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 문화 속의 기독교음악, 대중음악, 그리고 영화 (下)
CCM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 기준은 존재하는가?
비와이(BewhY)라는 아티스트에게는 특별한 점이 있다. 기독교인 입장에서 보면 대견하다 싶을 정도로 독특하다. 신앙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 힙합계에서 출중한 실력을 앞세워 개인의 신앙을 표현하는 범상치 않은 대중음악 아티스트다.
미국에서는 흑인 교회들을 중심으로 힙합 CCM이 등장한 지 오래된 편이나, 국내 힙합계에서 기독교 신앙을 표현하는 가사로 대중의 호응을 받은 이는 비와이가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비와이의 노래를 단순히 CCM으로 분류하기에는 애매한 감이 있다. 그리고 전편에 소개했던 초월(transcendence)과 일탈(transgression)의 관점에서 본다면, 여전히 아쉬운 측면도 존재한다.
힙합의 비트(beat)와 분위기는 대개 저항적 일탈에 초점을 맞춘다. 하나님을 향한 겸손과 순종과 결단을 표현하려는 기독교음악과는 기본 정서가 다르기 때문에, 비트와 가사 사이에 일종의 부조화가 연출된다고 볼 수 있다.
'지저스웨거(Jesus+swagger)'라는 별칭부터 역설적이다. 스웩(swag)이라는 말은 원래 자기 과시와 상대방 비하를 주된 내용으로 삼는 힙합 퍼포먼스를 뜻한다.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 신앙의 정서에는 걸맞지 않는 행위다.
그럼에도 비와이는 자기 과시의 동기를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칭송으로, 상대방 비하의 동기를 자기 비하로 전용하는 포스트모던적 재구성을 시도한다. 이런 참신한 시도를 통해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려는 노력에 대해 기대감과 격려를 보내고 싶고, 신앙인을 자처하는 대중음악 아티스트로서 무탈하게 활동해 나가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비와이가 기독교 신앙을 표현하는 다소 생경한 요소를 표현하면서도 환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힙합이라는 장르를 선택했기 때문일 수 있다. 아이돌 댄스, R&B풍 발라드 등을 비롯한 여타 분야는 상업성에 얽매여 레퍼토리가 고정된 경향이 뚜렷하고, 대중도 이런 경향으로부터 이탈을 반기지 않는 편이다. CCM 아티스트들이 대중음악 활동에 뛰어들 때 신앙을 그대로 표현할 여지가 많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힙합은 사정이 약간 다르다. 상업성에 치중한 천편일률적 퍼포먼스를 지양하고, 실존철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근본정신인 개별성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 힙합의 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쇼미더머니>에 출전한 아이돌 힙합퍼들이 대부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현실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힙합은 언더그라운드 마이너 아티스트들의 진정한 해방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대중에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힙합을 통해 강렬한 모습으로 기독교 신앙을 표현하는 비와이의 시도는 대중에게 마이너 아티스트의 저항적 자기표현으로 인식되는 듯하다. 힙합계 내에서 마이너하기 그지없는 기독교 신앙을 전면에 내세운 랩을 선보인 점이 신선한 충격을 준 것으로 보인다. 물론 비와이가 선보이고 있는 출중한 음악성이나 공연실력 자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이런 점에서 비와이의 행보는 CCM 아티스트들의 대중음악 활동 방식과 구별된다. 그는 개별화된 신앙표현이 대중에게 각광받을 수 있는 장르와 무대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는 영리하고 탁월한 선택인 것으로 밝혀졌다.
대중음악 속 기독교: 창조적 혹은 비틀린 모방
비와이의 사례가 주목을 끄는 데는 희소성도 한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개 대중음악 속에서 기독교적 모티프들은 기독교적 특수성이 드러날 듯 말 듯 완곡하게 표현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완곡함은 대중음악이 기독교음악 고유의 배경사상 및 노랫말을 창조적으로 전유하는 통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국내에서 이런 사례가 흔한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문화는 기독교를 바탕으로 형성되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도가적이고 불교적인 사유들이 창조적으로 전유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전편에 잠시 언급했던 곡 '인연(이선희)'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1990년대 말 한창 대중문화계에서 유행했던 환생사상을 봐도 그렇다.
혼성그룹 룰라의 곡 '천상유애(1995)'와 김정민의 '무한지애(1996)', 김민종의 '귀천도애(1996)', 그리고 한석규·심혜진 주연의 영화 <은행나무 침대(1996)>와 이병헌·이은주 주연의 <번지 점프를 하다> 등 대중문화계 전반이 환생과 운명적으로 이어지는 사랑 이야기에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상은의 앨범들 중 가장 유명한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1995)>에는 타이틀곡 '공무도하가'뿐 아니라 '삼도천(三途川)',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든(Reincarnation)" 등의 곡들이 한국 전통의 종교적 사상들을 표현하고 있었다.
