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주 칼럼] 통일교의 혼합주의 교리(4)
4. 통일교의 교리 분석
1) 신(神) 의식의 척도와 삼위일체
인간의 체험이나 관찰에 근거해 형성된 통일교 신관을 보면서, 신 인식의 척도가 무엇인가를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비기독교적 종교철학이나 비성경적 신비 체험이 진리의 척도가 될 수 없는 것은, 신이 인간의 형상이 아닐 뿐 아니라 신 인식의 길이 인간의 이성이나 감각에 의해 시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로마서 1장 19-23절에 의하면 자연계시는 타락한 인간에 의해 왜곡됐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계시(특별계시)를 통해서야 비로소 인간이 하나님을 대할 수 있고 또 자연계시를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계시는 성경을 통해 전달되며, 성경은 세 가지의 경전성을 지니고 있다. 서양에서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듯, 성경이 경전이 될 수 있는 첫째 성격은 '사도성(Apostolizität)'이다. 사도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친히 가르침을 받고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의 체험자일 뿐 아니라 부활의 목격자들이다. 또 성령 강림 후 능력을 받고, 그들이 보고 듣고 배운 대로 증거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부활을 전달한 사람들이다.
P. Stulmacher는 부활 사건에 대한 고백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척도와 근거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악 때문에 내주셨고 우리의 의를 위하여 살리셨으므로(롬 4:25, 6:8),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원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증거란, 구원론과 기독론을 따로 분리할 수 없는 사도적 증거의 특징에 있다. 성령과 사도들만이 역사적인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거할 수 있었다(고전 12:3, 15:26f).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하는 모든 종교적 사상적 견해들은, 성령의 개입과 그의 증거를 받지 못한 비사도적이고 비성경적인 견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와 그를 통한 구원에 대한 증거는, 구원과 더불어 구원자를 함께 전하는 기쁜 소식-복음-이다.
경전의 둘째 성격은 '그리스도 중심적(Chistozentrik)'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구약성경의 핵심인 것처럼, 이 언약이 성취된 사건이 신약의 핵심이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좇는(Christum treibet) 증거만이 정경이 될 수 있다.
경전의 셋째 성격은 '성령을 통한 하나님 자신의 증거'이다. 성경이 진리임을 성경 말씀 자체가 증거한다는 말이다. 성경은 다른 종교의 철학이나 이념에 의해 재해석될 수 없다. 여러 기독교 이단들의 혼합사상이 진리를 왜곡하는 것은 바로 경전의 정경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2) 통일교의 신 개념 비판
(1) 아버지
본래 성서의 '아버지'라는 칭호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특별계시'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통일교의 '아버지'라는 칭호는 유교의 경전 역경의 세계관을 따른 음과 양의 포괄자, 즉 '태극'의 일부분이다. 그 음양을 남성과 여성 또는 부모로 칭한다. 여기서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하늘 내지 하나님은 재래종교철학적 전제를 따라, 인간의 본질 또는 인간 속에 내재한 궁극자의 속성과 같이 여겨진다. 또 '하늘'을 인류의 조상으로 여기는 유교 원리를 모방하여, 통일교는 '인류의 조상론' 또는 '참부모론'을 구상했다. 그러므로 통일교는 기독교적 하나님의 칭호와 비슷한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는 모두 범신론적 개념으로서, 하나님의 초월성을 부정하고 인간의 본질을 신격화하여 메시아 운동의 기틀을 만든 것이다.
(2) '아들'과 '자녀'
하나님의 아들(ὁ ὺίος)과 하나님의 자녀들(τά τέκνα)이라는 두 낱말은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과 구원을 받은 피조물인 사람들을 구별하는 개념이다. 이 두 개념은 창조주와 피조물이 혼동될 수 없는 것처럼 엄격히 구별된다.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이 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산 영(ψυκή ζώσα)이며 그리스도는 살려 주는 영(πνεύμα ζωοποιούν)이다. 인간은 흙에 속한 자이며, 그리스도는 하늘에 속한 자이다(고전 15:45-48).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통일교가 주장하듯 진화적으로 인간 속에 융해되어 신성이 파괴되거나,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인간으로 변신한 아버지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구속 사역으로 인하여 주가 되셨고 우리의 형제가 되셨으나(롬 8:29), 우리의 아버지는 아니다.
성서적 하나님의 자녀란 자연적 인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요 1:13),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음으로써 하나님께 받은 권세다(요 1:12, 요일 5:1).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양자의 영(ὑιοθεσία)을 소유한 자이다(롬 8:14f).
