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주 칼럼] 이슬람 대처(5)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
지난 해 11월 11일 오후 서울 연지동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열린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 제26회 영성포럼에서 이동주 박사님이 발표한 논문 '이슬람 대처' 전문을 몇 차례로 나눠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5. 이희수 교수의 '교과서 바로잡기' 논문 내용의 진실성
필자는 이슬람선교 초기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로 선전하는 이슬람의 타끼야 선교전략의 한 예로써 한양대 이희수 교수의 타끼야 이슬람 선전과 그의 논문이 중·고교 교과서 개정에 미친 영향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타끼야'란 자기보호(self-protection) 수법의 위장술(dissimulation)로서, 꾸란적인 용어이다. Sura 16:106을 근거로 무슬림들은 가장 중대한 일에 거짓말을 한다. "그의 마음은 믿음으로 가득하나 강요된 것은 제외될 수 있으되...". 이 구절의 각주 106-1은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알마르는 마음은 믿음으로 흔들리지 아니했지만 그에게 가해지는 고문과 부모가 당하는 고문에 대한 아픔으로 믿음을 불신한 것처럼 하였다. ... 선지자는 그의 아픔을 위로하였고 또한 그의 믿음을 확신하였다."
무슬림들의 초기선교를 위한 타끼야 전략은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 하고, 무함마드를 '평화의 사람'으로 선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선전하는 무슬림 선교사들은 이미 폐기된 꾸란 구절로 입증하며 이슬람을 안심하고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나 무슬림이 다수가 되면, 돌연 폭력과 테러와 성전을 일으키는 정복자로 변한다. 이 전략은 무함마드가 시행한 타끼야 전략이며, 오늘까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다.
꾸란에는 일종의 잘못된 계시를 해결하는 폐기된 구절과 이를 대체한 구절들이 있다. Sura 2:106 "어떤 말씀도 폐기하지 아니하며 망각케 하지 아니하되 보다 나은 혹은 그와 동등한 말씀으로 대체하시나니...". 대체라는 동사 '나싸카'는 to delete(삭제하다), to abrogate(폐지하다), to invalidate(무효화하다)를, 나-씨크('나싸카'의 능동분사형)는 '삭제하는, 폐지하는, 무효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만쑤-크는 '나싸카'의 수동분사형으로 '삭제된, 폐지된, 무효화 된(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본문의 의미는 "우리는 이것보다 더 나은 혹은 동등한 구절을 가져온다"는 뜻이다. 이 같이 대체교리는 꾸란 구절 간의 모순과 충돌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된다. 폐기 교리에 의해 먼저 기록된 계시가 무효화되는 것이다. '먼저 받은 계시'가 '나중 받은 계시'에 의해 무효화된다. 메디나 계시와 모순되는 먼저 받은 무함마드의 '메카 계시'는, 나중에 받은 '메디나 계시'에 의해 폐지됐다.
그러나 무슬림 선교사들은 현지에서 선교를 시작할 때 이미 폐기된 꾸란의 '초기계시' 구절로 선교한다. 지금 막 한국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꾸란에는 취소된 구절이 대체된 구절과 함께 그대로 들어있어 전 후 모순이 많고, 역사적 사건들이 뒤죽박죽으로 혼합돼 있다. 아랍어 꾸란 원본에도 자주 주어가 모호한 대명사들이 많고, 때때로 목적어가 빠져 있어 의미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번역자가 내용을 미화하려는 의도로 꾸란의 내용을 고친 부분들이 있다.
이희수 교수는 "이슬람교가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그 어떤 문화권보다 화해와 공존을 중시해 왔다"며 이슬람에 대한 타끼야 평화를 선전한다. 이슬람교를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꾸란'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로 설명하는 것 자체가 기독교 문화권에서 만들어놓은 왜곡된 시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미 폐지된 구절로 지하드를 설명하면서, 지하드는 4가지 점진적 방식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먼저 가슴과 말, 펜, 그리고 마지막 수단으로 무력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너희들에게 도전하는 신의 적들을 퇴치하되, 먼저 공격하지 말라. 적들이 휴전을 할 때, 관용과 은총을 베풀라(2장 191-193절)".
