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진리란 현존의 삶이다!
도대체 진리란 무엇인가?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진리이신가? 첫 번째 질문은 주님께서 심문을 받으실 때, 빌라도가 던진 질문이다(요 18:38).
빌라도가 진리에 대하여 정말로 알고 싶어서 던진 질문인지는 논외로 하자. 다만 빌라도가 그리스도께 이 질문을 던진 것이라면, 이 질문은 자신의 무지함을 폭로한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진리이시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마치 답지를 들고 답을 물어보는 것과 같이 어리석다. 앞에 서 계신 분이 "답"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진리이시다(요 14:6). 그런데 진리이신 그분 앞에서 진리가 무엇인지 묻는다는 것은, 빌라도가 얼마나 진리에 대하여 까막눈인지를 증명한 셈이다.
아, 빌라도가 불쌍하구나. 2천 년 넘는 역사 가운데 그가 얼마나 진리를 몰랐는지 이렇게 폭로될 줄이야!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성경이고, 이 책을 읽는 사람마다 빌라도의 어리석음을 읽고 있다니!
그러니 성경을 읽고 있는 그대도 함부로 진리가 무엇인지 묻지 마시라! 빌라도와 같은 입장이 되지 않을까? 성경은 진리에 대해 증언한 책인데, 성경을 보고도 진리가 무엇인지 몰라 묻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진리가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주지 않았던가. 다시 말해, 그분의 생애를 통해 진리를 배우지 못한다면, 그래서 빌라도의 눈을 뜨게 하지 못한다면, 누가 "말"로 그에게 진리를 설명할 수 있을까?
주님은 생애 전체를 통해 진리가 무엇인지 직접 몸으로 보여주신 분이시다. 그리고 마지막에 빌라도 앞에 서 있었다. 바로 그때, 빌라도가 묻는다. "진리가 무엇인가?"
빌라도는 지식욕에 불타고 탐구심이 강한 사람처럼 보인다. 요즘처럼 유명한 하버드나 옥스퍼드와 같은 외국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사람이 최고의 두뇌와 명석한 강의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빌라도에게 진리를 설명한다 해도, 그의 앞에 서 있는 주님만큼 진리에 대해 설명해줄 사람은 없다.
얼마 전 <정의란 무엇인가?>로 대 히트를 치고 명석한 강의로 소문난 하버드 철학교수 마이클 센델도 주님만큼 진리를 잘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주님은 "진리가 무엇인가?"라고 묻는 질문에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신다. 만약 이 질문에 대답하셨다면, 그 분은 스스로 비진리이고 사기꾼임을 밝힌 셈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란 현존의 삶이기 때문이다. 이미 그분이 사셨던 삶 자체가 진리이시고, 이런 식으로 진리가 구현되는 것이라면 진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 외에는 진리로 존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들에게 진리란 자기의 존재보다 무한히 높다. 그래서 진리를 알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구다.
그러나 빌라도는 주님께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분을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상가 중의 한 사람 정도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아마도 진리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그 답을 얻고 싶어 물어봤는지 모른다. 그는 어쨌든 주님을 놓아주려고 힘쓴 사람이었으나 그리스도인이 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불쌍한 빌라도여, 이렇게 진리에 대하여 물었던 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실 그분을 동정하며 말한다. "보라, 이 사람이다(요 19:5)."
이것은 그가 한 말로 약 2천 년동안 성경 속에 전해내려 오고 있으나, 이 말은 "보라, 나는 이런 바보다"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자기 앞에 서 있는 분이 진리인 것을 알지도 못하면서 저렇게 말하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진리가 무엇인지 묻는 빌라도의 어리석음을 한 번 설명해 보자. 얼굴을 맞대어 이야기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 사람이 있다. "당신에게 묻겠습니다만, 당신은 여기 있습니까?"
얼마나 멍청한가.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뭐라고 답변하겠는가. "아니, 나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고 있는 내가 여기 있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내가 도대체 무슨 말로 보증할 수 있을까요? 내가 여기 있다고 아무리 확신에 차서 말한다 해도, 내가 현재 여기 있다는 사실에 비하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눈을 뜨고도 믿지 못하겠습니까!"
주님은 진리가 무엇인지 아무런 설명도 없으셨다. 그러나 아마 설명을 붙이자면 이와 같을 것이다.
"나의 삶이 당신의 눈을 뜨게 하여, 진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내가 말로써 당신에게 그것을 전한다는 것은 더욱 더 불가능한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진리에 대하여 대답한다 해도, 나야말로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이다."
세상에서 진리가 무엇이냐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소리가 얼마나 많은가. 호기심에 불타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진리는 말로 대답할 수 없다. 주님이 길이시고 진리이신 한, 진리는 현존의 삶이다.
만약 진리가 무엇이냐 누군가 묻는다면, 그리스도인은 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다음과 같이 말하면 된다. "그리스도, 그분을 보라, 그리고 그분에게서 배우라. 그분이 진리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그 분이 진리이실 때, 진리란 어떤 개념규정이나 명제가 아니라 현존의 삶이다. 이런 점에서 호기심에 가득 차 진리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주님의 제자가 아니다. 아니, 아주 엄밀히 말해서 그 사람은 빌라도의 제자다.
겉으로는 그리스도인으로 착각하면서 진리에 대한 호기심에 불타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도, 현실에 주님의 삶을 살아가는 데 관심이 없다면, 빌라도의 제자다.
빌라도의 제자가 되는 길은 쉽다. 학문적 열정에 불타 열심히 진리를 탐구하고만 있으면 된다. 아마 이런 사람들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대단히 칭찬을 받을 것이다. 이 사람만큼 그렇게 진리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분이 사셨던 현존의 삶에 대하여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 그는 불쌍하게도 2천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바보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 빌라도의 제자가 되는 길에 점점 더 가까이 서게 될 것이다.
이창우 목사(키에르케고어 <스스로 판단하라> 역자, <창조의 선물>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