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칼럼] 코메니우스의 기독론과 구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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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웅 박사.

▲정일웅 박사.

(3)코메니우스의 기독론과 구원론

코메니우스의 기독론은 하나님의 원 형상이신 그리스도에게 그 중심을 두고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더럽혀진 하나님의 형상을 재생산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보내심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재구성하기로 결정된 모든 자들의 '원 형상'이라고 인식하였다. 원 형상으로서 그리스도는 동시에 모범이시며, 인류의 교사로 이해된다. 또한 그리스도는 인간의 구원 사역을 위하여 세 가지 직분을 가지신 자로 강조된다. 코메니우스는 교사, 혹은 선지자이시며, 제사장이시며, 왕으로 이해하였다. 즉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의 빛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교사가 되시며, 자기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기 위하여 제사장이 되시고, 모든 피조물을 다스려야 하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다스리려야 하는 왕이 되신 분이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지상에 세워지는 그의 모든 교회가 이러한 그리스도의 삼중의 직분을 수행하도록 불렀고, 사명을 부여한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그의 유명한 '범개혁론'(Panorthosia)에 제시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성령을 통하여 학문(Wissenschaft)과 정치(Politik)와 종교(Religion) 영역에서의 올바른 개선을 위한 일을 감당해야 하는 사명과 기능적 역할로 해석하게 된다. 코메니우스는 이러한 개혁들을 일으키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그리고 코메니우스에게서 예수는 영혼의 구세주일 뿐 아니라, 동시에 세상의 주인이시다. 그는 인간과 하나님의 창조세계 전체를 새롭게 하시는 분이시다.

코메니우스의 기독론에 대해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논쟁적인 질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죽음(십자가)과 부활의 관계에 대한 것이며, 둘째는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와 인간적인 행위와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전자의 물음에서 코메니우스는 루터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중심적인 구원 사건은 십자가보다는 부활에 더 강조점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코메니우스의 이러한 관점에 대해서는 후대에 와서 죄로 인한 인간의 타락을 가볍게 취급하고 죄에 대한 회개를 간과했다는 비판이 따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코메니우스는 "끊임없이 타락(destitutio)에 대하여만 논하고, 회복(restitutio)에 대해서 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꾸만 옛 아담이 우리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과시하게 되고, 새로운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 문제라고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십자가 사건을 간과하거나 얕잡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통하여 행하신 은혜(부활)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가 원하시는 세상의 개선을 위한 사역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일이며, 그 일을 기꺼이 적극적으로 감당하도록 신학적인 근거를 밝히려는 데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혜는 코메니우스에게 있어서 최대 능력인데, 그것은 죄와 심판과 십자가보다(롬 5:17), 그리스도의 부활이 얼마나 더 강한 하나님의 능력임을 강조한 데 있었던 것이다. 특별히 코메니우스의 부활에 대한 관심은 그 당시 요한 발렌틴 안드레(J.V.Andreae)가 그리스도인은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삶을 위한 네 번째 책의 필요성을 강조할 때, 그 일을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이 주신 3권의 책이 필요할 뿐이라고 강조한 것에서도 드러나는데, 로흐만은 코메니우스의 이러한 신학적 관점을 루터의 십자가신학과 구별하여 '희망의 신학'(Theologie der Hoffnung)이라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역시 로흐만(Lochman)은 부활에 역점을 둔 코메니우스의 기독론이 그의 신학의 중심 부분이며, 그것은 코메니우스의 신학이 교리적인 면보다는 신앙의 실천적이며 행동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의도와 깊이 관련되었다고 해석한 것은 정당한 평가라고 할 것이다. 

코메니우스의 기독론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두 번째 질문인, 그리스도를 통한 신적인 구원과 인간의 협동(Synergismus)에 대해서도, 여러 신학자들은 코메니우스가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의 의미를 강조한 것으로 보며, 그리스도가 인간을 새롭게 하며 세상의 개혁에 작용한다는 중심적인 사상과 함께 루터에게서 유래하며 경건주의에서도 나타나는 그리스도 중심의 경건성을 증명한 것으로 밝히기도 한다. 그러나 코메니우스의 구원론에 대하여 비판적인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코메니우스는 다른 종교개혁자들에 비하여 구원을 원초적으로 은혜를 통하여 중재되는 일이 아니라, 철학과 교육을 통하여 중재할 수 있으며 극단적으로 인간은 죄 용서의 은혜를 코메니우스의 교육적인 신학 내에서 자동적으로 확보되며, 교육적인 영향을 입은 자기 자질은 인간적 노력의 획득으로 보았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수세딕(S.Sousedik)은 최근의 연구에서 코메니우스가 그 시대의 최고의 의미를 가진 질문, 즉 칭의론의 가르침에서, 칼빈처럼, 루터적인 영향의 개혁신학에서 벗어났으며, 가톨릭의 가르침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코메니우스 신학의 새로운 대변자로 등장하였다. 

