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이제 그대는 나에게서 영원한 과거형으로 남게 되는구나. 어느덧 2017년 닭띠의 해 정유년(丁酉年)의 햇살이 밝아온다. 정유년의 창문을 활짝 열어젖힐 준비를 해 본다. 그런데 왠지 다가오는 세상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2016년의 악몽과 악재가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아니 어쩌면 더 험악하게 느껴지는 게 현실이다. 그렇기에 어둡고 암울했던 2016년을 탈출할 통로를 찾지 못하겠다.
그래도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도 그런 인생길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래도 주님이 함께하는 인생이었기에 살 만하지 않았던가? 죽을 것 같이 힘든 세월이었지만, 침묵하시는 하나님처럼 느껴지는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셨다.
그래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생각과 마음의 강단(剛斷)을 입어본다. 물론 믿음의 사람이니 강하고 담대함의 근거를 나에게서 찾지는 않는다. 나에게서 찾았다가 실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심을 외쳐본다.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흔들리는 인생 여정에서도 견고하게 붙들어 주신 하나님! 그 분 때문에 용기를 낸다. 힘차게 달릴 준비도 한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이 내 곁에 계시니까!
설교 준비를 하다가 차 한 잔을 손에 들고 신문을 집어들어 본다. 마음을 실망케 하고, 감정을 혼잡케 하는 이런저런 소식들. 달콤한 아줌마 커피 속에 희석시키고 싶은 마음이다. 언제까지 이 장난질을 해야 하나? 꽁꽁 얼어붙은 민초들의 마음은 도무지 모르는 건가?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 건가? 누구를 위해 앞장 선 건가? 결국 자기야심을 채우기 위함인가?
그러다 문득 되돌아본다. 나는 어떨까? 한국교회는? 우리 교회는? 세상 앞에 서 있는 성도들은? 우리는 그들과 다른 부류라고 안심할 수 있을까? 속 시원하게 대답할 수 없는 우리네 모습이, 결국 성탄하신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인생에게는 결코 해답을 기대할 수 없으니까. 가이사 아구스도 로마 황제에게서 빛을 찾아볼 수 있을까? 유대 분봉왕으로 세워진 헤롯 왕에게서 짙게 깔린 어둠을 극복할 방도가 있을까?
그들은 불완전한 권위자이다. 우리가 바라보고 의지할 왕이 아니다. 새로운 왕이 필요하다. 우리 인간과는 다른 왕, 인간의 어둠이 자리잡지 않은 마음을 가진 왕, 자기 권력에 집착하지 않는 왕, 시기심과 질투심에 유아들까지 처참하게 살해할 수 있는 왕과는 다른 왕.
우리를 죄의 자리에서 구출해 낼 수 있는 바로 그 분. 그래서 예수, 임마누엘이신 새로운 왕이 필요하다. 어둠을 비출 수 있는 새로운 빛이 필요하다. 절망과 어둠으로 물든 이 땅에 희망의 빛을 던질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의 희망이다.
연말이면 늘 그랬듯이 한 해 달력을 떼자니 아쉬움이 많다. 그리움도 적지 않다. 후회되는 일들도 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게 망설여진다. 이루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으니까. 거창한 생각과 설계는 있었지만,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듯한 아쉬움만 남은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한심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러니 인생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신이겠지? 어쩌면 그런 구석이 있기에 인간 냄새가 나는 게 아닐까? 그런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으니까 위로도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거겠지.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절실하게 갈망하는 거겠지.
한 해를 마무리하기 전에 스스로 질문해 본다. '나는 2016년을 잘 달려 왔는가?' 사실 무엇이 잘 달려오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으니 대답하기도 어려운 건 아닐까? 대답한다손 치더라도 지독히 주관적인 것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잘 달려온 인생을 숫자에 묶으려 하겠지? 물질적인 것으로 측정하려 하겠지? 이 세상 자랑거리로 가늠하려고 하겠지?
그러나 이런 게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던가. 최순실 게이트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아줌마 한 사람이 가진 이 세상 자랑거리에 대한 집착이 온 나라와 국민들을 얼마나 가슴 아프게 했는지.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이런 세상도 가능하구나 하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이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건가?
그러니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들 그러지 않는가? 잘못 잡혀진 초점과 방향이 세상을 얼마나 소란케 만드는지. 그게 도대체 뭐길래? 개에게 주어도 물어가지도 않는 것인데. 그런데 인생은 그것에 목매고 있으니, 이런 인생을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의 꿈과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생, 돈을 축적할 수 있다면 무슨 짓거리도 서슴지 않는 인생, 이런저런 인맥을 탈법과 부정을 일삼는 노리개로 삼아온 인생, 그런 사람에게 빌붙어 살아가려는 인생조차 한심하기 그지없지 않은가? 그게 우리의 모습 안에도 다분히 인박혀 있지 않은가?
좀 더 예수님처럼 살 순 없을까? 매일 365일을 예수님과 함께 걸어 다니는 삶.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추구하는 인생. 자기만 생각하지 않고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며 사는 인생,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약한 사람들을 한 번도 버린 적 없으신 예수님처럼 그렇게 살아갈 순 없을까? 사람들이 죄인의 친구라고 손가락질하고 비난해도 끄떡없이 자기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인생. 자기 발치 아래 내팽개쳐 자비와 용서만을 기다리며 눈물 흘리고 있는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경계하여 보내신 주님처럼 그렇게 살아갈 순 없을까?
어쩌면 한 해 동안 너무 부질없는 것에 집착해 달려오지는 않았는가? 인기? 명예? 권력? 부요? 성취? 사실 이런 것들은 너무나 가변적이고 흔들리는 게 아닌가?
내 앞에 놓여 진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려 있다. "구자철 지동원 '입지 탄탄' 손흥민 기성용 이청용 '불안' 유럽축구 이적시장 카운트다운... 태극전사 향방은" 한국을 대표해서 세계 무대에서 뛰고 있는 축구선수들 명단이다. 한때 열렬한 박수를 받았던 선수들 이름이다. 동시에 한때 이런저런 빈축을 사기도 했던 이름들이기도 하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인기몰이. 오늘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다가도, 조금만 내리막길을 치닫는다 싶으면 사정없이 삿대질을 하고 악플로 괴롭히는 군중들.
한국의 이름표를 달고 세계 무대에서 뛰고 있는 그대들이여! 사람들의 박수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않길 바란다. 또 부지런히 올라가느라 힘겨웠던 그대들이 내려오는 것도 아름다움을 잊지 말길 당부한다. 올라가노라면 내려오는 때도 있는 게 당연한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지 말길. 섭섭해하지도 말길. 사람들이란 늘 그런 거니까. 그저 앞만 보고 꾸준히 달려가면 그만인 것을. 미련 남지 않도록. 후회스럽지 않도록. 오늘 하루 웃으며.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고맙다'는 말로 한 해의 마지막 주간을 마무리하고 싶다. 변변히 해준 것도 없는데 묵묵히 내 곁에 함께 있어준 아내와 가족들에게! 부족해서 바라는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목사를 목자라고 따라주고 순종하고 섬겨주기까지 한 교회와 성도들에게! 때로는 말 한 마디에, 행동 하나에 상처받기도 했을텐데 그래도 나를 지인이라고 불러주는 모두에게! 글 같지 않은 글을 매주 올려도 꾸준히 읽어준 독자들에게!
'모두들,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사랑합니다.'
/김병태 목사(성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