김신우의 '귀거래사(歸去來辭, 1999)'는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한 곡은 아니지만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의 위대한 시인으로 알려진 도연명의 산문시 '귀거래사'로부터 가사를 차용하며 도가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을 적극 표현하고 있다. 이 시기 이후 대중문화계에서는 운명적 인연과 환생, 업, 무위(無爲) 등을 세련되게 표현하면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라고 호평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인 것이 된 듯하다.
미국 대중문화계에서는 기독교 소재들이 유사한 취급을 받고 있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1960년대 이후 미국 대중음악이 기독교음악과 완전히 다른 길을 가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나, 그들의 정신 속에 DNA처럼 각인된 기독교의 가르침들을 무시하고 노랫말을 짓기란 쉽지 않았다.
사회비판을 주제로 삼는 무거운 주제의 곡들로부터 가벼운 사랑노래까지, 대중음악 가사 속에서 성서로부터 빌려온 문구나 생각의 단편들을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이런 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단 성서적이고 기독교적인 모티프를 활용했다 해서, 그 내용이 신앙을 옹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재해석 혹은 재구성된 기독교의 가르침들은 초월이 아닌 일탈을 체험하게 하는 데 적합하게 각색되어 있다.
아델(Adele): 'Rolling in the Deep(2011)'과 동성애자에 대한 분노
실제 사례들을 간략하게 훑어보자. 아델(Adele)은 영국을 대표하는 여성 가수로, 뛰어난 음악성과 가창력을 인정받아 다수의 그래미상(Grammy Awards)과 빌보드상(Billboard Music Awarsd)를 휩쓸다시피 했다.
비록 5등급(MBE, Member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에 불과하지만, 대중음악 활동만으로 대영제국 훈장을 받은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여성이자 솔로 가수로는 유일하게 전세계 음반 판매량 3,000만장을 돌파한 현재 세계 최고 인기가수이다.
한·중·일 등 동아시아에서는 인지도가 높지 않은 편이나, 유럽과 미국을 비롯하여 남미와 동남아 등지에서는 자국의 최고인기 가수들보다도 더 높은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다.
아델을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곡은 2011년 발표된 'Rolling in the Deep'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2년 오디션 프로그램인 에서 이하이와 박지민 등이 부른 이후 자주 방송에 등장해 유명해진 곡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사랑을 무자비하게 배신하고 떠나간 연인에 대한 상실감과 분노를 표현하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다. 이 곡 뮤직비디오 후반부에는 종이로 제작된 모형도시가 나오고, 그 위 공중에서 폭죽을 터뜨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모형도시는 폭죽의 불꽃으로 인해 곧 불타서 잿더미로 변하는데, 이 장면이 노래 전체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여러 차례 등장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한데, 뮤직비디오 제작을 맡았던 영상감독 샘 브라운(Sam Brown)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장면이 굳건하게 형성된 애정관계(모형도시)를 잔인하게 망가뜨린 배신행위(공중에서 떨어지는 불꽃들)를 표현한 것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얼마 후, 아델이 이 곡을 작사∙작곡한 구체적 동기(그녀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이 곡이 수록된 앨범 전체의 작사∙작곡 및 편곡까지 직접 담당했다)로 추정되는 사건이 언론에 밝혀져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바 있다.
2012년에 전기작가 마크 샤피로(Marc Shapiro)는 아델의 인생을 조명한 책 「Adele: The Biography」를 발표했는데, 집필을 위한 조사 과정에서 아델의 곡 'Rolling in the Deep'의 탄생 비화를 밝혀냈다고 주장했다. 샤피로의 주장에 따르면, 아델은 18세 생일날 첫사랑이었던 연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실연을 당했는데, 이 남자가 떠난 이유가 당황스럽다. 그는 양성애자였으며 다른 남성과의 동성애 때문에 아델을 버리고 떠난 것이다.
더구나 아델의 연인과 동성애 관계에 있던 남자는 원래 아델과도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다. 동성애 때문에 친구와 연인을 동시에 잃어버리는 영화 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샤피로의 글은 아델의 인증을 받지는 못했지만 아델은 이 주장에 반박하지 않았고, 다른 인터뷰 등에서 자신을 배신한 연인이 양성애자였다는 것을 암시한 바 있으며, 그를 '난봉꾼(cheater)'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Rolling in the Deep'은 연인이었던 양성애자와 친구였던 동성애자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표현한 곡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모형도시가 불타는 장면은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바로 구약성서에 기록된 소돔(Sodom)과 고모라(Gomorrah)의 멸망을 재현한 장면으로 말이다. 아델과 샘 브라운은 이 장면을 기획할 때 동성애가 소돔과 고모라의 주된 멸망 이유 중 하나였다는 여러 성서학자들의 해석을 유념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델의 의도는 동성애 자체에 대한 기독교적 지탄은 아니다. 뮤직비디오의 장면은 자신에게 쓰라린 기억을 선사한 두 사람의 동성애자에게 국한된 분노의 표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델은 결코 공개적으로 동성애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으며, 동성애자들을 돕고 그들과 친하게 교류하는 모습도 자주 보여왔기 때문이다.
