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칼럼] 시련을 통한 신앙의 성장과 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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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재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창 35:1)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부닥친 난제는 형 에서와의 화해였습니다. 야곱은 얍복강가의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는 기도를 드림으로 형과의 해묵은 갈등을 해결하였습니다(창 32:30). 그런 다음 야곱은 가나안 땅에 들어설 수가 있었는데, 그가 가야할 곳은 벧엘이었습니다. 그곳은 20년 전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는 길에 하나님을 만난 장소였고, 그때 그는 그곳으로 돌아올 것을 하나님 앞에서 약속했었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벧엘이 아닌 세겜을 선택하여 그곳에 정착하였습니다(창 33:18).

세겜은 가나안 땅에 속한 곳으로 상업적으로 크게 번성하는 중심지였습니다. 세겜은 히브리어로 '말안장'이라는 뜻인데, 그 지역이 마치 말안장처럼 긴 계곡으로 이루어진 교통의 요지면서 상업적으로 크게 발달한 곳이었습니다. 야곱이 세겜을 선택한 것은 그곳이 지난 20년 동안 살았던 하란과 비슷한 성격의 도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란처럼 발달된 도시 문명에 익숙해 있었던 야곱으로서는 그곳과 비슷한 여건의 세겜이 더 마음에 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점에서 세겜은 야곱에게 편리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찾아온 유혹이었습니다.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채 적당하게 타협하는 신앙으로 세겜에 정착한 것입니다.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적당하게 타협하는 신앙은 가시떨기 밭에 떨어진 씨와 같습니다. 그런 씨는 결국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게 됩니다(마 13:22). 신앙생활 속으로 파고드는 유혹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와도 같아서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금식기도 후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유혹은 역겨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달콤한 것입니다. 겉으로 그럴듯하게 가장을 하고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유혹에 빠져 들어가는 첫 단계는 타협입니다. 그래서 유혹에 빠진다고 곧 바로 타락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당하게 타협하면서 서서히 침몰하게 만드는 것이 유혹입니다. 야곱이 그렇게 세겜이라는 도시문화와 적당하게 타협하며 지내는 유혹에 빠졌습니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시련을 통하여 바른 신앙의 길을 찾게 하셨습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환경의 변화를 통하여 익숙해 있는 삶을 흩어버리시기도 합니다. 야곱의 경우에는 세겜 사람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시킴으로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창세기 34장은 야곱이 처한 위기 상황을 자세히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야곱의 딸 디나를 연모하였던 하몰의 아들로서 그 땅의 추장인 세겜이 디나를 강간한 사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사건을 빙자하여 세겜은 야곱에게 디나와의 결혼을 정식으로 요청하였는데, 야곱의 아들들은 결혼의 조건으로 세겜 주민 전체가 할례를 받을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리고 세겜 남자들이 할례를 받고 아직 회복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을 공격하여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을 죽이고 세겜 도시 전체를 노략하였습니다. 야곱 가문과 세겜 성읍 사이의 큰 전쟁으로 비화되기 직전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중동지역에서 가족 간의 전쟁은 피의 보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결국은 양쪽 모두 멸망하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야곱이 세겜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야곱이 유혹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바꾸어 하나님의 목표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도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바가 있었습니다. 성령강림 이후 급속하게 성장한 예루살렘 교회는 유다와 사마리아를 거쳐 땅 끝까지 나아가야 하는 사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그들에게 익숙한 곳이면서도 은혜로운 곳이고 죽을 때까지 머물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곳에 머물지 말고 땅 끝까지 가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요지부동이었던 예루살렘교회는 스데반의 순교를 계기로 촉발된 박해의 무서운 시련을 겪으면서 예루살렘 이외의 다른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어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의 전도가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야곱이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직접 말씀으로 그가 할 일을 지시하셨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본문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 거기에 거주하면서 그곳에 제단을 쌓으라고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야곱은 과감하게 세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떠날 채비를 하였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가족원 전체(가족과 종들)에게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며 의복을 바꾸어 입도록 하였습니다(창 35:2). 그리고 이방 신상들과 귀에 단 귀고리들을 모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었습니다(창 35:4). 야곱은 세겜에서 뿐만 아니라 과거 라반의 집에서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이방 풍습에 젖어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벧엘로 올라가면서 그동안의 옛 모습을 끊어내는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신상을 버리는 것은 물론 귀고리와 같은 장식품과 의복을 바꾸어 입은 것은 이방 풍습과의 완전한 절연을 의미합니다.

벧엘은 하나님이 설정해 놓으신 비전이요 신앙의 지향점입니다. 그런 신앙으로 나아가기 전에 먼저 해결할 것은 구별된 삶 곧 성결한 삶입니다. 그것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면서 동시에 경제적 손해를 감내해야 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위하여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예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하신 것도 그 때문입니다. 자기의 비움 없이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는 신세로 벧엘에서 하룻밤을 노숙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새로운 영적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주시고 형통케 하여 주실 것을 간구하면서 벧엘로 다시 돌아와 그곳에 제단을 쌓겠노라고 서원하였습니다. 그가 기도하였던 그대로 하나님의 축복으로 큰 부자가 되어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잠시 유혹에 이끌려 세겜에서 세속과 타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야곱이 세겜에서 위기를 겪으면서 벧엘로 올라가게 된 것은 이제껏 자신이 주도해왔던 삶의 방향을 마감하고 하나님의 주도로 살아가는 새로운 전환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벧엘은 야곱에게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반환점이기도 합니다. 그는 일종의 '하프타임'(half time)을 경험한 것입니다. 세겜에서의 시련은 그에게 벧엘로 나아가는 새로운 신앙 성장과 성숙의 동력이 되었습니다.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칼럼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해당 블로그에서 퍼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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