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복이 본월드 대표 인터뷰(하)
이웃 사랑의 통로, 본사랑재단
"선교사 가족들이 울고 있으니 도우라!"
-본사랑재단과 본월드미션의 설립 계기가 어떻게 되나.
"본죽을 시작했을 때 밥생명공동체가 노숙인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중, 봉사자들과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한 것이 본사랑재단의 시초였다. 그 후 직영으로 연 종로구 계동점의 수익 전체를 노숙인을 돕는 D매장(donation, 기부)으로 삼아 주님께 드렸다. 하나님께서는 대학로에서 시작한 점심 봉사를 부평역과 천안역까지 확장하게 해 주셨다. 그리고 2009년 설립한 본사랑 재단을 통해 하나님은 본죽을 이웃사랑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본사랑은 국내에서는 빈곤 아동, 장애인, 쪽방촌, 새터민 등을 돕고, 해외에서 NGO로 활동하며 빈곤 아동을 돌보는 역할을 한다. 본사랑은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으로서 사회분야에 공헌하지만, 특정 종교의 색채를 가질 수 없다. 그래서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께서는 본월드미션 재단을 세우게 하셨다.
본월드미션의 구상은 한 아프간 선교사님이 전쟁고아를 돕는 사진전을 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세종회관에서 한 달간 사진전을 열었는데, 선교사님은 무일푼으로 오셨고 동행한 다른 선교사님도 허리디스크로 고생하고 계셨으며, 심지어 전쟁고아 한 명도 데리고 방한하셨다. 나는 그때 선교사님들이 처한 현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머니 집에 이분들을 머물게 하며 용돈도 드리고 허리 치료도 받게 했다. 안타깝게도 사진전은 목표액의 1/10도 모금이 되지 않았고, 부족분을 우리가 지원해 드렸다. 허리디스크로 고통받던 선교사님은 치료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선교지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가야 한다며 결연히 출국하셨다. 그 선교사님의 뒷모습을 보며 '자기 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명이구나'라고 깨닫게 되었다.
하루는 미혼여성 선교사님들이 국내에 들어오면 거처가 없어 찜질방을 전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선교사 케어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을 주셨다. 그래서 연세대 앞에 선교사님들이 쓸 수 있는 6칸짜리 거처를 마련했고, 이후 하나님의 은혜로 인천공항에서 20분 거리, 화곡역 1분 거리에 20칸짜리 거처를 마련했다. 이렇게 선교사님들이 기거할 숙소를 세워가던 중 참석했던 기도회에서 '선교사 가족들이 울고 있으니 도우라!'는 '하나님 사랑의 통로' 본월드미션의 사명을 내게 주셨다. 본월드미션이 세워지기까지 많은 영적인 공격이 있었지만, 나는 사명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다. 지금 본월드미션은 선교사 케어, 게스트하우스, 선교사 자녀(MK) 장학금, 선교사·MK·사모 캠프들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고, 최근 M매장(mssion, 선교)에 집중하고 있다."
M매장, 하나님이 주신 비즈니스 선교 모델
우리나라의 소울 푸드로 '본죽' 세계에 알릴 것
-M매장은 무엇인가.
M매장은 본죽과 본도시락이라는 두 가지 브랜드를 합쳐서 만든 매장으로, 선교사님들의 비자 문제와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선교 모델이다. 이 매장은 작년 10월 우크라이나를 시작으로, 태국, 필리핀, 몽골에 총 5개 매장이 세워졌고 남미,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 20~30개 나라의 선교사님들이 상담 중이다. 내가 시니어 선교사님들이 모이는 집회에 갔더니, 한 선교사님이 비즈니스 선교 모델을 놓고 25년을 기도했지만 성공적인 모델을 찾지 못했었는데 M매장이 그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격려해주셨다. M매장은 하나님께서 본죽에 허락하신 브랜드, 노하우, 시스템, 물적 자원, 인적 자원의 총체적 버전으로서 선교의 도구가 되고 있다.
모든 문화의 핵심은 단연 '식문화'라고 할 수 있다. 요즘 한류가 주목받으면서 선교사님들이 다른 식당과 똑같은 한식메뉴를 선보이지만 현지인들에게 크게 어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죽은 독특한 매력이 있다. 최근 참석한 딸아이 졸업식 때 뉴욕 할렘가에서 '소울 푸드(soul food)'라는 것을 보았다. 딸아이는 흑인들이 애환을 위로받는 그들의 음식을 소울 푸드라고 부른다고 했다. 소울 푸드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게 보였다. 우리도 보릿고개를 죽으로 넘기지 않았나. 또 힘들고 못살 때 밥 한 공기를 남은 음식과 함께 넣고 오래오래 끓여 먹었다. 우리나라의 소울 푸드가 바로 '죽'인 셈이다. 딸아이도 '소울 푸드'라고 하면 다들 관심을 갖고 먹어보고 싶을 것 같다고 했다. 본죽은 '코리안 소울 푸드'(Korean soul food)이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가족을 살리기 위해 시작된 소울 푸드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인 이 M매장은 비즈니스인 동시에 빈곤한 사람을 섬기고 선교하는 역할을 감당하기 때문에 본죽, 본사랑, 본미션을 모두 아우르는 매장이다. 선교적 기업으로서 마지막 때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쓰이는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바라는 최고의 비전인 M매장에 집중하고 있다."
