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공'에 목매는 사람보다 '성장'을 갈망하는 사람이 좋다. 성공에 눈 먼 사람들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권력을 획득하고,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불법과 편법'도 서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회는 정의가 사라지고, 불의가 판을 친다.
그러나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은 변화와 발전을 가져와 더 나은 삶을 추구해 간다. 물론 왜곡된 성공지상주의나 일등주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오늘보다 더 나은 인생과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도전하는 인생을 말한다. '성공'을 가치로 여기기보다 '성장'을 가치로 여겨 부단히 성장해 갈 때, 건강한 사회가 구현될 수 있다.
우리 교회 '문화교실' 안에 다양한 '악기반'이 있고, 어린이들은 동요반, 어른들은 성악반, 성인 영어회화반이 있다. 지금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연습하고 훈련하고 있다. 꾸준히 성장해 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나이가 들어가면 어른이 된다. 그러나 육체적으로는 어른이 되었는데,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는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도 있다. 그것을 성인 아이(adult children)라고 한다. 나이와 육체는 어른이 되었는데, 말하고 깨닫고 생각하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 마땅히 어린 아이 티를 벗어야 한다(고전 13:11).
어른이 되었는데도 어린 아이처럼 살면, 자신은 편할지 모른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고통스럽다. 자녀가 '퇴행 증상'을 보이면 부모는 너무 힘들고 고민스럽지 않은가? 2017년은 '제자리걸음'이나 '퇴보'하지 말고 성장해 가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 두 가지 속성을 갖고 계신다. 신이신 예수님은 성장이 필요 없다. 그러나 인간이신 예수님은 성장이 필요했다. 태어난지 8일 만에 행하는 정결예식을 지나고 난 후 예수님에 대한 묘사를 보라.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눅 2:40)." 12살 때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갔을 때 예수님에 대한 묘사이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도 성장을 필요로 하셨다.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지적으로, 영적으로, 관계적으로 성장을 이루셨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은 당연히 성장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분량만큼 성장해 가기 위해 도전해야 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예수님은 우리가 자신을 닮는 데까지 성장해 가기를 원하신다.
자녀가 성장하지 않을 때 답답하고 고민스럽다. 그래서 '성장촉진제'를 맞히기도 한다. 바울은 영적 아들인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당부한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 4:15)." 2017년에 우리의 성장과 성숙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성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너무 표시가 나지 않아 답답해질 때도 있다. 한편으로 다른 사람들이 성장하기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기도 해야 한다. 눈물을 흘리면서 씨를 뿌리는 농부가 열매와 수확을 거둘 수 있는 것처럼, 성장도 '노력'을 기울이는 만큼 성과를 얻는다. 노력 없이 성장을 가져올 수 없다.
릭 워렌은 <당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는 '믿음이 약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곤 한다.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고 있습니까?" "아니오." "그럼 성경을 공부하고 계십니까?" "아니오." "성경을 암기하고 있습니까?" "아니오." "그런데 어떻게 믿음이 성장하기를 기대하십니까?"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자신의 믿음에 대해 너무 무책임 한 게 아닌가?
성장 속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빠르게 성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면 '성장장애'일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분석해야 한다. 첫째로 성장 '안 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성장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성장에 대한 '갈망과 기대' 자체가 없다. 성장하기 위한 '도전과 몸부림'이 없다. 그러니 시간이 흘러도 제자리걸음을 한다.
둘째, 성장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성장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이런저런 외부적인 작용으로 성장을 방해받고 있다. 이런 경우 성장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면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
성장을 가로 막는 장애물은 무엇인가? 첫째, '교만'이다. '다 안다'고, '다 됐다'고 생각한다. 둘째, '게으름'이다. 도전하고 움직이는 걸 귀찮아한다. 셋째, '상처'이다. 상처가 두려워 도전하려 하지 않는다. 넷째, '학습된 무기력'이다. 실패를 너무 많이 경험해서 도전을 못한다. 자신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빨리 해결해야 한다.
자녀를 기를 때 '성장통'을 앓는 것을 본다. 성장통이란 특별한 신체적 이상은 없는데, 어린이나 청소년이 갑자기 자라면서 생기는 통증을 말한다. 부상이나 질병도 없는데 통증을 호소한다. '엉덩이가 아프다.' '발목이 아프다.' '발뒤꿈치가 아프다.' '무릎이 아프다.' '관절이 아프다.' '뼈가 아프다.'
성장통을 겪을 때 육체가 성장하듯, 영적 성장을 위해서도 고난과 통증이 필요하다. 힘들고, 부담스럽고, 포기해야 할 것도 많다. 그 진통을 겪어내야 성장한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자라기 위해서는 '버리고, 사모해야' 한다. 대가를 지불해야 성장할 수 있다. '즉각적인 만족'만 추구하는 사람은 성장하기 어렵다. 성장에 도전하려면 '지연된 만족'을 추구해야 한다. '더 큰 보상'을 바라면서 당장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참고 견뎌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성장해 갈 수 있을까? 첫째, 학습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함으로 성장할 수 있다. 둘째, 부단한 연습과 훈련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 셋째, 고난과 상처를 통해 성장하기도 한다. 이건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넷째, 관계 안에서 교제를 통해 성장하기도 한다. 다섯째, 체험과 경험을 통해서도 성장한다. 2017년에 도전하고 싶은 성장계획을 세워보면 어떨까? 자신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계획해 야 한다.
2017년에 성장을 주도하기 위해 도전해야 할 영역들을 점검해 보자. 첫째, 육체적인 성장. 둘째, 지적인 성장. 셋째, 정서적인 성장. 넷째, 관계적인 성장. 다섯째, 영적인 성장. 각자에게 필요한 성장 목표치가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차근차근 한 걸음씩 옮겨보자. 성장을 향해!
/김병태 목사(성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