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 연구(16)
여리고와 아이성을 무찌른 이스라엘은 길갈에 진을 치고 있으면서 본격적인 가나안 점령을 시작하게 된다. 그 첫 번째 과정은 여호수아서 10장에 기록되어 있는 가나안의 중부 및 남부지역에 대한 공격이었다.
본격적인 가나안 정복 전쟁은 여리고와 아이를 점령했던 초기 때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그때에는 도시 하나 하나를 공략하는 전략이었다. 따라서 한 도시를 점령하기 위하여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쳐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전쟁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가나안 점령은 연합군을 형성한 여러 왕들과의 싸움이었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승리를 얻었고, 그에 따라 전쟁 기간도 짧았다. 이것은 초기의 전쟁이 탐색전 성격이었다면, 그 이후의 본격적인 전쟁은 심리적으로 위축된 가나안 왕들과 자신감을 얻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임을 보여준다.
가나안의 중부 및 남부지역에 대한 점령은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은 기브온과 관련이 있었다. 가나안 지역의 왕들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기브온을 공격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기브온은 이스라엘과 화친조약을 맺기 전에 다른 가나안 왕들과 함께 동맹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가깝게 된 것은 곧 가나안 왕들에 대한 배신행위였다. 이에 가나안 왕들은 기브온을 먼저 응징해야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 전략의 배후에는 여러 요소가 작용하였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브온이 비교적 큰 성으로서 잘 훈련된 군대 조직을 지니고 있었던 점이다(수 10:2). 그런 기브온이 자신들의 동맹체에서 빠지게 되면 자신들의 결속력이 크게 약화될 뿐 아니라 또 다른 배신자가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 더구나 기브온을 그대로 방치해 두면 곧 있게 될 이스라엘과의 일전에서 자신들이 협공을 당할 위험성도 있었다.
가나안 왕들의 연합군 형성을 주도한 인물은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었다. 예루살렘 왕이 연합군 구성에 앞장선 것은 지역적으로 예루살렘이 기브온과 가깝기 때문이었다. 이에 아도니세덱은 다른 네 도시의 왕들 곧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야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에게 군대를 동원하여 기브온을 공격하자고 제안하였다. 이들 네 도시는 모두가 가나안 지역의 중심도시들이었다. 헤브론은 예루살렘과 함께 유다산지의 중심지였고, 야르뭇과 라기스는 쉐펠라(평지)지역의 중심지였다. 그리고 에글론은 해안평야지역의 중심지였다.
가나안 연합군의 공격을 받게 된 기브온은 길갈에 진을 치고 있던 여호수아에게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에 여호수아는 즉각적으로 군대를 출동시켰다. 이로서 본격적인 가나안 정복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그렇게 신속하게 군대를 동원하여 기브온을 구해준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것은 기브온과 화친을 맺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기브온과 평화조약을 맺은 것은 이스라엘의 요청이나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브온의 위장전술에 속아 억지로 맺은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여호수아는 기브온이 당하는 위기를 오히려 자신을 속인 것에 대한 하나님의 적절한 보응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그들을 방치해 두지 않고 신속하게 군대를 출동시켰다. 그것은 잘못된 판단으로 맺은 평화조약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헤세드' 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우리말 성경에서 주로 '인자'로 번역되고 있는 히브리어 '헤세드'는 약속한 것을 끝까지 지킨다는 '신실성'(faithfulness)을 의미한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곧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헤세드'가 되신다는 것은 곧 우리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헤세드'의 이웃이 되어야 함을 뜻한다. 그것이 여호수아가 기브온을 향하여 지체하지 않은 군대를 동원하여 적극적으로 도와준 이유이다.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