하나님의 아들과 인간 사이에 절대적 구별을 두지 않는 이단 중, 요한일서 4장 2-6절에 기록된 영지주의적 이단이 있다. 그들은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였다. 그런데 현대의 이단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께서 육체를 가지셨다는 것뿐 아니라 그의 신성과 하나님의 아들임도 시인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들도 다 예수와 다름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인간의 동격설을 주장하고 범신론적 혼란과 적그리스도적 미혹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기독론의 왜곡은 삼위일체론의 오해에서 발생하며, 창조주와 피조물의 본질을 동일시하는 동양적 범신론을 전제로 기독론을 수용함으로써 발생한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3) 성령과 신령(Spiritism)
로마서 8장 16절에 "성령이 우리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한다"는 말씀과 같이,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성령은 하나님의 제3위로서 인격이며 또한 권능이 있기 때문에(눅 24:49), 이들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는다(λαμβάνω)는 비인격적인 말은 성령이 임하신다(행 1:8, ἐπέρχομαι) 또는 성령이 오신다는 인격적인 말과 교리적으로 차이가 없다.
그러면 성령을 받는 것과 무당이나 이단들의 강신 현상은 어떻게 다른가? P. Beyerhaus는 Animism 세계 속의 신생 교회에서 발생하는 환상, 마술, 예언, 치유 등의 현상들을 간단하게 성령의 역사로 간주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세계 도처의 무속 종교의 세계에서는 '신령'과 교제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성령의 역사를 모방하는 귀신의 역사가 타종교들 속에서 일어나듯 '기독교' 이단들 속에도 나타나는 것이다. 통일교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죽은 귀신인 '예수'의 계시를 받은 문선명에 의해 세워졌고, '성신'과 귀신을 혼동하여 지상에 내려와 사람들 속에 들어가 공생하는 죽은 사람의 영들을 '성신'이라고 설명하는 바와 같다.
그러나 영의 역사가 성령의 역사인지 귀신의 역사인지에 대한 혼란은 그 영의 역사하는 목적에 의해 분별될 수 있다. 성령의 사역과 귀신의 사역은 서로 상충되기 때문이다. 문선명이 죽은 영들이 사람들 속에 들어가 '재림주(문선명 교주)'에게로 인도한다는 것과 같이, 귀신은 거짓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그에게 복종하게 한다.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를 믿게 하고,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일을 하는 것이다. 성령과 거짓 영(신령)은 그 섬기는 대상이 전혀 다르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고 다른 피조물을 증거하는 영은 이단이며 적그리스도의 영이다. 이러한 영은 거룩한 영(τό ἅγιος πνεύμα)을 대적하는 '이 세상 임금(ὁ ἀρχών τού κοσμού τουτού, 요 12:31, 14:30, 16:11)' 또는 '이 세상 신(ὁ θέος τού αἰώνος, 고후 4:4)'이다.
성령의 역사와 이 세상 영의 역사는 기독교 복음에 의해 비로소 분별할 수 있게 되었으나, 동양 종교들과 토착 종교인 무교는 영들을 비판할 능력이 없다. 마술사와 신 접한 사람의 지시를 무조건 따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神)이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님, 귀신, 용신, 도깨비를 다 포괄하는 개념인 것처럼, 하나님의 영과 귀신의 영, 인간의 영의 구별이 불필요하고 참신과 거짓 신의 분별이 필요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재래 유·불·선 종교적 일원론 사상과 샤머니즘의 다신론 때문이다. 초월적인 힘에 사로잡히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신비 체험을 따르는 사람들의 가장 큰 위험은 바로 악령의 역사를 성령의 역사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고(갈 4:6), 하나님의 영이다(롬 8:9f). 그는 진리의 영이며(요 16:13, 14:17),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행 1:8, 요 15:26), 그분께 영광을 돌리게 하며(요 16:14), 그를 믿게 한다(고전 12:3). 그러므로 성령의 증거를 받은 사람은 '역사적 예수(historischer Jesus)'와 '전파된 그리스도(verkündigter Christus)'의 동일성을 고백한다. 성령이 아니고는 오순절 후에 제자들에 의해 그리스도로 전파된 분을 나사렛 예수와 동일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E. Brunner는 성령 받는 것을 "높임 받으신 살아 계신 주를 만나는 것"이라며, 그 이유는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자를 성령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거하시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E. Jüngel이 성령이 아니고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도 고백할 수도 없다고 하는 증언은 옳은 말이다.
