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칼럼] 천국에 갈래!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엄마! 그냥 천국에 갈래.”

희귀병을 앓고 있는 5살 난 여자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 말을 한 주인공은 줄리아나 스노이. 그는 ‘샤르코 마리 투스(CMT)’라는 질병을 앓고 있다. 근육이 위축되는 유전성 희귀 불치병이다. 이 병에 걸린 어린이는 면역이 극도로 취약해져, 대개 두 살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줄리아나 역시 자신의 얼굴 만한 호흡기를 코에 매단 채 자신을 괴롭히는 질병과 싸우고 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간호하는 엄마를 다독거리며 말했다. “다시 몸이 나빠지면 병원에는 가지 않을래. 그냥 (고통 없는) 천국에 갈래. 엄마, 걱정하지 마. 하나님이 잘 돌봐 주실 거야.”

줄리아나의 한국명은 ‘유리’다. 그의 엄마 미셀 문은 한국인이다. 엄마는 어린 시절 미국에 입양돼 자랐다. 성인이 된 미셸은 경기도 오산기지로 발령받아 의무장교로 복무했다. 2004년 같은 기지 전투기 조종사 스티브 스노이를 만나 연애를 하다가 2년 뒤에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2008년 아들 알렉스를, 2년 뒤에는 줄리아나를 낳았다. 줄리아나는 까만 눈동자가 엄마를 꼭 빼닮은 딸이었다.

그런데 가정에 불행의 폭풍이 몰아쳤다. 줄리아나는 첫돌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서지 못했다. 정밀검진을 받아보았다.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남편이 신체 일부에 지닌 질환이 딸에게 유전됐다는 게다.

지난해 10월 줄리아나는 퇴원해 집으로 왔다. 그러나 그는 홀로 앉거나 걸을 수도 없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장난감을 손에 쥐는 것조차 버겁다. 음식물을 씹고 삼키는 근육이 약해져, 배에 연결된 관으로 음식을 섭취한다. 당장은 괜찮지만 다른 사소한 질병에라도 걸린다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어린 나이지만, 자신의 앞날을 조금은 예견할 수 있다. 고치기 힘든 자신의 질병을 위해 엄마가 얼마나 애쓰고 고생하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딸을 위해 애간장을 태우며 간호하는 엄마가 측은해 보였다. 그래서 이제는 천국을 그리워하고 있다. 병원으로 가서 고치지 못할 질병에 매달려 싸우는 자신도, 딸을 위해 밤잠을 자지 못하면서 애타하는 엄마도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서 병원보다 천국으로 가고 싶어한다.

주변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기 편한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자기 때문에 고통당하는 부모님을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아는 어린 딸의 마음이 기특하기만 하다. 자신의 안전과 유익을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의 생명도 파리 목숨처럼 간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자기 때문에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참 갸륵하다.

최악의 상황에서 이 땅에 대한 애착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많건만, 이 땅 너머에 있는 세계에 대한 희망으로 이 땅을 떠날 마음의 준비를 마친 소녀가 대단하지 않은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려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초라함에 비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죽음 준비인가? 생명의 끈이 끊기는 순간에도 그 줄을 놓기 싫어 마지막까지 발버둥치는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나 내적 충만함으로 가득 차 있는가? 어리다지만 너무나 부러운 믿음이 아닌가?

바울이 생각난다. 로마에서 죄수의 신분으로 투옥되어 있다. 자기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떠났다. 더구나 자신이 개척했던 빌립보 교회 성도들 안에는 두 부류의 파가 형성되었다. 바울을 배척하는 사람들과 옹호하는 사람들로! 바울을 배척하는 사람들은 그의 사도권을 부인하면서 사람들을 선동했다. 바울을 비난하고 모함하면서. 사람들이 바울에게서 등을 돌리도록! 그들은 바울에게 고통을 안겨 주고 싶었다. 바울의 입지를 추락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 바울을 비난했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 안에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게 마음 아팠다. 그래서 바울이 없는 틈을 메꾸고 싶었다. 더 열심히 전도하고 내실을 다지기를 원했다. 사람들이 바울에게서 마음이 떠나지 않도록 애썼다.

감금 생활을 하면서도 이런저런 말들을 다 듣고 있는 바울로서는 한편으로 감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 아프고 속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매우 의연하다. 이 사람이나 저 사람 모두 소중했다. 자신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도 그렇지만, 자신에게 아픔과 고통을 주려는 목적으로 부산히 움직이는 사람들에게도 감사했다. 왜냐하면 이 모로 하나 저 모로 하나 이들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전파되면 되는 거니까. 정말 대단한 배짱이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죽음과 삶 사이에 끼어 있었다. 죽음이 점점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두렵지 않았다. 불안하거나 초조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죽음을 그리워했다. 그의 마음은 이미 죽음의 문턱으로 성큼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살아 숨 쉬는 것보다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기를 더 원했다. 그가 이 땅에 살아야 한다면, 그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이 돌봐야 할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일 뿐이다. 그가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생존에 대한 애착 때문이 아니라, 감당해야 할 사명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빨리 죽고 싶다. 고달픈 이 세상을 빨리 떠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는 결코 염세주의자가 아니다. 현실 도피주의자도 아니다. 그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달렸다. 쉴 틈도 없이. 자신의 의식주도 돌아보지 않고서. 그저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해 부끄러움 없는 한 날 한 날을 살아왔다. 그가 이 세상을 빨리 떠나고자 하는 것은, 저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주님의 얼굴을 뵐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나라의 영광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는 지금도 이 세상을 빨리 떠나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동기가 다르다. 이 세상이 너무 고달파서, 꼴보기 싫은 사람 얼굴을 보기 싫어서 떠나고 싶어한다. 어떤 이는 막다른 절벽에 서서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 땅을 떠나고자 하는, 서글픈 마지막 인생 준비가 아닌가?

나 역시 ‘천국에 갈래!’라며 엄마를 위로하는 줄리아나를 보면서 부끄럽다. 이 땅에 대한 소망보다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한 바울을 생각하면 더 부끄럽다. 나는 주로 이 땅에서 힘들고 고달플 때 천국을 더 갈망한 게 사실이니까. 주로 마음이 아프고 속상할 때 주님의 품에 안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게 사실이니까. 더 이상 살아갈 용기가 좌절되어서야 하나님의 품을 그리워하는 게 사실이니까.

이제는 천국에 대한 소망 때문에 ‘천국에 갈래!’라고 말하고 싶다. 앉으나 서나 주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소원을 풀기 위해 빨리 주님의 얼굴 보러 천국에 가기를 갈망하고 싶다. 그날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기에 오늘 하루를 더 많이 수고하며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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