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좁은 문’에서 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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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2] 닥터 스트레인지(上)

▲영화에서 &lsquo;문&rsquo;은 초월로 향하는 길을 의미한다.

▲영화에서 ‘문’은 초월로 향하는 길을 의미한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것을 묻는다면? 당연하게도 '문'이다. 영화 속에서 도대체 문이 몇 차례 열리고 닫히는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다음으로는? 기표(signifier)다. 그래서 제1화에서는 문에 대해, 그리고 제2화에서는 기표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스티븐 스트레인지(Stephen Strange)는 세계 최고의 신경외과 의사이다. 그의 수술과 치료로 목숨을 부지하고 건강을 되찾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러나 환자의 생명을 아끼는 마음보다는 자기가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치료하는 행위를 즐기는 사람이다. 돈이 되지 않거나 도전정신을 불러 일으킬 만한 어려운 케이스가 아니면 집도를 거부한다. 실력에 걸맞게 많은 돈을 벌지만, 사치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하는 데 전부 써 버린다. 한마디로 성격상 뭔가 비뚤어져 있는 오만한 천재이다.

이런 그를 완전하게 좌절시키는 사건이 발생한다. 교통사고로 스트레인지의 두 손은 완전히 부서진다. 신경을 되살릴 수 없어 수전증 환자처럼 손을 떨며 살 수밖에 없다. 현대의학의 힘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선고를 받은데다 재산마저 치료에 탕진한 그는, 우연히 재활치료 도우미로부터 하반신 불수에서 완치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찾아간다.

완치된 자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기적과 같은 일을 경험했다며 카마르-타지(Kamar-Taj)라고 불리는 한 수도사 집단을 찾아갈 것을 권해준다. 우여곡절 끝에 스트레인지는 우주의 진리를 알고 차원의 질서를 수호하며 살아가는 수도자 집단과 조우하게 된다.
 
▲차원의 질서를 수호하는 수도자 집단, 카마르-타지의 지도자 에인션트 원.

▲차원의 질서를 수호하는 수도자 집단, 카마르-타지의 지도자 에인션트 원.

영화는 초지일관 현세와 초월적 세계 사이의 문을 열고 그 사이를 오가는 능력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스트레인지와 초월적 세계 사이를 가로막는 첫 번째 문은 스트레인지의 '고정관념'이다. 카트만두에서 처음으로 소서러 슈프림(Sorcerer Supreme: 최고 술법사)인 '에인션트 원(Ancient One)'을 만난 날, 스트레인지는 영혼과 우주에 대한 그녀의 가르침을 냉소적 태도로 비웃으며 유물론적 인간론(materialist theory of human beings)을 피력한다.

그러다 그는 에인션트 원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체험을 한다. 그의 영혼은 에인션트 원의 인도를 따라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우주의 무한한 차원들을 여행하게 된다. 그로부터 그의 세계관은 완전하게 변화된다. 이로써 스트레인지는 첫 번째 문을 넘는다.

▲에인션트 원에 의해 육체와 영혼의 분리, 초월적 세계로의 이끌림을 경험하는 주인공 스트레인지.

▲에인션트 원에 의해 육체와 영혼의 분리, 초월적 세계로의 이끌림을 경험하는 주인공 스트레인지.

이렇게 문을 넘는 체험을 얻은 직후, 스트레인지는 수도원 문 밖으로 쫓겨난다. 그의 냉소적 태도와 오만한 성정에 실망한 에인션트 원이, 이전에 그녀를 배신한 제자 카실리우스를 떠올리며 그를 내쫓은 것이다.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희망을 되찾자마자 재차 절망의 처지로 돌아간 스트레인지는 울부짖으며 문 앞에서 5시간이나 애원한다.

문 앞에서 스트레인지가 고백처럼 내놓은 말이 인상깊다. "Open the door! Please.... Don't shut me out. I've nowhere else to go(문을 열어줘요! 제발... 나를 내쫓지 말아요. 나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요)." 에인션트 원은 그녀의 제자인 모르도의 권유에 따라 스트레인지를 제자로 받아들인다. 이로써 스트레인지는 두 번째의 문을 통과한다.

사실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다중차원의 문을 열고 닫는 행위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에인션트 원(Ancient One)'이라는 이름은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의 거두 플로티누스(Plotinus, 204-270)가 해명한 존재 중 존재인 '일자(the One)'와 깊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플로티누스는 영원히 불변하는 최고의 존재인 일자와 그로부터 유출되는 신적 정신인 누스(νοῦς), 그리고 저급한 물질세계를 엄격하게 구분한다. 그리고 일자가 모든 존재와 진리의 심유한 근원이며, 인간의 육체와 영혼 중 오직 영혼만이 그를 알아보고 그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에인션트 원이 스트레인지의 육체로부터 영혼을 빼내 광활한 존재의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을 보면, 이 이름이 신플라톤주의 일자 사상과 그리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쉽게 인지할 수 있다.