'Rolling in the Deep'의 사례는 기독교의 윤리관이 개인적인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차용된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와 유사하게 기독교적 소재들을 왜곡해서 전용하는 사례는 다음에 언급하는 유명 아티스트들의 곡에서도 확인된다.
메간 트레이너(Meghan Trainor), 플로리다 조지아 라인(Florida Georgia Line): 'Thank You(2016)', 'H.O.L.Y.(2016)'와 연인의 신격화
메간 트레이너는 2014년 대중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해 그래미상 최고신인상(Best New Artist)을 수상한 싱어송라이터다. 당해 빌보드 차트에서 미국 정상급 싱어송라이터인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지난 2년간 꾸준하게 앨범 및 음원순위 5위권 안을 넘나들며 인지도를 쌓고 있는 아티스트다.
메간 트레이너는 2016년 5월 'Thank You'라는 앨범을 발표했는데, 동명의 타이틀곡은 멜로디만 제외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복음성가인지 연인을 칭송하는 노래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다. 다음은 이 노래 가사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당신은 나를 겸손하게 해요, 항상 내가 (당신께) 집중할 수 있게 해요
(You keep me humble, keep me focused everyday)
당신은 내게서 미소가 떠나지 않게 해요
(You know how to put a smile on my face)
내가 당신을 생각할 때마다, 내 모든 근심이 사라져요
(When I think about you, all my worries fade)
당신이 나를 사랑하시는 사랑은 영원하고 결코 변하지 않을 거라고 당신은 말하죠
(You say you'll love 'til forever and that'll never change)
나는 당신의 말을 들어요
Oh-oh, I hear your words
당신의 말은 놓칠 수가 없어요
(Oh-oh, they don't go unnoticed)
나는 당신의 사랑을 느껴요
(Oh-oh, I feel your love)
이 노래는 아티스트의 평소 이미지나 앨범의 컨셉을 고려할 때 분명히 연인에게 헌사되는 곡인데, 묘하게 가사가 CCM 일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you keep me humble'은 겸손과 온유를 가르치시는 하나님, 'all my worries fade'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you'll love forever'는 영생을 수여하시는 하나님, 'that'll never change'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 그리고 'I hear your words'는 주의 말씀을 겸손하게 듣고 믿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연상시킨다.
다음에 제시할 사례는 메간 트레이너의 노래보다 더 직설적이다. 플로리다 조지아 라인(Florida Georgia Line)은 싱어송라이터인 브라이언 켈리(Brian Kelly)와 타일러 허버드(Tyler Hubbard)로 구성된 남성 2인조 컨트리 밴드로, 미국 남부 컨트리 음악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세련된 방식으로 각색하여 컨트리 음악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아티스트들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두 멤버 모두 교회 찬양예배에 깊이 감동받아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선택하기로 결심했고, 초기 음악활동을 CCM 사역자로 개시하였다는 점이다. 이들은 CCM 작곡과 찬양집회 인도 등으로 각자의 경력을 쌓던 중 2010년에 뜻을 모아 밴드를 결성하였고, 그 후로는 대중음악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원래 CCM 아티스트면서 찬양인도자였던 까닭에 이들의 노래에는 유독 기독교적 색채가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간혹 기독교인들 입장에서는 당혹스럽게 들리는 노래를 발표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곡이 2016년 빌보드 100 차트 14위까지 올랐던 'H.O.L.Y.'라는 노래다. 다음은 이 노래 가사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당신은 흑암같은 밤을 가장 밝은 날로 바꾸어 놓습니다.
(You made the brightest days from the darkest nights)
당신은 내가 침례를 받은 강변입니다
(You're the river bank where I was baptized)
당신은 내 자유를 강탈한 귀신들로부터 나를 깨끗케 했습니다
(Cleansed from the demons that were killing my freedom)
당신은 거룩, 거룩, 거룩한 분입니다
(You're holy, holy, holy, holy)
내 전심을 다해 당신을 사랑합니다
(I'm high on loving you, high on loving you)
당신은 내가 고통받을 때 나를 치유해주시는 손길입니다
(You're the healing hands where it used to hurt)
당신은 구원의 은혜이며, 내게는 교회와 같은 분입니다. 당신은 거룩합니다.