일터사역, 작은 것부터 순종하고 감사하는 삶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사명
-일터 사역자들과 나누고 싶은 말은.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는 것에 적극적으로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이 큰 일을 맡기실 수 있다. 시편 131편 1절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는 말씀처럼 먼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않고 하나님이 맡기신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다.
일터사역도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부터 최선을 다하며 크리스천의 삶을 사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보이지 않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가치를 최선의 가치로 여기고 사는 것이 신앙의 시금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작은 일 하나부터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면서 내게 주어진 영역의 가까운 곳부터 먼 곳으로 펼쳐나가야 한다. 이때 사명도 커지고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죽 한 그릇, 쌀 한 포대로 노숙자를 섬겼던 것을 지금의 본사랑 NGO로, 아프간 선교사님의 사진전을 섬겼던 것을 전 세계 선교사를 케어하는 본선교센터로 성장시키셨다. 처음부터 큰 일로 시작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많은 이와 협력하고, 작은 일, 또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하나님께 더 집중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길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주신다."
롤모델,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나의 감사한 동역자인 남편
-여성 CEO로서 어떤 길을 걸어왔나. 또 지금까지 많은 영향을 받은 리더는 누구인가.
"부부경영을 하다 보니 24시간 붙어 있어야 하고, 일과 가정이 분리되지 않는 점 등 힘든 점들이 있었다. 그러나 기업에 남성들이 많다 보니 여러 가지 협상을 해야 할 때 남편이 주도적으로 했고, 나는 그것을 위해서 기도했다. 가정과 일을 병행하면서 아이들 3명, 어머니, 시누이들과 함께했다. 아무래도 엄마 역할을 잘하지 못했고 그래서 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2007년 한 신문에 빌 게이츠 부인 멜린다의 이야기가 실렸다. 이들이 빌&멜린다 게이트 재단을 설립해서 에이즈 환자, 빈곤아동을 살리는 일을 해서 도전받았다. 그래서 나도 남편에게 이런 재단을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신청한 지 3년 만인 2009년에 본사랑재단이 세워졌는데, '하나님께서 왜 빨리 안 주시지' 하고 반문한 적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나의 허영, 명예욕 등을 다 내려놓게 하신 시간이었다. 정말 '저 재단 안 할게요' 하고 다 내려놓으니 하나님께서 본사랑재단을 주셨다. 빌&멜린다 게이트 재단은 그들 사후 40년 동안 운영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해 놨다고 한다. 우리 본사랑재단도 모범적으로 운영해서 많은 사람에게 도전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한 명은 내 남편이다. 대학교 1년 선배로 만났는데, 항상 남편에게 감사한다. 남편은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사람이다. 강한 사람에게는 강하게 어필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약한 모습으로 그들을 보살피고 같은 편이 되어 준다. 가난하고 돈 없는 집안의 홀어머니의 외아들이었던 남편과 결혼한다고 할 때 반대도 많이 받았지만, 남편은 항상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교육도 같이 받고 늘 동등하게 대우해 주는 동역자다. 물론, 가끔은 나를 힘들게 하고 비판도 많이 하지만(웃음), 나를 성장시킨 장본인인 남편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최복이 대표는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며 길을 안내했다. 얼마나 대단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 누구보다 분주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그가 직접 앞장선 것일까. 잠시 후 최 대표가 안내한 곳은 채플실이었다. "여기가 우리 채플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매일 아침 예배드리고 기도하죠. 이곳이 본월드미션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에요." 기업에서 매일 큐티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 없냐고 물었다. "큐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 친구도 있죠. 그럴 때마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신다고요." 최 대표는 말을 이어갔다.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걱정하지 않아요.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죠."
기도와 하나님에 대한 감사로 일군 그녀의 삶과 사역의 이야기 속에는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영적인 힘이 있었다. 아마도 그것이 오늘의 본죽·본사랑·본미션을 일군 원동력이리라. M매장을 통해 전 세계로 선교의 지경을 넓히는 최 대표의 사역이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풍성하게 결실하길 기도한다.
*최복이 대표는
1964년 충남 청양에서 출생하고,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사회복지전공 석사과정을 마쳤다. 2002년 본죽을 창업하고, 본브랜드 연구소장과 본아이에프 대표이사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 본사랑재단, 본월드미션 이사장이자 본월드 대표이사로 섬기고 있다. 탁월한 경영인으로서 아름다운 기업인상, 행복나눔인상, 한국프랜차이즈대상 대통령상 등을 수상하였다. 시인이기도 한 최 대표는 1994년 등단하여 아동문학평론 신인상, 랭보문학상, 임화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고독한 날의 사색』, 『미루나무 길』, 『사랑의 묘약』, 『속 깊은 편지』, 『내가 두고 온 우산』, 『길 위의 위안』 등과 간증집 『7전8기 무릎경영』 등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