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나 인공 생명체에도 영혼이 깃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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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의 기호와 해석 14] 영화 <공각기동대>

▲이영진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이영진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스포일러는 글 전개상 필요한 만큼만 있습니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2017년 3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2017년 3월.

기계나 인공 생명체에도 영혼이 깃들 수 있을까?

이 영화가 던지는 저 실존적 화두를 접하면서, '와! 저런 생각을 1990년대 망가(まんが)에 벌써 접목시키다니 역시 일본 애니메이션이야...' 라고 생각했다가, 이내 생각을 거두었다.

▲시로 마사무네(士郎正宗) 원작 1, 2, 1.5권 코믹스와 감독: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 (攻殼機動隊, Ghost In The Shell, 1995).

▲시로 마사무네(士郎正宗) 원작 1, 2, 1.5권 코믹스와 감독: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 (攻殼機動隊, Ghost In The Shell, 1995).

왜냐하면 저런 생각은 사실 이미 17세기에 유행하던 인간 이해로서(눈치가 빠른 사람은 대번에 데카르트 정도는 떠올릴 것이다), 아니 그보다 무려 2000여 년은 앞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예 인간 자체를 '영혼을 가진 기계'로 보는 존재론적 사고가 출몰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데 아니마>라는 문헌은 그와 같은 당대 인간-기계론에 대항했던 문헌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그 <데 아니마>를 현대적으로 풀어쓴 책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사용설명서>를 통해 영화 <고스트 인 더 쉘(공각기동대)>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인간 영혼에 관한 실존적 질의를 같이 숙고해 보고자 한다.

§

이 영화는 제4차 세계대전을 치른 후인 2029년, 기술의 발달로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무너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사람들은 자기 신체의 더 나은 기능을 위해 신체를 업그레이드한다. 신체에 장애가 있어서가 아니라, 더 나은 기능을 위해 건강한 신체 일부를 '의체'로 교체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의술이 생명이 아닌 미용으로 기울듯.

이런 사회에서는 강력범죄도 상상을 초월한다. 로봇을 이용해 테러를 가해오기 때문이다. '섹션9(공안 9)'은 이런 테러집단을 상대하는 특수부대로서, 정부와 한카 로보틱스사가 합작하여 창설한 프로젝트 팀이다. 인간의 뇌와 고도의 인공지능 의체를 결합시켜 탄생시킨 메이저(스칼렛 조핸슨)는 이 프로젝트 최고의 결실이자 이 '섹션9'의 대장이다.

다른 종류의 의체(사이보그) 병기와 달리, 인간의 뇌가 내장되어 있어 놀랍도록 섬세한 전투력을 구사하는 이 여성 전사의 탄생을 고하는 장면에는, 이런 내레이션이 영화 초반에 흘러내린다.

"...그녀는 (강력한 의체와 더불어) 정신, 영혼, 그리고 고스트를 가졌다...."

저 어휘의 용법은 맞는 것일까? 정신, 영혼, 고스트는 비슷한 것들이 아니었나? 각각 다른 것인가? 다르면 어떻게 다른가?

이에 관한 문제는 과학뿐 아니라 종교성까지도 포괄하는 권역에 속하는 문제이기에, 우리의 관심을 자극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구성에 대한 관심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을 구성할 때 '육체'와 '관념'(정신)으로 정리하기 마련이다. 이를 편의상 심신이원론이라 부른다. '심신이원론(心身二元論)' 하면 대개 데카르트를 떠올리는데, 실제로 이 영화 제목 'The Ghost in the Shell'은 원저자가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비판한 작가 아더 쾨슬러(Arthur Koestler)의 책 'The Ghost in the Machine'에서 착안했다고 알려졌다. 데카르트는 정신을 물질인 신체와 전혀 별개의 관념으로 보고, 신체는 그 정신의 연장으로 보았다. 그에게 있어 신체란 엄밀한 의미에서 관념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다.

▲The Ghost in the Machine is a 1967 book about philosophical psychology by Arthur Koestler.