그는 또 "이슬람의 어원은 평화와 신에 대한 복종"이라며 이슬람은 어떤 종교보다 평화를 추구하고 비폭력적 절충과 화해를 강조한다. "종교에는 강제가 없느니라.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진실인지는 저절로 밝혀지나니(2:256)". "너희에게는 너희의 종교가 있고, 나에게는 나의 종교가 있음이니라(109:6)". 이러한 꾸란적 근거를 들면서, 이희수 교수는 이슬람이 다른 민족과 종교에 관용적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이슬람중앙회 이행래 원로이맘(79) 역시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다. 진정한 무슬림(이슬람교도)은 하나님(알라)을 경외하고, 생명을 빼앗거나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며 "꾸란(이슬람 경전)의 가르침을 따라 경건한 삶을 사는 신앙인"이라고 선전한다. 그는 "이슬람교의 이념은 첫째가 평화다. 다음이 평등이다. 또 형제애를 중요하게 여긴다. 형제애의 넓은 의미는 인류애다. 근래 들어 이슬람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테러, 자살폭탄, 극단주의, 원리주의 등인데, 이는 이슬람과 무슬림을 이해하지 못한 편견에서 비롯됐다"고 토로했다.
"너희들에게는 너희들의 종교가 있고, 나에게는 나의 종교가 있음이니라"는 꾸란의 한 구절을 설명하면서 "종교에는 강제가 있을 수 없다"고 설파한다. 그는 "이슬람은 아랍어로 '순종', '평화'의 뜻을 담고 있다. 이슬람은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로 신앙을 칼로 강요하지 않는다"며 "IS는 이슬람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집단이고 아주 극소수다. 신앙인으로 볼 수 없다. 꾸란은 이웃의 재산이나 종교, 생명을 빼앗지 말라고 가르친다. 자살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꾸란도 이와 병행되는 타끼야 선전을 하고 있다. 이슬람 포교자들은 무함마드가 평화의 사람이라고 선전하면서, 이미 폐기된 구절 Sura 42:48을 사용하여 "불신자들이 거역한다 하더라도 그대를 그들의 감시자로 보내지 아니했나니 그대의 임무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폐기된 구절로 무함마드를 소개한다. "일러 가로되 내가 새로운 교리를 전하는 자가 아니며 나는 다만 계시된 것을 따르는 자로 분명한 경고자에 불과하니라(Sura 46:9)".
그러나 우리는 현재 매스컴에 의해 알려진 '무슬림들의 테러 사건들'을 수없이 목격하고 있다. 이 모습은 이슬람의 역사 1,400년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꾸란의 대체 구절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전쟁과 약탈과 살해를 일삼고, 또 이것을 무슬림들에게 명령했다. 이 명령은 무함마드가 지켜야 할 알라의 명령이었다.
꾸란의 대체구절은 Sura 8:39: "박해가 사라지고 종교가 온전히 하나님만의 것이 될때가지 성전하라"이며, 이 구절의 각주 39-1에 "본 절의 피트나(fitnah 반란, 투쟁)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쉬르크)으로 '지구상에 한 사람의 불신자도 존재하지 아니할 때가지 성전(지하드)해야 한다'고 이브누 압바스는 풀이한다"고 해설했다. 또 다른 대체구절은 "금지된 달이 지나면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마다 살해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거나 그들을 포위할 것이며 그들에 대비하여 복명하라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예배를 드리며 이슬람세를 낼 때는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리니(Sura 9:5)"라며 살벌한 지하드를 명령하고 있다.
꾸란의 폐기된 평화구절로 이슬람을 선전하는 무슬림 선전가들은 사방에서 볼 수 있다. 한국으로 귀화한 파키스탄 출신 무슬림 김강산(본명은 찌마 패설)은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에 지원했다. 그는 만일 당선되면 "무슬림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다문화가정 자녀교육과 재한 외국인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겠다"며 "이슬람은 생명을 사랑하는 종교이자 평화의 종교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타끼아 평화를 선전하였다. 이 같은 무슬림들의 타끼야 평화선전은 다 열거할 수 없다.
