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칼럼] 종교개혁 499주년을 앞두고
우리 죄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죄악의 세력에 얽매어 있으므로, 날마다 '변화'를 받는 '개혁'과 '갱신'이 절대로 필요하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우리 죄인들이 변화를 받아야 할 '개혁'과 '갱신'의 내용과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1. 의인 의식을 버리고 '죄인 의식'을 지니고 '회개'와 '참회'의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했고, "회개하라"는 말씀을 계속해서 하셨기 때문이다(마 4:17, 9:13). 위선과 독선을 버리고 자신의 죄를 처절하게 고백하는 '회개'와 '참회'를 몸에 지녀야 할 것이다.
다윗과 사도 바울은 물론 어거스틴과 프랜시스, 루터와 칼빈과 웨슬리, 그리고 길선주, 이기풍, 주기철, 이성봉, 김치선, 손양원, 한경직, 박윤선, 방지일 목사님들이 평생토록 '회개'와 '참회'의 고백을 하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루터의 95개 조항의 첫째는 다음과 같았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고 하셨을 때 신자의 생활 전체가 참회의 생활이 될 것을 요구하신 것이다."
2. 자기 자신에 집착하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영광'에 전력하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려는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라고 분부하셨기 때문이다(마 16:23, 24, 요 8:54).
칼빈의 개혁운동 중심은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영광'에 있었다. 루터가 '회개'와 '사죄'와 '구원'을 개혁운동과 신학의 중심으로 삼았다면, 칼빈은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영광'을 개혁운동과 신학의 중심으로 삼았다. 칼빈은 이런 말까지 했다. "사람으로 하여금 삶의 최고의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열성을 가지게 만드는 대신 자기 자신의 구원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사람은 신학자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하겠다."
3. 세상의 유행과 프로그램과 행사에 치중하는 것을 모두 포기하고, 좀 어리석어 보이고 약하고 모순되게 보이기도 하는 '성경 말씀'에 전력하는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셨고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분부하셨기 때문이다(마 4:17.10:7).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데 전력했다(행2:42). 루터와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의 첫째 모토는 'Sola Scriptura', 즉 "오직 성경 말씀" 이었다. 종교적인 전통도 종교적인 의식도 아니었다. "오직 성경 말씀"에 따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Sola Gratia)와 "오직 믿음으로만(Sola Fide)"의 모토를 외쳤다. 한국교회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님은 회개와 기도와 함께 "말씀"에 전력했는데, 계시록을 1만 독했고 계시록을 암송했다.
4. 분노와 증오와 분쟁과 분열을 버리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지니고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면서 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지니고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면서 살다가 죽으셨고, 우리들도 그렇게 살라고 분부하셨기 때문이다(마 5:7, 6:14, 요 13:34, 엡 2:13-16). 스데반 집사와 폴리캅과 프랜시스, 토마스 선교사와 언더우드 선교사와 손양원·한경직 목사님께서 그런 삶을 사셨기 때문이다.
남북의 대결과 정치 종교적인 이념의 대결이 세계 곳곳에 극도로 치닫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유창한 설교나 심오한 신학이나 화려한 프로그램에 치중하는 대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지니고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5. 돈 사랑과 자기 사랑과 쾌락 사랑의 정욕을 내버리고, '가난'과 '고난'과 '순결'을 몸에 지니고 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난'과 '고난'과 '순결'을 몸에 지니고 살다가 죽으셨고 그렇게 사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눅 9:58)."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눅 9:3)."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마 5:10, 11)."
사도 바울도 '가난'과 '고난'과 '순결'을 몸에 지니고 살았고 그렇게 살라고 권면했다(고후 11:27, 딤후 3:1-5). 프랜시스와 이기풍, 이성봉, 손양원, 한경직 목사님, 장기려 박사님이 '가난'과 '고난'과 '순결'을 몸에 지니고 주님 닮은 귀중한 삶을 사셨다.
6. 듣지도 보지도 행하지도 못하는 귀머거리와 소경과 중풍병자 됨을 지양하고 '들음'과 '봄'과 '행함'의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들음'과 '봄'과 '행함'의 삶을 살라고 분부하셨기 때문이다.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 13:16)."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 7:24)."
신약시대와 종교개혁 시대와 한국 초대교회 시대의 지도자들은 무릎 꿇고 회개의 기도를 드리면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강도 만나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신음 소리를 듣고 보면서 달려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들음'과 '봄'과 '행함'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프랜시스와 손양원·한경직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이 그런 삶을 사셨는데, 지금이야말로 듣고 보고 행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