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란도 예수를 '메시아'라고 하지만, 그 진정한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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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주 칼럼] 이슬람 내부자운동의 번역성경과 상황화 신학(3)

4. 내부자운동 번역성경의 '메시아-예수'

이슬람은 꾸란을 무함마드가 받은 알라의 계시로, 모든 계시를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받은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런데 성경과 꾸란의 가브리엘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상반된 주장을 한다. 성경의 가브리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계시했고(눅 1:26-35), 성경보다 4-5백 년 늦게 기록된 꾸란의 가브리엘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Sura 4:171; 5:75; 19:88-93).

꾸란은 예수가 그의 어머니 마리아처럼 양식을 먹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한다(Sura 5:75).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면, 어떤 기독교인도 꾸란의 가브리엘에 대해 진정성을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충돌 상황에서 내부자운동 성경 번역가들은 예수를 누구로 호칭하고 있을까?

꾸란 Sura 3:45과 3:47에서는 예수를 '메시아 예수'로 호칭하고 있다.

"천사들이 말하길 마리아여 하나님께서 너에게 말씀으로 복음을 주시니 마리아의 아들로서 그의 이름은 메시아 예수이니라. 그는 현세와 내세에서 훌륭한 주인이시요 하나님 가까이 있는 자 가운데 한 분이라."

Sura 4:171처럼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이지, 결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무슬림들은 성경을 접하기 전 이미 "예수가 메시아"라고 외우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마리아의 아들 메시아 예수이고, 그 메시아는 십자가에서 죽지도 않고 부활하지도 않았으며, 대속의 역사 즉 구원의 역사도 일으키지 않은, 알라의 피조물이자 하나의 선지자일 뿐이다.

"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마리아에게 말씀이 있었으니 이는 주님의 영혼(a sprit)이었노라."

꾸란은 예수를 피조물 중 하나인 영(a spirit)으로 묘사한다. 알라의 말씀이라는 Sura 5:116-117에서도 알라 앞에 올라간 예수의 입을 통해 자신의 신성을 아래와 같이 부정하도록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아들 예수야 네가 백성에게 말하여 하나님을 제외하고 나 예수와 나의 어머니를 경배하라 하였느뇨 하시니, 영광을 받으소서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아니했으며 그렇게 할 권리도 없나이다. 제가 그렇게 말하였다면 당신께서 알고 계실 것입니다. 당신은 저의 심중을 아시나 저(예수)는 당신의 심중을 모르나니 당신은 숨겨진 것도 아시는 분이십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명령한 것 외에는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했으니 나의 주님이요 저희들의 주님인 하나님만을 경배하라 하였으며 제가 그들과 함께 있음에 저는 그들에게의 증인이 되었고 당신이 저를 승천한 후에는 당신께서 그들을 지켜보고 계셨나니, 당신은 모든 것의 증인이십니다." 

Sura 3:59은 예수를 흙으로 지음 받은 아담과 똑같은 피조물이라고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그랬듯 예수에게도 다를 바가 없도다. 하나님이 흙으로 그를 빚어 그에게 말씀하셨다. 있어라, 그리하여 그가 있었느니라."

<이슬람 교리문답>에 기록된 이슬람의 기본 신앙고백 중 첫 번째 항목은 "하나님은 한 분임을 믿습니다"라는, 알라의 유일성에 관한 고백이다. 그 아래에는 "하나님 같은 다른 분이 또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은 동반자가 없으며, 하나님은 자식을 생산하지도 않으며, 생산되지도 않고, 인간의 모습으로 나누어져서 땅에 내려오지도 않습니다…"라는 고백이 있다.

결국 무슬림들은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인간이나 동물처럼 자식을 생산하고 아메바 같이 세포가 분열하듯 나뉘어 삼신(三神)이 이루어지는 존재로 가르치고 있다. 이 얼마나 성경의 유일신 하나님을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설명하는 것인가?

꾸란 Sura 19:88-93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인하는 명확한 문장이 있다. 성 꾸란은 '아들'을 '자손'으로 번역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손을 두셨다 말하는 자들이 있으니 실로 너희들은 불결한 주장을 함이라. 그 때에 하늘이 떨어지려 하고 대지가 갈라지며 산들이 산산조각이 되려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께 자손이 있다고 불결한 말을 했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자손을 가질 필요가 없으시매 천지의 모든 것이 종으로서 하나님께로 오기 때문이다."

"그들은(유대인과 기독교인) 하나님이 아들을 낳았으니 그분께 찬미를 드리라고 말하나 그렇지 않노라(Sura 2:116)."

이에 더해 꾸란 4장 157절의 내용을 <성 꾸란>은 다음과 같이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부정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이룩하신 유일한 속죄의 길과 구원의 길을 막아 버렸다.

