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 연구(18)
여호수아가 맞서서 싸운 아모리의 연합군은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다섯 왕들이 힘을 모아 구성한 연합군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살아온 지역에서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지형지물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유리한 군사작전을 펼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막강한 군사력도 하나님의 도우심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더구나 여호수아의 재빠른 기습공격으로 그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기선을 제압당했다. 기브온에서 크게 패한 아모리 연합군은 서둘러 퇴각을 결정하였고, 여호수아의 군대는 이들을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추격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다. 그것은 여호수아의 기도로 태양과 달이 멈춘 일이다. 여호수아서 본문에서도 그런 일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던 역사상 초유의 사건임을 밝히고 있다(수 10:14).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와 역사의 주인이시다. 그분은 모든 것이 가능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런 점에서 태양과 달이 잠시 멈추어선 것을 의심하거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잘못된 자세이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갖가지 기적들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못하실 일이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기적은 꼭 필요한 상황 속에서만 일어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면 여호수아가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한 기적은 어떤 상황 속에서 일어난 것일까?
그와 같은 기적은 퇴각하는 아모리 연합군을 추격하여 전멸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지금과 같이 조명탄이나 야간 전투 장비가 없던 당시로서는 낮 시간 동안만 전쟁이 가능했다. 이스라엘에게는 적을 추격하여 전멸시키는 일을 위하여 낮 시간의 연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신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전쟁을 위해서였다. 가나안 정복은 이스라엘의 영토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여호와를 위한 전쟁이었다. 여호수아서 본문은 그런 점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10:14)라는 표현으로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은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이지만, 최종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역사와 뜻을 이루는 것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은 여호수아의 기도를 통해서였다. 전쟁에 몰입해 있던 여호수아는 남아 있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서 낮 시간이 더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곧바로 하나님께 나아가 아뢰었다. 여기에서 '아뢰다'에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 '딥베르'는 '이야기하다' '말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로서 '상의하다'에 해당된다. 여호와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여호수아는 전쟁의 총 책임자이신 여호와께 나아가 당시의 전황을 보고하면서 적절한 조치를 요청한 것이다. 수준 높은 기도란 자신의 뜻이나 입장을 내세우는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헌신하는 기도 곧 하나님의 목적에 집중하는 기도이다.
낮 시간을 연장시키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도 불가피한 일이라는 것을 확신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태양과 달이 멈출 것을 기도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여호수아의 기도는 하나님께 그렇게 해달라는 요청의 기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태양과 달이 멈출 것을 지시하는 일종의 명령형 기도였다.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하실 분은 분명 하나님이시다. 여호수아가 그런 점을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여호수아가 명령형으로 기도한 것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에게 주어진 특권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말해준다. 여호수아는 여호와 전쟁의 참여자로서 다급해진 상황 속에서 낮 시간의 연장이 필요하였고 하나님께서도 그 일을 원하고 계심을 알았다. 그런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명령형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예수께서도 복음전파를 이루게 될 믿는 자이 갖가지 표적을 행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신 바가 있다(막 16:17-18). 여호수아는 태양을 멈추게 한 기도 속에서 그런 특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