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현대주의 신학의 종교다원주의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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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주 칼럼]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주의, 복음주의적 고찰(1)

▲발표하고 있는 이동주 박사(왼쪽에서 두 번째).

▲발표하고 있는 이동주 박사(왼쪽에서 두 번째).

그리스도의 부활이 빈 무덤 사건이 아니라는 포스트모던 신학 주창자인 감리교신학대학교 한 교수가 교단에서 출교를 당한 일이 있었다(1993년).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모든 학문적 분야에 이미 들어와 건재하는데, 왜 교회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났어야 했는가?

필자는 교회가 포스트모던 신학을 수용할 수 있는가, 포스트모던 신학이 교회에 들어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가 등에 관해 연구하여,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복음주의적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미 한국에 익숙해진 외래어이긴 하나, 그 번역은 '탈현대주의'라 해도, '탈근대주의'라 해도 만족스럽지 않다. 필자는 Postmodernism(현대 이후)이 안고 있는 미래적 어감 때문에 탈현대주의로 번역했다.

1. 탈현대주의의 발전과 개념

탈현대의 시작이란 말은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주장하는 하버마스(J. Habermas)는 '탈현대의 독특성'이라는 다원성이나 임의적 성격이 이미 현대적(modern) 특성 내지 전현대적인(prämodern) 하부복합성(Unterkomplexität) 이라고 하며 현대주의를 변호하였다.

그러나 1883년 아도르노(Adorno) 회의에서 '하나의 유령(Gespenst)'이라고도 묘사된 탈현대주의는, 이미 1870년 영국 Salon 화가였던 채프먼(Chapman)이 그린 가장 진보적인 그림에 대해, 친구들이 '탈현대주의 미술'이라 비판한 일이 있다.

100년 후인 1969년, 문학잡지 'Playboy'에 실린 휘들러(Leslie Fiedler)의 탈현대적 논문에 관해 논쟁이 시작됐다. 그 기본 형태는 언어의 다원주의였고, 허구와 사실, 신화와 현실, 꿈의 세계와 기계의 세계가 병행되고 있었다.

이후 건축 분야에서 탈현대 예술을 처음 시행한 사람은 영국으로 귀화한 미국인 젱크스였다(Charles Jencks, 1975). 그는 Fiedler의 개념을 건축에 적용시켜, 여러 형식의 건축양식을 혼합하였다. 탈현대적 음악 형태로는 장조와 단조가 파괴되고 불협화음 또는 전적 침묵 등으로 연주되며 우리 귀에 그리 낯설지 않다.
이러한 다양성을 튀르크(H. J. Türk)는 '생각 없는 (임의의) 다수(gedenkenlose Vielfalt)'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탈현대주의의 특징은 1985년 이미 연극, 무용, 음악, 예술, 건축, 문학, 철학, 심리학, 자연과학 등의 전 분야에서 나타났고, 그 특징은 불확실성, 파편성, 표준의 해체, 자아 상실, 기반 상실, 명시할 수 없고, 풍자적이고, 불순하고, 카니발이며, 참여, 짜맞추기, 내재성, 다양성 등으로 설명되고 있다.

1991년 7월 9일자 조선일보는 탈현대주의의 특징을 괴이하거나 새로운 것, 대중적인 것, 예술의 자율, 합리성을 포기한 문화 현상, 초현실주의, 무정부적 경향, 기괴한 행위, 수평적 해체주의, 불손, 천박성, 생활 세계의 자율성, 시민사회의 다원성, 평등, 참여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1979년 처음으로 미학과 사회학으로부터 탈현대주의를 철학에 수용한 사람은 프랑스 파리 대학 철학교수인 리오타(J. F. Lyotard)인데, 그의  La condition postmodern 이라는 책으로 말미암아 탈현대주의 논쟁은 시작되었다. 그것은 그의 '메타-이야기(Meta-Erzählungen)'에서 드러난다.

'메타-이야기'란 현대를 지배하던 두 개의 '큰 이야기(große Erzählungen)'로서, 역사도 아니고 철학도 아닌 헤겔과 마르크스의 사변적인 '역사철학'을 말한다. 즉 세계를 통일하고 획일화하는 허무한 신화 같은 헤겔주의와, 다 붕괴되어 버린 마르크스주의를 일컫는 말이다. 이 두 이야기가 끝나면서 통일성과 획일화는 섬찍하고 혐오스러운 것이 되었고, 그로 인해 현대주의는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코스롭스키(P. Koslowski)는 헤겔의 철학을 영지주의 내지 현대 이단이라 규정하는데, 그 이유는 인간이 신이 되는 과정의 일부라고 하는 것 때문이다. 그는 또 마르크스를 헤겔의 영지주의에서 생성된 유물주의적 이단으로서 '기독교 이단의 이단'이라고 하며, 그는 이러한 현대주의에 대해 하나님을 철저히 세속화하고 인간을 철저히 신격화했다고 비판했다.  