"마리아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선지자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해하였다라고 그들이 주장하더라.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 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의심이며,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게 추측을 할 뿐 그를 살해하지 아니했노라."

<성 꾸란> 3:54-55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승천의 시간적 순서를 그 번역문에서 뒤바꿔 십자가의 죽음을 숨기고 있다.

"그들이 음모를 하나 하나님은 이에 대한 방책을 세우셨으니 하나님은 가장 훌륭한 계획자시라(54). 하나님이 말씀하사 예수야 내가 너를 불러 내게로 승천케 한 너를 다시 임종케 할 것이라. 불신자들로부터 세제하며 너를 따르는 자 부활의 그 날까지 불신자들 위에 있게 하리라(55)."

같은 3:54를 영어 꾸란은 "And they plotted (to kill Isa), and Allah plotted too. And Allah is the best of those who plot"이라고 올바로 번역하였다.

55절 아랍어 원문 꾸란은 '내가 너를 죽게 만들었다(mutawaffika)'고 먼저 쓰여 있고, 이어 '그리고 너를 올리었다(warafiuka)'고 돼 있다. 그러나 최영길은 순서를 바꿔, 먼저 승천시키고 이어 임종시킨다고 번역했다.

"…예수야 내가 너를 불러 내게로 승천케 한 너를 다시 임종케 할 것이라…". 이렇게 번역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적 죽음의 흔적을 도말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것을, 무슬림들은 하나님이 자식을 생산한다는 생물학적 의미로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이라는 성경적 진술을 절대 부정한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라는 중죄에 해당되고, 극형을 받는다.

이런 이유로 내부자운동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지 않고 메시아라고만 가르치면, 하나님의 아들도 구원자도 아닌 '꾸란적 메시아'와 동일시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예수를 알지 못했던 바울은 살기가 등등하여 예루살렘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큰 해를 끼치고, 만나는 모든 '예수 믿는 자'를 결박하여 대제자상들에게 끌어가려던 중,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둘러 비취며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때부터 회개했다. 그리고 "즉시로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했다(행 9:1-20)."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이 얼마나 큰 핍박을 받는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바울이, 무엇 때문에 그와 같은 위험을 자초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을까?

이와 대조적으로 비슷한 상황에서 내부자운동 지도자들은 '벵갈어 번역본'과 <선지자들의 삶>이라는 제목의 누가복음 번역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본문을 모두 삭제하고, 그 자리를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라는 용어로 대체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누가복음 1장 32절: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 "영원히 다스리실 기다리던 그리스도라 증거될 것이다"(<선지자들의 삶>), "전능자의 메시야라 불리울 것이며"(벵갈어 번역본)

누가복음 1장 35절: "...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 "장치 태어날 그 아들은 거룩할 것이요, 그는 메시야라 불리울 것이다"(벵갈어 번역본)

누가복음 4장 3절: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 "네가 참으로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메시야라면"(<선지자들의 삶>), "네가 하나님의 메시야라면"(벵갈어 번역본)

누가복음 4장 9절: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 "네가 만일 참으로 하나님의 메시야라면"(<선지자들의 삶>), "만일 네가 메시야라면"(벵갈어 번역본)

누가복음 8장 28절: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 "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메시야시여"(<선지자들의 삶>), "전능하신 하나님의 메시야 예수여"(벵갈어 번역본)

누가복음 9장 35절: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 "이 사람은 내가 보낸 사랑받는 메시야이다"(<선지자들의 삶>), "이는 나의 메시야 나의 택함을 받은 자니"(벵갈어 번역본)

누가복음 22장 70절: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 "네가 하나님의 메시야이냐?"(<선지자들의 삶>), "그러면 네가 메시야이냐?"(벵갈어 번역본)

위의 꾸란적·반기독론적 증언과 내부자운동 지도자들의 번역 성경과 달리, 성경의 하나님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와 제자들과 함께한 변화산에서 친히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계시하셨다. 아래 두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 시 예수님께, 그리고 변화산상에서 세 제자들에게 직접 말씀하신 계시이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 3:22)"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마 17:5)"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 15:26)"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영이므로, 성령을 받아야 그의 증거로 인하여 비로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 수 있게 된다(고전 12:3, 요 15:26, 행 1:8).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먼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게 된다. 성령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하며 그리스도로 믿게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의 믿음은 성령의 증거에 의해서만 발생한다(고전 12:3, 요 14-16).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3년 동안 따라다니던 제자 시몬 베드로가 비로소 예수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칭찬하셨다. 그러시면서 "인간의 지혜나 지식으로 예수를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가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셔야만 알게 된다는 것"을 친히 설명하신 것이다(마 16:16-17).

