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칼럼] ‘김영란법’과 더불어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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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인생은 혼자 살기도 잘 해야 하지만, 더불어 살기도 잘 해야 한다. 혼자 잘 놀 줄 모르는 사람도 있지만, 요즘은 혼자도 잘 논다. 한 자녀를 양육하다보니 아이들도 혼자 노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더구나 스마트폰 시대가 되다 보니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혼자 지내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다. 요즘은 혼자 노래방을 가서 즐기는 사람(혼방), 혼자 밥 먹는 사람(혼밥), 혼자 영화 보는 사람(혼영), 혼자 여행하는 사람(혼영)들이 늘고 있다.

'싱글은 외롭다'는 표현도 고리타분한 말처럼 간주된다. 오히려 홀로 지내는 것이 자유롭고 편하게 돌아가는 세상이다. 어떤 차원에서는 싱글도 또 다른 생활 양식이니까 인정해 주어야 하는 세상이다. 독신의 은사를 가진 자는 독신으로 사는 게 하나님의 뜻일 수 있다. 그걸 인정하지 못하면 자녀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더불어 사는 존재, 함께 사는 존재로 만드셨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신 후, 하와를 만드셨다. 하와가 아담을 도와줌으로 아담은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사람 인(人)자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대 있는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서로 기대어 사는 게 아름답고 행복하다. 서로 기대어 살기에 덜 힘들고, 덜 외롭고, 더 따뜻하고 용기가 생긴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래서 솔로몬은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이렇게 예찬한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전 4:9-10)."

겨울에 눈이 와서 길을 거닐 때면, 아내는 내 옆으로 와서 팔짱을 낀다. 불안한 모양이다. 넘어지면 다칠까봐. 그래서 자기가 보호해 주겠다는 게다. 아니 어쩌면 나의 보호를 받을 심산인지도 모른다. 넘어지는 걸 막아주기도 하고, 넘어져도 위기를 넘기도록 보호해줄 수 있고, 넘어지더라도 일으켜 줄 수 있다. 그래서 더불어 사는 게 좋다.

그런데 문제는 서로 기대어 사는 게 결코 쉽지가 않다는 게다. 기호가 다르고, 성장 과정이 다르다. 습관도 다르다. 기질도, 성격도 서로 다르다. 그러니 갈등이 생기고, 갈등이 일어날 때마다 심리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몇날며칠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밥맛을 잃기도 한다. 극단적으로 '차라리 콱 죽어버리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결혼한 지 5년 이내에 이혼하는 걸 신혼 이혼이라 하고, 20년이 지나 이혼하는 것을 황혼 이혼이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 5년 동안 황혼 이혼이 매년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혼부부 10명 가운데 3명 꼴로 황혼 이혼을 했다. 황혼 이혼이나 신혼 이혼 모두 이혼하는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다. 성격 차이가 가장 많고, 다음이 경제적 문제이다. 더불어 사는 게 그렇게 어렵다는 말이다.

그러니 혼자 사는 게 속 편하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홀로 살기를 너무 즐기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아예 그런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사회적인 고민이 크다.

요즘 자의반 타의반으로 독신남녀가 늘어간다. 젊은이들은 말한다. "연애도 해 봤지만, 결혼이 꼭 필수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요즘은 굳이 결혼을 위해 마음에 맞지도 않는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혼자서 자유롭게 사는 게 낫다." 취업하기도 힘들고, 집 마련하기도 힘들고, 자식 키우기는 더 힘들고, 서로 맞추어 사는 게 힘드니, 차라리 혼자 살자는 게다.

좀 힘들어도 함께 살아가려는 노력이 있어야 공동체가 유지되고 성장하게 된다. 나만 편하게 살자니 저출산으로 국가적인 위기를 겪지 않는가? 노령화는 빠른 속도로 가속화되는데 반해 출산은 줄어드니, 앞으로 누가 일할 것이며 누가 노인들을 부양할 것인가? 자식 기피 현상은 국가적 위기이고, 교회의 위기이기도 하다.

'3. 5. 10!'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숫자이다. 식사비 3만원, 선물비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이게 우리 사회에 비상을 걸고 있다.

소위 '김영란법'에 대한 찬반론이 무성했다. 결국 첫걸음을 내디뎠다. 시행첫날부터 우스꽝스러운 일들도 많이 연출되었다. 아니 앞으로도 많이 연출될 게다. 법안 시행에 대해 지금도 사람들의 생각들은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더불어 살기에서 나온 우리 사회의 과제가 아니던가.

우리 사회에 부패가 횡행하다보니 더 이상 부패를 허용해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든 게다. 정의가 구현되어 신뢰가 외면당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절박감에서 나온 게다. 사회 곳곳에 만연된 부정 청탁과 금품 수수의 부조리를 막아서, 깨끗하고 공평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분에서 나온 게다. 그러니 선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필연적인 수순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한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다. 살아가는 데 너무 삭막한 사회가 될 거라고 우려한다. 인정이 사라진다는 게다. 소비 위축을 가져와서 경제활성화를 가로막게 될 거라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고급 식당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골프장 같은 고급 문화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사람들은 괜스레 난처한 덫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피할 수 있는 자리는 아예 거절하는 분위기다.

김영란 법은 결혼식장과 장례식장 분위기도 고쳐놓았다. 고위공직자들은 몸을 추스를 수 밖에 없다. 시끌벅적한 걸 자제하는 분위기, 화환이 사라지는 현상, 두툼한 봉투 사절을 아예 천명하는 분위기, 모르고 받은 과도한 금액도 돌려주는 사태....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장례식장에 머무는 시간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오래 머물기가 부담스러우니까.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까. 눈치를 봐야 하니까.

밥값 계산 풍속에도 변화가 왔다. 인정 사회인 한국인은 몰아내기가 익숙하다. 오늘은 내가 내고, 내일은 네가 내고. 그러면서 관계는 돈독해지고 정 사회로 뭉쳐졌다.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기분에 내뱉었던 말, '내가 한턱낼게', '오늘은 내가 쏠게'라는 말도 이제 사라질 상황이다.

지갑 상황이 궁한 젊은 세대들의 문화가 되어 버린 'N분의 1 시대'가 장년 세대들에게도 다가왔다. 함께 식사는 하더라도 먹은 것을 각자 지불하자는 게다. 각자 내기야말로 괜스레 논란이나 시비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니까.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신고 포상금을 노리는 '란파라치'를 교육하는 학원들도 생긴다고 한다. 몰래카메라가 난무한 시대에 또 다른 몰래카메라 장사를 만들어 주는 셈이다. 돈 되는 일이면 사람들이 정말로 발 빠르게 움직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 법안으로 인해 애매하게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법 적용에 대한 좀 더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시행안도 나와야 할 게다.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영란법은 이미 시행되었다. 이로 인한 부작용이나 불합리는 조심스레 보완하면 될 게다. 피하기 전략보다는 근본 정신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면 좋겠다. 불의한 돈을 주고받는 걸 멈추면 된다. 권력을 이용한 부당 이득을 포기하면 된다. 인정이라는 걸 남용해 부당이득을 취하는 걸 거부해야 한다. 금권선거나 부정청탁의 뿌리를 근절해야 한다.

김영란법이 정착되면 우리 사회는 더 건강한 더불어 살기 문화를 이룰 것이다. 선진 문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김영란법을 정착시키는 데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앞장 서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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