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칼럼] 코메니우스의 출생과 성장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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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웅 박사

▲정일웅 박사

5.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1592~1670)의 생애와 사상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해 가톨릭으로부터 종교박해를 받고, 마침내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떠돌며 외롭게 살아야 했던 많은 보헤미아-모라비아 형제연합교회의 형제들 가운데 코메니우스란 인물은 그 교회의 목사로서 함께 하고 있었다. 그는 비록 망명생활로 일생을 타국에서 보냈지만,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향한 형제연합교회(프로테스탄트)의 신앙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조국에서의 삶을 애타게 그리며, 귀환을 기다렸던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망명생활 가운데서도 그는 전 세계를 위하여 수행했던 수많은 일들로 인하여 오히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 중에 한사람이 되기도 하였다.

필자는 그의 생애와 그 당시 활동의 역사를 소개하고, 그가 남긴 많은 작품들을 통하여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에 미치고 있는 그의 신학적이며 교육적인 영향들을 밝혀보기로 한다.  
 
1) 코메니우스의 출생과 성장 과정    

코메니우스는 1592년 3월 28일 우헤르스키 브로드(Uhersky'Brod)근처 동 모리비아의 한 마을인 니브니체(Nivnice')에서 아버지 마르틴 코멘스키와 어머니 안나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그의 이름은 체코어로 코멘스키(Komensky)이며, 후에 청년기에 라틴어로 바꾸어 아모스 코메니우스(Amos Comenius)로 명명하게 된다. 그는 10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11살에 어머니와 두 여동생을 잃게 된다. 그의 고모가 고아가 된 그를 슬로바키아 국경, 남 모라비아의 스트라즈니체(Straznice)에 있는 자기 집에 데려다 돌보았다. 거기서 잠시 형제연합교회가 세운 마을학교에 다니게 된다. 그러나 13세에 그 지역이 습격을 당하고 마을은 불에 타 없어져버린 사건이 발생하였다. 코메니우스는 다시 고향 니브니체(Nivnice)로 돌아가 그곳에서 그의 후견인이었던 방앗간집 주인으로부터 농사일과 수공의 일들을 배우게 된다. 그는 학교를 더 이상 다니지 못했고, 일찍부터 육체적인 노동으로 시달리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에 고아가 된 코메니우스는 그의 아버지가 남긴 작은 액수의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고, 1608년에 후견인은 코메니우스를 프로레브(Prorev)에 있는 형제연합교회의 소속인  한 인문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3년 동안 공부한 후, 19세에 그는 대학으로 진학하게 된다. 코메니우스는 탁월한 학생으로서 이미 형제연합교회의 감독인 요한 랑네키우스(Langnecius)로부터 주목받고 있었다. 그는 재능을 가진 가난한 학생 코메니우스가 독일의 헤보른과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계속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하게 된다. 이 두 대학들은 코메니우스에게 신학적으로 깊은 통찰을 제공해 준 칼빈주의를 지향하는 독일지역 학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초기의 형제연합교회에서 받은 교육영향에 충실하게 하나님의 최후의 비밀에 대한 모든 칼빈주의적인 신학적 사색들은 깊게 수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코메니우스는 이들 독일의 두 대학, 헤어보른과 하이델베르그에서 세분 교수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게 되었는데, 헤어보른 대학에서는 요한 하인리히 알스테드(J.H.Alsted:1588- 1638)와 요하네스 피셔(J.Fischer:1546-1622)란 교수였고,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는 다빗 파레우스(D.Pareus: 1548-1625)란 교수였다.  

