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2년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장영자 사건, 당시 이 나라의 권력구조에 심각한 의문을 던졌다. 어음사기사건이란 것만 지금과 다를 뿐 권력자의 비선이 나라를 쥐고 흔들었다.
숙명여대 재학 중 '메이퀸'으로 뽑히기도 했던 미모의 장영자씨는 초혼에 실패하고 1982년 이철희씨와 재혼한다. 장영자씨의 남편이 된 이철희씨는 육군 준장 출신으로 군시절 전부를 정보장교로 보낸 정보통이었다.
그런데 이철희씨가 당시 최고 권력자인 전두환 대통령의 장인인 이규동씨의 4촌 동생이란 점, 당시 장영자씨는 이 배경을 자신의 처신에 적절히 이용했다.
알려지기로는 1979년부터 동거한 장영자 이철희 부부, 그들은 1982년 2월, 서울 장충동 사파리 클럽에서 정관계인사들을 대거 초청하여 초호화판 결혼식을 올렸다. 장영자씨가 당시 정관계, 군과 정보계, 금융계에 미모를 겸비한 실력자임을 과시한 행사였다.
이후 남편 이철희씨를 내세워 고위층과 긴밀한 관계를 과시하면서 기업자금 지원의 대가로 지원금의 몇 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 사채시장에 유통하는 수법으로 2천억 원대의 사기 행각을 벌였다. 그리고 이들이 사기로 공영토건이라는 대형건설사가 공중분해되는 운명에 처하기도 했다.
결국 그녀는 어음 사기 혐의로 1982년 5월 4일 검찰에 구속되었으며 당시 장씨 부부는 물론 은행장 2명과 내로라하는 기업인 등 모두 32명이 구속됐다. 장씨의 4촌 형부이자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전두환의 장인인 이규동씨의 친동생)씨도 함께 구속됐다.
이후 장영자씨는 이듬해 대법원에서 징역 15년이 확정되었다가 10년 복역 후 1992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출소 1년10개월 만인 1994년 1월 다시 140억 원의 차용사기 사건으로 다시 구속돼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구속, 1998년 8.15특사로 출소했으나 2년 후 2000년 구권(舊券) 화폐 사기사건 때문에 2001년 복역하기도 했다.
역사에 남은 권력형 비리의 치졸한 종말이다. 지금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사건에서 장영자가 보이는 것은 바로 그래서다. 그래서 검찰의 수사가 더 주목된다. 박근혜의 검찰과 전두환의 검찰을 비교해볼 기회이기도 하다.
이철희,장영자 근황은 장영자는 만기복역하고 2015년 1월 출소했다. 어느덧 70이 넘은 할머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