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나 칼럼] 죽음 앞둔 김유복 형제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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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리네의 ‘영생의 문’과 탈동성애

▲응급처치를 받고 있는 김유복 형제.

▲응급처치를 받고 있는 김유복 형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지난 화요일 효드림요양원 원장님으로부터 요양 중인 김유복 형제가 위독하다는 전화가 왔다. 미국을 다녀온 후 일처리에 밀려 병문안을 하지 못해, 얼굴을 본지 한 달 반을 훌쩍 넘은 터라 가슴이 덜컥했다.

화급을 다투는 일이라 요양원을 방문할 겨를도 없이 순천향병원 응급실로 모시게 하고, 교회 형제들과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다. 만약 그 사이에라도 소천한다면 죄인이 될 것 같은 마음이 앞섰다.

병원 응급실은 위급환자들로 가득했다. 김유복 형제는 내가 도착하기 전 응급 처치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보호자가 없는 상황이라 생명에 위급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 다음 단계는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얼굴을 보자, 그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애처러운 눈초리로 고통을 호소했다. 응급처치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담당의사는 유복 형제의 현재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미 폐혈증이 한참 진행된 상황이라 기도를 확보하고 가래를 빼내기 위해 호스를 삽입하는 수술을 해야 하고, 소변이 나오지 않아 이대로 방치하면 오늘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다. (이것이 마지막 여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복 형제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에서 얼굴을 마주한 유복 형제는 생명을 위한 긴급처치로 만신창이가 된 채 호흡보조기 틈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 잠든 얼굴은 내가 지켜본 십여 년의 병상 중 가장 편안했다.

참으로 기구한 인연이다. 충무로에서 의상실을 운영하던 시절, 게이 절친들과 '콩자반'이라고 불리는 선배가 운영하는 금호동 게이 선술집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런 술자리를 좋아한 것은 아니지만, 마침 대구의 대안 형제가 올라와 선후배 지인들을 초청한 자리였기에 함께 갔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방문이 열리며, 붉은 집시옷을 걸친 남장 여인이 작은 손부채를 들고 현란한 몸짓과 낭낭한 목소리로 '키사스 키사스'를 부르며 등장했다. 마루바닥을 굴러대는 그의 폼이 상당히 요염했다. 당시 밤마다 명동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여장 남자가 있었지만, 술집에서 여장을 하고 노래와 춤을 추는 사람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비록 선술집이지만 대중가요에서부터 엔카(일본 대중가요), 라틴, 팝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게이들만이 할 수 있는 특유한 눈짓과 제스춰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유복 형제의 본명은 김유복자이다. 어머니가 유복 형제를 임신한 상태에서 아버지께서 작고하셨기 때문에, 이름을 유복자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가 없는 균형을 상실한 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여장 남자 가수 시절 김유복 형제. 본명이 '김유복자'이다.

▲여장 남자 가수 시절 김유복 형제. 본명이 '김유복자'이다.

일찍 가장을 잃은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시어머니에게 맡긴 채 밤낮으로 일을 해야 했다.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 외딴 집 마루바닥에 덩그러니 내던져진 채, 그는 어려서부터 혼자 말하고 노래하며 스스로 자기 만족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처음 만난 유복 형제의 웃음 속에서는 무서운 냉정함이 엿보였다. 어쩌면 애정을 상실한 성장과정 속에서 그 어떤 극한 상황 속에서도 천연덕스럽게 여장 남자로서의 노래와 춤로 인생을 즐겨야 했을지도 모른다. 

유복 형제는 경남상고를 나왔다.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번듯했던 유복 형제는 학교에서 상당한 인기 있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여자를 사랑할 수 없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 있었다. 이미 은밀한 곳에서 남자와의 욕정을 즐기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에게 유일한 재산은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는 MBC 방송국 전속가수로 입사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자랑할만한 이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남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젊은 욕정은 보수 사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퇴사를 당해야 했다. 이것이 그가 게이들이 모이는 선술집에서 노래를 하게 된 동기이다.

서른 살이 되던 해, 나는 이태원에 들어와 15평 남짓한 카페를 열었다. 그것이 '열애클럽'의 시작이다. 처음은 게이들이 드나드는 카페로 시작했지만, 과거 의상실을 경영할 때 알던 연극인들과 방송인들이 드나들면서 일본에서 유행하던 가라오케를 설치하고 카페 안에 작은 무대를 만들었다. 그때 생각난 사람이 김유복 형제이다.