5. 두려움의 영과 성령

무함마드가 체험한 소위 계시는 두려움의 영으로 임하였다. 610년 무함마드가 히라동굴에서 만난 후 메카의 '계시' 12년 동안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이 무명의 영은, 무함마드를 두렵게 하고 사로잡고 짓밟고 무서운 고통을 주었다.

무함마드는 40세가 되던 610년 라마단월, 메카에서 3마일 떨어진 광야에 있는 히라산 동굴에 들어가 명상하였다. 그때 상황을 알 부카리와 사히흐 무슬림들은 무함마드의 애처 아이샤의 전승에 따라 다음과 같이 그들의 하디스에 전하고 있다:

"무함마드는 히라(Hi:ra)동굴에서 여러 날 동안 알라를 경배하였다. 그때의 경험을 무함마드는 첫째 부인 카디자에게 설명하면서 그는 한 '천사(the angel)'를 보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그에게 다가와서 '읽어라'고 명하였다. 그래서 그는 '나는 읽을 줄을 모릅니다'라고 대답하였더니, 그 천사는 그를 강제로 잡고(caught me forcefully) 눌러서 그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하였다.

그런 다음 그는 그를 떼어놓고 재차 읽으라고 하였다. 이런 사태가 똑같이 세 번 반복된 다음에  그 '천사'는 '읽어라! 너의 주의 이름으로! 그는 응혈(clot)로 사람을 창조하였느니라'고 말했다. 이 '계시' 내용이 Sura 96장에 기록되었다. 무함마드는 마음에 큰 타격을 입고 그의 첫 부인 카디자에게 돌아와 '나를 덮어 주시오! 나를 덮어 주시오! 나에게 일어날 일이 무섭소!'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에게서 그 공포가 다 지나기까지 그를 덮어 주었다. 무함마드가 스스로가 자기가 만난 영을 '진'이라고 느낀 것이다."

한국이슬람교중앙연합회에서 발행한 <하디스> 선집에서는 무함마드의 영적 경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인기척 없는 적막한 사막의 동굴로 예고 없이 나타났다가 돌연히 사라져버린 이 방문자는 악령의 통념적인 관념과 혼합이 되어 그를 경악시켰고, 그런가 하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모해서 사생활을 해롭게 간섭하는 정신상태에 사로잡히게 했다."

위와 같이 무함마드에게 임한 '이름 없는 두려움의 영'은 메카 계시 12년 동안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그를 가브리엘 천사라고 호칭한다. 메디나로 이주한 후 732년 사망하기까지 무함마드가 10년간 27회나 선두 지휘하여 전쟁과 약탈을 일삼았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의 성품은 이 두려움의 영이 지배한 후에 거룩하게 변화되지 않았다.

이슬람 창시부터 두려움의 영으로 나타난 이 영은, 불신자를 죽이고 개종자를 죽이고 온 세상이 이슬람의 종교가 지배하기까지 성전하라고 가르친다.

Sura 8:12: 내가 불신자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리니 그들의 목을 때리고 또한 그들 각 손가락을 때리라

Sura 9:5: 금지된 달이 지나면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들마다 살해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거나 그들을 포위할 것이며 그들에 대비하여 복병하라

Sura 47:4: 너희가 전쟁에서 불신자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목들을 때리라. 너희가 완전히 그들을 제압했을 때 그들을 포로로 취하고 그후 은혜로써 석방을 하든지 아니면 전쟁이 종식될 때까지 그들을 보상금으로 속죄하여 주라

꾸란은 이와 같이 무슬림들의 무력성과 불신자 살해를 조장한다. 이슬람을 떠난 개종자역시 알라의 배신자로 정죄받고 극형을 받게 된다.

Sura 4:89: 그들이 배반한다면 그들을 포획하고 그들을 발견하는 대로 살해할 것이며 친구나 후원자를 찾지 말라,

Sura 8:17: 그들을 살해한 것은 너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망케 하였으며 그들에게 던진 것은 그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던지셨음이라.

위와 같이 꾸란의 후기 계시는 배교자들만이 아니라 비무슬림들(불신자들)에 대한 무조건적 공격과 살해를 명령한다.

Sura 8:39: 박해가 사라지고 종교가 온전히 하나님만의 것이 될 때까지 성전하라

이들은 그러면서 온 세계가 이슬람화되기까지 '성전'을 계속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성전하라'는 아랍어 '까아탈라'의 의미는 불신자들을 '죽이라'는 알라의 명령이다. 아래 구절에서 목들을 '때리라'고 번역한 것들은, 목들을 (칼로) 쳐서 살해하라는 뜻이다.

