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칼럼] ‘엔게디’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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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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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아 1:14)

아가서는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 사이의 사랑을 노래하는 시 모음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두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노래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성경의 정경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유월절 명절에 아가서 낭독을 관습으로 삼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유월절을 통해 하나님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가서의 내용처럼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친밀한 사랑의 관계이어야 함을 지적해 줍니다.

오늘의 본문은 사랑의 고백 가운데 대표적인 내용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고벨화'의 공식적 식물명은 '헤나'(Henna)로서 팔레스타인에서 자라는 관목형태의 식물을 가리킵니다. 이 식물의 잎사귀는 갈아서 머리나 신체의 천연 색소 염료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고벨화'는 이 작은 나무에 피는 흰색 혹은 황색의 작은 꽃들을 지칭하는데, 포도송이처럼 다닥다닥 붙어서 커다란 송이를 이룹니다. 고벨화는 꽃 모양보다는 그 꽃에서 피어나는 향기가 더 아름답고 유명합니다. 그래서 엔게디의 '고벨화'는 '엔게디'의 향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해에 인접한 유다광야 한 가운데 위치한 오아시스 지역인 '엔게디'는 '산양 새끼의 샘'이라는 의미입니다. 더위에 지친 산양들이 새끼들을 데리고 와서 마른목을 축이는 장소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지하수가 땅위로 분출하는 사막의 오아시스 생수는 향기로운 냄새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친 영혼에게 활력을 심어주는 생수는 그 자체가 생명의 아름다운 향기임이 분명합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고벨'로 음역된 히브리어는 '코페르'인데, '덮어주다'를 의미하는 '카파르'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속죄하다'는 의미의 '킾페르'도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고벨화'에서 뿜어져 나오는 '엔게디'의 향기는 덮어주고 감싸주는 향기입니다. 곧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대신 짊어지는 대속의 향기입니다.

엔게디는 역사적으로 다윗과 깊이 관련된 곳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의 피하여 숨어 지낼 때 엔게디는 다윗에게 소중한 은신처였었습니다. 엔게디는 산세가 험악한 곳이면서도 생명 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오아시스 샘물이 연중 끊임없이 흐르는 곳이라 숨어 지내기에 적절한 곳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엔게디는 다윗과 같은 미래의 큰 인물을 덮어주고 감싸 보호해주는 '고벨화' 역할을 하였습니다.

다윗이 숨어지냈던 엔게디는 또한 다윗이 사울을 감싸주었던 감동의 드라마가 연출된 곳이기도 합니다.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숨어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사울은 군사 삼천 명을 대동하고 다윗을 찾아 나섰습니다(삼상 24: 2). 그러던 중 사울이 발을 가리러(뒤를 보러) 다윗이 숨어 있는 동굴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때 다윗의 부하들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했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을 해칠 수 없다고 극구 말렸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위기 속에서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깊은 신앙과 넓은 마음이 사울의 생명을 덮어준 것입니다. 엔게디의 다윗은 사울에게 구속의 '고벨화'였습니다.

엔게디는 다윗의 생명을 덮어준 향기로운 은신처였습니다. 또한 그곳은 사울의 생명을 덮어준 다윗의 '고벨화' 향기였습니다. 결국 엔게디는 생명을 살리는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와 연결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온 인류의 죄를 덮어주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우리들은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이 이제는 사울을 감싸준 다윗처럼 지친 이웃을 향하여 엔게디의 생수를 전달하며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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