(You're my saving grace, you're my kind of church, you're holy)
뮤직비디오를 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CCM과 구분 자체가 불가능한 노래다. 그러나 여기서 'You'는 하나님이 아니다. 뮤직비디오에는 노래의 주인공이 사랑하는 한 우아한 여성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CCM 싱어송라이터들이 대중음악 활동을 개시하는 경우 기독교음악의 고유한 요소들이 대중음악의 일탈지향적 목적을 충족하기 위해 전유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편에 언급한 바 있다. 플로리다 조지아 라인의 'H.O.L.Y'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곡과 관련된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들은 현재도 스스로 특별히 기독교적 배경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여기며, 이처럼 찬양의 요소들을 연인에 대한 칭송의 노래에 도입함으로써 그들의 음악적 뿌리(CCM 아티스트이자 찬양집회 인도자)를 재확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케이티 페리(Katy Perry), 레이디 가가(Lady Gaga): 'Rise(2016)', 'Dark Horse(2013)', "Judas(2011)' 속의 반기독교 정서
케이티 페리와 레이디 가가는 테일러 스위프트와 함께 2000년대 후반 이래 미국 내 여성 솔로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아티스트들이다. 서로 추구하는 음악적 스타일은 다르지만, 흥행성적으로만 따지면 매년 여성 솔로 가수 1, 2, 3위를 다투는지라 자주 라이벌처럼 비교되는 아티스트들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2011년에 경제지 <포브스(Forbes)>는 '2011년 최고 수익을 올린 여자 가수' 순위를 발표한 바 있는데, 레이디 가가가 당해년도 한 해에만 9,000만 달러(한화 약 1,010억원), 테일러 스위프트가 4,500만 달러(한화 약 505억원), 케이티 페리가 4,400만 달러(한화 약 494억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케이티 페리 역시 플로리다 조지아 라인과 마찬가지로 CCM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원래 캘리포니아에서 오순절교회 목회자 부부의 자녀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엄격한 기독교 교육을 받으며 자란 성장배경을 갖고 있다.
케이티 페리의 부모는 자녀들이 세속문화를 멀리하고 성경과 복음성가를 가까이하도록 가르쳤는데, 그녀의 증언에 의하면 집안에서는 대중음악을 전혀 들을 수 없었고, TV도 기독교채널만 볼 수 있었으며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스머프(The Smurfs)>조차 시청이 금지되어 있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던 그녀는 부모님의 엄격한 신앙교육 덕에 16세 때 CCM 아티스트로 음악 경력을 시작했다. 2001년에 발매한 그녀의 CCM 앨범은 저조한 판매성적을 거뒀으며, 이 때부터 케이티 페리는 집을 나와 대중음악 가수로 진로를 전환하고 기독교 신앙을 포기한다. 그녀는 후일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이 부모님이 강요한 신앙에 억압되어 있던 나날들이었다고 소회하며 기독교에 대하여 은근한 반감을 표시해 왔다.
그녀를 최초로 전국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곡은 'I Kissed a Girl(2008)'인데, 이 노래는 레즈비언 동성애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곡으로 기독교 단체들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이 시기 이후로 그녀는 목회에 전념중인 부모님과 심한 갈등을 빚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노래뿐 아니라, 그녀가 발표한 곡들 중에는 기독교적 요소들을 포함하면서 반기독교적 정서를 지지하는 노래가 자주 발견된다.
2016년 발표된 곡 'Rise'는 케이티 페리가 작사에 참여한 곡으로, 브라질 리우 올림픽 미국대표팀 공식 주제가로 선정된 노래다. 이 노래는 고난에 굴하지 말고 자신의 능력을 고양시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가사 중에는 예수의 제자들이 배를 타고 태풍이 몰아치는 갈릴리 바다를 건널 때 물 위로 걸어오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마 14:31)이 포함되어 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의심치 말라
(Oh, ye of so little faith, don't doubt it, don't doubt it)
승리는 내 혈관(피) 속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어
(Victory is in my veins, I know it, I know it)
나는 타협하지 않아. 나는 싸우겠어
(And I will not negotiate, I'll fight it, I'll fight it)
나는 새롭게 변하겠어
(I will transform)
여기서 믿음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말한다. 하나님이 아닌 자기에 대한 신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예수의 말씀을 전용한 것이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 역시 전체가 그리스도의 일생에 대한 패러디로 구성돼 있다. 케이티 페리는 십자가를 끌고 가듯 펼쳐진 낙하산을 뒤로 끌며 광야를 가로지른다. 빈사 직전에 이른 그녀는 물 속으로 추락해서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내 부활하듯 기력을 차리고 마침내 낙하산으로 날아오를 수 있는 곳에 도달한다. 여기서 그녀는 하늘로 승천하듯 날아오른다.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고난, 십자가의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을 모방한 이 장면들은 케이티 페리의 기독교적 성장 배경과 함께 기독교 신앙에 더 이상 기대감을 갖지 않는 그녀의 자기확신을 드러내 보여준다.
그녀의 다른 노래 'Dark Horse'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검은 말(계 6:5)'을 중심 소재로 삼아 노랫말을 작성한 곡이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요한계시록의 내용, 그 가운데서도 마귀와 그의 세력을 묘사하는 사탄주의 상징(보석, 모래, 천사의 날개, 짐승, 말하는 우상 등)과 이집트 종교의 기호는 기독교에서 부정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존재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미화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와 그래미상 시상식 실황공연, 그리고 월드투어 실황공연 등이 보여주는 노골적인 오컬티즘(occultism)과 사탄주의(Satanism) 때문에 한때 그녀가 특정한 반기독교 단체의 일원이라는 음모론이 대중들 사이에 회자되기도 했다. 물론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근거없는 낭설이라고 밝힘으로써 논란을 일축했다.
