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칼럼] 양심의 호소에 정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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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언젠가 서울 대방동을 지나노라면 버스정류장에 꾸며놓은 시민도서관이 보였다. 순간 내 마음에 찾아온 부끄러운 생각이 있다. '저게 과연 될까?'

사실 나는 시민들의 양심을 믿지 못했기에, 회의적인 결과를 예상했다. 아직까지 우리 국민성으로는 뭔가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가진 게다. 목사로서 품지 말아야 할 부끄러운 생각을 가진 게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세월이 지난 어느 때, 시민도서관은 사라지고 말았다. 서글프게도. 부끄러운 내 생각대로.

언젠가 신문기사에도 별반 다를 바 없는 기사가 났다. "지하철 도서관 채워도 채워도 사라지는 책- 구겨진 양심" 구겨진 양심은 '모럴 해저드'가 지적하듯 도덕적 해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어떤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의식이나 마음씨." 양심에 대한 사전적 정의이다. 우리 헌법에도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기록된 말씀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양심의 법도 주셨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이 심어두신 양심의 법이 작동하게 되어 있다. 양심은 선과 악을 판단하고, 선을 촉구하고 악을 제지하는 도덕적 제동장치이다. 양심의 작동 때문에 행동화되기 이전에 내면에서 이미 악이 고발되고, 제동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양심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양심적인 사람도 적지 않다. 양심이 순기능적으로 작동해야 윤리가 살아나고, 질서가 유지된다. 그런데 양심이 역기능적으로 작동해서 세상이 오염되고, 아픈 현실이 펼쳐지곤 한다.

이렇게 양심이 오염되는 건 아담의 범죄 때문이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면서, 하나님이 만드신 선한 양심이 오염되기 시작했다. 악한 생각을 하고, 악한 일을 저지르는데도 양심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질 않는 게다. 오염되고 부패한 양심은 더 이상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게다.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딤전 4:2)."

그러나 예수님은 마비된 인간의 양심을 다시 살리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인간은 이제 양심까지도 새롭게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믿음은 양심을 정상적으로 작동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양심이 선함을 추구하도록 촉구한다.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딤전 1:5)."

선한 양심으로 선을 쫓을지, 악을 좇을 지는 나에게 주어진 자기 결정권이다. 그래서 삶의 매 순간마다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는 선한 양심의 호소를 저버리고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 1:19)."

휴가철이 다가온다. 쉼과 휴식을 찾아 나서고, 일에 찌든 영혼에 청정제를 공급하고 싶은 게다. 마음과 영혼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기를 원하면서도 휴가를 나선다.

그런데 휴가를 떠나는 순간부터 기분을 망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밀리는 도로에서 새치기를 하는 얌체가 속출하고, 먹고 난 병이나 깡통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린다.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도로에다 튕겨버린다.

드넓은 해변이나 시원한 계곡에는 폐휴지뿐만 아니라 음식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버려져 있다. 분리수거를 할 수 있도록 정성껏 시설을 준비해 둔 펜션에도 쓰레기는 엉망진창으로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다. 자신의 구겨진 양심처럼.

세상에는 더한 양심적 부패도 비일비재하다. 얼마 전에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건도 있었다. 여자골프 세계 1위 유소연 선수는 한국의 자랑거리이다. 국위를 선양하고 외화를 벌어들이는 우리의 영웅 중 한 명이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양심을 종잇장처럼 구겨버렸다.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에게 욕설과 위협적인 내용이 담긴 문자를 전송했다. 양심을 저버린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성처럼, 그도 자신의 잘못을 모른 채 다른 사람을 탓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과했다. "술을 많이 먹고 홧김에 그랬다. 잘못했다."

그러나 부패한 양심의 조정으로 한 행동은 결코 부끄러운 일을 되돌려놓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비양심적인 행동은 딸에게 크나큰 아픔과 상처를 안겨 주었다. 유소연 선수는 아버지의 옳지 못한 행동 때문에 국민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품을 때 양심은 호소한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려 할 때 양심이 고동친다. 내가 어떤 결정을 할 때면 양심이 작동한다. 그때 빨리 점검해 봐야 한다. 내가 양심의 법에 정직한지를! 그렇지 않고 양심을 외면하면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할 수밖에 없다.

한때 양심의 호소를 무시하고 비양심적인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행동을 살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양심은 나를 향해 호소한다. 빨리 깨달아야 한다. 돌이켜야 한다. 베드로는 신앙양심을 속이면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 그러나 닭이 울 때 자각하고 통곡하며 울었다. 그리고 돌이켰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달랐다. 양심의 호소를 저버리고 예수님을 악한 무리들에게 종의 몸값을 챙기면서 팔아 넘겼다. 그때도 양심은 고동쳤을 게다. 그러나 양심의 고동소리를 내팽개쳤다. 깨달을 줄도 몰랐다. 끝까지 자기 길을 갔다. 결국 파멸로 마감했다. 가륫 유다는 나중에 양심선언을 하는 듯 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았던 게다.

양심의 호소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것은 한 개인을 위해서뿐 아니라 한 사회의 질서와 안전을 위해서도 불가피하다. 자신의 양심을 속일 수 있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발각되지 않아도, 법은 끊임없이 추적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2002년 서울 구로구에서 호프집 주인 살인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호프집 주인을 살해하고 금품을 훔쳐서 달아났다. 그러나 증거불충분으로 사건은 미제로 남을 뻔했다. 그러나 태완이법으로 인해 재수사를 하게 되었다. 5개월간의 추적 끝에 최근 범인은 붙잡혔다. 15년 만에!

범인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금품을 노려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범인은 범행에 사용한 둔기를 미리 준비해간 것으로 밝혀졌다.

오늘도 하나님은 각자에게 심어준 양심의 법을 부지런히 작동시키신다. 거기에 우리는 정직하게 반응해야 한다. 자신이 무시해 버려도, 주변 사람들이 보지 못해도, 끝까지 법망을 피할 수 있어도,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을 피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시선 앞에서 선한 양심의 작동에 성실하고 정직하게 반응하며 살아가면 어떨까?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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