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칼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1926년 '개벽(開闢)'에 발표된 이상화(李相和)의 시이다. 이 시는 반일 민족의식을 표현한 작품으로 비탄과 허무, 저항과 애탄이 깔려 있다.
비록 나라는 빼앗겨 얼어붙어 있을망정, 봄이 되면 민족혼이 담긴 국토, 일시적으로 빼앗긴 이 국토와 달리 우리에게 민족혼을 불러일으킬 봄은 빼앗길 수 없다는 몸부림, 즉 핍박받는 민족의 비애와 일제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식을 담고 있다.
지금 우리는 이 봄을 맞이하고 있다. 봄은 농부에게 생명의 계절이기도 하고 소생의 계절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봄은 즐겁고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계절이다. 그러나 지금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북한 땅에선 아직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하고 농부들이 마음 속으로 외치고 있다.
이 시는 북한 김일성의 항일무장 일대기를 기린 혁명영화 <조선의 별>에서 김일성의 혁명동지였던 차광수라는 사람이 읊음으로써 북한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시를 빗대어 김정은 정권을 향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하고 은근히 비꼬기도 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의식주 문제는 생존 자체와 함께 행복의 척도다. 특히 춘궁기를 맞는 북한 동포들에게 봄은 잔인한 계절이다.
8·15 해방 후 '토지개혁'이라는 혁명을 단언한 북한은 지금까지 '쌀은 곧 사회주의'라는 구호 아래 집단협동 농장체제를 구축하고, 쌀의 주권을 국가가 틀어쥐면서 철저한 배급제로 백성을 다스려 왔다. 이런 체제 속에서 지금처럼 봄을 맞는 북한 사람들에겐 봄 자체가 잔인한 것이다.
북한에서 5월 한 달은 '전민, 전군 모두가 농촌지원'이라는 전투적 달이다. 특별히 어린 학생들에게 농촌 지원은 피눈물을 삼켜야 하는 잔인한 한 달이기도 하다.
정작 농사의 주인인 협동농장원들은 완장을 차고 동원된 어린 학생들을 감독하는 감독관이 되고 있다. 아이들을 부려먹는 강제 농촌 동원은 북한 농사를 오히려 망치는 결과를 초래함에도, 이 강제 농촌 동원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농사 경험이 전혀 없는 도시 아이들까지 모내기와 옥수수 심기에 동원시켜 사상과 의식을 고취시키는 행태로, 북한의 아이들은 심히 고통받고 있다.
동원된 아이들이 모내기를 하고 나면, 대부분의 모는 잘못 심겨 말라죽거나 물에 뜨게 되고, 옥수수 모를 심다 실수로 어린 모가 꺾여도 비판이 두려워 꺾인 모를 그대로 심다 보니 결국 국가에도 엄청난 손해가 된다. 그럼에도 북한 당국은 이런 강제 동원을 멈추지 않고 있다.
북한의 이런 행태는 농사가 잘 되어 국민이 배부르는 것보다, 늘 배고프고 가난해야 정치적으로 통제가 된다는 독재적 망상이 김정은과 당국자들 머리에 인식되어 있기 때문은 아닌지, 의심을 가지게 된다.
농사를 책임져야 할 농민들은 '완장찬 간부'로, 이들을 관리한다는 명목 아래 정작 주인이 되어야 할 농민들의 본분을 강제 동원자들에게 떠맡긴 채 게으름을 피우는 행태는 공산주의 고질적 현상이다.
북한의 농촌 들녘은 5월 한 달, 우리의 선거 유세장을 방불케 한다. 모내기를 하는 논밭은 정치 선동의 장으로 나팔소리와 북소리가 진동하고, 선전대원들의 구호 소리와 사회주의 찬양의 노래 소리는 흥겹다기보다 공포와 절망의 지옥을 엿보는 듯 하다.
하여 북한 사람들 속에서 '협동농장 곡식은 주인 잘못 만나 손가락 만한 옥수수밖에 달릴 수 없고, 집집마다 있는 마당 텃밭의 곡식은 주인 잘 만나 팔뚝 같이 커진다'는 비아냥 소리까지 나돌고 있는 현실이다.
성경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동포들이 독재의 폭압 밑에서 눈물로 씨를 뿌리고 있는 그 아픔에는 과연 언제 하나님께서 응답하실지, 오늘도 그 날을 소망하며 기도한다.
강철호 목사(새터교회, 북기총 대표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