먼저 알스테드 교수는 철학자요, 또한 신학자였다. 그는 철학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콜라적 전통에 서 있는 탁월한 교수였으며, 신학적으로는 개혁신학(칼빈주의)의 정통 노선에 또한 서 있는 학자였다. 그는 특히 1618-19년에 화란 도르트레히트에서 개최된 유럽개혁교회의 첫 총회에 독일개혁교회의 신학자대표로 참석했던 분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의 학문적인 작업에는 백과사전(Enzyklopaedia)을 만들려는 계획이 있었는데, 그것은 가능한 모든 학문적인 정보를 담아내는 백과사전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코메니우스는 바로 알스테드에게서 이와 같이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중요한 인용문들을 기록하며, 정리하여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학문적인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러한 영향은 후에 범지혜의 사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두 번째 교수인 요한 피셔는 성경신학자였다. 피셔는 원래 스트라스부르그 출신으로 칼빈의 개혁신학전통에 서 있는 신학자였다. 그는 1584년에 헤어보른대학의 학장이었으며, 성경신학자로서 성경번역과 주석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의 주석서 가운데 요한계시록은 1613년에 출판되었는데, 그 책은 하나님나라의 천년왕국이 세상의 종말 전에 이 땅에서 실현된다는 믿음의 정당성을 밝혀주었다. 그의 종말사상은 사탄이 결박되어 있는 동안 만물이 온전하게 회복되어야 하며, 사람들과 국가가 하나님의 참된 교회로 변화되어야 하며, 의인들이 그리스도와 그의 영으로 함께 세상을 평화롭게 다스리게 된다는 입장이었다. 알스테드 교수도 피셔와 같은 입장에 있었고, 그들의 종말론은 그 당시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물론 코메니우스는 이미 형제연합교회에서 배웠던 성경의 가르침과 교수들의 가르침이 일치한다는 것을 느꼈지만, 코메니우스가 깨닫게 된 것은 선생들이 가르친 것처럼, 천년왕국의 도래는 하나님의 일로서 단순히 인간이 수동적으로 기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종말을 준비해야 하는 일이며, 땅에서 이루어지게 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일로서 그 일을 해내야 하는 인간의 책임성에 대한 것이었다. 후에 코메니우스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의 도래에 관한 종말을 준비하는 능동적인 책임성을 범지혜의 교육과 세계개혁의 과제와 연결시키게 된다. 즉 모든 기독인들의 책임으로 학교교육개혁(학문), 국가개혁(정치), 교회개혁(신학)을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세 영역의 개혁을 통해서 참된 지혜의 빛(그리스도의 정신)이 모든 사람들의 생각가운데 스며들며, 참된 평화(샬롬)의 띠로 세계의 모든 민족들을 결속시키며, 참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경배가 모든 사람들에게 충만해 지는 그 때가 천년왕국의 황금시대의 도래로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코메니우스의 이러한 종말론에 대한 세계개혁과 관계된 인간의 능동적인 준비로 이해된 통찰은 그 당시 교회와 신학이 이해했던 전통적인 종말론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이다. 즉, 어그스틴과 종교개혁자들이 천년왕국을 교회시대와 동일시 여기고, 하나님을 아는 일에만 집중했던 것 외에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던 것에 비하여, 코메니우스는 하나님을 알뿐만 아니라, 인간 자신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 즉 자연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알고, 거기에 따르는 삶의 책임을 자발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려는 신학적인 통찰을 새롭게 제시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후에 코메니우스의 범지혜사상(Pansophia)과 연결되는데,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사물(피조물)과의 전 우주적인 질서관계에 대한 모든 올바른 지식을 인간은 추구해야 하며, 그 지혜를 통해서 인간의 삶의 환경을 개선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게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코메니우스의 이러한 생각은 그의 스승들의 종말론이해를 뛰어넘어 인간의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활동을 전개하도록 종말(천년왕국)론 이해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게 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역시 코메니우스의 세 번째 스승은 파레우스(Pareus)였다. 코메니우스는 헤어보른에서 공부를 마치고, 화란 암스테르담으로 여행을 하고 온 후, 칼빈주의 신학을 가르치는 하이델베르그 대학에 등록하였고, 거기서 파레시우스 교수를 만나게 된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평화사상을 끌어내어 평화신학적으로 사고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파레우스는 그 당시 여러 그룹으로 분리되어 있는 유럽의 프로테스탄트교회들을 함께 서로 화해하고 연합하는 시도를 추진하고 있었다. 바로 그러한 복음의 화해정신을 삶에서 실천하는 교훈을 코메니우스가 받게 된 것이다. 후에 코메니우스에게서 나타나는 평화교육과 교회연합사상등은 파레우스의 영향의 발전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러한 세분 교수들의 영향을 크게 입게 된 코메니우스는 후에 범지혜(Pansophia)사상에 근거하여 전 인류가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을 준비하는 능동적인 활동가들이 되도록, 모두를 위한 범지혜의 배움인 전인구원을 위한 전인교육계획(Pampaedia)과 전 세계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Panorthosia)을 구상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나가게 된다. <계속>

*크리스천투데이는 본지 편집고문인 정일웅 박사(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소장, 전 총신대 총장)의 논문 '코메니우스의 교육과 신학의 역사적 배경-보헤미아 형제연합교회와 코메니우스생애와 관련하여-'를 저자인 정 박사의 동의를 얻어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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