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아버지’이기 전에 ‘위대한 교회음악가’인 바흐

김신의 기자  ewhashan@gmail.com   |  

‘베스퍼스’ 백정진 지휘자와의 인터뷰

▲종교개혁자 루터와 음악의 아버지 바흐. 바흐는 루터교 신앙을 기반으로 수많은 교회 칸타타를 작곡했다.
▲종교개혁자 루터와 음악의 아버지 바흐. 바흐는 루터교 신앙을 기반으로 수많은 교회 칸타타를 작곡했다.

오늘날 현존하는 합창곡과 오르간 음악의 상당수는 예배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임에도, 현재로서는 이 곡들이 예배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연결고리가 많이 희미해지는 실정이다.

이 가운데 전통적 예배음악들을 연주가 아닌 예배로 되돌리면서, 우리에게 전해진 예배와 예배음악들의 본질과 역할 등에 대해 탐구하고자 2012년 전공자와 실력 있는 일반인들이 모여 ‘베스퍼스 콰이어(Vespers Choir, 이하 ‘베스퍼스’)’가 결성됐다.

베스퍼스는 라틴어로 ‘저녁(vesper)’이라는 의미이자 전통 교회 예식에서 ‘저녁기도’란 의미로도 사용됐다. 이는 16세기 전후 하루 8회의 성무일과 중 가장 음악적 요소가 다양하게 어우러졌던 ‘기도모임’이기도 하다. 현재 ‘베스퍼스’는 절기에 맞춘 예배, 바흐 번외 프로젝트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베스퍼스의 백정진 지휘자. ⓒ김신의 기자
▲베스퍼스의 백정진 지휘자. ⓒ김신의 기자

최근 연세대학교 인근 카페에서 만난 베스퍼스의 백정진 지휘자는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음악과 출신으로 미국 University of Cincinnati에서 합창지휘 석·박사과정을 마치고 바흐의 칸타타와 예배음악의 음악·신학·예전적 구조와 역할에 대해 연구했다. 이날 만난 백정진 지휘자는 다음과 같이 예배음악에 대한 고민을 전했다.

“교회음악지침서. 이런 제목의 책을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책의 성가대 목록에 ‘찬양은 굳이 그 날 말씀이 아니어도 괜찮다’, ‘스타일을 이렇게 저렇게 바꿔가는 것 자체로 좋은 음악 수준을 보여준다’ 이런 내용이 적혀있더라고요. 보면서 안타까웠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지요. 전톡적 예전을 지키는 교회에서 각각의 주일을 위한 송영부터 회중찬송, 찬양곡 등 일찍부터 예배음악의 세세한 부분을 교회음악가와 목회자가 만나 이야기하면서 말씀을 따라 준비했거든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고 말하지만, 회중들이 ‘지금 저 찬송을 왜 하는 거지?’이런 상황이라면… 전자의 예배와 후자의 예배는 많이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이날 백정진 지휘자는 전통적 예배음악뿐 아니라 바흐의 음악과 신앙, 오늘날의 교회음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갔다.

‘베스퍼스’는 지난 10월 14일, 종교개혁 500주년과 맞물려 ‘바흐가 부르는 찬송’ 렉처 콘서트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에는 종교개혁 후 교회 음악의 새로운 레퍼토리로 나온 ‘코랄(Chorale: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보급된 회중찬송)’을 사용한 ‘칸타타(Cantata)’, ‘수난곡(Passion)’들이 다루어졌다.

그 중 성금요일에 불려지던 ‘죄 없으신 어린양(O Lamm Gottes, unschuldig)’은 마태수난곡(1727)의 개막합창으로 사용됐으며, ‘하나님의 어린양(Christe, du Lamm Gottes)’는 칸타타 BWV 23에 사용되었으며, 이 칸타타는 누가복음 18장 35절에서 43절, 눈먼 소경에 대한 이야기를 배경으로 쓰여졌다.