이 외에도 꾸란에는 모순을 감추기 위한 '질문금지령'이 있다. 진리를 알기 원하는 자에게 '꾸란 계시'에 관해 질문을 금하고, 꾸란 번역조차도 금한다. "믿는 자들이여 분명한 것은 묻지 말라 했으니 그것이 오히려 해롭게 하느니라 또한 꾸란이 계시되는 것을 묻는다면 이는 더욱 너희들에게 해악이라... 너희 이전의 한 무리가 그러한 질문을 하였으니 그들은 그로 인하여 불신자들이 되었노라(Sura 5:101-102)"고 하며 질문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번역된 꾸란 책 표지에 "꾸란 해설"이라는 제목이 곁들여 있듯, 무슬림들은 번역 꾸란은 경전이 아니고 오직 아랍어 원본만 경전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번역 꾸란은 번역자가 첨삭한 것이가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다수 무슬림들은 뜻을 알지 못하고, 묻지도 못하고, 꾸란을 소리내 읽거나 외우기만 한다.
이희수 교수는 <적대적 고정관념으로 왜곡된 서아시아-이슬람권>이라는 그의 논문에서 우리 청소년들에게 편견 없이 세계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하자는 목적으로 과거 교과서에 나타난 이슬람 역사와 문화를 분석-수정했다고 한다. 우리는 교과서 개정을 통해 이슬람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만 각인시키는 이슬람 교육선교와 타끼야 전략의 위험성을 발견하게 된다.
(1) 이슬람의 신 명칭과 무함마드 '신성모독'
첫 번째로 그는 위 논문 192쪽에서 이슬람의 신(神) 개념을 '알라신'이 아니라 '알라'라고 당연하게 지적했다. 그런데 그는 "신이나 예언자의 형상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만들어 신성시하는 것도 우상숭배로 여긴다"며 '알라의 형상을 그릴 수 없다'는 주장과 나란히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리는 것은 심각한 신성모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 자체가 모순이다. 그의 주장처럼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얼굴을 그릴 수 없다.
이처럼 우리는 무슬림들이 '알라'를 그리지 않도록 요구하는 것을 바로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무함마드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무슬림들이 그를 신성시하지 않는 것이 올바르지 않은가? 이희수 교수가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릴 수 없다"고 한 말은 무함마드를 신성시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무함마드는 신성이 없는데, 그의 얼굴을 그리는 것이 '신성모독'이라는 말은 모순 아닌가?
신학적으로 우리는 형상을 가지고 있는 모든 피조물을 그릴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로 알고 있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전이나 부활 이후의 영광은 감히 그려낼 수 없음을 잘 안다. 그러나 인간의 모습으로 성육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릴 수 있다. 무함마드도 하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그의 모습을 그려도 되는 것이다.
차라리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리는 것이 신성모독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무슬림들이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리지 않는 바를 존중해 달라"고 한다면, 이를 존중해 줄 수는 있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희수 교수가 이슬람에 과잉 충성하여, 혹시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린 자들이 신성모독죄로 정죄받는 상황으로 이끌어 가는 형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희수 교수가 언급한 '신성모독죄'는 정부를 전복하려는 선동자와 이슬람 샤리아가 혼전 성관계, 간통, 강간, 절도 등의 죄와 함께 이슬람을 공격하거나 알라와 무함마드에 대항하고, 무슬림을 이슬람 신앙에서 이탈시키거나 이슬람 국가를 약화시키고자 하는 중죄(hudud)인을 처벌하는 죄목이다.
이슬람교에서는 무슬림을 신앙에서 이탈시키는 자를 살인보다 더 중한 죄인으로 판정한다. 해당자는 판사에 의해 총살, 교수형, 참수형, 십자가형, 오른손과 왼발이 잘리는 형 등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외국인은 대사관의 적극적인 중재 덕분에 주로 추방형을 당하게 된다. 이러한 중죄인 형벌에 관한 샤리아는 꾸란에 근거하고 있다.
"실로 하나님과 선지자에 대항하여 지상에 부패가 도래하도록 하려하는 그들은 사형이나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그들의 손발이 서로 다르게 잘리우거나 또는 추방을 당하리니 이는 현세에서의 치욕이며 내세에서는 무서운 징벌이 그들에게 있을 것이라(꾸란 5:33)".
(2) 전근대적 일부다처제는 서구식으로 급속히 변화됐다?
