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칼럼] 우리 날을 헤아리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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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

오늘의 본문은 참다운 지혜란 자신이 살아갈 날들을 제대로 헤아려보는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것은 모두가 정해진 수명을 살다가 예외 없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태어난 날이 있듯이 언젠가 수명이 다하는 마지막 날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 모두는 종말적 삶을 살아가는 인생들입니다.  

종말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1) 첫째로 중요한 것은 '역사적 종말'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역사를 최종적으로 마감하실 날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약속하신대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이며 하나님께서 온 세계를 새롭게 재창조하시는 날이기도 합니다.  

(2) 두 번째는 '개인적 종말'로서 우리들 모두가 이 땅에서의 수명을 마감하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우리의 날'도 이런 개인적 종말을 의미합니다.  

(3) 세 번째는 '실존적 종말'인데, 이것은 매 순간순간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은 매 순간순간을 마지막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4)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종류의 종말을 추가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은 매년마다 찾아오는 '연말의 종말'입니다. 인간이 만든 달력에 의하여 규정되는 종말이기에 '달력의 종말'이라고 명명할 수도 있겠습니다. 혹은 다른 종말보다 여유가 있기에 '예비적 종말'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연종'이 나오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추수감사절인 초막절을 일컫는 용어이기도 합니다(출 23:16).

비록 조금씩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네 종류의 종말은 하나로 묶을 수 있습니다. '예비적 종말'을 보내면서 개인적인 종말과 역사적인 종말을 깊이 묵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은 실존적인 종말을 근거로 이루어진 삶의 실천적 역할이기도 합니다. 구약 예언서에서 연종의 절기인 초막절이 역사적 종말과 연관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슥 14:16).  

오늘의 본문은 우리들이 살아갈 날들을 헤아려보는 것이 지혜라고 강조합니다. 도대체 살아갈 날들을 헤아려보는 것이 무엇이기에 더 없이 소중한 지혜가 된다는 것일까요?  

(1) 자신의 날들을 헤아려본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이 지니고 있는 한계성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각자의 수명을 따라 살아갑니다. 수명은 하나님께서 나누어주신 시간의 분량입니다. 그런 한계에 대한 인식과 수용은 삶을 바르게 성찰하는 기본자세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한계를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지혜임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살아갈 날들을 허락하셨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의 분량만 주신 것이 아니라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부모를 만나는 것을 비롯하여 자신의 삶을 영위할 능력 곧 하나님의 은사(잠재력)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런 자신의 은사를 계발하여 그것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는 것은 우리들이 누리는 지고의 행복이기도 합니다. 살아가면서 함께 하는 주변의 인물들과 환경 역시 모두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들의 날들입니다. 그런 내용들을 살펴보면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바르게 정립하는 것은 자신과 함께 주변의 공동체를 살리는 거룩한 지혜임이 분명합니다.  

(2) 그에 비하여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것은 어리석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는 영적 교만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3절~21절에 소개된 부자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한계성을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 12:19)고 하였지만,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오늘 밤 네 영혼을 두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 12:20-21)고 하시면서 부자의 어리석음과 교만함을 크게 책망하셨습니다.  

(3) 자신의 한계를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은 주어진 한계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혜로운 자입니다. 시간이 지난만큼 자신의 한계도 줄어드는 것이기에 남은 기간 동안 후회함이 없도록 더욱 힘써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개인적으로든 역사적으로든 종말을 인식하며 살아 갈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삶의 자세를 '세월을 아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엡 5:15-16) 여기에서 '세월을 아끼다'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끊임없이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기회를 제공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아끼는 최선의 방법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입니다.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곧 하나님의 주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방법입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의 감동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면 그것을 헤아려 보는 것은 연말을 지혜롭게 보내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갚으라고 강조합니다(시 15:4).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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