M. Luther 역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성령의 증거로 인함이라는 것을 그의 'Der Kleine Katechismus'에 명백히 하고 있다: 나는 나의 이성으로나 나의 힘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거나 그에게 나아올 수 없다. 내가 주를 믿는 것은 성령께서 복음을 통해 나를 부르시고 그의 은사로써 깨닫게 하시며 올바른 신앙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또 지키시기 때문이다.
무교의 귀신 숭배와 조상 숭배가 재래 유·불·선에 들어와 안주한 것과 같이, 기독교에도 들어와 보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다. 기독교의 주변에는 무교적 형태의 신앙과 섞인 묵시 현상이나 기복 현상들도 다분하다.
통일교에도 무교가 들어가 모든 구원의 복음과 교리와 의식을 파괴하고, 귀신 숭배와 범성적 악덕을 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대의 출산 신앙과 근동 지방의 성적 타락처럼 무교적 출산 신앙이 낳은 것은 개인 영혼의 파멸과 가정의 파괴, 적그리스도적 이단 운동과 우상숭배의 죄악뿐이다. 통일교는 몸 없는 귀신과 영교하고 신접하는 무당 종교를 기독교식으로 교리화하고 체계를 세워, 결국 자기 철학을 창립하지 못했던 무교적인 교리를 완성한 셈이다. 통일교를 통해 나타난 무교의 본성이 얼마나 흉악한 것인가를 더욱 잘 알 수 있다.
또한 통일교 교리 속에서 드러난 신관과 인간관에서 한국 전통 종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문선명 부부가 하나님과 가치가 동등한 하나님의 화신이요, 인간의 완성자요, 재림 예수 그리스도라는 주장에는, 창조와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알지 못한 채 '성선설'을 믿고 인간에 내재한 절대자의 신성을 실현하여 스스로 완성해 보려는 유·불·선의 철학 사상이 통일교의 이론체계 밑에 조용히 깔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문선명은 메시아가 되고, 그 부인은 성령이 되고, 그들에게 접붙인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가능성을 바라보며, 동시에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귀신처럼 울고, 한 맺히고, 인간처럼 자식을 낳는 참부모의 형태로 추락한다.
위에서 고찰한 통일교와 같이, 아시아 종교들의 영성과 사상들을 기독교에서 흡수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한국의 기독교 이단 운동들은 비기독교적 토착 종교 사상과 영성이 교회에 들어옴으로써 생긴, 성경으로 가면을 쓴 단체들이다. 기독교가 재래 우상 숭배와 귀신 숭배의 영성과 일원론적 범신론 사상을 극복하지 못하면, 가장 무서운 종말론적 적그리스도운동에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특히 성경을 부분적으로 이용하는 혼합주의 운동을 저지해야 한다.
재래 종교들과 연합한 '기독교 혼합주의' 이단들의 신지식은 '새 계시 내지 새 진리' 등을 주장하면서 성경적 문맥(context) 없이 인용한 몇 개의 말씀들을 이교 사상에 맞춰 재해석한다. 그러나 실상 '새 계시'라는 것은 교주 자신이 악령에게서 직접 받은 것이고, 이것을 성경보다 더 큰 권위로 인정한다. 이러한 체험적이고 주관적인 새 계시의 수령자들은 귀신과의 감정적인 일치를 추구하고, 그러한 심정적인 일치를 신과의 통일로 간주한다.
그러나 올바른 신(神) 지식은 사도적 전승과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인 해석, 성경에 대한 성령의 증거에 의해 얻는 것이다. 또 하나님은 추상적 사색에 의해서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체적인 구원계시로 인식된다. 그러므로 삼위일체가 아닌 '하나님'이나 기독론, 성령론은 기독교 신앙에 보충할 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 신앙을 파괴하는 것이다.
W. A. Visser't Hooft가 비삼위일체적 신관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적대하는 것이라고 한 말은 옳다. 동양철학적 신관이나 종교체험들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불연속성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계시를 받고(렘 14:14f). 거짓된 꿈을 꾸며(렘 23:32), 거짓 예언을 말하는 사람들은 오늘이나 과거나 항상 있었다. 이에 복음은 다른 영을 받는 것에 대하여 크게 경고하며, 다른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과(고후 11:4, 마 24:24) 다른 복음을 믿는 일에 대해(갈 1:6-10) 엄히 경고하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