레이디 가가의 노래 'Judas'는 보다 직설적으로 기독교의 문화관을 비판하는 노래다. 레이디 가가도 비교적 보수적인 가톨릭 가치관을 중시하는 이탈리아계 상류층 가정에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Judas'의 가사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자신의 문화적 창조성과 자유분방한 삶의 방식을 억압하는 고루한 '미덕(virtue)'으로 규정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열두 제자들을 폭주족 갱단으로, 자신을 그리스도 혹은 가룟 유다의 애인 막달라 마리아로 격하시켜 희화화한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결국 가룟 유다를 사랑의 대상으로 선택하는 것으로 귀결되는데,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성서적 소재들을 차용해 노골적인 방식으로 반기독교 정서와 사탄주의를 옹호하는 곡들은 이미 1960년대부터 인디 밴드들 중심으로 다수 작곡되고 불려져 왔다. 그렇지만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이런 문화가 케이티 페리나 레이디 가가와 같이 마이너 아티스트들이 아닌 메이저급 최고 스타들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런 현상은 미국 내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한 수준으로 위축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일들이 미국에서만 발생하고 있을까? 국내에서도 정상급 스타들 사이에 기독교적 소재들을 대중음악에 도입해서 전용하는 사례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물론 전용 방향은 대개 오컬티즘이나 사탄주의를 미화하는 쪽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여성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의 독립유닛인 태티서가 부른 'Twinkle(2013)', 그리고 대표 한류 남성 아이돌 그룹 빅뱅의 'Bang Bang Bang(2016)'이다. 이 곡들은 성서에 기록된 타락한 천사의 대표적 속성들(보석으로 온몸을 두른 화려함, 하늘에서 떨어진 별, 심각한 자아도취 및 자기숭배, 지옥불, 모래 등)을 가사와 뮤직비디오에 비교적 직접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렇다고 작곡자나 가수들이 특별히 반기독교적인 의식을 가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단지 미국 대중음악의 트렌드를 의식없이 모방한 데서 오는 폐해로 보이는데, 문제는 이런 사례들이 증가할수록 대중들 사이에 반기독교적인 문화가 점차 일상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김연우나 기독교 보컬 밴드 빅콰이어가 사탄주의 노래로 의심받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불러도 기독교인들이 이를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이 눈앞에 다가와 있지 않은가?
기본으로의 회귀: 교회음악의 참된 목적
종합해 보면, CCM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는 긍정적 차원에서 기독교음악의 다양성을 증진하고 음악적 기교를 발전시키며, CCM 아티스트들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반면 CCM 아티스트의 대중음악계 이전, 일탈지향적 음악의 유입, 기독교음악 고유 요소들의 일탈적 전용이라는 달갑지 않은 문제들도 유발한다.
그렇지만 부작용이 우려된다 하여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는 교회음악의 역사가 말해주는 진리다. 기독교의 가르침이 전 우주적 진리로 여겨지던 중세 서구에서조차 교회음악은 일정부분 세속음악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을 거듭했다. 교회음악이 음악 발전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세속음악이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교회음악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중심이 되는 기준이다. 기독교음악은 기독교음악 고유의 목적과 방침을 갖는다. 기독교음악의 목적으로 지금까지 '초월'이라는 다소 애매한 개념을 제시하였지만, 현 시점에서는 이를 보다 구체화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대 라틴어 운문과 중세 교회음악사 전문가 맥키넌(James McKinnon)이 밝힌 바 있듯, 기독교음악의 기원은 토라(תּוֹרָה, 모세오경)의 히브리어 암송 구술과 시편이다. 그렇지만 초기 기독교회에서는 모세오경이든 시편이든 음악적 가치보다는 복음에 대한 예언으로서의 가치를 더 중시했고, 후일 사도적 전승(tradicio apostolico)이 정립되면서부터는 이런 경향이 보다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초기 기독교회에 성가집이 존재하지 않으며,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the Edict of Milan,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의 자유 공인) 이후로도 거의 반세기 가까이 교회음악에 대하여 이렇다 할만한 문헌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교회음악과 관련해 최초라고 할만한 문서는 기독교회의 위대한 신학자 어거스틴의 개종을 도운 밀라노 주교이자 당대 최고의 설교자 및 목회자 암브로시우스(Ambrosius, 340-397)가 집필한 <암브로시우스 찬송가(Hymni Ambrosiani)>이다. 이 고대의 찬송가집에 수록된 찬송시 일부는 오늘날까지도 예배 중에 사용된다. 대표적인 곡이 <통일찬송가> 42장 '찬란한 주의 영광은(<새찬송가> 130장)'이다.