코스롭스키는 인간이 절대자가 되는 이론 때문에 헤겔과 마르크스에게서 영지주의적 요소를 발견하고, 메타 이야기를 신화라고 호칭한 리오타를 치하하였다. 코스롭스키는 모더니즘의 특징인 '재신화화(Remythologisierung)' 내지 무신론적이고 파괴적인 신비(dekonstruktivistische Mystik)는 포스트모더니즘 속에도 그대로 남아 있지만, 현대의 '거대한 이야기'는 이미 끝났고, 일원론적 영지주의도 극복했다고 보았다.

코슬롭스키(Koslowski)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헤겔과 마르크스적인 역사철학적 유토피아 사상은 파멸되었다. 그러나 구소련의 붕괴 이후 비합리주의(Irrationalismus)적 해체주의가 역사에 등장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치 내지 전체지향적 현대주의적 요소를 완전히 떠나서, 이미 현대주의의 내부 구조였던 다양성만이 더 확실해지고 철저해진 탈현대주의인 것이다.

2. 탈현대주의 신학의 해체주의적 특성

처음으로 탈현대주의 신학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전 감신대 교수 홍정수 박사의 번역 작품을 통해서이다. '근대 후기'라고 번역된 '포스트모던'의 특징은 번함(F. B. Burnham), 벨라(R. N .Berllah), 슈나이더(S. M. Schneider), 윌리암스(R. D. Williams)에 의해 공통적으로 제시된 다원주의와 상대주의이다. 이러한 특징은 공통언어가 없어짐으로 인한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시온의 언어를 다시 배우고 성서 문화를 복구해야 한다는 린드벡(G. A. Lindbeck)에 의해서도 공통적으로 제시되었다.

밀러(J. Miller)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을 철저한 상대주의와 불확정성과 비결정성, 주관성 및 참여라고 한다. 그는 모든 지식을 문화적 가공물로 보며, 지식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생태학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모든 지식은 역사적이며, 불완전하다. 새로운 체계가 과거와 비논리적인 관계에 있더라도 상관이 없다. 이들에게는 진리의 척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계관이 다르고 구원관이 달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다원주의가 탈현대주의이다.

J. Miller가 하나의 기독교인으로서 무로부터 창조를 부인하면서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 세계'와 '지금도 계속 창조되고 있는 과정'을 동시에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진화든 창조든 그에게는 아무것도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탈현대주의는 부정확성, 철저한 상대주의, 다원주의, 탈경전성, 탈규범성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홍정수 박사는 빈 무덤을 부정하면서, 부활의 의미를 '후천 개벽'이나 '하나님의 정의의 심판의 시작'이라 풀이하고, 부활의 뜻을 광주 사태가 민주 항쟁이 된 것, 망월동 원혼이 되살아나고 그들에 의해 세상이 새로워지는 것 등으로 풀이하게 된 원인이 바로 이와 같은 탈현대주의 탈규범적이고 해체적인 성격으로 인한 것이다.

탈현대주의의 이러한 해체주의적 성격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핵심이 파괴되어도 거부감이 없는 철저한 상대주의와 다원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탈현대주의와 나란히 유행한 코페르니쿠스적인 신(神)중심주의적 종교다원주의 신학도 동일하게 해체적이고 탈규범적인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이 신중심주의 모델은 현대주의와 병행되는 포괄성과 통일성을 추구하는 듯 보이지만, 아래와 같이 철저히 비논리적이고 모순적인 통일을 시도하기 때문에 필자는 이를 탈현대주의 안에 포괄했다.

종교다원주의적 신 중심주의 모델로서 한신대 김경재 교수는 하나님을 에베레스트 산에 비유하고 세상 종교들을 그 산정에 오르는 등정로들로 보며, 다른 종교에도 그들 나름대로의 구원의 길이 있음을 인정하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니터(P. Knitter)와 같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 외에 다른 곳에 계시할 수 없다는 독단을 극복하라고 말하고, 다른 종교는 일반 계시에 의존하고 기독교는 특수 계시에 입각했다는 학설을 '기독교 우월감'이나 '계시 이분법'이라고 거절하였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 자체는 절대적이지만 그 계시를 받아 응답하는 종교, 응답, 제의, 상징, 교의, 신학은 문화 역사적 삶의 자리에 따라 다양하고 상대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의미하는 신 중심주의 모델을 주장하는 이정배 교수 역시 "신학은 이제 교회 중심주의, 그리스도 중심주의를 넘어 신 중심주의 또 우주, 생명 중심주의에로 자신의 사유 모형을 급격히 전환시켜 나가야만 하는 것"이라면서 니터의 말을 인용하여 '지평적인 융합'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가 이슬람교의 유일신적 하나님의 개념을 필요로 하고 '이슬람교의 유일신관'을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에 도입하자고 제안한다.

