니다. 각 사람마다 다 성령이 있으니… 초월신이 아닌 인간에 내재한 내재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곧 인간이 하나님이고, 인간 속에 하나님의 절대성이 들어 있음을 말합니다. 불교에서 모든 사람에게 다 불성이 있다는 것과 통하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성철은 성령과 인간의 마음과 불성을 모두 동일시하였다. 그는 성령을 예수의 분신 화신으로 해석했고 범신론적으로 이해했다.

그는 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자기 제자에게 배반당하고 그 마지막을 마쳤습니다. 그것은 다 전생에 죄만 많이 짓다가 금생에 왔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하여 예수를 6도를 왕생하는 중생 중 하나로 보았다.

위와 같이 성철은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을 범신론으로 왜곡한 후, 기독교도 모든 종교와 동일한 목표를 가졌다고 설명했다. 그 목표는 “상대적이고 유한한 세계에서 절대적이고 무한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독교의 메시지, 즉 창조주 하나님과 그분의 거룩하신 영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대속의 십자가에 관해 알지 못하는 이성철은, 그 인생의 마지막에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에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죄업이 수미산을 지나치도록 많았음에도, 고(苦)에서 해방을 받기 원한 것처럼 죄에서 해방을 받으려고 고민하지는 않았다.

바로 이 점이 불교인의 죽은 양심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다른 불교도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회개도 없고, 용서도 없고, 구원도 없고, 천국도 없다고 느끼는 불쌍한 영혼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예수가 전생의 업보를 따라 제자들의 배신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인과응보와 윤회의 법칙은 성철에게도 변함이 없는 진리다. 그러므로 그는 최면술을 이용해 연령역행술을 행하여 전생을 기억해 내도록 할 수 있다는 것과, 마술적인 “무한대의 힘”과 연결되게 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윤회의 법칙 때문에 그는 사회윤리를 강조했다. ‘불공’은 ‘부처님’이 아니라 ‘일체중생’에게 하는 것이며, 버스 안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것에서부터 강아지에게 밥을 주는 것까지, 남을 위해서 하는 모든 것이 불공이라고 한다. 절을 할 때도 부처에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일체중생을 위해서 원을 세우는 것이다. “일체중생이 행복하게 해주십시오”라며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 불교 승려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성철이 자기를 ‘우주초월’의 경지에 올려놓은 것을 보면서, 죄를 벗지 못한 타락한 인간의 실상이 얼마나 교만한 것인가를 여실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상 모든 범신론자들의 종교적 목표가 주객합일의 신비(Mystik)를 통해 자기신격화를 꾀하려는 것이다. 폴 틸리히(P. Tillich)가 창조주 하나님의 최종 권위를 부인하고, 힌두교와 불교적인 사상적 맥락에서 존재와 무존재라는 모든 절대적인 개념을 포괄한 새로운 신, 즉 “신 위의 신”(God beyond God)을 구상해 냈다면, 이제 이성철은 참 자아가 되려는 자기초월의 차원을 넘어서 ‘우주초월’이라는 자리에 인간의 자아(心)를 올려 놓고, 우주 창조주를 완전히 거부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그 자리를 정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론

처음부터 힌두교 ‘이단’으로 출발한 불교는 그 세계관과 구원관과 구원 방법에 있어 힌두교의 사상적 전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힌두교와 마찬가지로 불교도 하나님을 찾는 종교가 아니라 자아를 찾는 종교이고,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죄와 타락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종교가 아니라 업보와 윤회전생에서 도망쳐 나오는 방법을 추구하는 종교이다.

그러나 힌두교가 자아와 우주와의 합일을 추구한다면, 불교는 인생의 고에서 탈출하려는 무신론적 현실 해결주의에 기울어지고 말았다. 또 힌두교가 3억 3천의 신을 숭배한다면, 불교는 처음부터 철저한 무신론이었다.

하지만 석가모니의 입멸 후 소승불교 재가자들이 부처·불탑·유골 등을 숭배하기 시작했고, 불교가 지역적으로 확장됨에 따라 대승불교와 밀교로 발전했으며, 불교는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상관없는 모습으로 변해갔고, 석가모니를 포함하여 무수한 부처와 보살들과 신들을 숭배하는 혼합불교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불교에도 신(神)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신이 있다고도 대답하고 없다고도 대답할 것이다. 불교에서 신(神)들은 우주 창조자도 절대자도 아닌, 6도(道)를 윤회 전생하는 중생일 뿐이다.

또 ‘불교에도 구원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구원이 있다고도 대답하고 없다고도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 구원은 속죄의 사실과 역사적 근거를 가진 하나님과의 화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와 업보에서 스스로 탈출해야 하는 자력구원이다. 불교는 원죄와 창조론을 거부하는 무신론 종교이기 때문에, 구원자도 없고 구원도 없다.

그러나 아시아로 확장되면서 혼합적 대승불교와 밀교가 된 불교는, 신 대신에 무수한 부처와 보살을 구원자로 숭배하고 염불 대상으로 섬겼다. 그 중 대표적인 부처와 보살은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이다. 그러나 이떤 부처나 어떤 보살도 역사적 인간과 역사적 범죄자를 위한 역사적 구원을 이룩한 적은 없다. 오직 신화만이 있을 뿐이다.

불교는 힌두교와 마찬가지로, 신비만 중시하고 역사는 중시하지 않는다. 본래 세계를 무아(無我) 내지 공(空)으로 보는 불교도에게는 실재와 역사성이 중요하지 않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불교는 인간 자신을 신격화하여 절대자의 자리에 올려 놓는다. 황벽이 “나는 절대자 안에 거하고, 절대자는 내 안에 거한다. 나는 절대자다”라고 고백한 바와 같고, 성철이 자기 마음을 “신(神)이며 우주이며 부처”라고 주장한 바와 같다.

인간의 마음을 존재와 비존재의 기초로 삼고 마음을 깨달으며 마음을 신격화하여 마음을 부정하고 마음을 해탈하는, 마음 중심 철학의 문제점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이라는 성경 말씀(렘 17:9)이 지적하는 바와 같다. 그 문제는 하나님을 잃어버린 무신론자들의 허망한 자기숭배와 우상숭배에 있는 것이다(창 3:5).

또 이들의 구원이라는 해탈 또는 열반의 상태란 참다운 구원이 아니라 그들의 말 그대로 멸아이며, 후기 불교에서 발전한 극락사상이나 아미타불 신앙도 비역사적 허구이며 방편과 속임수일 뿐이다.

이러한 불교 구원관의 허구성은 석가모니의 철저한 무신론과 일원론적 세계관에서 연역된 것이고, 인간의 피조물 됨(창 1:1)을 거부하는 적신적 철학의 결과로 얻는 멸아이며 멸망이다. 기독교가 불교권에 선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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