이희수 교수는 논문 194쪽에서 '일부다처나 신체에 손상을 끼치는 형벌제도, 여권탄압 같은 전통적 악습과 전근대적인 문화현상'이 오늘날 급속히 변화되어 서구식 세속화 모델을 따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힐리야 시대의 일부다처제는 아랍 이전의 문화적 여성들이 보석과 향수로 치장하고 여성 성직자, 전사, 지도자도 될 수 있고 무함마드의 첫째 부인처럼 큰 사업을 경영하며 남성과 동등한 삶을 누리게 했다. 소수의 부자만 일부다처를 실행한 증거가 있다.
그러나 이슬람의 일부다처제는 모든 무슬림들의 표본이 되는 교조 무함마드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이슬람 경전이 지시한 것이다. 무함마드의 일부다처제에 관해서는 백석대학교 이정순교수가 가장 예리하게 파헤쳤다.
무함마드의 부인들은 학자들에 따라 숫자적 차이를 보이지만 12명에서 22명으로 전해지고 있다. 유명한 이슬람 학자 이븐 히삼은 무함마드의 부인들을 14명으로 전한다. 무함마드의 부인들에 관해서는 이정순 교수의 연구를 참고하면 잘 간파할 수 있다.
주후 6-7세기 발생한 이슬람의 교조 무함마드의 일부다처(polygamy)는 미성년 아이로부터 10-30대의 젊고 아름다운 과부들과 전리품-노예들을 포함해 '알라의 허락 하'에 거의 무제한적 특권으로 육적 쾌락을 누리면서 정치적 목적까지 달성하였다(Sura 33:50). 이러한 교조의 윤리-도덕적 샘플은 오늘날 무함마드를 본보기로 따르는 많은 무슬림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것을 입증하는 자료는 이영선이 번역한 사우디 공주 진 세손의 <술타나(문학세계사, 2002)>이다.
이슬람의 일부다처제는 이 교수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과거적 현상이 아니다. 몇해 전 필자가 몇 명의 자매들과 UAE의 한 무슬림 가족을 방문한 경험이 있었다. 한 경찰 가족이었는데, 이 경찰의 아버지는 본국과 타국 곳곳에 열한 명의 부인을 두고 있음을 자랑하고, 자기 형님도 아버지처럼 세계에 가는 곳마다 아내들이 있다고 자랑했다. UAE의 일부다처제는 숫자적 제한을 별로 받지 않고, 정부 후원으로 매번 성대한 일부다처 예식을 치른다고 한다.
이 교수는 논문 198쪽에서 "이슬람 사회는 원칙적으로 일부일처이고 전쟁과 자연재해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여성의 생계보호를 위해 일부다처를 허용한다"고 주장하나, 사실을 상당히 미화한 것이다. 실제로는 일부다처가 이슬람 중동에서 보편적이고, 한국에 이제 막 이슬람선교가 시작되면서 벌써 이태원에 한 파키스탄 무슬림의 둘째 부인이 되어 식당을 차려 영업하는 모 집사라는 한국 여성도 있었다. 한국에 정착할 목적으로 일부다처제 결혼을 시행하는 무슬림 남성들도 많다는 것이 인터넷을 통해 잘 알려지고 있다. 이슬람 사회가 사실은 '원칙적으로 일부다처제'인 것은 그들의 '경전' 꾸란이 증거한다.
"좋은 여성과 결혼하라 두 번 또는 세 번 도는 네 번도 좋으니라. 그러나 그녀들에게 공평을 베풀어 줄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다면 한 여성이거나 너희 오른손이 소유한 것이거늘 그것이 너희를 부정으로부터 보호하여 주는 보다 적합한 것이라(꾸란 4:3)".
'오른손이 소유한 것'으로 호칭된 존재는 알라가 준 노획물로써 전쟁포로나 여성 노예를 의미한다(꾸란 4:3, 24). 꾸란의 인간은 알라의 창조물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은 아니다. 여성 노예들은 하나의 물건과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다. 여성인권 탄압에 관해서는 꾸란에 기록된 매춘에 관한 법에서 볼 수 있다. 꾸란은 젊은 여성 노예들에게 매춘을 시켜 돈벌이를 하는 소유주들에게 그녀들이 원치 않을 경우 "현세의 이익을 얻으려 하녀들에게 간음행위를 강요하지 말라 그들은 순결을 지키고자 하니라(Sura 24:33)"고 명한다. '꾸란 계시'는 여성 노예가 거부하지 못할 경우, 이를 통해 돈벌이를 해도 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3) 전근대적 '신체에 손상을 끼치는 형벌제도'도 서구식으로 급속히 변화?
