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칼럼] 여호수아서 연구(27)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는 두 가지 과제가 주어졌다. 하나는 가나안을 점령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점령한 땅을 분배하는 일이었다. 전자가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용사의 모습이라면, 후자는 지파별 안배를 주도하는 조정자 모습을 보여준다. 가나안을 점령하는 일은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힘든 과정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점령한 땅을 지파별로 균등하게 분배하는 문제도 그에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다. 이 두 가지 과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일들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여호수아서의 전반부 12장은 가나안 점령 과정을 다루고 있고, 후반부 12장은 점령한 땅을 분배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선결과제는 가나안땅에 입국하여 정착된 생활을 영위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모세를 부르실 때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주신 약속이기도 했다(출 3:8). 그러나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을 기다리는 빈 공백의 땅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오랫동안 그곳에서 자신들의 삶을 지켜온 가나안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우선적인 과제는 그들을 몰아내고 그 땅을 점령하는 일이었다. 그런 다음 그에게는 점령한 땅을 각 지파별로 분배하는 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호와께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여호수아가 온 가나안 땅을 취하여 그것을 각 지파에게 나누어줌으로 비로소 전쟁이 그치게 되었다(수 11:23). 가나안 땅의 점령과 그 땅의 분배로 출애굽 구원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의 점령과 분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일까? 가나안 점령은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이 살아갈 영토의 확보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영토를 확보하기 위한 정복전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거룩한 역사였다.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일이 여호수아에게 맡겨진 임무였지만, 그 전쟁은 전적으로 여호와께 속한 여호와 전쟁이었다. 비록 여호수아가 앞장서서 이스라엘 군을 지휘하는 지도자였지만, 그가 얻은 승리는 그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결과였다. 그런 점에서 가나안 땅의 점령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전적 개입으로 이루신 일이었다.
그렇다면, 땅을 분배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전쟁으로 점령한 땅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넓은 영토라도 제대로 가꾸지 못하면 쓸모없는 땅이 되고 만다. 땅을 가꾸는 일은 균등하게 땅을 분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지파 간에 갈등 없이 땅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일이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지형이 고르지 못한 산지로 이루어진 가나안 땅의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땅을 분배하는 일을 위하여 여호수아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사려 깊은 배려와 조정이었다. 여호수아의 그런 면은 칼을 들고 서있는 용사가 아니라 공평하게 판결을 내리는 지혜로운 재판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적진을 향하여 돌진하는 강력한 힘의 소유자가 아니라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는 넓은 안목의 지혜로운 지도자였다.
예수께서 자신의 사역을 통하여 보여준 두 가지 요소도 '지혜와 권능'이다. 자신의 고향 나사렛을 방문하셨을 때, 그곳 사람들은 예수의 지혜와 능력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를 의아하게 생각했었다(막 6:2).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내부갈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일곱 집사들을 세울 때에도 같은 기준이 제시되었다. 그들은 모두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들이었다(행 6:3). 지혜와 권능, 그것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들이다. 권능(듀나미스)은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실 때 주어진 것이다(행 1:8). 위로부터 주어지는 지혜(소피아) 역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고 하였다. 건전한 신앙은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과 지혜라는 조화로움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