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올더스게이트 회심 전부터 ‘성경 중심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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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주 칼럼] 존 웨슬리의 선교 연구

A Study on Mission of John Wesley

서언

헬버트 케인(H. Kane)은 웨슬리에 관해 설명하면서 그는 "회심을 체험한 직후부터 전도사역을 시작하였는데, 선교사역에 있어 아마 가장 위대한 사역을 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며 그는 도덕적·종교적으로 파멸되어 가던 영국을 건지고, 근대적 선교운동의 기초를 놓았다고 그의 책 <기독교 세계선교사>에 기록했다. 18세기 영국 교회와 사회 전체가 그 도덕성을 되찾은 운동의 원인을 그의 신학논문들과 설교들을 통해 조명함으로, 현 한국교회의 세속화와 병행하는 마이너스 성장과 한국사회 도덕성의 타락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한다.

1. 웨슬리의 복음주의적 세계선교 목표

웨슬리는 1738년 5월 24일 경험했던 회심 이전에는 합리주의적인 신학을 추구했고, 이성만을 진리의 유일한 척도로 삼고 있었다. 그는 '합리적인 근거에 대한 동의'를 믿음이라고 생각하여, '믿음은 필연적으로 이성에 귀착되어야 한다'고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고, 구원이 인간의 '노력의 대가'에 의해 주어질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가 1734년 12월 10일 인디언 선교를 위해 조지아로 떠나기 전, 옥스퍼드 대학교 학감이었던 John Burton박사에게 밝힌 조지아 선교 목적은 그가 조지아에서 인디언의 영혼을 구원하고, 또한 이렇게 함으로 주변의 유혹 때문에 영국에서 얻을 수 없었던 거룩함을 얻어, 자기 영혼이 구원받고자 했던 것이다.

"저는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면서 복음의 진실된 뜻을 깨닫기 원하고 있습니다. ... 언젠가 성직자들에게 들려 줬던 순수한 복음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 그것이야말로 ... 율법의 올바른 뜻이며 내용일 것입니다. ... 하나님의 은혜로 올바른 신앙과 올바른 생활로 옮겨질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그의 회심으로 인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오직 성화를 위한 율법 중심적 삶에 치중하였던 웨슬리가 미국 선교여행 선상에서 만난 모라비안들의 영향을 받아 마침내 회심을 체험하게 된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구원이 노력의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믿음으로 받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때 그는 비로소 "주께서 내 모든 죄를 씻으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고백했던 것이다. 회심 후 웨슬리는 과거의 사변적인 신앙관을 버리고 이성이 계시의 주인이 아니라 성경이 모든 진리의 최고 권위라고 주장하며, 다만 '성서에 표현되어 있는 대로 진리를 증거'하게 됐다. 그는 성경 외의 신앙이나 다른 원칙을 인정할 수 없었다.

웨슬리는 감리교를 비판하는 이섹스 부주교였던 러더포드(Rutherforth) 박사에게 편지하며, 그가 학문을 천시하지 않는다는 변명과 함께 그의 학문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학문은 영혼을 인도하기에 편리한 것이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며, 종교와 이성은 손을 잡고 나가되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꾸밈이 없는 사랑과 하나님과 우리 형제에 대한 사랑,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룩하기 위한 불타는 열심과 온전히 마음과 생활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웨슬리는 반이성주의자는 결코 아니었다. 그는 고린도전서 14장 20절을 인용, 이성 사용을 거부하는 반이성주의를 논박했다.

그는 또 성경적이 아니라고 이해되는 로마가톨릭 신부에게 편지했다. "예수를 같은 주님으로 고백을 하고 있으면서 ... 모든 로마교회주의자들은 생명의 말씀 기록된 내용에 멋대로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는 그들의 성례전, 화체설, 연옥신앙,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성인에게 기도, 유골숭배, 성상숭배, 사면권, 로마교회의 우월성, 교황지상 권력 등에 관해 비판했다.

알려진 회심일 열흘 전에도, 웨슬리는 윌리암 로(Willaim Low)에게 그의 신비주의에 관한 비판적인 서한을 보냈다. "영혼에 있어 사형선고를 받은 저로써 그처럼 그리스도의 복음의 핵심을 배우기를 바랐던 당신께...", "당신께서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부르시는 것을 거의 들어 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의 피를 믿음' 위에 모든 것이 세워진다는 말씀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다른 터전을 세우는 자는 누구입니까? 적어도 수 차례에 걸쳐 당신의 행위 속에 나타나는 극단적인 난폭성과 엉뚱하고 까다로움이 진정 그리스도 안의 산 믿음의 열매인가 돌이켜보아 주십시오."

