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람의 통일’이라는 머나먼 과제
북한에서 11년제 의무교육 기간동안 철저하게 교육받은 것이 있다면, 김일성가 우상화 교육과 함께 '제국주의 철천지 원쑤들'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고 제국주의 본성은 강산이 열 번 변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적개심, 제국주의는 물어뜯어서라도 싸워 이겨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교육이었다.
한국생활 초기,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통일교육차 OO초등학교로 갔던 때가 떠오른다. 강의 전 아이들에게 "북한동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고 질문했더니, 아이들이 한결같이 그들은 우리의 형제이고 통일되어 북한 친구들과 같이 재미있게 놀고 싶다했고, 어떤 아이는 자기가 갖고 있는 연필과 필기장을 나누어주고 싶다고 말해 사상적 혼란을 겪은 때가 있다.
우리 아이들은 한결같이 북한 동포들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형제이고 자기들이 도와야 할 한 민족임을 당당히 말하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철천지 원쑤'라고 말하지 않는 현실에 심히 놀랐다.
그러나 북한은 어떤가? 북한 학생들이 한국 아이들과 동일하게 답한다면, 사상적으로 큰일날 사건이다. '남조선 반동들'은 사람의 탈을 쓴 승냥이로 늘 묘사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성을 가진 포악한 자들로 늘 교육받아 온 어린 마음에는 당연히 증오심이 유발되게 되는 것이다.
북한은 지금도 저들의 '철천지 원쑤'는 미 제국주의와 남조선 괴뢰도당이라고 가르친다. 북한의 학교교육은 늘 미제와 남조선은 때려부셔야 할 대상, 까부시고 쳐부셔야 할 대상으로 적대교육을 강요하고 있다.
심지어 아이들이 운동회 때에도 잔인한 살인교육을 일삼는다. 운동회 때마다 꼭 등장하는 두 과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미국사람 모형과 우리 한국군 모형이다. 이를 '미국놈과 남조선 반동 까부시기'라고 부른다.
양팀을 나누고 이 두 과녁을 세워놓은 뒤, 몽둥이나 총칼로 달려가 먼저 찌르고 때리고 돌아오는 경기이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선생님들이 '지금 내 앞에 철천지 원쑤 반동들이 나타났다는 현실감으로 달려가 단매에 쳐부시라'고 감정을 부추기던 그때이다.
지금 돌이켜 보니, 우리는 너무 비이성적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음을 철저히 깨닫게 된다. 바로 이런 맹목적인 적개심 교육이 '사람 분단'의 아픈 현실이 아닐까 생각된다.
요즘 대한민국에 자유를 찾아온 많은 탈북민들이 휴대전화로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직접 통화하게 되면서, 필자도 언젠가 북한의 가족과 통화할 때 있었던 일이다.
마침 목사님들과 모임이 있어 참석했다가 급히 북한에서 전화가 걸려와 통화를 하는데, 옆에서 대화 내용을 가만히 듣고 계시던 한국 목사님께서 크게 놀라시며 말씀하셨다. "목사님 지금 북한과 통화하는 겁니까? 참 세상에..." 하시면서, 자신이 탈북민들을 만나 북한 이야기를 들어 봤지만 '오리지날 북한 사람'에게 북한 이야기를 한 번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게 통화로 이야기를 좀 나누어 보면 안 될까라고 물어 북한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바꾸어 드렸더니, 그쪽에서 바로 전화를 끊는 것이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 목사님께서 북한 현실을 듣고싶어 바꿨는데 왜 전화를 끊었느냐고 물으니, 화를 내면서 "내가 왜 남조선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가? 난 남조선 사람과 할 이야기 없다"고 아주 냉정하게 끊어버린 일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들은 마치 우리 민족의 '철천지 원쑤'인 남조선 반동들과 말을 섞어서도 안 되며, 늘 불타는 적개심을 안고 사는 것이 애국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들을 형제요 동포라며 화해와 용서를 말하지만, 저들은 지금도 우리를 철천지 원쑤로,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저들의 가슴에 품고 있는 적개심을 과연 어찌 씻어낼 수 있겠는가?
오늘도 조용히 저들을 위해 눈을 감고 기도한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강철호 목사(새터교회, 북기총 대표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