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gei 선교칼럼] 현장사역 이야기 <나는 행복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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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열차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1200km를 올라가면 아르항겔스크 도시가 나온다. 얼마 전 러시아 북극 행 설국 열차를 타고 20여 시간, 삼등칸에서 흔들리면서 달려갔다. 영하 35도의 추위가 나의 일행을 맞이한다.

차장 밖으로 온통 설국이 펼쳐졌다. 작은 오두막들이 눈 속에 파묻혀 길을 잃어버렸고, 나뭇잎과 가지에 쌓인 눈이 무거워 가지가 휘청거리는 키가 큰 자작나무들이 힘겨워 보인다. 어떤 것들은 견디지 못하고 부러진 채로 눈 속에 머리를 파묻고 있다. 도움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하듯이…

쭉쭉 뻗은 소나무 숲을 지날 때면 탄성이 흘러나온다. 아름답고 키가 매우 큰 나무, 모두가 하나같이 흰 눈을 머리 어깨 할 것 없이 뒤 덮고 있지만 견고하게 서 있는 군상에 감탄한다.

성질이 곧은 자작나무는 견디다 못하면 그냥 부러져 버린다. 굽힐 줄 모르는 성질 때문이다. 얼마나 강한 나무인지, 부러진 자작 나무를 가져다가 도끼로 패면 오히려 도끼가 튕길 정도로 단단하다. 그래서 불을 때면 오래 타고 향기가 나고 열기가 뜨겁다. 단단하기에 사우나실 내벽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귀하게 대접을 받는다.

소나무는 자작 나무에 비하면 단단하지가 않다. 작은 상처에도 아파하며 진을 내어 치료를 시작한다. 소나무는 자신의 가시 잎 때문에 주변에 다른 나무들이 자라지를 못한다.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 듯 하다. 그런데 눈 덮인 소나무들, 끝없는 긴 행렬이 너무나 아름답다.

이러한 아름다운 자연과 위상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한 겨울 러시아에서만 볼 수 있는 비경이다. 러시아의 대 문호 푸쉬킨은 “러시아는 말로서 설명할 수 없는 나라”라고 하였다. 그냥 보고 느낄 뿐이라고 했단다. 러시아의 설국을 어떻게 말로서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냥 보고 느낄 뿐이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다시 기억하고 그 분의 하신 일을 찬양할 뿐이다. ‘선교사의 누림’이다.

젊은 날의 소망, 교단에서 강단으로

나는 젊은 시절에 이런 생각을 하였었다. 학교 교단에 서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며 도전하여 그들이 역사와 세상에 부끄럽지 않는 사람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 하얀 백지 위에다 그림을 그려 내용을 채우듯이, 아직 담아내지 못한 그릇 속에 희망과 비전을 담아 주고 싶었던 소망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녹치 않아 나와는 상관없는 길을 걷게 되었다. 이리저리 노동판을 헤메이고 시장판에서 수많은 일들을 경험하며 땀이 범벅이 되는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래도 마음속에 꿈은 늘 간직하고 있었다.

깊은 고민과 기도 속에서 신학의 길을 가게 되었고, 사역자가 되었다. 늘 만족하며 감사한 것은 이제 학교 교단이 아닌 수많은 강단에서 학생들, 대학 청년, 장년 심지어 러시아의 다양한 민족들에게까지 말씀을 가르치며, 인생과 역사와 세상 속에서 신앙인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회만 되면 다음 세대 젊은이들에게 더욱 더 집중하여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와 비전에 대하여 말씀을 나눈다. 인생의 우선권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나름대로 이야기한다. 정말 멋진 일이고 즐거운 일이다.

교단에서 세계의 강단으로 무대를 옮겨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현장을 누비며 말씀을 전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도제목을 찾아 나눈다. 와서 가르쳐 달라고 소리치는 곳들이 넘치니 이 또한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한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 선교사’이다.

다름을 인정할 권리를 배운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현지인 목사님이 마중 나와 계신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무언가 심상치 않다. 머리를 수십 갈래 따서 철렁거리는 긴 머리를 하고 있다. 위 저고리에는 각종 장식이 치장돼 있고 손목과 손가락에는 수많은 반지와 장신구가 휘감겨 있고 팔목과 목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도대체 이런 목사도 있나? 처음 보는 모습에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어색함, 낯선 풍경, 목사인 분인데 어떻게 저럴 수가! 의구심이 들었다. 온갖 생각을 하면서 그 집에 가서 차를 한 잔 마신다. 집안은 온통 검정색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게다가 방벽에는 나팔이 걸려있고, 부서진 바이올린 각종 음악 스피커 등이 범상치 않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참동안 함께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 속에 순수하고도 뜨거운 열정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한다. 이상한 점도 없다. 혹시 이단, 삼단인가 싶었는데 복음에 대한 이해가 분명하고 소명이 확실하다. 살아온 인생의 길을 듣고 보니, 타락한 세상의 현장에서 복음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탁월한 음악가였다. 음악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러한 중에 예수를 만나고 변화되어 목사가 된 것이다.

옛 사람이 예수로 인하여 새 사람이 되었지만, 내 생각에 겉모습은 아닌 듯 하였다. 그러나전혀 다른 인생의 철학을 갖고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세상은 겉으로만 보고 판단할 일이 아닌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것’을 배워야 함을 재삼 느낀 것이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이 괴로운 일인과 동시에 이렇게 즐거운 일도 있다. 그 교회에 속한 젊은이들이 얼마나 밝고 헌신적인지 모른다. 조용하게 질문을 해본다. 목사님의 이러한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의외로 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성도들이 예배당을 가득 채운다. 찬양을 인도하는 그 목사님의 모습, 온 얼굴과 몸에 땀으로 범벅이 된다. 저렇게 온 몸과 마음으로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뛴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빈들을 지나서 수천km 먼 길 어둠을 뚫고 길을 달린다. 왠 종일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 길을 끝없이 달린다. 이러한 기회를 얻은 나는 분명 ‘행복한 선교사’라고 자부한다.

현장의 소리, 세르게이(러시아)
lee709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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