이 교수는 "신체에 손상을 끼치는 형벌제도가 서구식으로 변화된다"고 주장했다. 이 일이 다만 전근대적 과거에나 일어났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상은 이와 달리 요즘에도 중동에서 개종자들이나 비무슬림들에 대해 매우 혹독하게 진행되고 있다. 육체 상해와 여(女)권 탄압은 전근대적 문화가 아니라 꾸란을 따라 사는 현대 중동 이슬람권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꾸란을 기초로 형성된 이란의 현 형법에서도 볼 수 있다. 이슬람 법(샤리아)은 도둑질, 살인, 상해, 간통, 폭행, 배교, 보복살해 등에 대한 '육체 상해'와 '피값 지불'에 관해 아주 상세히 다루고 있다. 또 개종자 살해나 여성 탄압 사실은 현재 DVD, 매스컴, 논문, 리포트들을 통해서 쉽게 접할 수 있다.
1) 간통과 명예살인
신체에 손상을 끼치는 형벌제도에 관해, 형법의 실행여부를 떠나 간통한 사람에 대해 시아파 이슬람 형법 제102조는 '남자는 허리까지, 여자는 가슴아래까지 땅에 파묻고 투석한다'고 했다. 이란 형법 제99조는 투석순서를 규정하고 있다. 간통한 자에게 판사가 먼저 투석하며, 목격자들이 있을 때는 목격자들이 먼저 투석한 다음 판사가 한다. 104조는 그 투석하는 돌이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아서 죄인이 빨리 죽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시한다. 91조에 의하면 간통한 임산부는 아기를 낳을 때까지 투석을 미룬다.
이슬람의 이러한 가혹한 형법을 보면, 이희수 교수의 주장은 거짓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유엔인구활동기금(UNFPA)은 전 세계에서 무려 5천 명의 여성이 명예살인으로 희생된다고 발표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nternational Herold Tribune)은 "바트만 지역 무슬림들은 자신의 딸들이 남성을 쳐다보거나 영화관에 출입하거나 짧은 치마를 입는 것을 가문의 추치로 여겨 자살을 요구한다(2006. 7. 13)"고 했다.
무슬림 여성들은 실제로 '성 구별'이 아니라 극단적인 '성 차별'로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무슬림들의 여성학대에 관해 알려면,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주가 폭로한 진 세손의 <술타나>를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요르단 타임스' 기자인 라나 후세이나는 이슬람 지역의 '명예살인'에 관해 심각하게 고발하고 있다. 후세이나는 1994년 오빠에게 강간당한 친여동생을 집안 식구가 살해한 것과, 1998년 임신한 언니를 도우러 갔다 형부에게 강간당한 동생을 총으로 살해한 오빠를 목격하고, 그 사실을 기사화했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80건의 명예범죄를 세상에 알렸다. 여성 가족을 권총으로 살해한 남자는 오히려 감옥에서 영웅대접을 받고 6개월 이내에 자유의 몸이 된다. 라나의 질문은 이것이다. "강간한 사람은 오빠인데, 살해당한 사람은 왜 오빠가 아니고 여동생인가?"
요르단에서는 이슬람권 내 역사상 최초로 '명예범죄 반대 시위'가 있었다. 그들의 호소 내용은 '처녀성 빼앗겼다고 여성을 죽여도 되는가', '처벌하려면 남녀 모두 처벌하라', '명예범죄 반대한다! 악법 340조 폐지하라'였다.
요르단에서 명예범죄의 오명으로 살해된 희생자가 지난 5년간 160명이나 되고, 그들 대부분이 10대 소녀들이었다. 조선일보는 "전 세계 이슬람 국에서 명예살인으로 살해당한 여성들이 한 해 동안에 5천 명이나 된다"고 보도했다(2000. 4. 13, 9. 22). 간통죄는 여성 혼자만의 범죄가 아닌데, 왜 함께한 남성은 명예범죄에 해당되지 않는가? 이러한 현실 앞에 이슬람 세계가 서구화되면서 여성인권을 옹호한다고 할 수 있는가?
