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함께했던 날들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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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마을교회 우남식 목사 아내 안은경 사모의 시와 글

▲안은경 사모(오른쪽)와 친정어머니.

▲안은경 사모(오른쪽)와 친정어머니.

대학마을교회 우남식 목사 아내 안은경 사모의 시와 글을 싣습니다. 안은경 사모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이 시를 썼고, 지난 달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래 산문을 썼습니다. -편집자 주

어머니

1908년 2월 서산 지곡의 시골마을에서
최참봉댁 맏딸로 태어나신 어머니,
고운 모습에 눈망울이 크고 아름다우셨지요.
 
100년의 세월을 온몸으로 부딪치시며
조선 왕조의 멸망과 일제 강점기, 해방, 6·25 전쟁...
우리 민족의 힘겨웠던 그 시절을
묵묵히 살아내시었습니다.

이 민족에게 질풍이 불어치던
험난한 그 시절

꽃다운 10대에 가마 타시고
단양 우씨(丹陽 禹氏) 문중으로 들어오시어
삼남 사녀 두시고

한 마디 어렵다 하지 않으시고
그 매서운 손길로
텃밭 일구시며
집안에 작은 불씨가 되어
얼어붙었던 그 시절
몸 붙일 곳 없는 우리들의 마음을,
온몸으로 녹여주시고
그 품에서 우리를 안아 고이 키우셨습니다.

그 모진 세월,
넘기 힘든 보리 고개
보리 베어 푸른 죽 쑤어 상 차려주시고
가난함을 이기시느라
십리 길 걸어
볏단을 지어다가 새끼 꼬아 가마니 만들어 팔아
자식들을 먹이곤 하셨습니다.

그 추운 겨울 어머니는
밤새워 길쌈하시고
솜 놓아 무명 저고리 바지를 손으로 지어
이튿날 아침이면 수북히 놓여진 그 옷가지,
그 따뜻한 사랑으로
살에 이는 겨울바람을 막아주셨습니다.

어머니, 눈 붙일 겨를도 없이
그 고단한 몸 일으켜
단정히 머리 빗어 올려 비녀 꽂으시고
온 집안을 살피시며 일하시며 자식들 돌보시느라
그 긴 세월이 바람처럼 지나가는 것조차 잊으시고
살아오셨습니다.

어머니, 
그 어느 구석 어머니의 사랑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있었으리요마는
늦으막 얻은 막내아들 고이시느라
전쟁 중에 가슴 쓸어내리며
품에 안아 모든 정성 쏟으시며
어머니의 가슴은 늘 사랑으로 가득하셨습니다.

어머니,
이 세상에서 어머니보다 더 따뜻하신 사랑을
어디에서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어머니보다 강하신 이름을 어디에서
부를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처럼 순수하고 인자하신 모습을
어디에서 만나 뵈올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의 그 손길, 그 사랑이 거름이 되어
우리 칠남매는 이제 장성하여
100명이 넘는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평생 갚을 길 없는 어머니 사랑에 빚진 저희들은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그 부지런함으로
그 사랑의 넉넉함으로
사는 날 동안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열매를 맺어 가겠습니다.

막내며느리 따라
두 손 모아 간절히
수줍게 기도하시던 어머니

어머니 하관하시던 날
흐린 하늘이 열리고
눈부신 햇살 사이로
어머니의 영혼은 하늘로 올리우셨습니다.

이제는 그 몸 우리 곁에서 떠나가시고
우리 마음에만 남아계신 어머니,

하늘에서 내려 보시고
언제나처럼 따뜻한 웃음으로
자식들 이름 정다이 불러 주실 어머니,

사랑으로 만들어 놓으신 그 그늘에
길가다 힘들 때면 어머니 생각하고
기쁠 때 달려와
그 곳에서 잠시 쉬지요.

고단한 여정 마치시고
하늘에서 편히 쉬소서.

2008년 11월
막내며느리 안은경 올림

어머니와 함께했던 날들을 추억하며

저의 어머니 임진희 권사님은 1933년 음력 8월 그믐날 태어나셔서 이상해 전도사님의 순교비가 있는, 온 마을이 예수님을 믿던 시골 동네의 무형교회(전북 익산군 망성면 선리)에서 주일학교 시절 예수님을 믿고, 대전 영광장로교회에서 권사로 교회를 섬기시다 2017년 5월 29일 하나님나라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무릎 꿇어 기도하시며 늘 감사함으로 살아오셨습니다. 저의 어린 날, 부활절 아침이면 어머니는 앞치마 단정히 두르고 연탄 난로 위에 커다란 솥을 올려놓고 물을 한 솥 가득 부어 끓여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부활절은 어머니의 커다란 솥에 가득했던 따뜻한 물처럼 제 마음을 넉넉히 따뜻하게 만든 날로 기억합니다. 중매로 만난 믿지 않는 남편을 위해 예수님을 믿기까지 사랑의 수고를 하셨습니다. 구두를 깨끗이 닦아놓고 건강 과일 술을 집에 담가둔 채 남편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으시고, 어머니는 아내로 그렇게 남편을 위해 일생을 섬기는 삶으로 기도하셨습니다.

마침내 아버지는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집사로 교회를 섬기시다, 11년 전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무학이셨던 어머니는 교회에서 한글을 배워 늘 성경을 읽으시며 세 자녀를 위해서는 기도와 인내가 교육의 전부이셨습니다.

