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코메니우스가 그의 범교육학(Pampaedia)을 통하여 제시해 준 교육의 특이점들은 어떤 것인가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1)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것이었다
코메니우스의 교육 계획은 '인간적인 일들의 관계의 개선'(Verbesserung)에 있었다. 현대적으로는 '인간적인 관계들의 개선'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개선'이란 모든 사람들, 또는 전 인류를 목표한 일이다. 코메니우스는 모든 사람들이 범지혜인들이 되기를 원했다. "범지혜(汎知慧)란 모든 사람들이 전체에 관하여 참된 앎에 이르게 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것에 대한 근본에서 가르침을 받았다면, 그들은 모든 것에 참 지혜로운 자들이 될 것이며, 세상은 질서와 빛과 평화로 충만할 것이다." 역시 코메니우스는 범지혜를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 사역과 인간의 정신활동과 성경을 통하여 나타내신 모든 뜻을 말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자신을 뜻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범지혜의 배움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며, 그의 뜻을 좇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하는 일이었다.
코메니우스는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개선하는 과정에 관련되어야 한다는 것을 줄기차게 강조하고 있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려는 의도는 먼저 그의 유명한 책, '대교수학'의 주제에 반영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코메니우스는 모든 사람들을 교육하려는 요구와 함께 가장 중요한 종교개혁의 관심을 수용하게 되는데, 이러한 착상은 실제로 종교개혁자 루터에 의존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스스로 읽을 수 있어야 하며, 검토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종교개혁자들에게 달린 일이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코메니우스 시대에도 모두를 위한 교육이 요구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물론 다른 이유들에서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그 당시에 성장하는 기술적이며, 학문적이며, 사회적인 요구들이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위한 교육의 요구는 상층(지도층)에 있는 자들에게는 엄청난 불신을 초래하는 일이었다. 실제로 그 당시 모두를 포함하는 교육 대상의 요구는 그 당시 학자들에게서도 꺼리는 일이었던 것이다. 특히 코메니우스가 교육적인 영향을 입고 있었던 안드레(J.V.Andrae)와 라트케(W.Ratke)와 같은 학자들도 모두를 위한 교육의 요구에는 유보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였다(DM,S.13).
바로 이러한 그 시대적인 갈등과 요구가 교차하는 시기에 코메니우스는 혁명적으로 모두를 위한 교육 계획을 제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그의 교육 계획은 그 당시 3가지 관점이 사회적으로 지향되었다. 모든 사람 가운데는 첫째, 사회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둘째, 여성들을 교육하는 일을 전제하였으며, 셋째 장애인들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 코메니우스의 이러한 교육 정신은 그 사회에 혁명적인 것이었으며, 그리고 범세계적인 모두를 위한 교육 계획으로 이해되는 것이었다(PP.S.12).
(2) 모든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었다
코메니우스가 의도한 '모든 것'을 가르치려는 계획은 이제 '범지혜'(Pansophia)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의 범지혜는 모든 사물이 서로 어떻게 질서화되어 있으며, 진리의 영원한 법칙에 따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코메니우스는 교육이 성장 세대들을 모든 지혜인 '범지혜'에로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코메니우스의 모든 것을 가르치려는 의도는, 물론 인간이 과학과 예술이 제시하는 모든 지식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모든 지식이 우리 각자에게 유익한 것도 아니며, 더욱이 짧은 인생의 시간에 그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코메니우스가 의도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사실과 사건들의 토대와 목적에 대하여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표는 모든 것을 앎이 아니라, 세상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코메니우스가 제시하는 '모든'이란 라틴어 '판'(Pan)인데, 그것은 '전체'(우주)에 대한 관계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 당시에 알아야 할 내용의 폭발적인 증대(새로운 정보)에 대하여 교육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게 되는데, 그것이 그가 처음에 계획했던 '백과사전'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는 백과사전을 만들어 교육하려는 계획은 포기하고, 여기서 '범지혜'(Pansophia)를 착상하게 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코메니우스는 범지혜의 사상을 성경에서 끌어내었다는 점이다(골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중요한 것은 '판'(Pan)으로 표현되는 '모든' 또는 '전체'는 '하나님' '인간' '자연'의 세 가지 세계를 뜻하는 것으로, 인간은 바로 그 중간에 끼어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교육의 근본 과제 안에서 인간은 이러한 관계들을 파악해야 하는 것으로, 이 세 가지 영역의 학문들이 포함되는 것이다. 먼저 신학Theologie)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하여, 정치(Politik)는 인간들의 관계에 대하여, 과학(Wissenschaft)은 자연과의 적절한 대화를 위하여 근본 가치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보편적인 철학(Pansophie)과 교육(Pampaedia)은 이제 신학과 정치와 과학(자연)에 집중해야 하며, 현대적으로 말하면 종교적이며, 도덕적이며, 인식적인 면을 포괄해야 한다. 즉 모든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전제였다.
생각하면 코메니우스의 교육학은 먼저 신학적으로 지향된 것이었다. 범지혜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근원으로서 창조주(하나님)에게서 출발한다. 그리고 모든 존재의 목표로서 다시금 그에게로 인도한다. 이러한 근본 구조를 역시 교육학에 반영되게 해야 했다. 코메니우스의 대교수학은 이러한 구원 역사(Heilsgeschichte)의 개요로 시작하며, 인간적인 삶의 목표에서처럼, 모든 교육의 목표에 몰두한다. 즉 그것은 하늘의 구원(Himmliche Seligkeit)에 이르는 것이었다. 코메니우스는 모든 교육적인 노력들의 토대로서 아이들의 강한 신앙(경건)교육을 결과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종교적인 가르침을 나태하게 하는 학업 행위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그 때문에 코메니우스의 교육은 무엇보다 먼저 신앙(경건)과 참된 하나님 경외를 모든 것의 토대로 삼아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런 후에 윤리와 도덕이 고귀한 후예로서 아이들에게 심겨야 하며, 그들이 알게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코메니우스의 교육은 역시 정치적으로 지향되었다. 인간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에 놓여 있다. 그 때문에 내용적으로 범지혜는 인간의 평등지향적인 관계에서부터, 그리고 공동생활의 목표와 근본으로서 평화에서부터 나아간다. 거기서 교육은 인간적인 전통을 따르면서 무엇보다 먼저 평화교육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코메니우스의 교육학은 '사실적'(realistisch)으로 정의되었다. 그것은 자연과학적인 것을 뜻하는데, 창조 시에 하나님에게서 위임된 자연에 대한 통치를, 인간은 자연과학적인 연구와 그것에 상응하는 사실적이며 자연에 박학한 교육을 포함한 것으로 다스림의 올바른 방식을 통하여 획득해야 한다고 보았다. 코메니우스는 말하기를 모든 사람들이 사물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그것들이 존재하는 이유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것들을 올바르고 유익하게 사용하게 되기를 소원해야 한다고 하였다(PP,S.25). <계속>
*크리스천투데이는 본지 편집고문인 정일웅 박사(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소장, 전 총신대 총장)의 논문 '코메니우스의 교육신학사상의 현대적 의미'를 저자인 정 박사의 동의를 얻어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