중요한 것은 코메니우스의 구원론에는 두 가지 관점, 즉 그리스도의 독자적인 역할과 인간의 협동적인 관점이 공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며, 다만 '오직 믿음으로'(sola fide)와 '오직 은혜로'(sola gratia)만이라는 중심적인 종교개혁의 관심이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종교개혁의 구원론의 두 명제(오직 믿음, 오직 은혜)는 당시 로마가톨릭교회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관련하여 면죄부를 판매하고, 인간의 행위와 공로적인 것을 전제 조건으로 요구한 데서 제시된 루터의 성경적인 대답이었다. 그러나 코메니우스의 구원론에 대한 입장은 해석 방식이 중요한데, 수세딕이 제기하는 그리스도의 역할과 인간의 협동적인 관점은 코메니우스에 의하면 구원의 주인은 그리스도이며, 그의 독자적인 역할이 분명하지만, 인간의 협동은 그리스도의 독자적인 역할(은혜)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반응으로서의 인간의 행위가 요구된다는 점이다.

코메니우스는 1614년 하이델베르그에서 개최된 신학 토론에서 '의롭게 된 자의 믿음의 본성에 대하여'(De natura fidei iustificantis) 말하면서 '칭의'를 '연합'(그리스도와의 하나됨)의 의미로 잘 논증하였는데, 칭의란 다만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믿음은 활동들에서 나타나며, 그 활동들은 항상 선한 것이 아니지만 믿음의 표지와 표현보다 더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코메니우스는 후에 이따금 인간의 행동을 역설적으로 제기하게 되는데, 믿음이 내적으로만 지배적인 입장을 갖는 루터에 의한 것보다는 달리 성경에 근거된 ['믿음, 사랑, 소망']이라는 세 가지 가시적·활동적 모습을 강조하게 된다. 즉 코메니우스는 믿음이 칭의의 은혜만을 내면화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 개선에 대한 그의 획기적인 전망에서 분명히 신적이며 인간적인 행동의 공동 작용의 사상, 즉 신인협동(Synergismus)에 관한 것이 언급될 수 있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로써의 믿음과 인간의 행동으로써의 믿음과는 코메니우스에게서 분리되지 않는, 즉 함께 예속된 것으로 이해됐다. 왜냐하면 가인의 경우에서처럼 믿음 없는 행동은 죄이기 때문이며, 성경은 올바른 행동으로 인도하는 하나의 '실천적인 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인간의 반응이 요구되는). 역시 그 구체적인 실례를 코메니우스는 마르다와 마리아에게서 찾는다. 전자는 많은 일을 택하여 염려하였지만, 후자는 많은 일이 아닌 다만 한 가지를, 그것도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하여 실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코메니우스에게서 인간은 이러한 양자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모태에서부터 유전으로 연결된 죄인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에 따른 그의 근원과 그의 목적에 연결된 존재라는 점이다. 인간은 모든 것이며, 양자의 모습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고, 다시 선한 올바른 상태의 가르침을 통하여 그의 목적대로 형성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뜻을 향한 모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근원적·미래지향적인 하나님의 형상은 코메니우스에 의하여 하나의 활동적·기능적인 의미로 이해된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것에서 드러난다. 코메니우스는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되는 인간의 행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보라, 모든 사물에 대한 이러한 통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품위의 불멸의 표지이며, 그의 모든 행동에서 그의 영화로운 자유의 근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로흐만(Lochmann)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역동성에서 코메니우스가 이해한 인간론의 신학적인 특이점의 원형이 놓여 있다고 해명하였다. 코메니우스의 기독론과 구원론의 의미는 여전히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인간 구원을 위하여 인간과 함께 일하시는 역동적인 기독론과 구원론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계속>

*크리스천투데이는 본지 편집고문인 정일웅 박사(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소장, 전 총신대 총장)의 논문 '코메니우스의 교육신학사상의 현대적 의미'를 저자인 정 박사의 동의를 얻어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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