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입니까, 아니면 ‘흡혈귀 그리스도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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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2-2] 사상서는 가명, 강화집은 본명으로 썼던 키에르케고어

▲이창우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이창우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키에르케고어의 글쓰기 스타일은 조금 독특합니다. 가명의 저자의 책과 자신의 이름으로 낸 책이 있습니다. 일명 사상서와 강화집이지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상서들은 가명의 저자의 책이죠. 가명의 저자도 여러 명 등장 합니다.

예를 들어, <두려움과 떨림>의 저자는 요하네스 데 실렌티오(침묵의 요하네스라는 뜻)이고, <철학의 부스러기>의 저자는 요하네스 클리마쿠스, <죽음에 이르는 병>, <그리스도교 훈련>의 저자는 안티 클리마쿠스입니다.

퀴즈입니다. 그렇다면, 키에르케고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가명으로 쓴 저자의 책 속에 들어 있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이름으로 낸 책인 강화집 속에 들어 있을까요? 중요한 점은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전부 강화집 속에 있다는 겁니다. 키에르케고어 연구에 있어 가장 큰 맹점은 그가 하고자 하는 말에는 관심이 없고 대부분 사상서들에 집착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가명의 저자가 하는 역할도 다양합니다. 이 시간에는 안티 클리마쿠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안티 클리마쿠스는 키에르케고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어느 정도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인가를 알고 싶다면, 그가 쓴 책인 <죽음에 이르는 병>과 <그리스도교 훈련>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다시 말해, 키에르케고어는 이상적인 기독교가 어떤 것인가를 말하고 싶어 안티 클리마쿠스를 끌어들인 겁니다.

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날 복음이 필요한 곳은 기독교 밖이 아니다. 기독교 세계 안에 다시 한 번 복음은 소개돼야 한다." 이 말대로 기독교 세계에 복음을 다시 소개한 사람이 바로 안티 클리마쿠스이지요. 이 가명의 저자는 '이상적 기독교'를 제시한 인물입니다. 엄밀히 말해, 안티 클리마쿠스가 제시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기준을 오늘날 한국교회에 제시한다면, 아마 대다수는 그리스도인이 아닐 겁니다. 무늬만 그리스도인이지요.

어째서 그러한가? 그 이유는 한 마디로 '제자도'가 생략되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행위 앞에' 두려워 떨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행위 앞에 두려워 떠는 것이 어떤 것인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자기 시험을 위하여> 2부를 읽어보시면 됩니다. <그리스도교 훈련>은 행위 앞에 서는 문제의 '변죽'을 울린 것이라면, <자기 시험을 위하여> 2부는 행위 앞에 서는 문제의 '고갱이'를 제시한 겁니다.

제자는 '스승을 본받는 자'입니다. 제자가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처럼 될 것입니다(눅 6:40). 그렇다면, 스승이 어떤 길을 갔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교 훈련> 3부는 '길'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면, <자기 시험을 위하여>는 그 길이 어떤 길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는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판단하라는 것이지요. 이 길이 어느 정도 좁은 길인지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좁은 길이어서 인간의 생각으로는 발견할 수 없을 만큼 좁습니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세상 사람들은 말합니다. "조심해! 거기에는 길이 없다고!"

다시 말해, 그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길을 걷는 것이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발견할 수 없는 길을 걷고 있으니까요.

한 마디로, 키에르케고어에게서 영성은 곧 '제자도'요, '본받음'입니다. 다른 여타의 종교와 확실히 구별되는 기독교의 본질이기도 하고요.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주님이 가신 길을 묵상하며 두려워 떨어야 하지요. 그러나 문제는 아무도 이 길을 가는 데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달라스 윌라드는 제자도가 생략된 그리스도인, 그분이 가신 길을 걷는 데 관심이 없는 그리스도인을 일컬어, '흡혈귀 그리스도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빨아 먹고 연명하고 있는 자인 거죠. 만약 '그분이 가신 길을 걷는 데 전혀 관심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키에르케고어에게 묻는다면 아마 다음과 같이 말할 겁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키에르케고어에게는 그런 사람은 '흡혈귀 그리스도인'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무늬만 그리스도인이지, 실제로는 불신자보다 구원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닌데 그리스도인인 양 착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안티 클리마쿠스는 그런 착각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쓴 것이고, 자신의 이름으로 직접 쓴 <자기 시험을 위하여>와 <스스로 판단하라!>는 독자에게 정말로 그리스도인인지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구원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이방인일까요,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박식한 학자'일까요? 당연히 키에르케고어의 생각으로 본다면, '박식한 학자'입니다. 신학교 교수, 목사, 전도사 등 말씀을 다루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요.

이 부류에 해당하는 가명의 저자는 <철학의 부스러기>를 저술한 요하네스 클리마쿠스입니다. '안티 클리마쿠스'와 헷갈리시면 안 됩니다! 그는 아주 박식합니다. <철학의 부스러기>를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박식한 지식으로 그리스도를 변증하고 있지만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다양한 생각만 발전시킨 가상의 인물입니다. 그의 글은 아주 어렵지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말씀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받음' 앞에서 단 한 번도 두려워 떤 적이 없었다면,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는 겁니다. 그가 수많은 지식으로, 수많은 설교로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는 있어도 정작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설교를 듣고 다른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니 진리에 가장 근접한 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진리에서 가장 멀리 있는 자이지요. 누구도 이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판단하라!>에 의하면, 이런 자야말로 단단히 술 취해 있는 겁니다. 이런 자는 무엇보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술부터 깨야 합니다!

청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목사의 설교와 신학적 지식을 즐기고 있지요. "와, 우리 목사님 대단하시다. 저런 식으로 복음을 쉽게 풀어 해석할 수 있다니!"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그러나 행위 앞에, 본받음 앞에서는 언제나 말이 없지요. 누구도 그 길을 가려 하지 않습니다. 성지순례를 가 보십시오. 수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기념품을 사지만, 정작 그분의 길을 가려 하지는 않습니다! 과연 이런 인기는 성공일까요? '축복'은 언제나 환영하지만, 그분을 따르는 길은 싫어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언제나 환영하지만 제자가 되는 것은 싫습니다. 그러나 제자가 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들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얼마나 그리스도를 닮는 데 관심이 있습니까? 당신은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요? 당신은 그분의 '축복'은 바라지만 그분이 가신 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그런 무늬만 그리스도인인 사람입니까?

당신은 흡혈귀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니면 더욱 비참하게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착각하여 구원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진, 무늬만 그리스도인인 이방인입니까?

이창우 목사(키에르케고어 <스스로 판단하라> 역자, <창조의 선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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