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칼럼] 명절에 나누는 가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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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유대인들도 유월절과 무교절, 초막절(장막절, 수장절), 칠칠절(초실절, 맥추절, 추수절, 오순절)이 되면 민족 대이동이 이루어진다(신 16:16, 대하 8:13). 아니 외국에서도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온다. 더구나 희생제물을 갖고 움직이고, 게다가 예루살렘 한 곳으로 움직이니 그 행렬이 대단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설과 추석이 되면 엄청난 교통 혼잡을 치르면서도 고향을 향해 이동한다. 부모 형제가 있기에, 가족들이 그립기에, 때로는 사고의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이동을 한다. 명절 증후군으로 끙끙 앓기도 하면서, 그래도 고향을 찾는 발걸음은 즐겁기만 하다.

일 년에 한 두 차례 만나는 가족들의 모임이니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가? 그래서 밤을 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운다. 졸리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그러다 졸리면 거실이나 안방 이곳저곳에서 이래저래 잠에 들면서도, 그래도 아득한 옛 추억을 곱씹는 행복감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양부모님이 모두 곁에 안 계신다. 2015년 어머님마저 천국을 가셨다. 그러다 보니 고향을 찾는 것에 변화가 오고 있다. 형제들이 모이는 걸 좋아하는 형님을 생각하면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런데 고생할 형수님을 생각하면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형님 가족들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는 느낌도 들고.

그래서 이제 설 명절에는 내가 교회 당직을 서고 부교역자들을 보낸다. 대신 추석에는 부교역자들이 돌아가며 당직을 서고 내가 고향을 찾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서 좋은 것도 있다. 이번에는 처가에서 여유 있는 명절을 보낼 수 있었다. 집에서 아내가 음식을 이것저것 해 가지고. 어머님의 노고를 덜어드릴 수 있어 좋았다.

명절에 형제들과 가족들이 모이면 즐겁고 행복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가정들도 많다. 만나면 토닥토닥 싸우고 얼굴을 붉힌 채 헤어진다. 어떤 집안은 고성이 들리기도 한다. 아니 칼부림이 일어나는 경우도 간혹 있다. 명절이 명절이 아닌 게다.

명절이 즐겁고 행복하려면 가족 분위기가 사랑으로 가득 찬 행복이 넘쳐야 한다. 가족 모임이 힘이 되고 격려가 되어야 한다. 사실 가족이란 그런 게 아닌가? 그런 가족 이야기를 하나 나누어 보자.

2008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사격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목에 걸었다. 4년 후 런던대회에 이어 2016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에서도 2개의 메달을 추가했다. 3회 연속 패럴림픽 메달 획득의 쾌거를 이루었다. 그 주인공은 국가대표 사격선수 이주희 씨다. 그가 이런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될 수 있었던 건 아내와 두 딸의 '사랑의 힘' 덕분이라고 한다.

그에게도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다. 1992년 11월의 어느 날, 그가 인천의 강철 파이프 생산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다. 당시 스무 살이었다. 작업 도중 실족해서 펄펄 끓는 아연 도금로에 양쪽 다리가 잠기고 말았다. 절단해야만 생명을 건질 수 있었기에 양다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1996년 재활 치료차 요양하던 중, 동료들을 따라 우연히 사격장을 찾았다. 총구를 표적지에 겨눌 때면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졌다. 삶이 여유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시작된 사격으로 국내외 무대를 휩쓸기 시작했다. 첫 패럴림픽에서 메달까지 따내며 최고의 총잡이로 우뚝 섰다.

2남 3녀 중 장남이던 그는 적극적인 구혼 끝에 2010년 대한장애인사격연맹의 여직원 이민경(35) 씨와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아내는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그랬다'고 하지만, 마냥 행복해 보인다. 이들 사이에 두 딸이 선물로 다가왔다. 이들은 가족의 사랑과 정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런 가족의 힘이 있기에 도전할 힘이 생기는 것이다.

명절이 되면 젊은이들이 가족의 울타리로 들어가는 걸 겁을 낸다. 왜? 원하는 대학 진학에 실패해서. 대학 졸업을 했지만 취업을 하지 못해서. 결혼한 나이가 훌쩍 넘었지만 아직 결혼을 못했기에. 이런저런 연유로 아이를 갖지 못한 부부이기에. 그래서 명절이 되면 어른들이 조심해야 할 게 있다. 이런 것들은 아예 묻지 않는 게다.

용기를 줄 수 있는 말을 골라서 해야 한다. 걱정해 주는 말이어도, 상대방은 대답하기 곤란할 수도 있으니까.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넘어가는 아량과 배려가 필요하다. '괜찮다'고 다독거려 주어야 한다. 아니 그것마저 부담스러울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가족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게 뭘까'를 고민하고 명절 여행을 출발하면 좋겠다.

또 다른 가족 이야기다. 38세의 늦은 나이에 베트남 국적의 아내를 맞아 달콤한 신혼살림을 차렸다. 이듬해 외아들도 낳았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아들은 지적장애 2급이었다.

그래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 영세민 아파트에 살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그래도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다. 3년 전 아내가 돌연 집을 나가버린 게다. 그 후로 연락이 끊어졌다.

시련이 커지면 커질수록 부성(父性)은 강해졌다. 아버지는 아들이 남들처럼 정상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 때문에, 어머니가 곁에 없는 것 때문에 늘 미안했다. 그래서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아들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 아버지는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했다. 정시 출퇴근하는 일반 직장은 아들이 아프거나 할 경우 갑자기 시간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루 하루 어렵게 생활하던 아버지는 혼자서 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우는 게 너무 힘들었다. 결국 누나에게 3년 동안 맡겼다. 그러나 아들이 여덟 살이 되자, 특수학교에 보내기 위해 다시 데려왔다. 혼자 아들을 돌보면서 생계도 꾸려야 했다.

아들이 학교수업을 마치면, 1t 트럭에 태우고 다니며 공사판을 전전했다. 이 트럭은 한 달 전 지병으로 사망한 형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고된 노동 중에도 아버지는 틈틈이 아들이 잘 있는지 살피고, 말동무가 되어주며 지극하게 보살폈다. 최근에는 경기침체와 궂은 날씨 등으로 하루 5-10만 원하는 건설현장의 일거리조차 없어 너무 힘들었다.

어느 날 새벽 1시 49분경이었다. 그날도 트럭에 아들을 태우고 새벽길을 나섰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다. 도로 4차로에 정차해 둔 25t 탑차를 들이 받고 말았다. 미처 보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불상사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그토록 사랑하던 아들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한 여인에게 버림받는 남편과 장애를 가진 외아들의 비극적인 삶은 그렇게 마감하고 말았다.

우리 주변에서는 이런 안타까운 일들도 일어나고 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세상살이. 그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날 동안 서로 부둥켜안고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때가 다가오니까. 그 날은 후회해도 소용없으니까. 그리고 준비했으면 좋겠다. 이 땅을 떠나도 두렵지 않은 인생을 위해. 이 땅보다 더 귀한 하늘나라를 갈 수 있도록. 온 가족들이 함께!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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