암브로시우스 주교는 4세기까지 교회들이 히브리 성서(구약)나 사도적 전승(신약)을 그대로 낭송하던 전통에서 벗어나, 주교 개인의 기독교 신앙과 신플라톤주의(neoplatonic) 신학을 동시에 반영하고 있는 찬송시를 직접 작사하였다. 이는 오늘날 찬송가의 원형으로 지목되며, 세속음악의 요소를 기독교음악에 도입하여 발전을 도모한 최초의 시도로 지목된다.
어거스틴(Augustinus, 354-430)도 음악 연구서인 <음악론(De Musica)>을 남겼다. 단, 그는 교회음악을 특정해서 연구하지는 않았다. 그는 음악을 자유학예(liberal arts)의 한 분과로 여겼고, 신플라톤주의적 사유를 지지하는 지식의 체계로 규정했다. 이런 이유로 어거스틴의 <음악론>은 <암브로시우스 찬송>만큼 교회음악에 대하여 직접적인 가르침을 수여하지는 않지만, 교회음악 음률과 가사 작성의 배경사상을 정립하는 데 상당하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어거스틴은 음악이 비록 감각에 의해 향유되는 것이긴 하나, 운문과 음률에 담긴 조화의 법칙은 사람의 영혼 속에 기억되어 있는 보편적 지식의 편린으로서,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것 위에 초월적 존재, 그리고 초월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유비적 증거로 채택될 수 있다고 여겼다. 즉 음악이 기독교의 진리를 직접적으로 지지하거나 증거하지는 않지만, 초월과 영혼에 일정부분 맞닿아 있기 때문에 고유한 가치를 갖는다고 설명하였다.
암브로시우스와 어거스틴의 음악에 대한 사상은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 정립에 영향을 준다. 이 성가 체계에 붙여진 이름은 6세기경 교황이자 신학자인 그레고리오 1세(Gregorius Magnus)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악기 연주를 배제한 8개의 고정된 음조와 1개의 자유로운 음조로 구성된 성가로서, 노랫말 대부분이 중세의 찬송시 및 성례전 봉독용 경구와 기도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음조는 오늘날의 음악들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변조나 반전 등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는 찬송의 음조가 가사의 내용전달을 훼방해서는 안되며, 초월, 조화, 그리고 평안의 분위기 연출에 봉사해야 한다는 사상이 확고했던 까닭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발생할 수 있다. 성서의 내용을 극도로 중시했던 중세 가톨릭교회가 왜 성서, 특히 시편을 그레고리오 성가로 만들지 않았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중세 가톨릭 교회는 성서의 권위를 대단히 중시한 나머지, 사람이 만든 음악으로 성서의 내용을 전하는 것이 불경한 일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 가지 기술적인 문제도 관여되어 있었다. 히브리어 시편을 비롯한 성서 전체에는 원래 라틴어 운문의 핵심적인 형식을 이루는 압운(rhyme)과 보격 운율(meter)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라틴어 운문의 형식을 계승∙발전시킨 것인데, 만일 성서기사 및 시편을 가사로 채택하는 경우 이 형식에 맞추기 위해 성서의 내용 편집이 불가피했고, 이는 성서의 권위를 중시하던 중세교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해도 교회는 음악이 가진 힘, 그 가운데 암기를 돕는 기능을 간과하지 않았다. 성서의 가르침을 음률에 맡겨 전달하면 복음의 내용을 암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대부분 사람들이 문맹이었던 중세에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기능으로 여겨졌다.
종교개혁자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와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음악이 가진 이런 기능을 높게 평가했다. 그들은 성직자뿐 아니라 일반 신도들에게도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여겼으므로 성가 또한 성서의 내용을 그대로 담을 수 있도록 개혁돼야 한다고 믿었다.
칼빈의 경우 성가의 가사와 음률에 높은 수준의 절제를 요구하였다. 가사는 개인이 지은 찬송시 사용을 금하고 성서의 내용을 그대로 사용하도록 권고하였으며, 음조나 음률은 성서의 내용을 담은 가사의 전달과 암기에 봉사해야지, 가사 내용을 넘어선 유흥과 만족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는 교회음악에 악기를 도입하는 것에도 부정적 입장을 고수하였으며, 가톨릭교회의 파이프오르간 사용에도 비판적인 자세를 유지하였다.
루터는 입장이 약간 달랐다. 루터 역시 가사가 성가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보았으나, 성서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검증된 찬송시의 사용, 그리고 악기 사용에 대해 일정 부분 개방적 자세를 유지했다. 교회음악이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벗어나 회중찬가 시대로 돌입하는 데는 루터의 사상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후 루터의 사상은 교향악 작곡가들에게까지 이어진다. 바로크 음악의 거장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를 예로 들 수 있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과 함께 서구 고전음악의 3대 거장이자 '음악의 아버지'로 인정받는 바흐는 독일 튀링겐 지방 소도시 아이제나흐(Eisenach)에서 태어났는데, 이 도시는 루터가 라틴어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한 곳으로 유명하다.