▲The Ghost in the Machine is a 1967 book about philosophical psychology by Arthur Koestler.

이러한 이원론적 사고 체계가 오늘날의 자연과학 세계관에 고스란히 반영돼, '정신, 영혼, 고스트' 하면 대개 동일한 요소에 대한 다른 표현들인 줄로 안다. '물질류와 관념류', 이원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이들을 각기의 다른 요소로 구분해 내는 듯한 뉘앙스를 보였다는 점은 여간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이들 셋은 약간씩 차이가 있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다른 사이보그와 달리, '메이져'는 뇌를 갖고 있기에 '영혼이 있는 기계'라는 사실이 거듭 강조된다. 하지만 이 '영혼 있는 기계'는 어찌된 일인지 자꾸만 혼동을 일으킨다.

뭐가 자꾸만 보이는 것이다.

방에서 갑자기 고양이가 보이다 사라지기도 하고, 길을 가다가 어떤 사원이 보이다 통째로 사라지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의체를 작동시키는 프로그램의 오작동이라 설명하지만, 영화는 아마도 그것을 '고스트의 영역'으로 명명하려는 것 같다. 프로그램 오작동이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실상은 잊히지 않은 기억의 조각들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기억'이 고스트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사용설명서>에 따르면 시지각을 경험해보지 못한 맹인들은 '판타지아'부터가 다르다. 꿈을 꿀 때에 전혀 시각적 꿈을 꾸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맹인이 아닌 사람들의 시각적 꿈틀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안구에 의존할 수 없었던 맹인의 꿈이 안구 지닌 사람의 꿈과 다르다는 점에서 볼 때, 꿈은 기억에 전적으로 의존한 어떤 것이며, 그 기억은 결국 육체적 요인이거나 육체와 섞인 어떤 것일 수밖에 없다는 추론에 다다른다(꿈이라는 기억은 결코 뇌의 창작만은 아니라는).

그런데 문제는 육체가 해체되거나 정신과 서로 분리되었을 때, 그 기억이 남아 있느냐ㅡ하는 문제다. 이 영화의 제목이 '고스트 인 더 쉘', 즉 '껍질 속의 영혼(Ghost in the Shell)'인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가 던지는 이 실존적 질의는, 이를테면 '우리가 극한의 의술의 발달로 뇌를 다른 공간으로 옮길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한다면, 그땐 과연 그 정신/영혼/고스트도 따라서 옮겨질 것인가?' 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화두로써, 그것은 아마 인간의 정신 프로세스가 뇌에서만 전적으로 작동한다는 현대 과학이 심어준 일종의 터부(taboo)에서 유출된 물음일 것이다.

이 여성 전사는 데카르트가 신체를 관념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했듯이, 신체의 감각을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집으로 데려온 거리의 여자의 피부를 만져보면서 "어떤 느낌이냐"고 물었을 때, 그녀가 "다르다(다른 살이 닿았다)"고 말하자, 그 느낌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만화 원작에서는 이런 말을 한다.

"나의 진짜 몸은 옛날에 죽었고, 사실 지금의 나는 '나는 쿠사나기 모토코다'라고 생각하는 의체(껍질)가 아닐까 하고 생각할 때가 많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사용설명서에 따르면, 이원론적 선입견과는 달리 영혼은 먹고, 마시고, 느끼고, 상상하고, 생각하는 단계의 기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정신 곧 사고능력은 영혼의 최종 단계의 기능으로 깃들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상기의 표와 같이 신체의 각 기능들(영양섭취, 감각, 공간운동, 욕구, 상상, 사고능력)은 어디까지나 신체와 결합된 영.혼.의.능.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신체의 기능'이라기보다는 '영혼의 기능'인 것이다. 곧, 신체가 사라지면 (영혼의) 기능들도 다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기능만은 예외로, 신체가 다 사라지더라도 남아있을 것으로 보았다. 바로 정신(νοῦς)이다. 그 이유는 오로지 정신만이 신체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단독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신은 '기억'이 아니다. 정신이란 기억이 아니라, 기억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다. 그것은 기억들을 '이해'하던 권능으로서 영원히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기억은 어떻게/어떤 방식으로 남아 있게 되느냐ㅡ는 문제가 잇따를텐데, 그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가령 설리반 선생이 소녀 헬렌을 가르칠 때 시지각과 청각 능력이 헬렌에게 없었을지라도 촉각이라는 막강한 능력을 헬렌이 갖고 있었기 망정이지, 그마저 없었다면 그야말로 껍질 안에 갇힌 신세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체가 기억을 산출하는 법이다. 헬렌은 신체를 벗어남으로써,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로써 '정신·영혼·고스트(Ghost)' 가운데서 정신과 영혼에 관한 개략적인 속성을 알아보았다. 그러니까 정신은 영혼과 별개가 아니라, 영혼의 능력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영혼이 갖는 능력들 가운데서 최고의 능력인 셈이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고스트(Ghost)란 무엇인가?
고스트가 기억인가?

