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칼럼] 메롬 물가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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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서 연구(24)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하솔왕 야빈의 주도로 결성된 북부 연합군은 수적으로도 월등했을 뿐 아니라 말과 병거라는 강력한 무기를 갖춘 군대였다. 이들이 진을 치고 여호수아의 군대를 맞은 곳은 '메롬 물가'였다. 당시의 메롬 물가가 어디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두 지역이 가능한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하나는 상부 갈릴리산지에 위치한 '메이론'으로, 오늘날의 사페드에서 서북방향으로 5km 정도 떨어진 지역이다. 이 지역에 있는 몇 개의 샘들은 갈릴리바다로 유입되는 '와디 메이론'의 급수원이 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하솔에서 북쪽으로 15km 떨어진 훌레 호수 근처의 '마룬'이다. 당시 야빈의 연합군이 말과 병거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산지에 위치한 '메이론'보다는 계곡에 위치한 '마룬'이 메롬 물가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 말이 이끄는 병거는 산지보다는 평지에서 더 위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의 공격방법은 기브온 전투에서처럼 상대방의 방심을 틈타 허를 찌르는 기습공격이었다(수 10:9; 11:7). 이스라엘의 본진이 위치했던 길갈에서 메롬 물가까지는 150km 이상 떨어진 먼 길이었다. 여호수아는 먼 거리에서 오고 있다는 점을 역으로 활용했던 것 같다. 야빈의 연합군은 이스라엘 군대가 그와 같은 먼 길을 오려면 상당한 기일이 걸릴 것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자신의 군대를 서둘러 행군케 함으로서 예상치 못한 시간에 공격을 감행할 수가 있었다. 소위 틈새를 공략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선제공격으로 야빈의 연합군을 패배시킨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도주하는 적들을 추격하여 하나도 남김없이 전멸시켰다. 그런 추격전은 북쪽과 서쪽과 동쪽의 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시돈은 전투가 벌어졌던 메롬 물가에서 북서쪽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미스르봇마임은 오늘날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서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로쉬 하니크라'(일명 '두로의 사닥다리'라고도 함)로서, 메롬 물가에서는 서쪽에 위치한 해안지역이다. 앞선 3절에서 '미스바땅'으로 언급되었던 미스바골짜기는 동편 지역으로서, 헬몬산 아래의 고원형산지에 해당된다.

세 방향으로 추격하여 야빈의 연합군을 전멸시킨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살랐다(수 11:9). 하나님께서는 왜 말과 병거를 없애버리라고 하셨을까? 오히려 그것들을 잘 활용하여 앞으로의 전쟁을 대비하는 무기로 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정반대 방향의 명령을 내리신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철기문화가 도입되지 않아서 병거와 같은 최신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도 한 요인으로 지적될 수 있겠다. 그러나 말과 병거를 모두 없애버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는 그보다 더 큰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것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가나안 정복전쟁이 여호와께서 주도하시는 거룩한 전쟁이라는 점과 관련된다. 여호와의 전쟁은 사람의 수나 무기의 우수성과는 상관이 없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여호와 전쟁이다. 그런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군대가 지니고 있던 말과 병거를 취하여 자신들의 무기로 삼는다면,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아닌 무기의 우수성에 마음을 빼앗길 수 있다. 하나님보다는 인간의 힘을 의존하는 잘못된 신앙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전쟁에 임하는 여호수아에게 그런 명령을 내리신 것은 잘못된 신앙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을 사전에 원천적으로 차단시키시기 위함이었다.

전쟁에서 승리를 얻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자축연을 벌리는 대신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으로 전쟁을 마무리 지었다. 여호와 전쟁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성대하면서도 거룩한 자축연이다. 하나님은 풍성한 제사보다도 말씀에 대한 순종을 더 소중하게 여기신다. 그래서 성경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삼상 15:22)고 하였다.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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