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첫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인 김동연 아주대 총장(60)은 어려운 환경을 이기고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김 후보자의 소년 시절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11세 때 아버지(당시 33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가세가 기울며 청계천의 무허가 판자촌에서 살게 됐다.
충북 음성 출신의 김동연 내정자는 어릴 적 가정형편이 어려워 상고에 진학한 뒤, 은행에서 일하며 주경야독으로 야간대학을 졸업한 '흙수저' 신화의 주인공이다.
김 내정자는 전임 박근혜 정부에서도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으로 재임했다. 김 내정자는 국무조정실장 사임 당시 청와대에서 몇 차례나 사의를 반려할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다고 한다.
이로써 김 내정자는 계층 화합과 정치적 통합 메시지도 담고 있는 것으로 관가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김동연 내정자는 가난 때문에 이루지 못한 배움의 욕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은행에 다니면서 야간대학인 국제대(현재 서경대) 법학과에 진학했고, 은행 기숙사에서 선배의 쓰레기통에 들어있는 고시잡지를 우연히 발견해 고시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1982년 입법고시와 행정고시에 동시합격해 1983년 경제기획원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학연이 없었지만 능력만으로 역대 모든 정부에서 중용됐다. 전두환 정부 당시 경제기획원에서 예산 업무를 맡았고, 2000년대는 경제기획원의 후신인 기획예산처에서 주요 보직을 거쳤다. 노무현 정부 때는 국가 중장기 전략인 '비전 2030'을 만드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 인수위원회에 파견됐다 청와대에서 경제금융비서관과 국정과제비서관을 지냈다. 이후 기재부 예산실장과 2차관을 거쳐 박근혜 정부 때는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을 맡았다. 그는 국무조정실장을 마친 후 아주대 총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그는 '워커홀릭'으로도 유명하다. 2013년 국무조정실장일 때 28세였던 아들이 백혈병으로 사망했는데도, 장례식 당일 업무에 복귀해 '원전비리 종합대책'을 직접 발표했다. 김 후보자는 당시 주변에 아들의 투병 사실도 알리지 않았고, 아들의 부고조차 내지 않을 정도로 강직한 공직자였다.
문 대통령의 경제정책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에는 김광두 국가미래원장이, 정책실장에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각각 임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