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칼럼] 감추려 해도... 영원한 비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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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요즘 가슴 먹먹한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영국의 브렉시트로 인한 세계 경제의 흔들림이 그렇고, 모 기업 임원이 수백억의 돈을 꿀꺽 삼키는가 하면 임직원들에게 2천억 원이 넘는 성과급을 지급하는 일도 그렇고, 정치인이 수억 원을 리베이트 자금으로 착복했다가 걸린 것도 그렇다.

이들 모두가 우리네 가슴을 아프게 한다. 더구나 고등학생 22명이 여중생 두 명을 집단 성폭행하고 5년간 숨겨온 사실은 안타깝고 서글픈 탄식을 자아내게 만든다.

2011년 9월 3일, 서울 노원구 한 골목에서 두 명의 여중생이 캔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남자 고교생 5명과 맞닥뜨렸다.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을 협박했다. "몰래 술 마신 사실을 알려 학교를 못 다니게 하겠다."

으름장을 놓은 뒤 여학생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캐물었다. 그리고 엿새가 지났다. 한 남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함께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술 마신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

남의 약점을 이용해서 자기 만족을 채우려는 것은 비인간적인 처사이다. 중학교 여학생이 술을 마신다는 건 누가 봐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 비행적 행동이 이런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지는 생각지도 못했을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해 자기 욕심을 채우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약점을 잡힌 것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것이 협박으로 몰려가니 어쩌겠는가? 어쩔 수 없이 여학생들은 약속 장소로 올라갔다. 초안산으로. 오후 9시에. 산에 올라가니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남학생들의 숫자가 불어난 게다. 5명에서 11명으로.

남학생들은 여중생들이 만취하도록 술을 먹였다. 의도를 갖고서. 결국 여중생들은 정신을 잃었다. 그러자 4명이 번갈아가며 한 여학생을 성폭행했다. 나머지 7명 중 일부는 성폭행을 시도하다 피해자의 반항으로 미수에 그쳤다. 그들은 주위를 살피며 범죄를 방관했다.

다른 여학생의 성폭행 여부는 불확실하다. 그날 만취한 상태여서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는지 기억도 못하기 때문에. 가해자들 역시 부인하고 있는 실정이니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고 있다.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8일이 지났다. 또 다시 협박 전화가 왔다. 어쩔 수 없이 지난번 그 장소로 나갔다. 이번엔 남자 고교생 22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배가 되는 숫자가 악한 일에 동원되었다. 결국 두 여학생은 끔찍하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참에 교육 현장에서 성교육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봐야 한다. 현재 떠들썩하게 실시하고 있는 성교육이 과연 얼마나 효율적인지? 인성교육의 문제가 끊임없이 지적되고 성품교육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이 판국에 이런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니, 이게 무엇을 말해 주는 건지? 아직까지 대학 진학 위주 교육을 따라잡지 못하는 인성교육의 현장을 반성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건 아닌지?

아니, 고등학생들이 이렇게 엄청난 성범죄를 저지르게 만든 우리 사회의 책임도 냉철하게 점검해 봐야 한다. 애인이 없는 사람은 장애라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하는 사회, 자식 같은 소녀들을 품에 안으려 하는 사람들,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성을 매개로 돈을 벌려고 혈안이 된 장사치들. 우리 모두가 공범이 아닌지.

이 사건은 5년 동안 묻혀 왔다. 이렇게 끔찍한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갔다. 그러니 성폭행을 당한 두 여학생들의 삶은 어땠을까? 그들의 심리적·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을 게다. 고소할 수도 없었다. 그게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의 입장이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아무리 감추어지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는 보신다. 언젠가 다른 사람들도 알게 된다. 2012년 일어난 다른 사건을 조사하다,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드러난 게다. 경찰은 피해 여중생들에게 가해자들을 고소하고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을 진술해 달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어느 피해자인들 이런 사건을 드러낼 수 있을 건가.

5년이 지난 지금 가해자들은 직장인과 대학생, 군인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다. 피해자 중 한 명은 결국 학업을 중단했다. '때린 놈은 마음 편히 못자 도 맞은 놈은 다리 쭉 뻗고 잔다'는 말이 무색해진다. 너무 불공평한 세상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우리네 가슴을 더 아프게 하는 게 있다. 엄청난 사건도 너무 가슴 아프고 울화가 미치는 일이지만, 가해자들의 태도가 더 속상하다. "피해자가 거짓말을 한다." "5년 전 일이라 기억이 안 난다." 자신들의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물론 없는 사건으로 만들고 싶었겠지. 너무 엄청난 일이니까.

그러나 이 지경이 되었으니,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하는 게 아닌가?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사죄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없었던 일처럼, 꾸며낸 것처럼, 자신들이 억울하다는 투로 사건을 왜곡시키다니!

그때야 어리니까 그랬다손 치더라도, 5년이 지난 지금은 성인이 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 하는 게 아닌가? 사실 양심을 잃어버린 인간의 실상이 더 가슴 아프다. 화인 맞은 양심으로 나아가지는 말아야 하건만.

그런데 가해자들의 태도보다 더 분통이 터지는 건 이들 부모들이 취하는 태도이다. 자식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 부모라도 잘못을 빌고 또 빌어야 하는 게 아닌가? 어른이 되었으니,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도 있으니. 당사자가 아니니 객관성도 좀 살릴 수 있을 거고.

그러나 상황은 달랐다. 한 어머니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단다. "어릴 때 한 일 가지고 경찰이 너무한다. 출근은 할 수 있게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 경찰이 너무하다고?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러 놓고 아들 출근을 걱정해야 하는가? 피해자들이 당할 고통을 한 번쯤이라도 생각한다면, 여학생 부모들이 당할 억울함과 아픔과 속상함을 생각한다면, 도저히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지.

또 다른 어머니는 강도 높은 경찰의 수사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단다. 빨리 자기 아들을 풀어달라는 게다. 자기 아들이 당하는 수사 과정이 힘들게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피해자 여성들이 당한 아픔과 고통은 수백, 수천 배에 이를 걸 왜 모르는가? 그들 부모는 얼마나 애간장이 끊어질지, 얼마나 분통이 터질지. 그들 입장에서 가해자를 당장이라도 어떻게 하고 싶은 심정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왜 그런 아픔을 조금이라도 헤아리지 못하는지. 피해자가 당할 아픔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느끼기만 해도 덜 미울 텐데. 법적인 선처도 그 후에야 바랄 바가 아니던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죄를 범할 순 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해서는 안 되리라. 그러나 반성이라고는 조금도 느낄 줄 모르는 사람들을 용서하라는 건 사회적 정의도 아니고, 오히려 공분을 일으킬 뿐이다. 죄를 인정하고 책임을 지려는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상대방이 당할 아픔과 고통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겸손하게, 선처도 용서도 간곡히 구해야 할 게다. 당사자들도, 그 부모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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