어려운 시절, 자수성가하시어 법원에 다니시는 아버지를 만나 힘든 시절을 알뜰히 살아오시면서 우리 삼남매를 키워주신 어머니, 중학 입시를 준비하던 그 시절 밤늦게 집에 오면, 어머니는 조그만 냄비에 밤을 삶아놓고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교수가 꿈이었던 큰 아들이 유학을 떠났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온 후, 그 긴 세월을 포기하지 않는 모정으로 아들을 눈물로 감싸 안고 평생 사랑으로 방패가 되어주셨습니다. 큰 아들이 자신의 방에서 나와 성경을 들고 예배를 드리고 어머니의 병석 마지막 4개월을 지극한 마음으로 섬긴 일은,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기도를 들으시고 베푸신 사랑의 기적입니다.

어머니는 둘째 아들을 교수로 키우시고, 큰 딸인 저를 사모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방의 전축에서는 어머니가 틀어놓은 찬송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교회 목사님을 위해 어느 날 어머니는 한경직 목사님 설교전집을 사오시어 저에게 목사님께 갖다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건축을 하다 몇 년이나 중단되어 있는 한 교회로 가셨습니다. 헌금을 해야겠다며 저를 밖에 세워두고 어둑한 교회로 들어가 교회 헌금함에 헌금을 드리고 오셨습니다. 얼마나 어려우면 저 교회가 저렇게 몇 년 동안 예배당을 짓지 못하고 있겠냐며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집에 세들어 온 사람들에게, 조카들 친척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저에게 다리미 장사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길을 가는데 다리미 장사가 앞에 가면서 "다리미 사시오! 다리미 사시오!" 하고 외치며 가는데 '아, 전도를 저렇게 해야겠구나' 생각했다고 하셨습니다.

"다리미 장사가 외칠 때 다리미가 필요 없는 사람은 그 말이 들리지 않지만, 다리미를 사려고 했던 사람은 다리미 장사에게 다리미를 살 것이 아니냐? 우리가 '예수 믿으시오! 예수 믿으시오!' 하면, 들은 사람 중에 어떤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예수 믿을 것이 아니냐? 저 사람은 돈을 벌려고 저렇게 부끄러워하지 않고 골목길을 돌아다니는데 우리는 주님을 위해 마땅히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냐"고.

어머니의 수첩에는 마지막으로 전도한 분의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한맹순 이라고 삐뚤거리는 큰 글씨로.... 그 분이 어머니께서 전도하신 마지막 양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한맹순 씨는 어머니께서 병원에 누워 계실 때 오셔서 어머니 곁을 말없이 지키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초등학교 때의 일입니다. 친구들과 놀이를 하다 새로 산 겉옷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너무나 겁이 나 혼자서 바늘에 실을 꿰어 얼기설기 옷을 기워 입고 며칠을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저의 겉옷이 재봉틀로 말끔히 흔적도 없이 기워져 있었습니다.

저는 두고두고 이 일을 생각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의 사랑을 기억했습니다. 두려워 떨고 있던 저에게 왜 새 옷이 찢어졌는지 한마디 묻지도 혼내지도 않고 말없이 저의 찢어진 옷을 기워 새 옷처럼 만들어주신 어머니.... 때로 저의 허물과 부끄러운 모습으로 상처받고 힘들어질 때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은 이보다 더욱 크리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주님의 십자가 사랑의 그림자였습니다.

부모님의 자랑이었던 교사의 길을 버리고 결혼도 하지 않은 제가 이름 없는 UBF(CMI)개척 목자(간사)로 집을 떠나던 날, 어머니는 이불 보따리를 챙겨 처음 집을 떠나는 저의 손에 차비를 쥐어주셨습니다. 친구 같던 저를 보내고 딸의 빈방을 보시며 하나님께 감사하면서도 마음 허전하셨을 어머니를 떠올리면 지금도 그 큰 사랑이 아프게 그립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저를 목자로, 후일 목자의 아내로 떠나보낸 후 일생 저와 저의 사역을 위해 기도로 섬겨주셨습니다. 목사인 사위를 얼마나 어려워 하셨던지 평생 말을 놓지 못하시고 주의 종 목사님 사위와 같이 식사하는 것도 어려워하시던 수줍은 권사장모님이셨습니다.

비 온 후, 집 마당에 돌아다니던 개구리와도 이야기하시고 그 개구리가 사라진 후 어디로 갔나 서운해 하시던 어머니, 복지관 어항 안의 금붕어와도 이야기하시고 집에 계시면 창 밖에 떠오른 달하고도 이야기 하시던 마음이 따뜻하셨던 어머니! 과일을 잡수실 때는 세상에 이런 맛이 어디 있냐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기막힌 맛이다 감탄하시던 어린아이 같이 사랑스러우셨던 어머니, 그러나 아버지를 먼저 보내시고 한동안 외로워하셨던 어머니.

창밖으로 보이는 산 위로 떠오른 달을 바라보시며 어머니의 방에서 저에게 남겨주셨던 시 같은 한 구절

"저 달이 나를 치다보러 왔네. 
내가 저를 이뻐해 줬더니"

2박3일 제주도에 친정어머니와 단 둘이 함께 했던 여행길에 들렸던 이중섭의 서귀포 집 벽에 붙어있던 '소의 말' 중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이 구절을 몇 번이나 외워보시던 어머니, 아버지 가신 후 11년을 때로는 외롭고 서글프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지냈을 그 시간들을 믿음으로 기도로 잘 보내신 어머니, 나는 부족함이 없다 감사하다고 늘 말씀하셨던 어머니, 지금은 사랑하는 주님 품으로, 아버지 계신 곳으로 가신 어머니.

많이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사랑해요, 엄마!

2017년 6월
어머니께서 하나님 나라로 가신 후 
평생 어머니의 사랑과 기도에 빚진 딸, 은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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