여기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사용설명서>에 언급된 고스트에 관한 대목으로 그 답을 대신할까 한다.

"... 그러면 고스트는 무엇인가? 그것은 Spirit이다. 영어를 언어로 사용하는 모든 영미권의 근대식 영어 표현에 큰 영향을 끼쳤던 킹제임스 성경의 많은 곳에서 하나님의 영을 Ghost로 표기하고 있으나, 현대식 영어에서는 사령(死靈)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영을 Ghost 즉 유령과 혼용되는 낱말로 번역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는 현대식 영어가 영혼 이해에 관한 새로운 격식을 갖추게 된 것이든지, 아니면 과거의 영혼에 대한 이해 저변에는 하나님의 영과 사령(私靈)의 구별이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았던 사실을 반증한다.

'영혼'에 관한 현대식 표현은 거의가 '호흡'을 의미하는 라틴어 spiritus에서 비롯된 spirit을 선호하게 되었는데, 이는 Ghost가 독일어 Geist와 마찬가지로 '영혼', '호흡'을 뜻하는 고대 독일어 gaistaz를 뿌리로 공유하면서도, '혼돈'과 '충격'을 뜻하는 고대 인도유럽어 'gheis-'와 연루되어 있는 바람에 그 영혼의 속성이 '두려움(의 영혼)' 혹은 '진노(의 영혼)'으로 전용되어버린 까닭일 것이다. 주로 저 무당이 소개하는 영혼으로서의 이해인 셈이다.

오늘날의 spirit의 쓰임새는 거의가 '호흡', '생명'의 의미로 전용되어 사령과는 구별된 쓰임새를 갖는다. 이 같은 살아있는 '영혼에 관하여' 기록된 책이 바로 <데 아니마>이다(-영혼사용설명서 '사고능력' 부분 중에서)."

이에 따르면 고스트는 어떤 기억이나 유령이 아니라, 생명의 원천인 '입김/숨'이었던 셈이다.

특별히 기독교 성서이자 유대교의 경전인 토라에서는 이 Ghost(Spirit)를 네샤마, 곧 어떤 입김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신의 '입김'인 것이다.

“and their hope shall be as the giving up of the ghost/נשמה/(Job 11:20).”
남은 희망은 숨을/נשמה/ 거두는 일뿐이리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נשמה/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Gen 2:7).”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נשמה/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Scarlett Johansson plays The Major in Ghost in the Shell from Paramount Pictures and DreamWorks Pictures in theaters March 31, 2017.

▲Scarlett Johansson plays The Major in Ghost in the Shell from Paramount Pictures and DreamWorks Pictures in theaters March 31, 2017.

이런 원리에 입각해서 영혼은 조개(껍질)에도 깃들 수 있지만, 고스트는 깃들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기서의 영혼은 고스트가 아니라, (영양섭취능력을 지닌) 영혼(ψυχή)이다.

단, 저 여성전사가 먹고, 마시는 능력이 있었는지는 이 영화에서 확인하지 못하였다. 아울러 고스트가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고스트 곧 네샤마는 사람에게만 부어지는 신의 입김이기 때문에.

/이영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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