▲곡의 의도, 구성에 따라  교회 안에서 콰이어의 위치와편성이 달라진다.  사진은 Picander(Christian Friedrich Henrici: 1700–1764)의 구상, 제비둥지 오르간. ⓒ베스퍼스 제공
▲곡의 의도, 구성에 따라 교회 안에서 콰이어의 위치와편성이 달라진다. 사진은 Picander(Christian Friedrich Henrici: 1700–1764)의 구상, 제비둥지 오르간. ⓒ베스퍼스 제공

▲예배순서를 보면 칸타타가 전, 후로 위치하며 예배의 흐름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베스퍼스 제공

▲예배순서를 보면 칸타타가 전, 후로 위치하며 예배의 흐름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베스퍼스 제공

예배순서를 보면 칸타타가 여럿으로 나뉘는데, 말씀 봉독 후 설교 직전에 하나가 있고, 성찬식 때 하는 칸타타가 있다. 이야기의 진행을 보면 마치 설교에서 성경 이야기가 우리의 삶에 적용되는 과정처럼 점차 확장되는 구조를 가진다. 먼저 1악장은 2중창인데, 눈먼 소경 이야기를 다루는 복음서의 내용으 그대로 서술한다. 두 개의 선율이 앞서고 뒤따르며 흐르는 것은 소경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이미지를 담는다.

“오 참 하나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머나먼 영원으로부터 오신 분 마음의 고통과 이 육신의 아픔을 살피시사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의 능력의 손, 악한 것을 물리치시는 그 손으로 저에게도 도움과 위로를 주소서.”
*
이어 레치타티보(recitativo, 서창)에서 소경의 내면과 그 소원이 보다 심층적으로 조명된다.

“아 그냥 지나치지 마소서! 인류의 구원자께서 이렇게 오심은 강한 자가 아닌 병자를 돌보심이오니. 그러므로 저 또한 당신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품어주소서. 사람들이 저를 버리듯이 놓아둔 이 길가에서 주님의 오심을 이 어두운 눈으로 보오니.”

그리고 이야기는 3악장에서 한 사람의 소경을 넘어 ‘모든 눈’으로 확장되고(“모든 눈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주님 전능하신 하나님이여. 무엇보다 나의 눈이 주님을 바라나이다”), 4악장에서는 더 나아가 코랄, 즉 회중찬송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리스도, 하나님의 어린양이여, 세상의 모든 죄를 사하시는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에게 주님의 평화를 주소서, 아멘.”

이처럼 ‘코랄’은 높은 문맹률로 인해 번역한 성경조차도 읽지 못하는 회중들을 위해 교리를 담고 교육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나오게 됐으며, 당시의 루터교 신자들은 대부분 코랄을 외워 부를 수 있었다. 또한 회중들은 코랄을 통해 보다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신앙고백을 하며 예배에 참여하게 됐다.

특히 당시 시대는 예배음악이 교회력에 따른 특정 주일의 주제나 그 날의 예배, 당일 성경본문, 성서정과(Common Lectionary: 교회력, 절기에 따라 성서말씀이 배치된 성서읽기표. 구약성서, 시편, 서신, 복음서로 나누어 읽는다-편집자주), 예배의 순서와 밀접한 관계를 전제로 만들어 졌다. 이에 백정진 지휘자는 설명을 덧붙였다.

“바흐 시대를 예로 들면, 예배뿐 아니라 교육 외 많은 것을 교회가 감당했기에, 회의도 회의지만 교회 근처에 살면서 늘 만났을 거예요. 공동성서정과에 따라 대본가와 음악가들이 미리 대본과 곡을 쓸 수 있도록 시스템 자체가 그 날 예배에 맞는 음악을 만들도록 돼 있었죠. 음악과 설교 모든 게 하나로 어우러져 회중들이 연쇄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래서 사람을 뽑을 때, 그 사람의 음악적인 스킬 뿐 아니라 얼마나 성경을 이해하고 또 이것을 음악적으로 예배 안에 잘 표현해낼 수 있는지를 봤겠죠.”