이렇게 명예살인이 이슬람권에서 대거 발생하고 있는 이유를 이정순 교수는 잘 지적한다. 그들 삶의 가치가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명예와 체면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 명예의 치명적 타격은 죄악이 아니라 수치다. 무슬림 남성과 이슬람 가정의 명예는 여성의 순결성에 있다. 여성이 순결을 잃으면 치명적으로 가족의 체면이 수치스러워진다.
그러므로 가족의 체면을 회복하기 위해,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킨 자에게 살해가 가해진다. 강간 가해자는 남성이지만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에게 명예살인이 가해지는 것이다. 명예살인죄에는 경미한 형벌이 가해지기도 한다. 명예살인을 뒷받침하는 꾸란 구절은 다음과 같다.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라 이는 하나님께서 여성들보다 강한 힘을 주었기 때문이라 남성은 여성을 그들의 모든 수단으로써 부양하나니 건전한 여성은 헌신적으로 남성을 따를 것이며 남성의 부재시 남편의 명예와 자신의 순결을 보호할 것이라 순종치 아니하고 품생이 단정치 못하다고 생각되는 여성에게는 먼자 충고하고 다음으로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 것이며 셋째로는 가볍게 때려줄 것이라(Sura 4:34)".
일반적 비무슬림들의 정서로 살해자는 혐오와 수치의 대상이 되나, 이슬람교에서는 '명예살인자'로 오히려 명예가 회복된다.
2) 절도범에 잔인한 형법
절도범에 대해 강력한 샤리아법 역시 꾸란에 근거하고 있다. 꾸란 5:38은 아래와 같이 명하고 있다.
"물건을 훔친 남녀의 손을 자르라 이는 그 두 손이 얻은 것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거늘 하나님은 전능과 지혜로 충만하심이라".
이란의 형법(샤리아) 제201조는 도둑질한 사람의 오른쪽 손가락 4개만 자를 것을 규정하고 있다. 두 번째 도둑질에는 앞발(Vorderfuß)만 잘라 발등의 절반과 발 뒤축은 남아있게 한다. 일반적으로 이슬람법은 오른손을 잘린 사람이 다음에 또 도둑질을 하면 왼발을 자른다. 그래도 도둑질이 계속되면 다음 왼손, 다음 오른발 순으로 자른다.
도둑질한 자의 손이나 발을 다 자르는가, 아니면 꾸란에 발을 자르라는 명은 없기 때문에 손만 자르는가, 아니면 일부를 남겨두는가에 관해서는 법학자들의 법해석에 따라 다르다. 이란, 이라크, 수단에서 도둑질한 사람의 손 또는 발이 잘린 예를 볼 수 있다. 그들은 알라의 형벌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무슬림 공동체에서 소외되지 않는다. 성경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 17:9)"고 지적한 바와 달리, 꾸란이나 이슬람 법은 인간의 부패된 마음에 관한 문제에는 관계하지 않는다.
3) 개종자 살해
꾸란 속 온건하고 평화적인 구절인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 진리는 암흑 속으로부터 구별되니라(Sura 2:256)"는 구절은 비무슬림에 대한 무조건적 공격과 살해 명령으로 대체됐다(Sura 8:12, 60.1, 4:89, 9:5, 47:4, 22:78).
Sura 4:89: 개종시키는 자를 포획하고 그들을 발견하는 대로 살해할 것이며 친구나 후원자를 찾지 말라.
Sura 9:5: 금지된 달이 지나면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들마다 살해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거나 그들을 포위할 것이며 그들에 대비하여 복병하라.
Sura 47:4: 너희가 전쟁에서 불신자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목들을 때리라. 너희가 완전히 그들을 제압했을 때 그들을 포로로 취하고 그후 은혜로써 석방을 하던지 아니면 전쟁이 종식될 때까지 그들을 보상금으로 속죄하여 주라.
