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말씀을 읽는 데서, 말씀이 우리를 읽어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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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2-7] 누가 읽는가?

▲이창우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이창우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여러분은 '말씀'을 누가 읽는다고 생각합니까? 아마 당연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읽는 사람이 말씀을 읽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키에르케고어에게 이것은 조금 복잡한 문제입니다. 물론 말씀을 읽을 때, '우리'가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 해석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말씀'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 자신이 말씀을 해석한다고 생각하지요.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주석서를 참고하기도 합니다. 주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신학교수, 목사 등 주로 말씀을 다루는 사람들입니다.

키에르케고어는 <자기 시험을 위하여>에서 이런 식으로 말씀을 다루는 것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서 해석의 주체가 되어 말씀을 읽는 것은, 성서를 실험실로 갖고 가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마치 동물 실험을 하듯, 실험실에서 성서를 해부하고 실험하지요. 이것은 성서를 다루는 사악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이런 방법이 찬양을 받고 있었다는 겁니다.

제가 볼 때, 오늘날도 달라진 것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말씀을 읽기는 하지만, 여전히 읽는 주체는 우리 자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 정말로 우리를 읽고 우리를 해석하고 있는 것은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예를 들자면, 아이들의 '놀이'를 들 수 있겠습니다. 아이가 놀 때, 놀이의 주체는 누구일까요? 놀이하는 아이와 구경꾼은 같을까요? 왜 아이들은 노는 걸까요?

먼저, 놀이하는 아이와 구경꾼은 천양지차가 있습니다. 아이는 '놀이의 세계'를 경험하지만 구경꾼은 그 세계를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여행을 직접 한 사람과 그 경험을 들은 사람의 차이와 같고, 연애를 직접 해 본 사람과 그 내용을 들은 사람의 차이와 같지요.

처음에 놀이의 주체는 아이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가 놀이에 더욱 참여할수록, 놀이 자체가 아이의 정신을 사로잡지요. 아이는 놀고 있으나, 아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놀이 자체이지요.

다시 말해, 놀이의 주체는 아이가 아니라 놀이입니다. 이때만 아이가 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죠. 이렇게 놀이에 빠진 아이는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정신이 없지요. 뒤늦게야 엄마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엉엉 우는 경우도 생깁니다.

아이가 노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놀 때 그를 둘러싼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요. 놀이에 빠질 때, 세계를 망각하는 겁니다.

청소년들이나 어른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지는 것도 비슷한 현상입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지요. 그러나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시는 상태가 됩니다. 술이 사람을 지배하는 겁니다. 여러분을 이해시키기 위해 보잘 것 없는 예를 들었을 뿐입니다.

다시, 말씀은 누가 읽습니까? 물론, 우리가 읽지요. 그러나 점점 더 말씀에 깊이 빠지다 보면, 말씀이 우리를 읽어줍니다. 말씀은 우리의 삶을 해석해 줍니다. 이 단계에 이르지 않는 한, 말씀을 말씀으로 읽은 것이 아니라, 다만 실험실로 갖고 간 것뿐입니다.

음악을 들을 때, 가끔 감정이 북받쳐 울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음악이 여러분의 마음을 이해해준 것 같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음악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음악이 여러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해석해주고 만져주고 치유해준 것 같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말씀을 읽을 때 말씀 앞에서 두려워 떨었다면, 음악이 여러분의 마음을 이해하고 해석해 준 것처럼 말씀의 감동에 사로잡혔다면, 말씀이 우리를 더욱 깊이 해석해 준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말씀을 해석하는 주체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말씀을 해석해야 하는 걸까요, 말씀이 우리를 해석해야 하는 걸까요?

키에르케고어에 의하면, 말씀 앞에서 우리는 해석돼야 할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을 말씀을 해석할 수 있는 위치에 놓고 그 관계를 전도시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대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는 이 지점에서 야고보서 말씀을 인용합니다. 말씀을 읽는 것은 마치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약 1:23).

거울을 보는 사람은 거울 속의 자신을 보는 것이지, 거울을 관찰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거울에 어떤 이물질이 묻었는지 관찰만 하고 있다면, 그가 거울을 본다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을 볼 때만 거울을 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말씀이 거울과 같다면, '학문적 성경읽기'는 거울을 관찰하는 것이지 거울 속의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므로, 성경 읽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미 거울 사업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울을 관찰하는 것이 거울을 보고 있는 것인 양,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대한 대단한 지식을 소유합니다. 누구보다 말씀을 많이 압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말씀을 읽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거울이 되지 못했고, 말씀의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이 드러나지 않았고, 여전히 말씀 해석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여전히 거울을 관찰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거울인 경우, 말씀의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은 낱낱이 밝혀져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속내가 다 드러나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말씀 앞에 서려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입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어떤 사람의 얼굴에 오물이 묻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얼굴에 오물이 묻은 것을 모릅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웃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왜 웃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거울을 보라고 말합니다. 그가 거울을 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는 거울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거울을 관찰만 하고 있습니다. 거울의 테두리, 거울의 디자인, 거울을 만든 재료, 거울을 만든 회사 등. 그는 거울에 대한 지식을 자랑합니다. 그가 거울을 연구하고 공부한 결과를 발표합니다.

사람들은 처음에 그의 얼굴에 오물이 묻었던 사실은 잊어버린 채, 지금은 그의 거울에 관한 지식에 열광합니다. 거울 사업이 이런 식으로 끝나야겠습니까? 아무도 거울 속의 자신을 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놀이에 사로잡힌 아이가 놀이를 경험하듯,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자가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놀이에 사로잡힌 아이가 주변의 세계를 망각하고 놀이의 세계를 경험하듯, 말씀에 사로잡힌 자가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음악 감상을 하던 자가 감정에 북받치듯, 말씀에 사로잡힌 자가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는 겸손하게 말할 것입니다. "주여, 말씀하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이창우 목사(키에르 케고어 <스스로 판단하라> 역자, <창조의 선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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