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그 사람(야곱)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창 30:43)
신앙의 즐거움은 날마다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새로움의 즐거움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변화의 중심이요 주체이십니다. 야곱의 변화된 삶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벧엘에서 야곱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더 이상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야곱의 삶 속에서 늘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면에 나타나셔서 우리의 삶을 주도하시고 하시지만, 대부분은 그림자처럼 보이지 않게 동행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심으로 삶의 근본적인 방향을 바꾸어주십니다. 그동안 속이며 살아왔던 야곱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속이는 자의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속임을 당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신앙 안에서의 변화는 사람에 따라 그 양태가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점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한 내적변화와 그 후에 따라오는 실제적 삶의 성숙입니다. 전자가 중생의 경험이라면, 후자는 성결 혹은 성화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야곱도 벧엘에서 하나님과 극적인 만남을 통하여 삶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바뀌었고, 그 이후로 고단한 이국생활 속에서 신앙적으로 점차 성숙해져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야곱에게 찾아온 첫 번째의 변화는 속이는 자의 입장에서 속임을 당하는 자의 위치로 바뀐 것입니다. 야곱은 첫 사랑의 라헬을 위하여 7년간 열심히 일했지만 외삼촌 라반에게 속아 라헬이 아닌 레아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라헬을 위해서는 또 다시 7년간을 무상으로 더 일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속임을 당하는 삶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창세기 31:7은 야곱이 품삯과 관련하여 라반에게 열 번이나 속임을 당했다고 언급합니다. 그런 속임의 과정은 그동안 속이며 살았던 야곱에게는 치료의 과정이요 하나님의 인물로 성장하는 진통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속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는 합력의 선을 만드셨습니다. 레아와 라헬을 비롯하여 여종 실바와 빌하를 얻음으로서 자손이 더욱 많아지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외삼촌 라반의 속임수는 계속되었습니다. 라반은 품삯과 관련하여 열 번이나 야곱을 속이면서 착취하였습니다(창 31:7). 남에게 속임을 받고 산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신앙인의 바른 자세를 놓치지 않고 건실하게 살았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야곱은 라반에게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동안 야곱은 열심히 일을 했지만 외삼촌의 속임수 때문에 제대로 재산을 모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노동의 대가로 얻은 아내들과 그들이 낳은 자녀들이 그가 가진 재산의 전부였습니다. 야곱의 제안을 전해들은 라반은 그가 더 머물러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것은 야곱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유익을 주었는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창 30:27) 믿음의 삶은 주변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헤브론의 헷 족속은 아브라함을 그들 중에 있는 '하나님의 방백'이라고 칭찬하였습니다(창 23:6). 아비멜렉 왕도 이삭에게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라고 하였습니다(창 26:29). 하나님과 동행하는 요셉은 비록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는 신세였지만 어디를 가든지 그가 있는 곳에서는 하나님의 복이 풍성하게 넘쳤습니다. 그런 믿음의 거룩한 영향력은 곧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 약속의 구체적인 성취 통로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처한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을 통한 거룩한 영향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야곱의 거룩한 영향력 뒤에는 야곱의 성실한 자세가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려면 그에 상응하는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우리들의 진실하고 성실한 자세입니다. 다윗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근거는 외모가 아닌 마음의 중심이었습니다(삼상 16:7). 그것을 사도행전에서는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행 13:22)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것은 곧 하나님 마음에 합하도록 힘쓰는 자를 의미합니다. 다윗은 목자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정직과 성실을 보여주었습니다(삼상 17:34-35). 사람의 중심은 감추어져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진실하고 성실한 행동으로 드러나는 구체적인 모습이기도 합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그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진솔하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짐승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창 30:29). 라반과 함께 지내면서 야곱이 어떻게 일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 창세기 31:38-42입니다. 암양이나 암염소를 낙태하지 않도록 잘 돌보았으며, 수양을 먹지도 않았으며, 물려 찢긴 것은 스스로 보충해 놓았으며, 도둑맞은 것은 변상했고,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면서도 눈 붙일 틈도 없이 보냈다는 것이 야곱의 고백입니다. 그만큼 야곱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라반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 결과로 라반은 크게 번성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라반은 그런 야곱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라반은 야곱에게 정식으로 품삯을 정하고 일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에 야곱은 자신의 품삯으로 전혀 엉뚱해 보이는 제안을 합니다. 곧 외삼촌의 양떼 가운데 점이 있거나 아롱진 것을 가려내어 따로 놓고 지금부터 그런 것이 나오면 야곱의 몫으로 삼겠다는 제안입니다. 야곱이 그런 제안을 하게 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이 고려되었습니다.
첫째는 라반의 또 다른 속임수를 피하기 위한 제안이었습니다. 양에게 점이 있거나 아롱진 것은 일종의 변종입니다. 그런 변종이 생기는 확률은 일반 양의 경우보다 훨씬 낮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이 불리한 제안을 내놓은 것은 그가 외삼촌 라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라반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조건이면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라반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한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적 관점의 제안이었습니다. 야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일반적인 원리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그분은 또한 필요하시다면 특별한 방법으로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불리한 조건이라 하여도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함께 하시면 얼마든지 역전이 가능한 것을 야곱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제시한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기적이라도 하나님 손안에 잡히게 되면 그것은 언제나 가능한 일상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매일의 기적을 경험하는 일상이기도 합니다. 야곱은 그런 하나님의 일상적 기적을 믿음으로 기대한 것입니다. 그 결과 야곱은 라반이 전혀 트집을 잡을 수 없도록 완벽한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그에게 복을 부어주시는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일구어낸 번성함의 근거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정직과 성실로 최선을 다한 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