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칼럼] 하늘나라와 연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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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많이 경험한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어 그 앞에서 몸부림을 친다.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견딜 수 없다. 그래서 원망하고 저항해 본다. 그러나 어쩌랴.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으니.

최근 두 주간에 세 가정의 장례를 치렀다. 어느 장례치고 허망하고 애통하지 않은 장례가 어디 있으랴마는, 33세의 젊은 여자 청년의 죽음은 가슴 메어지게 만들었다. 그러니 그 부모의 심정이야 오죽하랴.

그 장례의 슬픔 속에서 나는 외국에 나가 있는 두 딸과 학교 앞에서 자취하고 있는 아들과 가족 채팅방에 올렸다. "사랑하는 아가들아~ 너희들이 아빠 곁에 함께 있어줘 너무 너무 고맙다." 사랑하는 이들이 내 곁에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새삼스러웠다.

인터넷에서 본 작가 故 박완서 씨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는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나이 40 넘어서 문단에 데뷔했다.

그녀에게는 딸 넷, 아들 하나가 있다.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적어도 그녀에게 아들은 단순한 아들 이상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보배이자 자랑거리였다. 삶의 의미였고, 희망이다. 감사하게도 아들은 잘 자라주었다. 서울대 의대를 나와 인턴 수업을 받는 기대 이상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1988년 병원 당직날, 아들은 교통사고로 이 세상을 떠났다. 석 달 전 암으로 남편을 잃었다. 배우자를 잃은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었다. 결국 그녀는 작가로서 절필을 선언하고, 수녀원으로 들어갔다. 그때 아들을 잃은 어미의 애통한 마음을 가톨릭 잡지 <생활성서>에 수필형식으로 일 년간 기록했다. 그것을 모아 만든 것이 <한 말씀만 하소서>이다. 수필이나 소설이라기보다는 일기이다.

그녀는 하나님께 "한 말씀만 해 달라"고 목 놓아 애절하게 간구했다. 왜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데리고 가야만 했는지?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애원하는 아들을 잃은 어미의 절규를 외면하고 끝내 아무 말씀도 없이 침묵하셨다.

이제는 원망으로 돌아섰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나에게 이런 고통을 줄 수 있느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한 말씀도 당신의 자녀에게 내리지 않을 수 있느냐?' 가슴 아픈 질문과 원망이 쏟아져 나왔다.

"내 아들은 죽었는데도, 기차는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유치원을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까지는 참아주었지만, 88올림픽이 그대로 열린다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내 자식이 죽었는데도, 고을마다 성화가 도착했다고 잔치를 벌이고 춤들을 추는 것을 어찌 견디랴. 아아, 내가 독재자라면 1988년 내내 아무도 웃지 못하게 하련만.... 미친년 같은 생각을 열정으로 해 본다."

일 년 후 마지막 장에서 그녀는 이렇게 마무리했다. "일 년 전, 내가 그렇게 고통하고 신음할 때, 수없이 되물었던 질문, '하나님, 한 말씀만 하시옵소서.' 그러나 하나님은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없으시다. 그러나 그 고통의 순간을 지나올 때, 내가 그렇게도 원망할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나의 원망을 받아줄 하나님이 안계셨다면, 오늘의 나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고통의 순간에 수많은 원망 섞인 질문을 던질 때, 그 많은 원망을 고스란히 들어주셨던 하나님, 그분의 침묵은 더 많은 원망을 듣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배려였던 것이다."

박완서는 한 수녀님께 이렇게 토로했다. "제 아들은 잘못한 것도 없고, 정말 착하게 살았는데, 그리고 나도 하나님이 살라는 대로 잘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왜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그때 수녀님이 대답했다. "사람들은 왜 내가 당해야 하냐고 하지만, 왜 내가 당하는 건 안 되지요?"

그 말을 들은 박완서는 더 이상 슬픔에 빠져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왜 하필 내 아들을 데려갔을까? 하필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 집요한 질문과 원한을 '내 아들이라 해서 데려가지 말란 법이 어디 있나? 왜 나라고 그런 일을 당하면 안 되는가?'라고 고쳐먹을 수만 있다면, 아아 그럴 수만 있다면, 구원의 실마리가 바로 거기 있을 같았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상하고 지친 사람들에게 하늘나라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하늘나라를 맛보게 하셨다. 그리고 하늘나라를 예비하기 위해 하늘 아버지께로 가셨다. 그분은 온 세상의 통치자로 지금도 하늘나라 백성들을 다스리고 계신다. 언젠가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를 맞아주실 것이다.

성도들도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서 갈등하고 고민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 땅에 있는 나라와 질서'에 연결시키지 말고, '하나님 나라'와 연결시켜야 한다. 그러면 많은 문제와 상황들이 이해되고, 해석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

적어도 성도는 하늘나라와 접속하고 사는 존재이다. 이 땅을 넘어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이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게 아니라 하늘나라에 속한 것을 추구하며 산다. 이 세상 질서와 통치를 넘어 하나님의 질서와 통치 안에서 생활하며 산다. 이 세상은 다 지나가고 만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도성이 도래하고 있으니까.

성도는 매사를 '나, 사람들, 환경'과 결부시키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시킬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일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한다. 모든 삶의 영역을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고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그런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고 전하며 살 것이다.

박완서는 한때 시시한 대학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를 대할 땐 은근히 깔보는 마음도 있었음을 고백했다. 그들과 비교하면 비교할수록 아들은 더욱 돋보였다. 그러니 제 아무리 속 깊고 마음을 비운 어미라 할지라도 그런 아들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바닷가에서 기념품의 재료가 될 돌을 줍는 노파를 보며 상상했다. '저 노파는 혹시라도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주정뱅이 같은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마음에 밀려오는 걸 느꼈다. '그런 아들이라도 있다는 것이 부럽다.'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그런 아들이라도 있다는 것이 부럽다.' 성도의 딸이 부모 곁을 떠나는 것을 보며 그 말을 떨쳐버릴 수 없다. 늘 성도들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존재 자체로 감사하자'는 말이 더 실감난다. 왜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존재 자체로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걸까? 왜 자꾸 그들이 가진 조건과 환경과 모습을 통해 평가하고 판단하고 받아들이려 하는 걸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이라도 기뻐하시는데, 나는 왜 기뻐하지 못하는 걸까?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서 있지 못하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불평하고 잔소리 하는 내가 죽도록 싫어질 순 없을까? 그들이 집을 박차고 나가면 절감할텐데, 그들이 이 세상을 하직하고 내 곁을 떠나면 그때서야 통곡하며 고백할 건데, 왜 진작 그걸 깨닫지 못할까? 그런 내가 한심해야 한다.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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