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변증한 당대 최고의 지성, 주님 품에 안기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특별기고] 아듀(Adieu), 르네 지라르

세계적 기독교 석학인 르네 지라르 박사가 11월 4일 91세를 일기로 스탠퍼드에 위치한 자택에서 서거했습니다. 르네 지라르 전문가인 정일권 박사가 추모의 의미로 르네 지라르의 주요 사상과 업적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튀빙겐 개신교 신학부 시상식 당시 르네 지라르 박사의 강의 모습. ⓒ정일권 제공
▲튀빙겐 개신교 신학부 시상식 당시 르네 지라르 박사의 강의 모습. ⓒ정일권 제공

2005년 프랑스 지식인 최고의 영예인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 ‘불멸의 40인’으로 선출된 르네 지라르(René GIRARD, 25 décembre 1923 - 4 novembre 2015)가 주님 품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국제 지라르 학회에 속한 여러 학자들에게서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지라르를 2005년 독일에서 개최된 국제 지라르 학회에서 만나 힌두교 시바신화에 대해 인터뷰하고, 2006년 독일 튀빙겐대학교 개신교 신학부가 지라르의 기독교 변증 작업에 영예로운 상(Dr. Leopold-Lucas-Preis 2006)을 수여했을 때 만난 나로서는 슬픈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불멸’의 칭호를 받은 그의 학문적 업적은 영원히 빛날 것이다.

지라르는 인문학계에서는 ‘인문학의 아인슈타인’ 혹은 ‘인문학의 다윈’으로 평가받고, 기독교 신학의 관점에서는 ‘인문학의 하얀 십자가’로 평가할 수 있다. 프랑스 <르몽드>지는 지라르의 주저 <폭력과 성스러움>에 대해 “1972년은 인문학의 연보에 하얀 십자가를 그어야 한다”고 평가했다.

자신의 연구를 통해 기독교 신앙으로 회심한 지라르는 포스트모던 시대정신 속에서 그동안 소외되고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국제적 명성을 가지고 있던 지라르 주도로 1966년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비평언어와 인문학’이라는 학술대회가 개최됐는데, 이때 포스트모던 사상가들로 이후에 알려진 자크 데리다, 자크 라깡, 롤랑 바르트, 루시엥 골드만 등이 참여했다. 이 대회는 미국에 소위 프랑스 이론(French theory)를 유행시킨 분수령과 같은 학술대회였다.

지라르는 자주 성경에서 그의 책 제목을 빌려 온다. ‘창세로부터 감추어져 온 것들(1987, 마 13:35)’과 문화의 기원은 이미 복음서에 계시되어 있다고 그는 말한다. 자신은 그것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제가) 기독교인이 된 것은 제 연구 결과가 나를 이렇게 인도했기 때문”이라는 실존적 신앙고백을 하면서, 신비로운 회심의 체험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이렇게 기독교 신앙에 대한 실존적 고백으로 인해 데리다와 라깡 같은 동료 포스트모던 철학자들만큼 인문학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에콜 폴리테크닉(Ecole Polytechnique) 사회정치학자이자 스탠퍼드대학장 삐에르 뒤피(Jean-Pierre Dupuy)는 아래와 같이 ‘지라르 현상’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지라르는 하나의 현상이다. 세계의 많은 학자들은 그를 당대 생존하는 위대한 학자들 중 하나로 평가하며, 또 어떤 이들은 그를 프로이트 혹은 마르크스에 비교하기도 한다. 또 지라르는 일부 인문과학자들에게는 종종 스캔들로 받아들여진다. 지라르만큼 그동안 스캔들처럼 많은 폄하를 받은 학자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폄하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은 지라르에게서 영감을 얻지만, 또한 그것을 숨기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소르본느의 닭이 울기 전에 이러한 학자들은 이렇게 3번이나 다짐한다. ‘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한다’. 지라르의 이론은 바로 이 이론이 겪고 있는 폭력적 폄하를 설명하고 또한 그것을 예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도발적이다.”

▲지난 2005년 독일에서 개최된 국제 지라르 학회에서 강의하는 지라르 박사. ⓒ정일권 제공
▲지난 2005년 독일에서 개최된 국제 지라르 학회에서 강의하는 지라르 박사. ⓒ정일권 제공

지라르는 프랑스 좌파 사상가에서 회심해 ‘십자가의 승리’를 인류학적 측면에서 제시했다. 1961년 그라세 출판사가 간행한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은 지라르의 첫 번째 저작으로서, 그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라 할 수 있다. 이 외에 <폭력과 성스러움>,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희생양> 등 다수가 있다.

