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칼럼] 홧김에 불 지른 사람 vs 불 속으로 뛰어든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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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방송 성우가 되는 게 꿈인 한 청년이 있다. 그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28세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죽을 위기에 처한 20여 명의 생명을 건진 의인으로 알려졌다.

그가 남긴 한 마디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달아나세요. 불이 났습니다." 이 짧은 한 마디로 20명의 목숨을 건졌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안치범 씨이다.

그는 21개의 원룸이 있는 5층 건물 4층에서 살고 있다. 지난 9일 새벽 불이 난 것을 발견했다. 깜짝 놀라 불을 피하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일단 119에 신고를 먼저 했다, 그러고 나서 잠깐 망설이더니 웬일인지 곧바로 불이 난 건물 안으로 디시 뛰어 들어갔다.

그는 정신없이 1층부터 5층까지 전 층 21개의 룸을 돌아다니면서 계속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들겼다. 불이 났으니 빨리 달아나라고 고함을 질렀다. 깊은 잠에 빠진 주민들을 깨워 도피시킨 후, 그는 옥상 입구 계단에서 쓰러져 있었다. 유독가스에 질식된 게다.

소방관이 발견하여 병원으로 옮겼다. 그러나 의식불명 11일 만에 끝내 숨지고 말았다.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 생명과 안전을 먼저 확보하려 하지만, 그는 남의 생명과 남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의로운 죽음을 당했다.

본인은 그렇다 손 치고, 생떼 같은 아들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아버지는 아들의 영정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아들 맞냐고.... 우리 아들이 맞긴 맞는데 아니라고 하고 싶더라고.... 아니었으면 싶더라고....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훌륭하게 잘했다, 미안하고 그동안에.... 아들에 대해서 참 많이 몰랐구나...."

아버지보다야 어머니의 가슴이 더 찢어지지 않겠는가?

"어느 엄마나 다 마찬가지지만 소중한 아들이니까 원망스러웠죠. 나는 말리고 싶은데 내가 말려도 또 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는 쓰러지는 순간에 잘했다고 칭찬해 줘서.... 자랑스럽다...."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평소 굉장히 남을 생각하고 존중해 주고 배려해 주는 사람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다. 악평을 안 듣는 것도 다행인 세상인데, 그를 향한 칭찬과 호평은 그칠 줄 모른다.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적인 사회에 경종을 울린 아름답고 가치 있는 죽음이다. 온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던 세월호 사건의 충격은 지금도 가시지 않는다. 그때 선장과 선원들은 수백 명의 학생들과 승객들을 가라앉는 배 속에 내팽개치고 자기들만 살자고 도망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청년은 들어가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는 죽음의 불길 속으로 스스로 뛰어들었다. 불길 속에 휩싸일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다. 의로운 분이다. 그러나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오셨다. 그러나 세상은 예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하고 대적했다. 그런 세상을 위해 예수님은 자기 몸을 대속 제물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 저주의 죽음을. 비참하고 처참한 죽음을.

그러나 그 죽음은 쓸모없는 죽음이 아니었다. 세상을 살리는 죽음이고, 죄인들을 죄에서 건져내는 죽음이다. 죄인들을 대신해 죽은 그의 죽음이 없이는 아무도 참 생명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

20명의 사람들을 살린 청년에게도 필요한 예수님의 죽음이다. 사람들이 의로운 죽음이라고 말하는 청년의 죽음도 인간의 죄를 없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이 당하는 불행의 씨앗인 죄를 없애기 위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 3:5)".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대속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사람들이 말하는 죄인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사람들이 의롭다고 말하는 사람들, 선한 사람이라고 일컬어지는 바로 그 사람에게조차도 반드시 필요하다.

꿈을 이루지도 못한 채 안타까운 죽음을 가져온 원인은 방화이다. 건물에 불을 낸 범인은 20대 남성이다. 그는 여자친구의 이별 통보를 받고 홧김에 불을 질렀다. 한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해 저지른 악행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다 주었는지. 한 가정에 천하보다 귀한 한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아픔과 상처를 안겨주고 말았다.

이 청년의 인생을 무너뜨린 건 여자친구와의 이별이 아니다. 문제는 이별이 아니라, 이별을 받아들이는 청년의 태도이다. 아프기야 하겠지. 고민이야 되겠지. 갈등이야 하겠지. 그래도 이렇게 무너질 게 뭔가. 얼마든지 새로운 만남을 기대해도 되는데. 더 좋은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는데.

화가 난다고 아무렇게나 행동한다면 세상은 금새 요지경이 되고 말 것이다. 화가 나도 삼키고 참아야 한다. 살면서 화가 치밀지 않고 살 사람이 누구겠는가. 그래도 화는 다스려야 한다. 분노의 노예가 아니라 감정을 통제하고 다스려야 한다. 그랬더라면 이렇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텐데.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든 청년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사소한 일 때문에 분노하고,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다른 사람들을 어려움에 처넣는 사람도 있다. 동일한 인생을 살지만, 너무 다른 모습이다.

언젠가 제주도에서는 50살의 동거녀와 말다툼을 한 후 연립주택에 불을 저지른 40대 남성도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동거녀와 말다툼을 하다 화를 참지 못해 솜이불을 꺼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동거녀를 괴롭히는 것으로는 분노가 풀리지 않았다. 홧김에 저지른 불은 4층 빌라를 모두 불태우고 말았다.

살다 보면 갈등이 있을 수도 있다. 갈등 끝에 말다툼을 할 수도 있다. 분노의 감청에 휘청거릴 수도 있겠지. 그러나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하는 법이다.

참음이 없이는 휘청거리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없다. 성령께서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게 해야 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진리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다.

사소한 일을 참지 못하고 홧김에 불을 저지르는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드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아무런 죄가 없이도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 십자가의 희생으로 살아갈 때 세상은 새롭게 변화되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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