무슬림의 세계관은 무슬림의 지역인 '평화의 집(Dar-al Islam)'과 비무슬림 지역인 '전쟁의 집(Dar-al-Harb)'으로 나뉜다. 온 세계가 알라만의 것이 될 때 까지 '성전'하는 것이 바로 세계선교 방법이다. 그리고 무슬림이 알라를 위해 싸우다 적인 비무슬림들을 죽이는 것이 알라의 명령이고, (성전을 수행하다가) 죽게 되면 알라는 그 영혼의 죄악을 저울에 달아 보지 않고 그대로 천국으로 직행한다고 약속한다.

"하나님의 길에서 살해당했거나 죽었다면 하나님으로부터 관용과 자비가 있을지니 이는 생전에 축적한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너희가 죽었거나 살해당했다면 너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니라(Sura 3:157-158)."

현상학적으로 보면 무함마드가 체험한 이 영은 결코 성경에서 약속한 하나님 자신의 영인 성령이 아니다. 참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받은 사람은 무함마드가 경험한 무서운 고통 같은 것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고,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요 3:16; 요4:10) 평강과 희락을 체험하고(롬 14:17) 하나님의 거룩한 새 사람으로 변화를 받아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는다(갈 5:22).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날마다 행복을 고백하고, 날마다 하나님과 함께 함을 고백하며 찬송한다(요 7:38-3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비교하는 사람은 참 하나님의 영과 거짓 영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예수께서 하신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4-35)는 말씀과,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45)"는 가르치심은 무함마드가 지시한 명령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그리스도인이 위의 사랑을 행할 수 있는 원천은 그리스도인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롬 5:5)에 있다. 아들을 증거하는 영은 하나님 자신의 영인 성령이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고(갈 4:6) 하나님의 영이다(롬 8:9). 그는 진리의 영이며(요 16:13, 14:17),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행 1:8, 요 15:26),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게 하며(요 16:14) 그리스도를 믿게 한다(고전 12:3). 그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영이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4-1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르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4:6-7)".

이 같이 타락한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건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것이다(요 3:16). 하나님이 인간 역사 속에 들어오신 목적은 하나님과 인간이 화목하고 임마누엘의 친밀성을 회복하는 것이다(롬 5:10-11, 2:2, 고후 5:16-19). 이 친밀성은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이 그리스도인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지(행 2:38, 요 14:16), 피조물이 하나님의 신성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성령 강림으로 인하여 죄의 종 또는 진노의 자녀(엡 2:3) 또는 마귀의 자녀(요일 3:10)가 변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호칭은 혈통의 개념이 아니라 약속에 의한 것이며(갈 4:28, 롬 9:8) 입양의 의미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흠 없는 자기의 피로 정결케 하여, 타락한 피조물을 양자로 삼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오직 새로워진 하나님과의 관계 개념이며(요 1:12-13) 하나님이 주신 권세이다(롬 8:21, 9:8). 이는 오순절에 그리스도인들에게 강림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다(행 2:38, 요 14:16).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베드로의 고백(마 16:16)도, 고린도전서 12장 3절의 기독론적 고백도 성령에 의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신앙도 오직 성령의 조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꾸란에는 성령이라는 단어가 없고, 무함마드와 무슬림들은 성령에 관해 알지 못한다. 성경적 성령의 개념과 달리, 일반 번역 꾸란에서 사용된 '성령'이라는 단어는 알라의 한 피조물이다. 만일 그 영이 알라 자신의 영이라면 그것은 al-ru:ḥ al-qudus, 또는 al-ru:ḥ al-ilahiy (the divine spirit)라고 쓰여야 한다.

그러나 꾸란의 영은 아랍어로 관사가 없는 명사 ru:ḥ al-qudus, 즉 '거룩함의 영(Geist des Heiligen)'으로 풀이된다. 일반적으로 꾸란의 ru:ḥ al-qudus는 가브리엘 천사라는 뜻에서 '성령'이라고 번역됐다. 이 '성령'에는 신적 본질이 없다.

인간이 접하는 영들에게서 우리는 큰 현상학적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내부자운동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새 번역 성경에 '성령'이라는 단어를 성경 사본과 똑같이 번역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번역 성경은 비록 '성령'이라는 단어를 사용할지라도, 아버지의 영도 아니고 아들의 영도 아니다.

하나의 피조물인 가브리엘과 동일시된 꾸란적 전제를 가지고 있는 무슬림들이, 하나님 자신의 영인 '성령 하나님'을 어찌 영접할 수 있게 하겠는가? 그리고 보혜사(παρακλήτος)가 무함마드(περικλύτος)라는 전제를 담은 단어인 성령을, 어찌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며 하나님의 아들의 영인 삼위일체의 영이라고 증거할 수 있겠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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