스트레인지라는 이름은 신플라톤주의에서 물질 세계와 형상의 세계를 왕래하며, 존재의 진리를 찾아가는 인간의 영혼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플라톤과 플로티누스는 인간의 영혼이 형상의 세계(곧 진리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곧 가상의 세계) 양쪽으로 왕래하기 때문에, 소속이 불분명하다고 설명한다. 이는 곧 인간이 진리의 차원과 거짓의 차원 어느 쪽이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방인('strange'r)이다. 에인션트 원을 만난 장면에서 스트레인지는 이를 깨닫는다. 자신이 진리와 거짓의 양쪽에 발을 딛고 있는 모호한 존재자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비로소 진리를 향한 그의 여정과 투쟁이 시작된다.

이후 스트레인지는 정신적 고양을 향한 훈련, 그리고 카실리우스 집단과의 전투를 통해 차원의 질서를 지키는 주요 인물로 성장한다. 여기서 문과 다중우주(Multiverse)에 대한 것을 잠시 고찰해 보도록 하자.

영화는 현실이라는 닫힌 문 뒤에 다중적 진리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설파한다. 에인션트 원은 다중우주를 유영하고 있는 스트레인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At the root of existence, mind and matter meet. Thoughts shape reality. This universe is only one of an infinite number... Who are you in this vast multiverse, Mr. Strange(존재의 근원에서는 정신과 물질이 합일합니다. 사고가 현실을 형성하죠. 이 우주는 무한한 수의 우주들 중 하나에 불과해요.... 이 광대한 다중우주에서 당신은 누구인가요, 스트레인지)?"

▲&ldquo;Who are you in this vast multiverse, Mr. Strange?&rdquo;

▲“Who are you in this vast multiverse, Mr. Strange?”

원래 다중우주 이론(multiverse theory)은 우주의 미세조정 이론(fine-tuning theory of the universe)으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세조정 우주론이란 현재 우주의 모습, 그 가운데서도 현재 지구에 생명체가 존재하는 현실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주의 근본 운행원리를 이루는 여러 물리학적 상수들(대표적으로 빛의 속도, 만유인력 상수, 그리고 플랑크 상수로 구성된 플랑크 단위)이 현재의 수치 그대로를 유지해야 한다는 관찰로부터 나온 이론이다.

다른 상수들에 변화가 없는 조건에서 일부 주요 상수들이 지금과 미세하게라도 달랐다면 우주는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달랐을 것이고, 지구에 생명체도 존재할 수 없었으리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미세조정 우주론을 옹호하는 측에는 유신론자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이렇게 미세하고 정교하게 조정된 수치들의 조합이 어떤 초월적인 지적 존재의 설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미세조정 우주론은 일종의 우주론적 신존재 증명(cosmological proof for the existence of God)의 근거로 활용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다중우주 이론은 미세조정 이론이 가진 상상력의 빈약함에 불만을 갖는다. 다중우주 이론은 다음의 질문으로부터 개시된다. "우리는 왜 지금의 모습대로만 살아야 할까?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수는 없었던 걸까?" 이런 물음의 저변에는 인간의 유한한 존재방식에 대한 반성과 불만이 공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로부터 미세조정 우주에 내재된 다양한 가능성들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다. 만약 물리학적 상수들이 지금과는 다른 우주의 모습, 다른 모습의 생명체 출현을 가능케 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존재 방식이 펼쳐져 있는 우주가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희망섞인 전망을 근거로 과학철학자 루이스(David Lewis)는 추론 가능한 모든 논리적 가능성들의 수에 상응하는 우주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우주론자 텍마크(Max Tegmark)는 논리적으로 가능한 모든 수학적 구조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우주들이 존재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런 가능성이 양자물리학의 일부 영역에서는 제한적으로나마 입증되기도 하면서 다중우주 이론이 과학계에서, 혹은 문화 전반에서 점진적으로 지지를 얻어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다중우주 이론의 여러 지류들이 양자물리학계 전체의 패러다임 전환을 일으킬 정도로 입증이 되었다거나 학자들의 지지를 얻은 것은 아니다. 아직 다중우주 이론은 정설이 아닌 실험적 가설로 평가되고 있다.

▲다중우주 이론은 모든 가능성들이 무한하게 실현되고 있는 다중적인 우주들의 존재를 지지한다.

▲다중우주 이론은 모든 가능성들이 무한하게 실현되고 있는 다중적인 우주들의 존재를 지지한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는 이 다중우주 이론을 드라마화(dramatize)하고 시각화(visualize)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존재적 가능성을 극대화하는데 찬동한다. 이런 입장은 "사고가 현실을 형성한다"는 에인션트 원의 가르침을 통해 확인된다.

필자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고 싶다. 사고가 현실을 형성한다는 것은 현상학의 기본 전제 중 하나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현실을 형성하는 그 사고는 또 어디로부터 유래하는가?

우리의 사고가 현재의 모습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삶의 경험을 통해 세계와 맺는 관계, 즉 실존에 기인하고 있다. 하이데거는 기독교 신앙을 현상학적으로 분석한 저서 <종교적 삶의 현상학(Phänomenologie des religiösen Lebens)>에서 사고와 세계의 관계를 연관(Bezug), 실행(Vollzug), 그리고 내용(Gehalt)의 세 측면에서 논의한 바 있다.