그는 또 궁극자와 유한자를 구별하는 기독교는 브라만과 아트만 사이의 비이원론적으로 보는 직관력을 필요로 한다고 함으로써, 인격적인 창조주 하나님과 범신론적인 비인격적 브라만을 통일시키고자 한 것이다. 즉 범아일체(汎我一體)의 힌두교적 직관력을 기독교에 수용함으로 그는 범신론적 신인 융합의 사상에 기독교를 통일시킴으로서 인간 신격화를 꾀하는 종교 혼합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직선적인 창조론적 기독교 세계관과, 창조론도 없고 종말론도 없는 원형적인 힌두교적 세계관을 어떻게 통일하겠다는 것인가? 이정배 교수는 가톨릭 시인 김지하의 글을 인용하여 "하늘은 연합하고 있는데 왜 이 땅의 종교인들이 하나가 되고 있지 못할까?"라고 탄식하며, 예수의 삶과 죽음을 하나의 비유로서 이해해야 할 것을 주장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실제성을 부인함으로서 기독론 뿐 아니라 구원론도 일체 상대화하거나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사고는 전체 지향적인 현대주의적 혼합주의와, 탈규범적이고 해체적인 탈현대주의적인 사고를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이다.

현대주의의 전체주의적 성격과 탈현대주의의 해체주의적 혼합성격은 존 힉(J. Hick)의 사상에서도 발견된다.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학 모델에서 벗어나 소위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에 의한 신 중심 모델을 제시한 힉은 모든 종교의 배후에 하나의 신적 실재가 있고 모든 종교적인 표현을 상대적으로 본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종교의 공동 내용을 '하나님'이라 부르는 것을 유신론적 해석이라 하여 거부하고, 불교 같은 종교에 적합한 '실재하는 것(the Real)' 또는 '참된 것(the True)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가 제시한 새로운 신개념인 'the Real' 또는 'the True'는 기독교 하나님을 포함한 모든 유신론적 神을 초월한 神('God beyond God' 또는 'God above the God of theism')을 제안했던 폴 틸리히(P. Tillich)의 구상과 문자적으로 동일한 것이며, 기존의 기독교 세계관과 계시신앙과 도그마를 완전히 해체한 것이다.

힉은 예수가 자신을 신의 아들로 자칭하지 않았다고 한다. '신의 아들'이란 다만 유대교의 '신의 아들' 이미지에서 발전한 신화와 은유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의 이미지'는 그에게 있어 '야훼, 알라, 크리슈나, 파람, 성육신, 브라만, 니르바나'이며, 세계 종교들이 다 하나의 신적 실재에 대한 응답들이라고 한다.

그는 또 선재하는 로고스의 수육과 동일한 방법으로 '선재하는 불타의 수육'론이 발전했다고도 한다. 그는 우리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의 공존을 믿는 다면 그것은 이단이고 또 그의 수육을 문자적으로 믿어도 이단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존 힉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신 중심주의와 종교다원주의는 하나님의 계시를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육신을 다 부정하고 세상에서 유일한 구원의 길인 하나님의 구속과 칭의의 길을 거부해 버렸다.

기독교 복음의 탈현대적 해체적 성격은 1991년 2월 7일부터 호주 캔버러에서 열린 제7차 WCC총회에서 강연된 영적 혼합주의 성령론 에서도 명백히 드러났다. 그것은 특히 이 총회에서 2명의 대표 주제강연자 중의 하나로 이화여대 정현경 박사가 발표한, '성령이여 오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라는 강연에서였다.

그는 초혼문을 적은 창호지를 불태우면서 버림받은 애굽인 하갈의 영으로부터 우리아의 영, 입다의 딸의 영, 잔다르크의 영, 원폭 실험 지대에서 녹아 버린 어린이들의 영, 인간의 탐욕으로 약탈당하고 파괴되고 착취된 땅과 공기와 물의 혼 등 십자가에서 착취당하고 죽임을 당한 우리의 형제인 예수의 영과 더불어 20여 가지의 한 맺힌 영을 초청하였다.

1991년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열린 신학정책 협의회 강연장에서 필자는 그에게 '죽은 사람의 영과 성령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고 질문하였다. 그 때 그는 둘 사이의 관계를 "붉은 장미와 그 향기와 같은 것이다." , "우리 속에서 울부짖는 하나님의 영과 역사 속에서 울부짖는 목소리의 표현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인도 벵갈의 불이론(不二論) 베단타 철학의 실현자 라마크리슈나(Ramakrishna Parama- hamsa, 1836-1886)는 정현경 박사가 주장한 바와 병행하는 주장을 하였다. 그는 인격신과 비인격신과의 차이를 "우유와 그 흰색처럼, 다이아몬드와 그 광채처럼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는 사마지(황홀경)의 경지에서 유신론과 범신론을 하나로 통합했다는 사람이다. 모든 종교가 궁극적으로 하나라고 보는 그는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를 다 수행하고 체험적으로 불이론적 합일의 경지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 수행의 내용이란 그의 신앙 대상과의 일체를 체험하는 것이다.

