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사역은 무엇일까?
년말이 다가오니 한 해를 돌아보면서, 러시아 선교 전략이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의 사역이 전략적이었는가? 현장이 필요로 하는 사역은 무엇이었는가? 왜 내가 이 지역에 선교사로 와 있는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세월만 보내고 있지는 않는가?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러시아 사역의 현장을 좀 살펴보자.
목회자와 신학적 소양
나의 경험상 대략 다음과 같이 분석해 보는 것은 타산지석이 되기 위함이다. 각자의 현장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사역을 분석하는 것은 작은 나침반이 되기를 바라는 뜻이다. 러시아 교회 사역 현장은 공산주의 시절을 지나오면서 신학적·목회적으로 정상적 교육을 받을 기회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신앙생활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무슨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겠는가? 그래서 지방의 많은 교회들은 정상적인 교육보다는, 모인 사람들 중에서 혹은 스스로 사역자가 되어서 교회를 섬기는 경우가 많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요즘은 많은 신학기관들이 생기고 인터넷 매체를 통하여 통신교육과 집중교육을 통하여 부족한 부분들을 열심으로 배우며 나가고 있는 것을 본다. 아주 감사하고 소망이 있는 일이다.
이러한 역사적, 신학적, 신앙적, 목회적 배경 하에서 러시아 교회의 모습은 방향이 정해지는데, 그것은 첫째, 은사주의 혹은 보수, 수구, 경건주의 신앙의 모습으로 많이 나타나게 된다. 둘째는 기복주의 신앙이다. 이것은 어디서나 대부분 동일한 문제라고 보지만, 목회자의 신학적 기반이 부족하고 어려운 시절을 지나오면서 생겨나는 종교적 상황이라고 본다.
미자립교회
두번째 큰 문제는 많은 교회들이 재정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외부에 의존하든지 아니면 건축 일을 통하여 가족을 먹이고 교회를 돌보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 교회가 25년을 지나면서 많이 달라진 것은 여기저기 건축을 진행하는 곳이 매우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것은 외국의 지원을 받아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자체적으로도 많은 건축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한국인 선교사들을 통하여 건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들이 많은 것을 보게 된다. 늦었지만 그래도 잘 하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선교사가 주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 선교사는 가장 큰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대부분 선교사 명의로 건축을 한다든지, 건축 이후 사역과 재정에 있어 자립을 시키지 못하고 계속하여 담임목사의 역할을 하는 것은, 선교사가 가장 내려놓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특별한 경우가 있을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
선교사의 역할
오늘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러시아 선교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 부분에서 나는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당신은 무엇을 하기 위하여 이곳에 선교사로 왔는가? 지금 하는 사역은 무엇인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그 사역이 왜 필요한가? 현장의 필요인가? 현장의 요구인가? 당신의 필요인가? 한국교회의 요구인가? 그 사역은 꼭 당신이 해야만 하는 일인가? 당신이 세운 지도자, 제자를 통하여 하면 안되는가? 당신보다 더 잘할 수도 있지 않는가?
당신은 언젠가 떠나야 할 나그네이지 않는가? 병들면 혹은 추방당한다면, 아니면 한국교회에서 후원을 중단한다면, 여러가지 변수로 인해 떠나야 할 입장이라면, 당신이 없어도 복음의 역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 스스로 굴러가도록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가? 또한 그것이 책임 있는 사역이 아닌가 질문해 본다.
현지에서 교회 사역에 집중하는 한국인 선교 사역들을 많이 보게 된다. 선교사역의 핵심은 교회이다.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과 만남의 역사가 일어나고 찬양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교회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교회를 통하여 제자가 훈련받게 되고, 사역자가 일어나고, 많은 생명들이 구원의 기쁨과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교회는 선교의 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의 사역은 교회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 교회 사역은 제자 혹은 동역자를 통하여 진행하여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기간을 정할 수는 없지만, 경험상 처음 5년 정도는 교회 사역과 더불어 제자를 양성하게 된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도록 교회를 선교사가 붙잡고 있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하는 것은, 선교사의 사역이 외국인 대상 목회 사역이 아니고 전략가로서 사역을 수행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목회의 경험이 부족하거나 없어서, 교회 사역을 바르게 하지도 못하면서 붙잡고 있다면, 예를 들어 매우 권위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로 '우리 교회 우리 교회' 하면서 개교회 주의 사고방식과 교단주의로 물들어 있다면, 또한 설교가 사유화되어 목사의 이기적인 태도와 사고방식으로 일관한다면 그것을 바른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선교사의 사역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경험부족으로 인하여 교회의 방향을 상실하는 것이 아닐까 우려도 된다.
또한 교회의 공동체 의식과 교회의 보편성을 가르치지 못한 것은 선생 된 자로서 책임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교사가 내 교회와 교파를 따지면서 개교회주의로 나가는 것은 현장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태도이다.
초대교회 당시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별하였던 율법주의자들의 모습과 전혀 다를 것이 없지 않는가? 그런 정도의 편협하고 옹졸한 사고방식으로 현장에 들어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적어도 선교사는 내가 세운 제자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책임, 교만함 때문이다. 제자가 설교의 공공성을 회복하지 못하였다면 바르게 교육하지 못한 연고이다.
제자에서 동역자로 협력자로 세워나가는 것이 선교사의 책임이다. 그리고 선교사는 사역에서 자유해야 한다. 여기저기 돌아보아 격려하고 바르게 세워주어야 하는 일들이 무수히 많다. 그들을 돌보고 교육하는 것이 현장에서 더욱 필요한 사역일 것이다.
또 저물어가는 한 해를 정리하고 돌이키면서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하였는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말했던 버나드 쇼의 말을 생각하면서, 주어진 시간과 기회와 여건 속에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 전략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본다.
세르게이(모스크바, 러시아 선교사)