세계가 우리로 하여금 현재와 같이 존재하며 사고하게 하는 모든 관계를 '연관'이라 한다. 즉 연관은 우리가 수용적으로 세계와 얽히는 방식이다. 반면 '실행'은 우리가 어떤 특정한 태도에 입각해 세계를 지향하는 가운데, 세계와 맺는 모든 관계를 말한다. 즉 실행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세계와 이어지는 방식이다.

이처럼 수용적인 연관과 자발적인 실행이 서로 순환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세계를 자신과 이어진 특정한 선개념(Vorbegriff)을 통해서 이해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이해 혹은 사고의 '내용'이다. 이 현상학적 도식은 이른바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scher Zirkel)의 기초를 구성한다.
 
▲인간 사고의 유한성을 깊게 반성하며 기독교 신앙을 현상학적으로 분석한 하이데거의 저서 &lt;종교적 삶의 현상학&gt;.

▲인간 사고의 유한성을 깊게 반성하며 기독교 신앙을 현상학적으로 분석한 하이데거의 저서 <종교적 삶의 현상학>.

우리는 연관, 실행, 내용에 대한 하이데거의 해명에서 특별히 연관과 실행의 순환적 얽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 현상적으로 보면 연관과 실행은 거의 동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간적 우선순위를 가리기 어렵다. 세계가 걸어오는 연관이 나의 사고를 구성하는 동시에 우리는 세계를 향한 사고의 지향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거의 우선순위를 헤아려 보면 우리는 연관이 우선이고, 실행이 연관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세계가 존재하기에 내가 존재한다. 세계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존재할 수 없음을 절감하는 것, 이로부터 우리의 유한성에 대한 성찰이 개시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접하는 모든 삶의 경험에서 이미 유한성을 절감하며 살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사고하는 모든 것이 결국은 세계가 걸어오는 연관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도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성찰로부터 출발한다. 성경은 인간이 세계 혹은 그 세계를 창조하신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께 의존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도, 사고할 수도 없음을 반복적으로 가르친다. 영화는 연관과 실행의 순환적 고리에서 우리 삶의 직접적 근거가 되는 연관을 은폐하거나 축약하고 있다. 이는 관객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선사한다.

영화의 화려한 볼거리, 그리고 온갖 정신적 유산이 뒤섞인 가르침 속에서 연관에 의해 절감되는 인간의 실존적 유한성은 망각된다. 영화 캐릭터들의 영웅적이고 초월적인 활극은 한계를 망각하는 데서 오는 해방감이 유발하는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한다.

▲영화는 별다른 제약 없이 초월을 가능케 하는 문을 열어대는 인간상을 제시한다. 사고의 자유로움 안에서 갑갑하고 좁은 현실의 문은 철폐된다.

▲영화는 별다른 제약 없이 초월을 가능케 하는 문을 열어대는 인간상을 제시한다. 사고의 자유로움 안에서 갑갑하고 좁은 현실의 문은 철폐된다.

인간의 실존적 유한성에 대한 깊은 성찰은 기독교 신앙의 원천적 동기가 된다. 이는 우리를 신앙이라고 하는 좁은 문으로 이끄는 길의 역할을 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이 말씀은 인간의 본성이 본연의 유한성을 수긍하는 데 인색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영화는 이 교훈을 반증하고 있다.

영화에서 제시하는 다중우주 이론은, 유한한 현실이라는 좁은 문에서 나오도록 종용한다. 러닝타임 내내 닥터 스트레인지가 쉴새 없이 열어대는 초자연적인 문들은 사고의 자발적 실행이 제약 없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초월의 길에 대한 은유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다중적 차원들에 대한 무제약적 접근에 대한 욕망은 영화에서 주문(spell)으로 표현되는 기표에 대한 가르침에 의해 한층 더 분명하게 확인된다. <계속>

▲반면 성경은 인간 본연의 유한성을 절감하는 좁은 문 안에서 비로소 인간의 진정한 가능성들이 개방된다고 가르친다.

▲반면 성경은 인간 본연의 유한성을 절감하는 좁은 문 안에서 비로소 인간의 진정한 가능성들이 개방된다고 가르친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

이처럼 어떤 의미로든 자기 삶에 연관된 모든 감각적이고 관념적인 재료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격식 없이 조합하여 하나의 멋진 작품을 만드는 일을 브리콜라주라고 한다. 이 기법은 오늘날 광고나 뮤직비디오, 조형예술, 팝아트(pop art) 등에 자주 동원되며 영화에서도 빈번하게 활용된다.

오늘날의 영화는 삶의 모든 관심사들을 매혹적인 방식으로 조합하여 그려내고 있다. 그 안에는 기독교인들이 환영할 만한 요소와 불편해할 만한 요소들이 정교하고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본 칼럼은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은 영화들 속에 뒤섞여있는 아이디어들을 헤아려 보고, 이를 기독교적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할 것인지 고민하는 기회를 만들어보려 한다.

/박욱주 박사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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