네덜란드 자유대학교가 최초로 1985년 지라르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고, 2006년 독일 튀빙겐 개신교 신학부는 지라르의 기독교에 대한 변증 작업에 영예로운 상(Dr. Leopold-Lucas-Preis 2006)을 수여했다. 이 시상식에서 했던 지라르의 강의는 ’복음서는 신화의 죽음이다(Die Evangelien sind der Tod der Mythologie)’라는 제목으로 소개됐고, <학문과 기독교 신앙>이라는 책으로 출판됐다.

독일 튀빙겐 신학 부문 베스트셀러였던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본다>의 독일어판에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변증(Eine kritische Apologie des Christentums)’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십자가 사건은 어두운 상태에 있는 인류 문명과 신화를 해독하는 해석학적 빛이고 열쇠이며 계시라고 세련되게 논증하고 있다. 이 책 2부의 제목은 ‘신화의 수수께끼’이며, 3부의 제목은 ‘십자가의 승리’이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유럽 인문학의 새로운 전환, 곧 윤리적 전환, 신학적 전환 혹은 종교적 전환을 일으켰다. 포스트모던 철학자 바티모도 지라르와의 지적 만남으로 기독교 신앙을 철학적으로 재발견했다. 최근 독일 최고의 지성 위르겐 하버마스도 르네 지라르에 대해 논하고 있으며, 신화와 제의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한국교회도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다원주의 이후 새로운 시대정신을 변화시키고 있는 ‘르네 지라르 읽기’를 이제 시작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아듀, 르네 지라르.

/정일권 박사(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 신학박사(Dr.theol))

정일권은 2005년 르네 지라르의 이론을 중심으로 동서양 사상을 문명담론의 차원에서 비교 연구하고 있다. 지라르를 직접 2번이나 만나 연구와 관련된 학문적 대화를 나누기도 한, 국내 대표적 지라르 연구가요 전문가다.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군목으로 섬겼고, 독일 마르부르크(Marburg) 대학을 거쳐 유럽에서 르네 지라르 이론에 대한 학제적 연구 중심지로 성장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 조직신학부 기독교 사회론(Christliche Gesellschaftslehre) 분야에서 신학박사(Dr. theol.) 학위를 받았다. 이후 인스부르크대학교 인문학부 박사 후기 연구자(post-doctoral research fellow) 과정에서 학제적 연구프로젝트인 ‘세계질서-폭력-종교’, ‘정치-종교-예술: 갈등과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고 귀국했다. 국제 지라르 학회인 ‘폭력과 종교에 관한 학술대회(Colloquium On Violence & Religion)’ 정회원으로 국내 지라르 학회의 설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르네 지라르 박사와 함께한 정일권 박사. ⓒ정일권 제공
▲르네 지라르 박사와 함께한 정일권 박사. ⓒ정일권 제공

저서로는 지라르의 이론으로 불교 문명의 역설을 분석해 국제적 주목을 받은 독일어 단행본 <세계를 건설하는 불교의 세계 포기의 역설 -르네 지라르의 미메시스 이론의 빛으로(Paradoxie der weltgestaltenden Weltentsagung im Buddhismus. Ein Zugang aus der Sicht der mimetischen Theorie Rene Girards(Wien/Münster: LIT Verlag, 2010))>가 있다. 붓다가 은폐된 희생양이라는 최초의 주장이 이 책에 실려 있다.

이 책을 좀 더 진전시켜 <붓다와 희생양: 르네 지라르와 불교 문화의 기원(SFC 출판부, 2013)>을 출간했고, 이 책은 제30회 한국기독교출판문화상 목회자료(국내) 부문 최우수작으로 선정됐다. 또 니체 이후 100년 동안 포스트모던적-디오니소스적 전환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우상의 황혼과 그리스도. 르네 지라르와 현대사상(새물결플러스, 2014)>도 출판했다.

지라르의 이론의 빛으로 폭력과 종교(Violence and Religion)에 대한 연구를 넘어 최근에는 과학과 종교(Science and Religion) 분야도 연구,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통섭과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이 연구는 우주의 기원과 문화의 기원을 화두로  빅뱅 우주론과 양자물리학, 미메시스 이론을 통합학문적으로 논의한 단행본으로 IVP에서 곧 출판될 예정이다. 또 르네 지라르와 데리다와 라깡 등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을 비교연구한 책도 곧 출판할 예정이다.

현재 숭실대학교 기독교학대학원과 일반대학원 그리고 고려신학대학원에서 르네 지라르를 강의하고 있으며, 그 동안 한동대학교, 고신대학교, 브니엘신학대학원에서 르네 지라르와 조직신학/교의학을 강의했다. 국내 많은 인문학, 철학, 신학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을 포함해 그 동안 20여 편에 가까운 논문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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