기독교까지 체험적으로 합일하고 싶었던 그는 1874년 11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그림을 응시하던 중 그 그림에 사로잡혔다. 그러다 "문득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그림에 시선을 멈추었다. 신선한 감동이 그를 사로 잡았다. 그가 응시하고 있던 형상들은 생기를 띠었고 그 얼굴에서 나온 빛줄기들이 그의 영혼 속으로 꿰뚫고 들어왔다"고 했다.

그때 그는 "오 어머니 제게 무엇을 하십니까?"라고 외쳤다. 이 순간 그는 "그리스도"가 그의 영혼을 소유했다고 느낀 것이며, 그리스도와 영원한 합체를 이루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종교의 목표를 '하나님을 실현하는 것(God-realisation)'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이 신비체험으로 그리스도의 본질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라마크리슈나야 말로 불이론적 일원론의 전제하에 모든 종교를 궁극적으로 하나로 보는 범신론적 종교다원주의자이며, 모든 종교를 다 같은 신에게로 향하는 여러가지 다른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정현경 박사의 성령론은 범신론과 맥을 같이한다. 여기에 강신론(Spiritism), 성별주의(sexism) 등이 혼합되어 있다. 그는 성령을 기(氣)와 동일시하면서, 기는 생명의 호흡이고, 생활의 에너지이며, ruach(루아흐), 창조의 영, 하늘과 땅과 인간을 조화시키는 영이고, 기가 조화를 이루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또 성령을 여성신이라고 한다. 관세음보살은 전쟁의 신인 남성신에 반해 성령은 자비와 지혜를 지닌 동양의 여성신이라고 주장하며, 성령의 사상이 관음으로부터 왔다면서 '그녀를 맞으라'고도 하였다. 그는 후기 불교에서 발전된 타력구원 사상의 신화적 인물인 관음보살을 역사적 창조주 하나님의 영과 혼동하는 과오 속에 빠지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신의 상징인 땅을 '거룩한 땅, 성령의 땅, 우리 어머니의 땅'이라 하며, 군중들로 하여금 모두 신발을 벗게 했다. 그에 의하면 여신은 땅이고, 성령이고, 관음보살이다.

이렇게 그는 성령을 모든 피조물, 사령, 동물영, 자연영, 기, 여신, 보살과 동일시함으로써 복음적인 신앙을 떠나서 혼동의 영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콘스탄티노플의 니케아 신조(381년)는 하나님의 영이며, 동시에 아들의 영인 성령을 단수이며 중성으로 표기하였다. 그러나 정 박사는 근거 없이 그의 성별주의에 의해 성령을 여성으로 표시한 것이다.

성경적인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영(행 1:8),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영(고전 12:3),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영(요 16:3), 창조주 하나님의 영이다. 그러나 정현경 박사의 탈현대주의적 성령론은 자기 동질성 상실과, 기준 없고 임의로운 해석으로 말미암아 여신, 보살, 기(氣)등으로 변질시켜 버렸다. 이와 같이 신학자들이 스스로를 탈현대주의라고 하지 않아도, 이미 현대는 탈현대주의적 해체주의 사상으로 만연해 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탈현대주의 특징에 관해 바뗑(Gianni Vattim)은 근본부터 이질적인 요소를 수용하되 통합하지 않는 점으로 지적한다. 또 켐퍼(Dieter Kemper)는 현대주의의 계승이며 동시에 그것의 배반으로, 미의 추구이며 동시에 미에 대한 마비로 설명한다. 그것은 일종의 파멸의 암시이다.

탈현대를 더 파괴적으로 보는 사람은 데리다(Jaeques Derrida)이다. 그는 탈현대적 다원성을 현대적 바벨탑의 파괴에 비교하며, 그것을 죽음의 의미로 풀이한다. 탈현대를 이보다 더 비참하게 보는 사람은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이다. 그는 어떤 개혁이나 희망이 없는 꿈을 상실한 이미 닥쳐온 미래의 불행에 대해 진술한다. 그는 탈현대(Postmoderne)를 탈역사(Posthistoire)라는 개념으로 대치하고 종말적인 유토피아는 이미 도래했기 때문에, 이젠 종말도 없고 어떤 희망도 없다는 흑색 진단을 내렸다. <계속>

이동주 소장(선교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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