당시 김유복 형제는 지인 자매가 운영하는 카페 휘가로에서 웨이터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만나자 쾌히 열애클럽으로 왔다. 그는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김유복 형제에게 특별한 무대 드레스를 지어 주고, 연극학교에서 배운 솜씨로 특유한 분장을 시켜 무대에 세웠다. 그때부터 그는 김마리네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비록 작은 술집이었지만 말이다.

당시 열애클럽은 비록 여장 남자 게이클럽(트랜스젠더 클럽)이었지만, 여장을 한 게이들의 노래와 춤과 재담을 곁들인 패키지 쇼를 볼 수 있었기에 일본인 관광 잡지에까지 소개된 명소 중 하나였다. 연예인들을 비롯해 사업가, 정치인, 방송인, 작가 등 한국의 명사들이라면 한 번은 찾았던 특별한 유흥업소였다. 

김유복 형제는 열애클럽의 메인 싱어로서 패키지 쇼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며, 후일 열애클럽 동경지점 벨라미 클럽에까지 원정을 가기도 했다. 이 때가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황금기였다.

그 당시 지인들과 열애를 방문한 가수 패티 킴, 현미, 임희숙 씨 같은 중견 가수들도 김마리네의 노래를 들으며 '절대음감 소유자'라고 극찬을 했다. 그러나 동성애자의 밤은 피지 못하고 지는 꽃과 같다. 밤에만 펴야 하는 어둠의 자식들이다. 풀어내지 못하는 욕정을 밤거리에 쏟아낼 뿐이다.

고객들이 던져 준 몇 푼의 팁이 모이면 욕정을 불태워줄 남자를 찾아 나서야 하는 그들은 스스로 비굴한 성노예가 된다! 이렇게 그들의 인생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비참하게 이어져 갔다. 이렇게 화려한 조명 속에서 아름답지 못한 욕정의 밤들이 그의 인생을 좀먹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시간에 예수의 이름이 그에게 찾아 왔다는 것이다. 그가 열애클럽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예수를 믿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늘까지 이어진 이요나 목사와의 끈질긴 인연이다. 

88올림픽 이후 난잡해진 이태원 유흥가는 정부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위기가 찾아왔고, 화려한 조명 속에 밤의 여왕처럼 군림해도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게이의 삶에 염증을 느낀 나는 이태원을 떠나 동경으로 건너가 복음의 생수를 마시며 더러움을 씻고 있었다. 그러나 정신적 지주를 잃은 유복 형제는 거리의 낭인이 되어 구원의 믿음을 상실한 채, 퇴기(退妓)처럼 트랜스젠더 클럽의 뒷방마마로 전전하고 있었다.

그 후 1995년 5월 내가 탈동성애 목사가 되어 돌아와 그를 찾았을 때, 쪽방에 누워 흡사 귀신의 몰골을 한 채 신음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예수를 믿었고, 교회에서 찬양을 부르며 믿음을 회복했다. 그러나 교회가 개척한지 2년만에 문을 닫게 되자, 유복 형제는 미안하다는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 갔다. 다시 옛생활로 돌아간 것이다. 

7년 후 다시 만난 유복 형제는 척추수술 후유증으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어 신음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의 보호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후원금을 모아 재수술을 하였지만 결국 더 악화되어, 간병인의 도움으로 연명하다 지난 겨울 더욱 심해져 지인이 운영하는 효드림요양원에 입원했고, 이제는 중환자실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김유복 형제를 찾은 이요나 목사 등이 그를 위로하고 있다.

▲김유복 형제를 찾은 이요나 목사 등이 그를 위로하고 있다.

그렇게 오늘 그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제 길고 고달픈 인생을 정리하려는 순간이다. 어쩌면 그에게는 살아 있는 세월이 지옥일 것이다. 그것은 하늘 저편에 우리 모두가 소망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 때문이다. 

사탄에 사로잡힌 한 영혼이 하나님의 품에 온전히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환란과 애통의 세월을 살아야 하는지.... 죽음의 문턱을 헤매고 있는 유복 형제를 지켜보는 내 마음은 더욱 견디기 어렵다. 그러나 그는 나보다 주님을 먼저 만난 자가 될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다시 그를 만날 것이며 평안과 자유의 은혜 속에서 위로를 받을 것이다. 참으로 긴 인생 여정이었다. 주님 저의 영혼은 평안케 하소서. 아멘, 아멘. 

/이요나 목사(홀리라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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