가문의 신앙교육 덕에 어려서부터 독실한 루터교 신자로 자라난 바흐는 칸타타(Cantata, 기악 반주가 동반된 성악곡) 형식의 교회음악을 200여 곡이나 작곡하였는데, 이 작품들은 루터의 음악에 대한 사상을 반영해 초월을 지향하고 조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음률을 선보였으며, 가사의 내용도 성서, 시편, 그리고 루터교 신학을 반영하고 있다.
비록 말년의 바흐는 교회음악보다 세속음악의 기법을 발전시키는 데 주력하기는 하였지만, 적어도 바흐가 활약하던 바로크 음악(Baroque Music) 시대에는 교회음악이 세속과 궁정음악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경향은 서구음악이 계몽주의 사상에 지배적인 영향을 받아서 발전되기 시작하는 고전주의 음악(Classical Music) 및 낭만주의 음악(Romantic Music)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이어진다. 계몽주의 사상은 하나님의 은혜와 계시보다 사람의 이성과 도덕적 능력에 더 큰 신뢰를 두었기 때문에, 고전음악도 베토벤의 교향곡 9번(Beethoven Symphony No. 9)과 같은 몇몇 예외적 사례를 제외하고는 신앙보다 사람의 삶과 정신에 더 큰 관심을 갖고 발전되기 시작했다.
고전주의 사조에 의해 점차 세속화 일로를 걷던 고전음악 분야와 달리, 18세기 교회의 회중찬가 분야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이 이어진다. 17세기 영국 침례교회(English Baptist Church)에서는 이미 오늘날의 찬송가와 유사한 형태의 회중찬송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18세기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가 주도하던 감리교 신앙운동(Methodist Movement)에서는 회중찬송이 거의 설교에 준하는 비중을 가진 전도의 도구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존 웨슬리의 동생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1707-1788)는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유능한 찬송가 작사∙작곡가로서 존 웨슬리의 부흥운동을 뒷받침한 일등공신이다.
찬송을 중시하는 웨슬리의 부흥운동 형태는 아메리카 식민지로 건너가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 등이 주도한 제1차 대각성운동(the 1st Great Awakening, 1733-1750)에서 빛을 발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간략한 역사에서 볼 수 있듯, 기독교음악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노랫말, 즉 가사다. 이는 기독교음악의 중심적인 기준이다. 기독교음악의 가사는 성서의 내용을 충실하게 전달하거나, 참된 신앙의 체험과 정신을 장려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과도하게 신앙의 개별성을 강조하는 가사는 기독교음악의 기본정신에 위배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가르침을 드러날 듯 말 듯 완곡하게 표현한 초월-일탈 중도형 기독교음악이나 대중음악 트렌드를 무분별하게 추종하는 일탈지향형 기독교음악은 실상 기독교계에 득보다는 실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로 기악과 음률은 가사의 내용 전달을 보조하는 역할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독교음악의 불가침적 기준이다. 메탈, 록, 힙합 등과 같이 음률과 비트, 악기 연주가 자주 중점적으로 부각되는 장르의 음악이 기독교음악의 주도적 트렌드가 되기에 적절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칼럼 앞부분에서 힙합퍼 비와이에게 긍정적 평가를 내린 이유는 그가 애초에 기독교음악 아티스트가 아닌 대중음악 아티스트라는 정체성을 확립한 채 신앙의 정서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실상 그가 선택한 장르인 힙합은 기본적으로 비트가 가사를 압도하기 때문에, 기독교음악의 기본 방침에는 어긋난다. 그러므로 비와이의 노래를 기독교음악으로 분류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음악의 기본 목적인 초월의 체험이란 성서의 가르침과 신앙의 정신을 상고(相考)함으로써, 기독교인 각자의 심령과 생각을 되돌이켜보는 일을 말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음악은 단순한 음악의 한 장르가 아니라 영성을 수행하는 한 방편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기독교음악에 활용되는 모든 음악적 기법들은 가사에 확연하게 포함되어 있는 성서의 가르침에 대한 기억과 집중을 돕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기준이 도출된다.
CCM 진흥을 위한 제언: 교회의 각성과 참여
국내 CCM 아티스트들은 전통적인 기독교음악의 기준을 준수하며 활동하기가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 대중음악의 전체적 산업구조는 이미 음원이나 앨범 판매보다 예능프로 출연이나 행사 참여를 중심으로 재편되어 있다.
CCM의 경우 시장 자체가 대중음악에 비해 협소할 뿐만 아니라 방송가나 행사장에서 수요 자체가 없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수익을 내기 불가능한 구조가 고착돼 있다. 교회 찬양집회나 기독교 콘서트의 경우도 참여 기회 자체가 적은 데다 처우 또한 박(薄)하다. 비교적 넓은 시장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CCM 아티스트들이 대중음악 보컬이나 세션 멤버로, 예능으로 진출하는 일들이 자주 발생하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기독교 신앙에 위배되는 내용의 공연에도 불가피하게 참여하게 된다.