또 개종자들에 대한 핍박과 투옥과 사형으로, 현재 이란, 파키스탄, 동남아시아, 북아프리카 등에서 진행되는 인간의 신체에 손상을 끼치는 형벌 제도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4) 보복살해
꾸란은 또 보복살해를 명하고 있다. 알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는 용서와 사랑과 구원 대신, 인간에게 보복의 법을 줬다.
이란의 형법은 살인을 금하고 있으나, 보복살해에 대해서만은 허용할 뿐 아니라 의무로 선고하고 있다. 보복살해는 반드시 공정하게 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란 샤리아는 위 구절들을 근거로 보복법을 규정하고 있다. 이란 샤리아 제209조는 한 무슬림 남자가 한 무슬림 여자를 살해했을 경우, 그 여자의 씨족은 그 살해한 남자에게 보복살해를 하기 전 먼저 피값의 반을 남자에게 지불해야한다. 여자의 몸값은 남자 몸값의 반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슬람 형법으로, 공정한 처벌이다. 여자의 가치는 남자의 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꾸란 2:228, 4:11. 176).
피해자 가족 모두가 문서상으로 보상금 대체를 결정하면 형법상으로 피의 보복이 성사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중 한 사람이라도 이를 반대하면, 반드시 보복살해를 시행해야 한다. 여러 무슬림들이 하나의 무슬림을 죽였을 때는 모든 참여한 무슬림들을 죽인다. 그러나 보복살해를 하기 전 일부의 피값을 그들에게 지불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명령하여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코는 코로 귀는 귀로 이는 이로 상처는 상처로 대하라 했으니(Sura 5:45)", "믿는 자들이여 살인의 경우 자유인 대 자유인 종복 대 종복 여성 대 여성으로 동등한 처벌규정이 기록되어 있노라."
신체에 손상을 끼치는 형벌제도 같은 전통적인 악습과 문화현상은 오늘날 급속히 변화되고 있다는 이 교수의 주장은 꾸란과 샤리아의 가혹한 형법을 은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꾸란을 기초로 하는 이슬람 형법의 "신체에 손상을 끼치는 형벌제도"는 이희수의 주장과 같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꾸란에서 알라가 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5) 성전과 자살테러
'평화로운 이슬람'에 대한 이희수 교수의 진술과 달리,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신앙적 배경은 그들의 경전인 꾸란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알라의 명령에 복종적으로 '성전(聖戰)'을 감행한다.
무슬림들은 '성전' 동안 전사하면 '순교'라고 하는데, 이 순교자들은 알라가 모든 죄악을 속죄해 주고 그 보상으로 강이 흐르는 천국으로 직행하게 해준다고 믿는다(Sura 3:157f. 3:169, 3:195, 61:11f.): 그러므로 어린이 '자살 특공대'를 교육하는 가자지구 한 학교에서는 12-15세 어린 소년들에게 "자살테러로 목숨을 잃으면 바로 그 순간 신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 70명의 아름다운 처녀들로부터 시중을 받게 된다"고 가르친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의미로는 '자살테러' 행위가 전사나 자살이 아니라 '순교'이기 때문이다. 최근 10-11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 자살학교 여론조사 결과, 이들 중 15%가 "순교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2001년 9월 23일자 일요신문 14-15면).
이슬람에는 테러를 감행한다는 의식이 없다. 대신 이교도들과 '성전'을 치른다는 원리주의자들의 의식이 있을 뿐이다. 성전은 꾸란의 원리를 따라 행해야 하는 무슬림 남성들의 의무에 속한 것이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지난 뉴욕 9·11 테러를 통해 "그들의 작은 힘으로 강대국을 대항했다"는 자체로 실추된 명예와 체면을 다소나마 회복했다고 주장한다.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테러행위는 현재 유럽(구라파)에서 연쇄적으로 발생 중이다. 프랑스 니스에서 사망자 80여 명과 부상자 3백여 명을 낸 트럭 테러는 이슬람 급진 무장세력 IS 전사가 수행한 것임이 밝혀졌다. 프랑스 외무부는 지난 해 7월 19일(현지시간) 84명의 테러 희생자 가운데 38명이 외국 국적자(총 19개국)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유럽에서 자행되는 IS의 테러는 독일 작은 마을 안스바하에서도 자행됐다. 시리아 청년 모하마드 다릴이 한 식당에서 폭탄테러를 자행, 중상자 4명을 포함 15명에 부상을 입히고 자신은 자살했다. 그는 2년 전 독일로 건너왔지만, 1년 전 난민신청에서 탈락해 복수를 감행한 것이었다. IS는 지난 해 7월 18일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일어난 '도끼 테러'도 자신들 소행이라고 밝혔다.