바흐는 모태신앙으로, 종교개혁과 종교전쟁 이후, 경건주의(Pietism)와 정통파가 공존하던 시대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루터교 가문이었으며, 그의 라이브러리에는 루터의 설교집을 비롯해 다수의 기독교서적이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칼로프 성경은 그가 얼마나 성경을 열심히, 진중하게 읽었는지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쾨텐(Köthen)에서 지냈을 당시는 쾨텐을 다스리던 사람이 칼빈 신자였기에, 바흐는 작은 루터교회에서 예배만 드리고 궁정음악가로서의 직업에 충실했다. 또한 라이프치히로 옮길 때에는 쾨텐과 새로운 직장의 연봉 차이에 대한 기록이 학자들에게 다양한 해석을 주기도 한다.

이에 백정진 지휘자는 “교회음악에 열정이 있지만 이 땅에 사는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인간적인 면도 보인다”고 평했다.

이어 바흐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는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라고 알려져 있음에도 그의 신앙과 교회음악에 대한 인식은 너무도 미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바흐를 ‘위대한 교회음악가’라고 칭하며 그의 음악은 예배를 위해 쓰여진 것이기에 ‘공연장’이 아닌 본래의 목적대로 예배의 현장에서야 그 음악의 참 뜻이 살아날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이에 바흐를 예배의 요소를 제거하고 음악적인 요소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음향을 즐기는 현 사회에 아쉬움을 표했다.

▲베스퍼스가 기획한 '바흐가 부른 찬송' 바흐 번외 프로젝트에서 회중들과 함께 코랄(회중찬송)을 부르고 있다. ⓒ김신의 기자
▲베스퍼스가 기획한 '바흐가 부른 찬송' 바흐 번외 프로젝트에서 회중들과 함께 코랄(회중찬송)을 부르고 있다. ⓒ김신의 기자

또 이번 바흐 프로젝트를 준비한 단원들에게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표했다.

“지금 5, 6년 째인데 딱 서바이벌, 죽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만큼 돌아요. 그런 면에서 프로답지 못하죠. 가내수공업처럼. 그럼에도 이제껏 온 걸 보면 단원들의 헌신과 베스퍼스의 예배를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들의 격려, 또한 하나님께서 때에 따라 힘을 주신 것 때문이라 생각해요.

사실, 작년에 솔리스트랑 악기 외에 야심차게 바흐 프로젝트를 올렸었는데, 좋았지만,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잘 전달이 안된 것 같아, 좀 허탈한 부분이 있었어요. 당시의 예배를 고증하는 데에 공을 많이 들이고 음악적 부분도 정말 많이 신경 썼지만, 당시의 예배의 흐름을 온전히 이해시키기에는 21세기의 한국과는 간극이 컸던 것 같아요. 과감하게 예배 형식을 내려놓고, 렉처 콘서트 형식을 빌렸죠. 반응이 예상외로 많이 좋더군요. 하나의 위로와 전환점을 주신 거 같아요.”

한편 베스퍼스는 오는 12월 대림절 음악 예배를 갖는다. 대림절에 드려지는 ‘아홉 가지 말씀과 캐럴의 예배(A Festival of Nine Lessons and Carols)’는 대표적인 베스퍼스의 정기적 음악예배 프로젝트다.

백정진 지휘자는 현재 영락교회 베들레헴 찬양대와 베스퍼스의 지휘자이자 한세대학교 겸임교수로 있으며,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베스퍼스 콰이어(Vespers Choir)의 ‘아홉 가지 말씀과 캐럴의 예배(A Festival of Nine Lessons and Carols)’. ⓒ베스퍼스 콰이어
▲베스퍼스 콰이어(Vespers Choir)의 ‘아홉 가지 말씀과 캐럴의 예배(A Festival of Nine Lessons and Carols)’. ⓒ베스퍼스 콰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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