국내 CCM 보컬 밴드 헤리티지(Heritage)의 사례는 오히려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2011년 <나는 가수다> 경연에서 이 밴드는 가수 임재범이 부른 '여러분(윤항기 목사 작곡, 윤복희 권사 원곡)'의 피쳐링에 참여한 바 있다.
거의 국민적 관심을 모았던 무대인지라 헤리티지의 인지도 역시 급상승했는데, 당시 헤리티지는 인터뷰를 통해 이 곡이 순화된 복음성가라는 점을 미리 주의깊게 고려해 편곡자의 요청에 응해 방송 출연을 결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CCM 아티스트들에게는 매우 모범적인 사례지만 이런 좋은 기회는 극히 드문 편이다.
그러므로 현실적 동기에서든, 아니면 교회 바깥의 대중에게까지 가깝게 다가서려는 본인의 노력 차원에서든 간에, CCM 아티스트가 대중음악 활동을 병행할 때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CCM 아티스트들도 대중음악계 못지 않은 음악적 역량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정도일 것이다. 기독교인 입장에서 기대할 수 있는 바는 이 정도가 최대치라고 생각한다.
한편 CCM 아티스트들의 대중음악 활동은 부분적으로나마 대중음악계에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 극단적 노랫말과 선정적인 춤사위가 활개를 치는 대중음악계에, 절제된 감성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노래들을 보태줄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김연우, 김범수, 소향, 박정현, 이수영 등이 원곡자인 대중가요는 경박한 음률이나 선정적인 노랫말을 지양하는 곡들이 대부분이다.
대중음악 활동에 진출하는 CCM 아티스트들에게 기독교인 입장에서 한 가지 더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공연 선곡시 기독교 신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으로 의심되는 곡들을 주의 깊게 살펴 배제하는 것이다. 이는 복음성가 및 CCM 아티스트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신앙인으로서 최소한의 도의일 것이다.
CCM 아티스트들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난관들을 고려해 본다면, 국내에서 힐송 찬양팀(Hillsong Worship Team)이나 돈 모엔(Don Moen) 같은 CCM 아티스트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인력과 재원을 갖춘 중대형 교회들이 행동에 나서서 내부로부터 경쟁력을 갖춘 CCM 아티스트들을 적극적으로 양육하고 지원하는 일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현재와 같이 보급도 받지 못한 채 전쟁터 한가운데 고립돼 각개격파를 당하는 모양새로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CCM 아티스트들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역량있는 교회들의 전략적인 행보가 필요하다.
그래야 교회는 목회적 목적과 기준에 부합하는 CCM 곡을 확보할 수 있고, 아티스트들은 활동과 사역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일부 대형교회들을 중심으로 교회 자체 성가대 기념앨범 등을 제작하는 일은 흔하지만, 심한 아마추어리즘 때문에 목회적으로든 상업적으로든 기독교음악 발전에는 별반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대형 교회들이 헌신된 아티스트들을 선정해 안정적인 작사∙작곡∙녹음 환경을 제공하되, 이들이 가사와 음률을 작성하는 데 있어 기독교음악의 성서적∙신학적 기준을 준수하고 교회의 선교적 목적에 기여하도록 지도하는 방식의 사역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결정권자인 담임목회자들의 의식개혁과 실천의지가 중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역할은 각 신학대학 교회음악과를 중심으로 수행될 수도 있다. CCM 진흥에 필요한 인력과 인프라가 충분히 확보되어 있는 기관들이므로 소정의 재원과 의지, 그리고 기획력만 확보되면 상당한 퀄리티를 선보이는 CCM 곡을 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런 환경을 지속적으로 조성해 준다면 국내 교회음악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줄리어드 트리오(Juilliard Trio) 같은 걸출한 아티스트들이 다수 출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간략하게 결론을 내려보자. CCM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라는 역사적 흐름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 다만 기독교음악 고유의 근원적 기준을 확고하게 정립하여 개별 사례들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도록 하는 학문적 관심과 실천적인 여건이 부재한 상태에서 수행되는 크로스오버는 다수의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의 무분별한 상호작용 및 융합으로 인해 CCM 아티스트들이 한 입으로 찬송과 세속의 목소리를 동시에 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것이 과연 CCM 아티스트 본인과 기독교인들 모두에게 유익한 일일까? <끝>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
이처럼 어떤 의미로든 자기 삶에 연관된 모든 감각적이고 관념적인 재료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격식 없이 조합하여 하나의 멋진 작품을 만드는 일을 브리콜라주라고 한다. 이 기법은 오늘날 광고나 뮤직비디오, 조형예술, 팝아트(pop art) 등에 자주 동원되며 영화에서도 빈번하게 활용된다.
오늘날의 영화는 삶의 모든 관심사들을 매혹적인 방식으로 조합하여 그려내고 있다. 그 안에는 기독교인들이 환영할 만한 요소와 불편해할 만한 요소들이 정교하고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본 칼럼은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은 영화들 속에 뒤섞여있는 아이디어들을 헤아려 보고, 이를 기독교적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할 것인지 고민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