약 20년 후 그는 다시 한 번 로에게 편지한다. "확실히 당신에게 토울러(Tauler)나 베멘(Behmen)이 아니라 바울, 야고보, 요한과 베드로를 공부하셨더라면, 당신의 입과 마음에서 쓸모 없는 철학일랑 지워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만 가지고 계셨더라면 ... 신비주의자들의 항아리에서 쏟아지는 헛된 것들을 거절하고 오직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가 우릴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라는 단순한 성서의 진리로 돌아 오셨더라면 더욱 빛났을 것입니다."

그의 성경중심 신앙은 이미 회심하기 전부터 있었다. 1731년 그는 펜다부스 부인에게 복음의 절대성에 관해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덧붙이면 성서에 있는 대로 모든 재앙이 내린다"고 경고했다. 말씀의 불변성에 대한 신앙은 그의 '산상설교'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하나님 말씀을 변질시켜 그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기독교 선생이 있었다"고 통탄하며,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상의하고 거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탐구해야만 한다"고 설교했다.

이와 같이 그의 신학은 철저히 성서적 기초와 복음적 전통 위에 서 있었고 그는 '한 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었다. 그는 성서적 문맥에서 떠난 해석을 하지 않았고, 그 통일성 안에서 성서를 이해하고 그것을 선포했다.

웨슬리 선교의 유일한 목표는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는 것'이고, 그 구원받은 사람의 생활이 변화되어 이 현실 속에서 사랑과 정의와 평화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는 사역자들에게 "당신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분부했다.

제1차 연회에서도 감리교 대표들은 그 사역의 목적을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밖에 다른 것은 원치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웨슬리와 감리회의 존재 목적은 오직 복음을 전파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었다.

그가 53년간 사역하였던 단 한 가지 목표는 '죽은 신앙'에서 '산 신앙(living faith)'을 가지도록 깨우치는 일이었다. 제4회 연회는 그 목적을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우리의 사명은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함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난 방황자들이 우리를 찾아오기를 기대할 수 없다. 그 대신 우리가 그들을 찾아가야 한다. 우리는 특별히 큰 길이나 울타리 밖에 나가 억지로라도 그들을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눅 14:23)". 이처럼 강한 영혼 구원에 대한 소명을 기록하고 있다.

웨슬리는 초기에는 동정적이었다가 후에는 반 감리교가 된 런던의 주교 깁슨(Gibson)박사에게 편지로 그의 사역목적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다만 어둠에게 빛으로, 악마로부터 그리스도에게로, 사단의 손아귀에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개종하길 바랄 뿐입니다. 우리에게 단 한가지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죄에서 회개로 변화시키고 악마의 종노릇하던 자들을 살아 계신 진리의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 전하는 것이 정당한 나의 임무라는 뜻"에서 "전 세계를 나의 교구로 삼았다"고 고백한 그는, 다음해(1739년 4월 4일) 형 사무엘에게 그의 설교로 인해 변화된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서한을 보냈다.

"수많은 사람들의 공포, 절망과 두려움의 마음이 순간에 희망, 기쁨과 평화의 마음으로 변하며 (죄에 매여 있는 동안) 죄만 지으려 하던 욕망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순수한 욕망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사실을 목격해 왔으며 지금도 거의 매일 목격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사자 같던 자가 오늘은 양이 되고, 어제는 형편없던 술주정뱅이가 오늘은 모범적인 신사가 되고, 어제는 창녀를 사고 팔던 포주들이 오늘은 육적 쾌락이라면 혐오를 느끼는 현상들을 보셨습니까? 이것들이야말로 제가 전하는 말씀-하나님께선 예나 지금이나 죄를 사해 주시며 성령의 선물을 주시는-이야말로 우리의 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또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열망하는 웨슬리는 그의 논문 '이성적이며 종교적인 인사들에 대한 간곡한 호소문'을 통해 "죄인 한 사람이라도 회개하기 위해서 무엇인들 못하며, 무슨 고생인들 사양하겠는가"라고 고백했다.

웨슬리는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고 죄에서 구원받고자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감리회에 입회할 수 있게 했다. 그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미치리라는 강한 소명감으로 86세의 나이에도 1년에 3-4천 마일을 여행하며 복음을 선포했고, 87세에도 거의 매일 한 두 차례 설교했다.

그는 설교 전달에도 신경을 썼다. 동역자 목사에게 "우리는 낮은 차원의 사람들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 할 수 있는 한 제일 평범하고, 간단하고, 쉬운 단어들을 골라 쓸 것"을 충고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않느니 죽는 것이 더 낫다"는 그의 고백처럼 그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소유하고, 사람의 영혼을 사랑함으로 선교를 위해 목숨을 바친 한 사람이었다.