CNN은 지난 2014년 6월 29일(현지시간) IS가 국가 수립을 선포한 이래 북미 대륙에서 8차례, 유럽에서 총 18차례 테러가 각각 일어났고,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는 82건이나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IS는 29개 국에서 2천여 명을 살해했고, 지난 2년간 전 세계 29개 나라에서 143차례 테러를 자행했다며, 화기와 폭발 물질은 물론 차량과 칼 등 여러 도구로 '소프트 타깃(민간인)'을 노린 IS의 무차별 테러로 전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2016년 7월 15일 현재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패배하면 추종자들이 흩어져 오히려 활동 지역이 확대되는 '디아스포라(diaspora)' 현상이 발생해 전 세계가 테러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IS에 대한 공세가 강화될수록 크고 작은 테러가 더 잦아지면서, 국제사회가 진퇴양난에 빠진 모습이다.
미국 폭스뉴스에 따르면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이날 하원 국토안보상임위원회에 출석해 최근 IS가 근거지였던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점령지를 잃어 테러가 지구촌 전체로 확장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IS 격퇴 작전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지난 해부터 프랑스 파리, 벨기에 브뤼셀, 터키 이스탄불 등에서 크고 작은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IS가 배후를 자처한 테러가 발생하면서, 그동안 안전지역으로 여겨졌던 아시아까지 테러가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오마르 하미드 IHS 아시아 연구원은 "앞으로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인도·방글라데시 등에서 테러가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IS 무장세력은 60개국에 중국, 일본과 함께 한국에도 테러위협을 경고하고, 지난 해 6월 우리나라 민간인과 미군기지를 공격 대상으로 지목했다. 그들은 지난해(2015년 9월) 한국을 '반 IS 동맹국'으로 밝히고 한국을 테러 협박 대상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국정원이 공개한 '유나이티드 싸이버 칼리파 메시지'는 테러 대상으로 오산 등 주한 미군 공군기지 2곳, 민간인 한 명에 대해 조직원들에게 공격 지령을 내리는 방법으로 진행했다.
사이버 폴리싱 연구센터장 정태진은 IS의 이 같은 행사를 "공포심을 극대화하는 심리전"이라고 한다. 2015년 2월 3일 채널A '쾌도난마'는 지난 5년간 한국 거리를 활보한 테러리스트가 56명이었다고 보도했다. IS는 일본인 두 명을 참수했다. 고토 겐지의 참수는 영상으로 공개되엇다. 채널A는 참수된 인질들의 공통점이 "IS 격퇴 지원국"이라고 했다. 채널 A는 "알카에다 등 국제 테러조직 한국침투", "지난 5년간 한국인 대상 테러 114건 달해", "테러리스트 붙잡아도 처벌 안 하는 한국", "테러리스트 붙잡아도 구금 48시간 못넘겨"와 같은 자막을 내보냈다.
위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이희수 교수가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도서출판 삼인, 2007. 189-240)>에 기고한 '적대적 고정관념으로 왜곡된 서아시아-이슬람권' 논문 안에는 부정직한 진술이 상당히 포함돼 있으므로, 논문 전체를 그대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키르기즈스탄 선교사가 주장한 바와 같이 무슬림들을 사랑하고 감싸안아야 한다. 꾸란을 통해 이교도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배우지 못한 무슬림들에게, 참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야 하는 시급한 선교적 과제가 있다. 무슬림들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우리 사역자의 모습은 정복이 아니라 사랑과 헌신이어야 한다. 우리는 무슬림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 항상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도록(롬 5:5)'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슬람이 한국 고지를 점령해 한국의 주인이 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직 우리 한국교회는 이슬람을 물리칠 수 있다. 그러나 수 년이 지나면 너무 늦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성도들이 노략질당하지 않도록 깨어 파수하고, 예수께서 한국과 한국교회의 주인으로 계시도록 경계하고 부지런히 가르치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