웨슬리는 그가 신임하는 알렉산더 마더(Alexander Mather)에게 편지하면서 "하나님 외엔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죄 외엔 두려워하는 것이 전혀 없는 전도자 1백 명만 주십시오. 그들이 교역자든 평신도든 따지지 않습니다"고 했다. 이 말 속에서 우리는 웨슬리가 얼마나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을 소유했고, 오늘날 부패된 한국교회와 달리 죄악과 타협하지 않고 성결을 추구했는지 알 수 있다. 교회부흥과 사회개혁의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웨슬리의 신학과 선교 메시지는 성서적 바탕 위에 전통적이고 체험적이며 성령에 조명된 이성적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는 주지주의나 체험주의 내지는 신비주의에 빠지지 않았으며 그는 복음주의자였다.

국교회로부터 감리회의 분리를 결코 동의할 수 없었던 존 웨슬리는 다만 영혼을 구원할 기회만은 거부할 수가 없다고 선언한다. 복음을 전할 수만 있다면 교회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되기 때문이다. 또 그가 교회의 분리를 거부한 실제적 이유가 있다. 그것은 교회가 다른 집단 형성으로 말미암아 영향력이 감소되고, 다른 사람에게 봉사할 기회가 감소되며, 논쟁에 말려들어 스스로 종교의 정신을 잃게 되고, 형제를 더 사랑할 수록 덜 사랑받으며, 목적에 상반된 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설교를 저해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분리는 형제 사랑을 깨뜨릴 뿐 아니라 많은 억측을 자아내고 피차에 지나치게 비판하며, 외적으로도 비종교인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고 선교의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1747년 제4회 연회록에, 감리회원들은 그들의 교회관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반역이나 살인을 할지언정 분열은 아니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산 몸으로부터 절대로 갈라지지 않는다. ... 우리는 죽을 때까지 영국교회에 머물러 있기를 희망한다. ... 우리는 언제나 교회의 치리자나 그 규칙을 가능한 한 순종하되 다만 하나님께 대한 의무와 합치되는 경우에 한한다."

그러나 웨슬리는 1955년 9월 24일 사무엘 워커(Samuel Walker)에게 편지하며 "평신도 설교를 그만두지 않으면 분리가 불가피하다면 문제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도저히 그것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교회분리라는 엄청난 모순과 비난도 복음전파와 구령을 위해서는 감수했던 것이다.

또 미국 선교교회에 성례 집행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였다. 평신도가 설교는 하되 성례는 집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국에 안수받은 성직자가 있어야 했다. 미국은 영국교회 성직자로부터 성찬받기를 거부하고, 영국교회 성직자에게서 성찬을 받아야 한다는 웨슬리로부터 독립하여(1785년) 감리교 감독교회(Methodist Episcopal Church)를 창설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영국교회의 사제였던 감리회 사역자 토마스 코크(Thomas Coke)에게 1784년 감리사로 안수하여 미국에 보냄으로서 미국에서 성례를 집행하고, 미국에도 집사, 장로, 감리사및 총리사가 임직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웨슬리는 그 후에 계속 18명에게 안수하였다.

그는 코크와 애즈베리(Francis Asbury)를 합동감리사(Superindentents)로 임명하고, 리차드 왓코오트(Richard Watcout)와 토마스 베이시(Thomas Vasey)를 성례를 주례할 장로로 세웠다.

세계 선교와 복음화를 위한 웨슬리의 이러한 처사에 선교적인 일치보다 제도적인 일치를 더 중요시한 동생 찰스(Charles)는 형의 안수례가 영국교회와의 분열을 초래했다고 비난했다. 찰스는 82세의 형님이 전 생애를 걸어온 것과 모순된 행동을 하여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긴 이런 비참한 세상을 목격하다니 하며 통분하였다.

이에 관하여 존은 "살아 있는 동안에 최선을 다해 하나라도 많은 영혼을 구해야 하며 구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교회의 분리를 선교를 저해하는 것으로 보았으나, 복음을 전하지 말아야 일치할 수 있는 제도적인 일치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제도와 선교가 다 중요한 것이지만 그는 제도를 위해 선교를 포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감리교회의 본래적 사명과는 판이하게도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들을 종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다 같이 자녀로 불러주셨다"고 하며, "만약에 구원된 인간을 불러 크리스챤이라고 한다면 이제 세상에는 크리스천 아닌 사람이 없다."

"그리스도 계신 곳이 교회라고 한다면 세계는 온통 교회로 변했다"고 주장하는 현대 감리교회 내 반선교적 진보사상 또는 "기독교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교회는 신학적인 토리미의 천동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나 "교회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선행해 그리스도가 섬기고 있으며 기독교 선교사가 하나님 나라를 비기독교 세계에 가지고 오지 않아도 이미 하나님 나라는 거기 역사하고 있다"고 하는 현대 감리교학자들의 주장과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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